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과 오키나와 중 어디를 막아야 하지?
도고 시게노리가 스즈키 간타로 추밀원 고문을 만나고 있을 때, 일본 대본영에서는 육군과 해군이 다시 한번 최후의 결전 장소를 놓고 격돌하고 있었다.
“황군이 어렵게 점령한 남방의 자원지대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육군 참모본부 작전 과장인 핫토리 다쿠시로 대좌의 설명에 도조 히데키 육군 대신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뭔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육군은 지금 오키나와가 위험한 상황인데 필리핀을 사수하자는 말이야?”
해군 군령부의 작전 과장 야마모토 치카오 대좌는 짜증을 내면서 화를 냈다.
“그건 해군이 잘못해서 그런 것 아냐? 너도 알다시피 해군을 지원하다가 지금 태평양 한가운데 버려진 우리 육군 병력이 얼마인 줄이나 알아?”
“뭐라고? 육군에서 제대로 된 병력을 지원해줬으면 지금과 같은 일이 생겼겠어?”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해! 우리 육군이 지금 얼마나 넓은 전선을 담당하고 있는 줄 알아? 그런데, 병력의 질을 따져?”
“그거야 육군이 주제도 모르고 전선을 확장한 것 때문이잖아! 다른 곳은 몰라도 미군과 전투가 예상되는 곳만큼은 제대로 된 병력을 보냈어야지?”
“야! 말 다 했어?”
“뭐? 이런 빠가 같은 새끼가….”
“그만! 너희들 지금 우리 앞에서 뭐 하는 짓이야?”
현재,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일본 군부에서 가장 무서운 계급이 영관급이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승리를 보고 자란 일본군의 영관급 장교들은 일본이라는 나라가 세계 최강이고 일본군은 천하무적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특히, 그런 성향은 육군 유소년 병 학교, 육군 사관학교, 그리고 육군 대학을 거친 육군의 엘리트 장교 쪽이 더욱 강했다.
“야마모토 대좌! 그만해라! 지금은 양군이 힘을 합쳐야 하는 상황이다.”
계속된 해군의 패배를 책임지고 나가노 오사미 군령부 총장이 물러나자 후임으로 군령부 총장이 된 오이타와 고시로 군령부 총장이 군령부 작전 과장을 말렸다.
“흠, 흠, 너희가 협력하지 않는다면 우리 일본제국은 전쟁에서 질 수밖에 없다. 다들 흥분을 가라앉히고 어느 곳에 방어 병력을 집중해야 할지 의논해보도록 합시다.”
요나이 미쓰마사 해군 대신이 도조 히데키 육군 대신을 보면서 회의 속개를 말하자 도조 히데키는 짜증이 난 표정을 유지한 채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둘 다 자리에 앉고, 육군에서 필리핀을 끝까지 방어해야 할 이유를 다시 설명해봐라.”
일본 육군이 세워놨던 본래의 전투 계획은 필리핀 루손섬에 주둔 중인 육군 제14 방면군을 주축으로 미군의 공격을 방어하면서, 레이테섬을 포함한 다른 지역의 해군과 항공대의 지원을 받아서 전투를 수행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해군의 계속된 삽질로 조선의 제주도와 오가사와라 제도의 이오지마를 잃게 되면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대본영 육군 참모본부 소속의 작전 담당자들은 필리핀을 사수하면서 미군의 병력을 잡아 두고 반격을 해서 상황을 역전시키자고 주장했다.
“그럼, 지금 본토를 폭격하는 미군의 공격은 어떻게 막을 생각인가? 그리고, 미군의 다음 공격 목표가 될 가능성이 큰 오키나와와 타이완은 어떻게 방어할 생각이지?”
“그건 1억 신민이 총옥쇄의 각오로 버티면 됩니다.”
“그러니까 무엇으로 총옥쇄를 하자는 말이야? 신민들이 몸빼를 입고 죽창을 들고 옥쇄를 하자는 말인가?”
“.....”
“상황이 정말 답답하구먼.”
도조 히데키 육군 대신도 스기야마 겐 육군 참모총장도 요나이 미쓰마사 해군 대신도 오이타와 고시로 군령부 총장도 모두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들이면서 전쟁을 끝까지 책임을 지지 못한 채 지리멸렬하는 전황에 답답함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냥 육군은 원래 작전대로 필리핀에서 반전을 한번 노려보고 해군은 지나군과 관동군의 지원을 받아서 오키나와를 사수하는 것으로 합시다.”
도조 히데키는 폭주하고 있는 육군의 분위기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육군의 요구를 끝내 무시하지 못하고 필리핀과 오키나와를 최후의 방어선으로 동시에 설정한 이도 저도 아닌 작전을 제안했다.
“육군 대신, 그렇게 되면 전력이 분산돼서 효과적인 방어가 어렵지 않겠습니까?”
“육군에서 저렇게 강력하게 필리핀 사수를 외치는데 어떡하겠어요? 해달라는 대로 해줘야 하지 않겠어요?”
“이것 참 난감하군요.”
육군의 수뇌부도 해군의 수뇌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작전을 결정하지 못한 채 담배만 피워대고 있을 때 오이타와 고시로 군령부 총장이 한 가지 질문을 했다.
“만약에 말입니다. 만약에…. 미국이 소련을 끌어드린다든지…. 미군이 모든 것을 건너뛰고 도쿄에 곧바로 상륙하면 어떻게 합니까?”
“설마…. 그럴 일이 있을까?”
“소련과 우리는 동맹이 아닙니다. 단지 불가침 조약을 유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건 독일 때문에 그렇게 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우리 해군에서 조사해본 결과 그게 아니었다고 합니다. 소련은 죽어도 동맹은 안된다고 하면서 일본이 원한다면 불가침 조약 정도만 약속할 수 있다고 해서 5년짜리 불가침 조약을 맺었었다고 합니다.”
“뭐라고요? 그게 정말이오?”
“예, 모스크바 대사관에 무관으로 파견 나가 있는 무관이 알아낸 정보입니다.”
첩첩산중.
현재, 일본은 앞뒤가 전부 포위된 사면초가의 상황이었다.
“그럼, 이제는 하다 하다 소련의 공격까지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겁니까?”
“그것은 내가 좀 알아보겠소. 마쓰오카 요스케 전 외무대신과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마쓰오카 외무대신이 사실을 말해줄까요? 그냥 따로 조용히 알아보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요.”
육군과 해군의 최고 지휘관들은 머리를 맞대고 난국 타개를 위해서 궁리를 했지만 확실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 * *
대본영에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때 대본영의 결심을 도와줄 사건이 대한민국 광복군의 위장 요원이 활약 중인 버마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1944년 버마와 인도 국경에서 벌어졌던 임팔 전투는 무더위와 장마, 그리고 정글과 산맥으로 인해서 보급이 어려운 상황에서 벌어진 전투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전투였다.
즉 수비하는 군대뿐 아니라 공격하는 군대마저도 굶어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전투였다.
그런데, 일본 최고의 명장인 무타구치 렌야는 3주 치의 식량을 가진 병력을 보급이 없는 상황에서 인도 국경을 넘어 영국과 인도군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오장님, 도대체 얼마나 더 걸어야 합니까?”
“조용해 새끼야. 아직도 떠들 힘이 남았으면 내 군장이나 좀 들어.”
“아니…. 그게 아니고 진짜 얼마나 더 걸어야 합니까?”
“나도 모른다. 묻지 마라.”
코히마 점령을 명령받은 제31사단 병력은 산맥을 한참 걸어서 넘는 중이었다.
“오장님, 이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밀림이잖습니까? 제 발바닥은 벌써 물집이 제대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너 앞으로 한마디만 더 하면 죽이고 여기에 묻고 간다. 시발! 사령관이 미쳤는데 그럼 내가 뭘 어떡하냐? 사령관이 가라잖아? 여기만 통과하면 된다잖아?”
일본군의 경우는 같은 지역 출신들이 같은 부대에 편성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같은 동네 출신인 오장에게 불만을 토로하던 일본군 병사는 더는 뭐라고 불평불만을 말하지 못하고 밥 대신 생쌀만 씹으면서 걸었다.
“시발…. 시발…. 시발….”
“항공! 항공!”
투덜거리면서 생쌀을 씹으면서 걷는 병사들의 귀로 영국군 정찰기를 발견한 정찰병들의 외침이 들렸다.
“저, 시발 놈들은 뭐 볼게. 있다고 매일 처 날아오는 거야?”
“보면 모르겠냐? 우리가 얼마나 살아서 오는지 숫자 확인을 하고 있잖아.”
“설마 그럴까요?”
“내 경험상 이 정도로 우리를 따라 다였으면 반드시 전투기들의 공습이 있어야 하는데…. 너 혹시 공습을 받은 기억이 있냐?”
“여기가 워낙 밀림이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아냐. 저 새끼들은 지금 우리가 하루하루 얼마나 뒤졌는지 확인하러 오는 거야.”
그렇게 한참을 걷던 일본군 제31사단의 시야에 적의 병력이 눈에 띄었다.
31사단장인 사토 고토쿠 중장은 영국- 인도 연합군에게 작전이 이미 발각이 됐다고 생각하고 공격을 명령했다.
처음부터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무리한 작전이었던 임팔 작전은 여기서부터 확실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상삭을 지키던 인도군 51여단은 일본군 31사단과 전투를 벌여서 상삭을 일본군의 공세로부터 5일간 방어했고 코히마를 공격하려고 했던 일본군 31사단의 발을 무려 일주일이나 붙잡아두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전투 중 사망한 일본군 장교의 품에서 임팔 작전과 관련된 지도와 문서를 획득하면서 일본군의 작전 상황을 훤히 꿰뚫어 보면서 전투를 치를 수 있게 됐다.
그 이후 펼쳐진 전투는 세계 전사에 길이 남을 일본군의‘고난의 행군’이었고 ‘죽음의 행군’이었다.
“병력을 돌린다.”
“사단장님, 여기서 후퇴하면 사령관님이 가만히 두지 않을 겁니다.”
“더는 작전을 지속할 수가 없다. 이 미친 작전은 처음부터 시도하면 안 되는 작전이었어. 병력을 돌리라고!”
“사령관님뿐만 아니라 대본영의 문책은 어떡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야! 병력을 몰살시키고 패장으로 기억돼나, 후퇴하고 패장으로 기억돼나 똑같아. 그러니까 그나마 살아있는 병사들이라도 살리자. 어서 병력을 돌려라.”
병력을 돌린 사토 고토쿠 중장은 무타구치 렌야의 질책에도 불구하고 후퇴를 해 버렸고 부대에 복귀하자마자 바로 방면군 사령부와 대본영에 연락했다.
“처음부터 이 작전은 성공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게 뭡니까? 모두 굶어 죽었습니다. 적과 싸워서 죽은 것이 아니고 모두 굶어 죽었습니다.”
사토 고토쿠 중장이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질 각오로 무타구치 렌야 사령관의 작전의 잘못됐던 점을 지적했지만, 방면군 사령부 참모의 대답은 그를 더욱 화나게 했다.
“조금만 더 버텼으면 보급을 할 생각이었는데 그새를 못 참고 후퇴를 한 거야?”
“뭐라고? 그새…. 내가 무려 석 달을 버티다 나왔는데…. 그새…?”
“보급하려고 준비 중이었다니까.”
“이런…. 시발! 뭐라고? 우리의 적은 영국군이 아니라 바로 너희들이었어! 이 시발 너희 15군 사령부가 우리의 적이었어!”
그리고는 무타구치 렌야가 보냈던 공격 독촉 전문과 자신이 보낸 답신을 그대로 대본영에 보고해버렸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작전의 원안대로 공격할 것을 명령한다.’
‘공격 계속 명령을 접수했음. 그러나, 공격 명령만으로 병력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귀하의 사고방식이야말로 이 작전을 실패로 이끌어가는 중대 요인이 되고 있음. 병사들은 현재 아사 직전이고 탄약은 진즉에 고갈됐음.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모두 귀군의 책임임. 귀군은 이 상황을 직시하고 반성하고 작전을 중지해서 폐하의 자식들이 개죽음당하지 않게 하길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