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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지마는 일본군의 공동묘지 (200/225)

이오지마는 일본군의 공동묘지

진주만 태평양함대 사령부.

워싱턴 합동참모회의의 결정으로 잠시간의 휴식과 재정비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니미츠 제독은 제주도에서 보내온 뜻밖의 선물을 받게 됐다.

“제이슨 대위, 이게 뭔가?”

선물의 내용을 듣고 난 니미츠 제독은 너무나 비인간적인 무기에 놀라서 서늘한 말투로 제이슨에게 물었다.

“우리 사령부의 다음 전략 목표인 이오지마를 공략할 때 필요한 물품이라고 제주도에서 보냈습니다.”

“그래, 그러니까 이것으로 이오지마의 살아있는 모든 인간을 말살하라는 건가?”

“제독님, 그게 아니고….”

“이런 무기는 최후에나 가서 사용하는 무기지. 처음부터 상대를 말살시키기 위해서 사용할 수는 없지 않나?”

니미츠 제독은 어떨 때는 닥치고 돌격을 외치면서 용감한 모습을 보이지만 또 어떨 때는 지금처럼 기독교적인 도덕성을 강하게 따질 때가 있었다.

“제독님, 광복군 측에서 이번에 이걸 보낸 이유를 아시면 왜 보냈는지 이해를 하실 겁니다. 이번에 이오지마 수비를 맡은 지휘관은 구리바야시 다다미치 중장으로….”

제이슨 대위는 광복군 정보대에서 사린 가스탄과 함께 보내준 이오지마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니미츠 제독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오지마는 이전처럼 우리의 공격에 내부에서 호응해줄 조선인 강제 징용자들도 없습니다. 이오지마 점령은 오직 우리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릴 수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제이슨 대위의 설명을 들은 니미츠 제독은 이오지마를 수비하는 일본군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진지를 구축하고 병력을 배치했는지 알게 됐고, 그동안 중부 태평양의 여러 섬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도움이 됐던 조선인 강제 징용자들이 일본군의 배제로 이오지마에는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저 섬을 그냥 비껴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만히 놔두면 분명히 눈엣가시가 될 것 같고….”

니미츠 제독의 시선은 어느새 태평양상의 보이지도 않는 작디작은 섬 이오지마를 향하고 있었다.

이오지마는 도쿄 남쪽으로 1,080Km, 그리고 괌 북쪽으로 1,130Km에 있는 섬이다.

오가사와라 제도 남쪽의 세 개 섬인 가잔 열도에 속하는 화산섬으로, 섬의 표면이 대부분 유황의 축적물로 뒤덮여 있고 토양은 화산재라서 식수나 용수는 소금기가 강한 우물물이나 빗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태평양 전쟁 전에는 유황의 채굴이나 사탕수수 재배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주민이 1,000명 정도 거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섬 주민의 대부분은 군인이었다.

“오가사와라 제도 집단 사령관인 구리바야시 다다미치 중장의 지휘를 받는 22,000여 명 정도의 병력이 섬 안에 웅크리고 있다고?”

“예, 제독님. 22,000여 명의 일본군이 전부 땅굴 속에서 우리 미군이 상륙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뭐냐? 제이슨, 일본군은 지금 사냥감이 함정에 빠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거냐?”

“예, 결국에는 우리 미군이 승리하겠지만 적들의 함정 안으로 먼저 뛰어들어야만 하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성조기에 덮인 병사들의 시체를 더는 보고 싶지 않은지 니미츠 제독이 강하게 거부감을 표현했다.

“그건 안 돼! 그만 죽이고 싶다! 진짜, 내 병사들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런 전쟁터에서 그만 죽게 만들고 싶다.”

그동안 광복군과 조선인 강제 징용자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예상 밖으로 손쉽게 중부 태평양의 일본군을 제압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미군 해병대가 입은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저 가스의 특징이 무거워서 공기 중의 아래쪽에 자리를 잡는다고 했지?”

“예, 제독님, 지하에 몸을 숨긴 적을 상대로는 최고의 무기입니다.”

“결국은 전부 다 죽여서 아예 전투도 포로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건가?”

전투의 효율성과 한 가닥 남은 인간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니미츠 제독의 모습을 보면서 제이슨 대위는 가만히 지켜보고 서 있었다.

“제이슨, 미쳐와 스플루언스, 그리고 홀랜드를 내일까지 사령부에 모이라고 해라.”

“예, 제독님.”

니미츠 제독의 방에는 태평양함대 사령부의 중추적인 인물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니미츠와 커피를 마시면서 서류를 뒤적이는 스플루언스와 홀랜드, 그리고 니미츠 제독이 나눠준 서류를 집중해서 훑어보고 있는 미처 제독까지 다들 분위기는 한가로운 것처럼 보였다.

“다들 느낌이 어떤가?”

“이거 잘못하다가는 우리 병사들의 무덤이 되겠는데요? 앞으로 일본군과 맞닥뜨리는 곳마다 이럴 것 같은데 제 예상이 맞습니까?”

태평양함대에서 지상군을 지휘하는 스미스 홀랜드 중장의 표정은 좀 전 커피 향을 음미하던 표정이 아니었다.

“앞으로 있을 일본군과의 전투는 아마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제독님, 이렇게 된다면 일본 본토 상륙은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전과와 비교해서 희생이 너무 클 것 같은데.”

“그것은 우리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니까 너무 앞서 나가지 말게.”

“아! 예.”

니미츠 제독은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합동참모회의에서 결정할 문제까지 일선 지휘부에서 참견이나 걱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리고, 아직 아무런 말이 없는 스플루언스 제독과 미처 제독을 보면서 물었다.

“둘의 생각은 어떤가?”

“엄청난 고전이 예상됩니다.”

“제독님, 이오지마를 피할 방법은 없는 거죠?”

“피할 방법이 있다면 나도 굳이 이오지마를 점령하지는 않았겠지. 항공대에서 강력히 요청하고 있어.”

태평양함대 항공대가 이오지마를 원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이오지마에 건설된 2개의 일본군 비행장의 공격에서의 대비하는 것과 태평양함대 소속 항공대의 일본 폭격에 대한 정보 노출 때문이었다.

“이건 완전히 계륵이군요.”

“그래, 바로 그 표현이 맞을 거야.”

“막상 전투가 벌어진다면 결국 우리의 승리지만 승리를 할 때까지 우리 병사들의 희생이 얼마나 나올지 두렵습니다.”

“나도 그것 때문에 셋을 부른 거야.”

이오지마 수비를 맡은 구리바야시 다다미치는 상륙하는 미군에 맞서서 해변에 방어 병력을 배치했던 기존 교범 대신 섬 중앙에 중화기를 중심으로 한 방어 진지를 구축했고

전차대까지도 위장 포대로 활용했다.

이오지마 곳곳에 벙커와 숨겨진 포대를 만들고, 거의 18km에 달하는 땅굴을 연결해서 언제든지 기습을 하고 피할 수 있는 요새를 만들어놨다.

그리고, 완벽한 터널이 완성되지 않은 곳은 각각의 부대에 독립적인 작전권을 부여해서 언제든지 상황에 따라서 미군과 교전하도록 만들어 뒀다.

토치카와 벙커들 사이를 터널을 연결해서 기습과 퇴각을 쉽게 할 수 있었다.

거기에 더불어서 섬 전체에 지뢰가 매설했고 숨겨진 포대와 박격포 진지도 구축했다.

“어차피 지게 될 전투, 그냥 죽지는 않겠다는 전략이죠?”

“맞네. 어떻게 이런 미친 짓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지 나는 이해가 안 되네.”

“제독님.”

“응?”

“제독님께서 우리 셋을 부른 이유가 이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 제 예상이 맞습니까?”

항상 냉정한 평정심을 유지하는 스플루언스 제독이 니미츠에게 물었다.

“우리가 이오지마를 점령하려면 얼마나 많은 병사가 희생될까?”

“일본군이 22,000명이라면 일본군의 대비 태세를 봤을 때 우리도 최소한 그 반쯤은 희생되지 않겠습니까?”

“하아…. 미치겠군.”

“제독님, 이건 진짜 미친 짓입니다.”

이오지마 점령 작전에 회의적인 것 같은 반응이 미처 제독과 홀랜드 중장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우리 병사들의 희생은 없고 일본군을 전멸시킬 수 있을 것 같은 방법이 하나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너무 비인도적이라는 거다. 그래서, 나는 고민 끝에 귀관들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뭔데 그러십니까? 혹시, 독일군이 사용하는 화학탄 계열이라도 됩니까?”

“종류가 비슷하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고민하는 니미츠 제독과는 달리 나머지 세 명의 지휘관들은 편한 공격을 주장했다.

“제독님, 이미 전장에서는 피아 구분 없이 화학탄과 가스탄을 사용하는 상황인데 뭘 그렇게 고민 하십니까?”

“제독님, 제가 듣기로도 일본군도 중화민국군을 상대로 생화학 무기를 자주 사용한 것으로 아는데 굳이 우리가 그걸 따질 필요가 있을까요?”

“저 섬 안에는 비록 적이지만 무려 22,000명이 넘는 생명이 있다. 그냥 적이라는 이유만으로 항복 의사도 묻지 않고 죽여도 될까?”

“저…. 제독님,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우리 병사들의 희생을 줄이면서 일본인들에게 경고하는 차원에서 차라리 이일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선전까지 하자고?”

“어차피 지금도 일본인과 인본 정부를 갈라놓기 위한 프로파간다가 진행 중이지 않습니까? ‘항복해라!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전부 죽게 된다.’라는 선전과 함께 작전을 진행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홀랜드 중장의 건의를 받은 니미츠 제독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제독님, 결정이 힘드시면 워싱턴에 모든 것을 떠넘겨 버리십시오. 솔직히, 저도 22,000명은 좀 부담스럽습니다.”

“음….”

“워싱턴의 결정 따라서 작전을 진행한다면 부담이 적지 않겠습니까?”

“만약, 워싱턴에서 화학탄 사용을 말리고 상륙 작전을 진행하라고 하면 어쩔 텐가?”

다시, 방안의 네 사람은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책임을 내가 지는 선에서 워싱턴에 화학탄 사용을 요청하겠네. 그리고, 워싱턴에서 작전 승인이 떨어지면 며칠 정도는 일본군에게 항복 의사 타진을 해보고 작전에 돌입하는 걸로 하지.”

니미츠 제독을 제외한 다른 세 사람은 니미츠가 지금 혼자서 엄청난 짐을 졌다는 것을 느꼈다.

무려 22,000명에 가까운 생명의 무게였다.

니미츠는 그 짐을 혼자서 감당할 생각으로 보였다.

* * *

광복군이 제주도를 수복하고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이오지마의 하늘 위로는 일본군의 항복을 종용하는 삐라가 새하얗게 뒤덮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 정도 미군 항공기들이 삐라를 통한 선전 회유 작업을 했지만, 이오지마의 일본군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일주일이 지난 후 미군 항공기들이 이번에는 삐라 대신 수 많은 폭탄을 이오지마에 떨구고 지나갔다.

그리고, 이오지마 남동쪽 해안을 빽빽이 메우고 있던 미군 전함과 구축함들의 포격을 시작으로 태평양함대의 디태치먼트 작전(Operation Detachment)이 시작됐다.

포격이 끝나고 상륙한 미군 해병대는 전차를 앞세우고 전진을 시작했고 뒤따르는 화염방사기가 터널이나 토치카로 의심되는 곳은 모두 불살라 버렸다.

미군 해병대는 작전 개시 당일, 이오지마의 전략 목표였던 치도리 비행장과 모토야마 비행장을 아무런 희생도 없이 점령할 수 있었다.

170m 높이의 수리바치산 정상에 세워졌던‘이오지마에 세워지는 깃발(Raising the Flag on Iwo Jima)’은 없고 이오지마 곳곳에는 수많은 일본군 묘지의 십자가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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