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일매일 불놀이야! (201/225)

매일매일 불놀이야!

이오지마 전투 결과는 일본 국민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을 뿐만 아니라 특히 히로히토 일왕은 미군이 도쿄를 이오지마처럼 만들어 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오지마에서의 처참한 패배 소식은 그래도 나름대로 승승장구를 거듭하고 있던 일본 대본영 참모본부를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내몰았다.

최근 들어 일본해군 군령부의 삽질이 계속되다 보니 일본 육군에서 보기에는 이렇게 해군의 뒤치다꺼리만 하다가 잘못되면 정말로 일본이 전쟁에서 패배하고 망할 수도 있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었다.

그리고, 태평양 방면에서 계속된 패전으로 뭔가 쇄신의 계기가 필요했던 일본 정부는 결국 ‘대동아 공영권’을 부르짖으며 전쟁 내각을 이끌었던 도조 히데키가 여론의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총리대신 자리에서 사퇴했다.

“조지 대장님, 도조 히데키가 내각 총리대신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백정기는 도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도조 히데키의 사퇴를 보고했지만, 일본의 내각이야 원래 회전문 인사로 유명한 놈들이라서 나는 크게 신경을 안 썼다.

“도조 히데키가 총리 자리에서는 물러났다고는 하지만, 육군 대신 자리는 아직도 지키고 있잖아?”

“예, 아무래도 그 자리까지는 내줄 생각은 없었나 봅니다.”

“그럼, 결국에는 자리만 바꾼 거지.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나는 대외적으로 일본과 조선의 분리 말하고, 선전을 통해서 일본 국민과 일본 지도자의 분리를 통해서 일본의 항복을 종용하자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내 모든 공격 초점은 히로히토 일왕 한 명에게 맞춰져 있었다.

사실,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빨리 끝내는 방법은 오직 히로히토의 결심에 달려있었다.

“백정기 정보 대장, 도쿄의 도고 시게노리는 잘 보호하고 있지?”

“예, 정보대 나름대로는 최대한 열심히 보호하고는 있지만 요즘 들어서 일본 경시청과 2사단 헌병들이 장난이 아닙니다. 조금만 움직임이 수상해도 바로 검거하고 있어서….”

“잘 보호하게. 우리가 이 전쟁을 빨리 끝내려면 도고 시게노리의 공작이 성공해야만 해. 앞으로는 도고 시게노리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도록 잘 보호하라고.”

“예, 대장님.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제 봄이 점점 다가오는데 본토 침투 작전을 진행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문제는 모두 광복군 육군에 맡겨놨으니까 그쪽에서 알아서 하겠지.”

백정기의 보고를 받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제주도는 어느새 봄의 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날씨가 풀려 있었다.

일본의 지배 아래에서 해방된 제주도 주민들은 처음에 불같이 일어났던 친일 매국노에 대한 응징의 시간이 지나고 이제야 해방된 조국의 하늘 아래서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고 하고 있었다.

산으로 들로 봄나물을 캐러 나가는 아낙들의 모습도 보였고 물질하러 나가는 해녀들도 보였다.

그리고, 잡아봐야 당장은 판로가 없지만, 집안에 가만히 처박혀 있을 수 없었던 어부들은 배를 몰고 바다로 나가고 있었다.

‘좋구나. 이런 것이 진정한 해방이지. 어서 전쟁을 끝내고 조선 인민들 모두가 하고 싶은 을을 자유롭게 하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고 싶다.’

“대장님! 출격 준비 끝났습니다.”

광복군 항공대장 박하성 중령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일본 폭격 작전이 준비됐다고 보고를 해왔다.

“그래? 이번에는 히로시마로 출격하는 거지?”

“예, 히로시마입니다. 우리 항공대는 태평양함대와 작전 구역을 조정하면서 규슈와 시코쿠 전체 그리고 혼슈 일부만 담당합니다.”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닌데 박하성 중령은 친절하게도 광복군 항공대의 작전 구역까지 설명했다.

“알았다. 가자.”

“저, 그런데, 대장님까지 굳이 작전에 출격해야 합니까?”

“전투기 조종사가 폭격 작전에 출격하지 않으면 뭘 할까? 전차라도 몰까? 내 걱정은 하지 말고 가자. 나는 일본을 진짜로 석기 시대로 만들 때까지는 계속 출격할 것이다.”

“하하, 일본을 석기 시대로 만드는데 저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바로 그거다. 가자.”

제주도 모슬포 알뜨르 비행장의 활주로에는 히로시마 폭격 작전에 참여하는 전투기와 폭격기들이 하나둘 나와서 엔진에 시동을 걸고 있었다.

‘일본의 서부 도시들에는 그동안 계속해서 선전 공작을 했지만, 일본인들이 도시 밖으로 피난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이번에는 또 얼마나 죽을 것인가?’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고, 일본이라면 이가 갈리지만 전쟁에 휘말려서 죽어 나가는 일본인들을 보면 작은 연민의 감정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마저도 사치스럽게 생각하고 하늘을 날 시간이었다.

* * *

히로시마는 일본 서부 대규모 산업도시이며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거점이었다.

도시 주변에 많은 병영이 설치돼있었고 일본 육군 5사단과 일본 영토 남쪽 전체 방어하는 하타 순로쿠의 제2 육군 사령부가 있었다.

그리고, 일본해군의 경우에는 일본 최대 해군 항구인 구레항에 히로시마가 인접해 있었다.

히로시마는 해군에 중요한 구레항에 물자와 부품을 공급해주는 인구 35만 명 정도의 배후 공업도시였다.

100여 기에 가까운 B-17 플라잉 포트리스 폭격기들이 새롭게 공급된 P-51 무스탕 전투기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히로시마의 하늘에 진입했다.

“작전 브리핑 때 이야기했지만 다시 한번 말하겠다. 히로시마 시내를 폭격할 필요는 없다. 이번 폭격 작전은 시 외곽의 민간인 거주지가 우리의 목표다! 설마 아직도 민간인 거주지를 왜 폭격해야 하냐고 묻는 놈은 없겠지?”

처음에는 폭격 목표가 민간인 거주지라고 말했을 때 약간의 거부감을 표시하는 조종사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민간인 거주지가 바로 히로시마의 공장지대라는 설명을 듣고는 모두 이해를 했다.

일본은 조금은 희한하지만, 공업시설과 민간인 거주 시설이 나누어져 있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일반인들의 집에서 부품을 만들고 집에서 볼트와 베어링을 만들고 집에서 무기를 조립하고 있었다.

“예, 폭격 목표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 너무 한 곳만 집중적으로 폭격하지 말고 최대한 넓게 펼쳐서 폭격해야 한다. 왜 그래야 하는지 그 이유를 다들 잘 알고 있겠지?”

“예, 대장님. 이제 잔소리는 그만 좀 하십시오.”

“좋다. 내 잔소리는 여기까지다. 다음 작전 지시는 편대별로 알아서 할당된 목표를 폭격하는 것으로 하겠다.”

“펑!”

“펑!”

광복군 항공대의 출현을 눈치를 챈 일본군은 고사포를 쏘면서 대응을 하고 있었지만, 광복군 항공대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다들 일본군 고사포를 조심하고 지금부터 히로시마를 석기 시대로 돌아가게 해주자.”

“에스 써!”

“예, 대장님.”

일본 항공대에서도 대응을 위해서 서너 개 편대의 Ki-43 하야부사 전투기가 날아왔지만, 폭격대의 호위를 맡고 있는 P-51 무스탕 전투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몇 대가 격추되자 줄행랑을 쳐버렸다.

“저 새끼들 돌아가도 죽을 텐데….”

“나중에 죽는 것보다는 당장 격추되는 것이 두려웠겠지. 쓸데없는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집중해라.”

“예. 예. 알겠습니다.”

“꽈 과 광!”

“꽝! 꽝!”

“펑! 퍼 버 엉!”

100여 대에 가까운 B-17 플라잉 포트리스는 뱃속에서 7t에 가까운 소이탄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시발! 잘 탄다.”

“잘 가라! 쪽발이 새끼들아!”

폭격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히로시마는 시꺼멓고 메케한 연기와 시뻘건 화염에 뒤덮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시가 불타고 있다고 해서 일본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줄 마음을 가진 광복군 항공대 조종사는 없었다.

“연기 때문에 시야가 가려서 폭격지점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더 집중해라. 이번에 히로시마를 제대로 지워 버려야 나중에 또 오는 일이 없다.”

“예, 대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제13 폭격대 가자. 고! 고! 고!”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히로시마에는 7,000t에 가까운 소이탄이 떨어졌고 결국에는 폭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도시 전체가 거대한 불구덩이로 변해 버렸다.

* * *

도고 시게노리는 광복군 정보대가 전해준 정보를 받아 보고 폭격에 불타 죽었을 히로시마의 수십만 시민들이 생각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렷다.

‘언제까지 이렇게 무의미한 전쟁을 계속해야만 하는가? 왜 이렇게 모두가 죽어 나갈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 걸까? 도대체 왜?’

전쟁을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것이 일본과 일본인들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고 그나마 천황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을 찾아갔다.

“고문님! 이대로 정말 안 됩니다. 이러다가는 일본 저네가 끝장납니다. 우리 일본제국이 어떤 나라입니까? 만세 일가의 일본이 이대로 끝나게 할 수는 없잖습니까?”

“도고 시게노리, 나도 안다. 하지만 문제는 군부다. 군부를 해결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흑….”

현재 일본의 지도층들은 이미 전쟁의 승패는 결정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문제는 폭주하는 군부를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정전 협상도 항복 협상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럼, 이대로 군부 스스로가 전쟁에 졌다는 것을 느낄 때까지 기다리실 생각이십니까?”

“방법이 없지 않으냐? 다만, 전쟁에서 더 빨리 지기 위해서 군부를 더욱 부채질 하는 수밖에….”

‘이 미친 새끼들! 처음부터 책임도 지지 못할 것이었다면 전쟁은 왜 일으킨 거야? 이렇게 죽어 나가는 병사들은 일본 사람이 아닌 거야?’

세상에 이런 국가 지도부는 없을 것이다.

전쟁의 패배를 위해서 자신의 나라 군인들을 아무런 의미도 없는 전장에서 죽인다는 발상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렇다면 고문님께서는 언제가 되면 천황 폐하께 협상을 건의하실 생각이십니까?”

“버마와 필리핀을 잃게 되면 육군도 어느 정도 분위기를 파악할 것 같다. 그때가 되면 협상을 진행해도 괜찮겠지.”

“고문님, 이것은 제가 외교관으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느낀 건데 미국은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하면 더 가혹한 조건을 내밀 겁니다. 전쟁을 질질 끌면 끌수록 일본의 미래는 그만큼 사라져 갈 겁니다.”

“흐음….”

한참을 대답이 없이 고민하던 스즈키 간타로 고문은 도고 시게노리를 쳐다봤다.

“이봐, 도고, 현실이 이런데 뭘 어떻게 할 수가 있겠느냐? 나중 일은 나중 일이고, 지금 당장은 군부를 어떻게 할 수가 없지 않으냐?”

“강성 지휘관들을 모두 현장으로 보내지 않았습니까?”

“보냈지. 보냈지만 새로 도쿄로 들어온 놈들도 전에 도쿄에 있던 놈들하고 똑같은 짓을 하는데 뭘 어떻게 하겠느냐?”

단체로 약이라도 먹은 건지 도쿄 대본영으로만 발령받아서 오면 일본은 반드시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미쳐 날뛰었다.

“도대체 뭘 믿고 그러는 걸까요?”

“육군 지휘관들은 소련이 우리 일본 편인 줄 안다.”

“미친놈들! 마쓰오카 요스케가 문제였군요?”

“그래, 그놈이 군부에 소련과 동맹이라고 이야기를 해 놓는 바람에 지금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럼, 소련이 우리 일본의 적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겁니까?”

“나도 모르겠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