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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진입 첫째 날 (207/225)

경성… 진입 첫째 날

“조지 대장님, 죄송합니다.”

“대장님, 죄송합니다.”

내가 제주도로 돌아왔을 때, 광복군이 ‘위대한 해방’ 작전을 진행하면서 본토에서 겪은 상황을 먼저 파악한 유자명 선생과 백정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닙니다. 내가 여러분들한테 너무 무리한 일을 해달라고 요구를 한 거지요. 솔직한 내 심정은 내가 여러분께 더 미안합니다. 일할 사람은 적은데 일만 몽땅 시켜서…. 이번 기회에 정보대의 인원을 대폭 늘리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제 앞으로는 담당해야 할 지역과 일이 훨씬 더 많이 늘어날 텐데?”

솔직한 내 마음은 모든 광복군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내가 태평양 전쟁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고 어떻게 종결이 된다는 것을 안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쉽게 생각했다.

웨스트포인드에서 일 년간 연수하면서 태평양 전쟁사를 공부하고 연구했던 경험 때문에 태평양 전쟁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자만심에 일이 이렇게 된 것 같았다.

지금은 이런 실수가 또 생기면 안 되는 중요한 시기였다.

이제부터라도 자만심을 버리고 주위 다른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가면서 일을 해야 할 시기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임시정부 중요 인사들은 제주도로 먼저 모십시다. 그게 지금 당장은 중요한 것 같네요.”

“지금 그렇게 하려고 준비 중이기는 하지만 몇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유자명 선생이 지금 당장은 곤란하다는 식으로 대답을 했다.

“왜요? 내가 모르는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아니요. 그게 아니고 조선 독립연맹의 김두봉이 임시정부로 연락을 해왔습니다.”

“그들이 왜요? 전에 함께할 사람은 전부 오라고 했을 때도 그쪽에 남은 사람들이 아닙니까?”

“예, 그렇긴 한데, 이번에 조선 독립연맹에 좋지 않은 일이 생겼습니다.”

“왜요? 혹시, 뭐, 총알받이 같은 것이라도 된 겁니까?”

“어? 조지 대장님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유자명 선생은 자신이 보고하지 않는 최신 정보를 내가 알고 있자 조금은 놀란 눈치였다.

“그냥 넘겨 집어봤습니다. 그쪽 동네는 그런 일들이 워낙 비일비재하잖습니까? 그런데, 정확히는 어떤 일이 생긴 겁니까?”

이번에 기획된 중화민국군의 대반격 작전의 일환으로 장제스 총통은 중국 공산당에 일본군과의 전투에 앞장서라고 통보했고 강요에 못이긴 중국 공산당은 한족 조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소수민족 위주로 구성된 의용군을 전위에 세웠다.

그런데 문제는, 그 소수민족 전위 부대의 대다수 병력은 조선인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두봉이 김구 선생께 도움이라도 요청한 겁니까?”

“예, 자신들은 죽어도 좋지만, 조선의 젊은이들만큼은 살려서 조국으로 데려가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어차피 중화민국 국민당의 장제스와도 이제는 갈라서야 할 상황이고, 뭐 어차피 중국 공산당과는 이미 끝난 사이니까 눈치 볼 필요는 없는 건가? 하지만, 문제는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할 해방 공간에 이념 대결이 생기는 경우다. 그것을 막을 수 있다면 당연히 조선의 젊은이들을 살려야지.’

“그럼, 김구 선생은 뭐라고 합니까?”

“많이 안타까워하시지만, 현실적으로 조선인 의용군을 살릴 방법이 없어서 괴로워하고 계십니다.”

“음….”

내가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자 유자명 선생은 뭔가를 말할까 말까 하면서 계속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뭐, 또, 무슨 다른 문제도 있습니까?”

“예, 임시정부 주요 지도자분들이 따로 말씀은 하지 않으시지만, 장제스 총통이 임시정부 지도자들과 만나서 해방과 관련된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럼, 대충 어떤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까?”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대로라면 중화민국이 당분간 임시정부의 뒤를 봐주겠다는 식의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새끼도 이젠 완전히 미친 새끼군요.”

이데올로기와 주변 강국들과의 외교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다.

우리 민족의 생존과 미래가 걸린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 바중으로 수송기를 보내서 임시정부 지도자분들을 제주도 최대한 빨리 모셔오십시오. 아무래도 진짜 중요한 순간이 다가온 것 같습니다.”

“예, 대장님.”

유자명 선생과 백정기에게 급하게 지시를 몇 개하고 나서는 바로 벌써 경성에 진입했다는 김경천 대령의 전차대대와 김원봉 중령의 해병대를 지원하는 조치를 했다.

“빨리 제주도에서 훈련 중이던 지원병 2개 대대를 수송기를 통해서 경성의 후방으로 투입해서 경성에 진입한 부대들을 후방에서 지원하라고 해라.”

“예, 대장님.”

“그리고, 군산과 목포를 목표로 움직였던 1개 대대 병력도 지금 당장 병력을 돌려서 경성으로 올라가고 해.”

“예.”

‘더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이 어디 없나? 에이…. 시발, 다시 생각해봐도 버마 전선을 지원 중인 이범석의 2연대가 진짜 아깝네. 어차피 이렇게 장제스한테 배신당할 것 진즉에 뺄 걸 그랬나?’

“그리고, 경성은 어떡하든지 일주일만 버티라고 해라. 일주일 후에는 괌과 사이판에서 2개 연대 병력이 오니까 일주일만 버텨달라고 해.”

“예, 대장님.”

* * *

노량진에 진입한 김경천 대령의 전차대대는 일본군이 인해전술로 화염병과 자살 폭탄을 들고 달려드는 바람에 상당히 애를 먹고 있었다.

“경성을 그냥 밀어 버릴까?”

“에이, 그랬다가 나중에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요.”

이미 상하이 전선에서 직접 시가전을 치르면서 시가전이 무엇인지 배워서 알고 있는 김경천과 김원봉은 절대 서두르지 않고 무리하지도 않는 선에서 한 발자국씩 전진하는 전술을 선택했다.

“제주도의 조지 대장님은 일주일만 버텨보라는데요?”

“그래도 조지 대장이 신속하게 조치해줘서 고맙군. 그런데 평양에 주둔 중이라는 일본군 30사단의 2개 연대는 어떻게 할지 궁금하군.”

“벌써 항공대가 경의선 철도를 끊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시간은 번 것 같은데…. 문제는 우리가 그 시간 안에 경성을 완전히 수복할 수 있냐는 건데….”

“김 대령님, 일단, 영등포까지는 일본군을 밀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겠지. 그리고 지원 병력이 도착하면 경성을 완전히 수복하면 될 것 같은데.”

김경천의 전차대대와 김원봉의 해병대대의 주공은 노량진 ~ 영등포 도로의 강변을 타고 경부 가도와 철로를 확보하면서 공격하고 있었고, 조공은 동작동 ~ 흑석동의 능선을 확보해서 주공이 노량진 ~ 영등포를 잇는 도로와 철도를 장악하는 것을 지원하도록 했다.

“강석이 아버지, 큰일 났는데 이렇게 집에만 처박혀 있어도 되는 거예요?”

이기붕의 아내 박마리아는 시시각각 전진하고 있는 광복군의 소식을 접하면서 앞으로 살아남을 대책을 세워야만 할 것 같은데 아무런 대책도 없이 집에만 처박혀 있는 이기붕을 보면서 악다구니를 썼다.

“이 시국에 밖을 나돌아다니다가 총이라도 맞으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야? 지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숨어있는 것이 최고네.”

“아휴…. 그걸 말이라고 해요? 제주도에서 전해진 소식 못 들었어요? 못 배우고 지지리도 가난한 놈들이 그동안 떵떵거리면서 잘 배우고 잘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잡아서 쳐죽인다잖아요?”

“임자? 우리가 떵떵거리고 살았는가? 아니면, 잘 배우고 잘살기를 했는가? 뭐가 그리 걱정인가?”

별다른 친일 행적이 없는 이기붕과는 달리 미친년처럼 일본을 위해서 충성을 해야 한다고 떠들고 다녔던 박마리아는 광복군의 경성 진입에 불안하기만 할 뿐이었다.

1942년 김활란, 모윤숙, 노천명, 박순천 등과 함께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라는 친일 단체를 결성하고 활동하면서 황국신민, 내선일체를 주장했고 정신대 모집과 국방헌금 헌납 등을 독려하는 활동을 한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강석 아버지는 광복군이 경성에 들어와도 죄지은 것이 없으니까 괜찮다 이거에요? 그럼, 나는 뭐예요? 내가 그렇게 하고 다닌 것이 나 혼자 잘 먹고 잘살자고 그런 거예요? 에? 나 혼자 잘 먹고 잘살자고 그런 거냐고요?”

하루 이틀 겪는 박마리아의 패악질이 아니었지만, 오늘만큼은 평소와 다르게 그 정도가 심했다.

“에이…. 시…. 그래,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럼 내가 뭘 하라는 거야?”

“당장 나가서 눈치라도 좀 살펴봐요. 경성을 광복군이 점령할 수 있는지? 아니면, 우리 황군이 광복군 같은 것들은 금방 몰아낼 수 있는지 좀 알아라도 봐요.”

결국, 이기붕은 박마리아의 호들갑에 어쩔 수 없이 상의를 주섬주섬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집 밖으로 쫓겨난 이기붕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총소리와 폭음에 놀라서 오금이 저려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썩을…. 내가 마누라 때문에 이거 이러다가 제명에는 못 죽지…. 그나저나 어디로 가야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거나?”

광복군이 아산 평택에 상륙해서 무서운 속도로 치고 올라와서 경성에 진입했다는 소식에 경성 일대의 친일 매국노들은 이기붕, 박마리아 부부처럼 다들 난리가 난 상태였다.

일본으로 도망가기 위해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려고 해도 이미 대전역이 광복군에게 점령당했다는 소식에 이번에는 원산에서 배를 타야 하는지 아니면 신의주를 넘어서 만주로 피난을 가야 하는지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고 다들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선생님, 총독부에서 엔도 정무총감이 찾아왔습니다.”

광복군이 경성에 진입하고 하루가 지나자 조선 총독부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여운형을 설득하는 작업에 나섰다.

“아니, 정무총감이 우리 집은 웬일이시오?”

“아…. 몽양 선생, 상의할 일이 있어서 잠시 들렸습니다.”

“조선 총독부에서 나 같은 사람하고 무슨 상의를 할 일이 있다는 말이요?”

“뭐…. 이미, 몽양 선생도 아시겠지만 만약을 대비하는 차원입니다.”

여운형은 작년 말부터 일본의 패망을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조선 자체적인 건국을 위한 준비 조직을 만들고 있는 상태였다.

“도대체 뭘 대비한다는 거요? 왜? 이제라도 조선 인민들에게 사죄하고 일본으로 떠날 생각이라도 하는 거요?”

“몽양 선생, 말을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총독부에서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자는 거지. 그깟 불령선인이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그러시오? 설마, 몽양 선생은 불령선인들이 경성을 점령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후후….”

여운형은 엔도 류사쿠 정무총감의 허세에 코웃음만 나왔다.

이미 몇 해 전부터 바중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라디오로 방송하는 태평양 전쟁 소식을 모두 듣고 있었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을 속이려고 하는 엔도 류사쿠 정무총감이 웃기기만 했다.

그리고는 머릿속으로 현 상황을 냉정하게 계산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조선 총독부에 단 하나라도 협조를 하는 순간 나도 친일 매국노로 몰릴 수 있다. 죽더라도 총독부의 협조 요청을 무조건 거절해야 한다.’

“엔도 류사쿠 정무총감, 나는 조선 총독부에 일절 협조할 생각이 없습니다. 세상 모든 일은 언제나 한 만큼 대가를 받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니 잘 알아서 조용히 용서를 빌고 조선을 최대한 빨리 떠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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