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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눈이 된 제주도 (197/225)

태풍의 눈이 된 제주도

제32대 미국 대통령 선거를 놔두고 민주당의 지도부와 많은 대의원은 현직 부통령인 헨리 월러스를 강하게 반대했다.

월러스는 너무나 좌파 성향이었으며 괴짜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많은 당 지도자들이 미주리주 출신의 상원 의원 해리 트루먼을 새로운 부통령 후보로 제안했다.

“헤리, 왜 윌러스 부통령 대신 트루먼 상원 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을 해달라고 하는 거지? 혹시, 내 건강에 이상이라도 생길까 봐서 그런다는 건가?”

퉁명스럽게 묻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질문에 헤리 홉킨스 보좌관은 선뜻 대답하기가 불편했다.

모든 것을 사실대로 대답할 수는 없었다.

“윌러스 부통령이 너무 좌파 성향이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제보로 시작된 FBI의 에드거 후버의 스파이 색출 작업은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의 대대적인 검거로 이어졌고 지금도 수사가 계속되면서 좌파 계열의 정책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은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었다.

“윌러스가 좌파라서 안된단 말이지…. 음…. 헤리, 그럼 트루먼 상원 의원은 뉴딜 정책은 지지하나?”

“예, 트루먼 상원 의원은 뉴딜 정책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다행이군, 그럼, 상황이 상황이니만치 트루먼 상원 의원을 러닝메이트로 하자고.”

“알겠습니다.”

헤리 홉킨스 보좌관이 대답하자 루스벨트 대통령은 피곤한 기색을 내비치면서 물었다.

“조금 피곤한데 혹시 더 해야 할 이야기가 있나?”

건강 상태가 많이 나빠진 루스벨트 대통령은 꼭 필요한 업무가 아니면 최대한 휴식을 취하면서 업무에 임하고 있었다.

“각하,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이 뜻밖의 사고를 쳤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사고를 쳤어?”

“아니요. 광복군이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작전에 성공을 해버렸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작전이라니?”

“일본과 조선 반도 중간의 제주도를 점령했습니다.”

“제주도?”

세계 전체를 생각하고 미국 정부를 이끄는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제주도라는 작은 섬은 생전 들어 본 적도 없는 섬이었다.

“예, 오키나와를 건너뛰고 바로 제주도에 상륙해서 점령했습니다. 이게 앞으로 대세에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겠습니다.”

“태평양함대 사령부에서는 전혀 몰랐던 작전인가?”

“그건 아닙니다. 태평양함대 사령부에서는 밑져야 본전이었던 작전이었기 때문에 광복군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이고 몇 가지는 지원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뭐가 문제야? 태평양함대 사령부에서도 뭔가 이득이 되니까 지원을 했겠지.”

헤리 홉킨스 보좌관이 보기에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제주도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기 때문에 저런 말을 한다고 생각하고 태평양 지도를 가져다가 제주도 위치를 알려줬다.

“각하, 여기가 바로 제주도입니다.”

“으응? 여기라면….”

“보시는 것처럼 전략적으로 엄청나게 중요한 위치입니다. 여기라면 우리 항공대의 새로운 전략 폭격기 B-29도 필요 없이 일본 전체를 타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광복군은 일본 전체의 공습을 노리고 제주도를 점령했다고 합니다.”

제주도가 갖는 전략적인 장점을 뒤늦게 깨달은 루스벨트 대통령은 눈을 반짝이면서 헤리 홉킨스 보좌관에게 물었다.

“음…. 헤리, 이곳 제주도를 광복군이 끝까지 지킬 수가 있을까?”

“각하, 지금은 그것보다 더 급한 문제가 있습니다. 광복군은 새해가 시작되면 조선 본토에서 바로 수복 작전을 진행하겠다고 합니다.”

“그럼, 광복군의 움직임 때문에 우리가 수립해놓은 아시아 전략이 혹시 많은 차질이라도 생기는 건가?”

“예,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만약, 광복군이 조선 반도 남부지역만큼이라도 회복한다면 우리는 굳이 소련의 스탈린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면서까지 아시아 전선에 참전을 요청할 필요가 사라집니다.”

“이봐! 헤리, 문제는 그곳을 얼마나 지킬 수 있냐는 거잖아?”

헤리 홉킨스가 보기에는 아직도 루스벨트 대통령은 조선 반도 남부와 제주도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각하, 사실 조선 반도 남부지역의 점령까지도 필요가 없습니다. 광복군의 활동으로 조선 남부에서 대규모 혼란이 발생한다면 수많은 일본인이 굶어 죽습니다.”

“으응? 뭐라고? 그게 정말이야?”

“예, 현재, 일본은 젊은이들 대부분이 징집된 관계로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어서 엄청난 양의 식량을 조선 반도 남부에서 조달하고 있습니다.”

“흐음, 그렇다면 일본이 절대로 가만히 놔두지 않겠군?”

“그래서, 이것을 전략적으로 이용할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광복군이 제주도를 점령함과 동시에 일본 정부에서 비밀리에 접촉을 원해왔습니다.”

헤리 홉킨스 보좌관은 아직까지는 공식적인 통로로 보고되지 않은 사실을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알렸다.

“일본이 접촉을 해왔다고? 헐 국무장관이나 OSI에서는 별다른 말이 없었는데 그건 또 무슨 말이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일본의 비둘기파를 상대로 작업을 한 모양입니다. 일왕도 깊게 관련이 있는 쪽에서 항복을 위한 협상을 원해왔습니다.”

일본과의 전쟁을 빨리 끝낼 기회를 맞이했는데도 루스벨트 대통령의 태도는 의외로 씨끈둥했다.

“일본은 믿지 마. 전쟁 전처럼 우릴 또 속일 생각이겠지. 한번 당해봤으면 됐지. 그걸 두 번 당할 생각은 나는 없네.”

“각하, 이번에는 그게 아닌 것 같았습니다.”

“왜? 무조건 항복이라도 하겠다고 하던가?”

“그것까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전향적인 자세로 접촉을 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니야. 일본은 말만 그렇게 하고 언제든지 우리 뒤통수를 칠 수 있는 나라야.”

진주만 공습이 있기 전까지 일본의 외교당국은 최대한 미국 정부의 의견을 수용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선전포고도 없는 진주만 공습이었다.

그래서, 루스벨트 대통령은 일본 정부를 별로 믿지 않았다.

“각하! 제가 지금까지 보고한 내용을 하나하나 단편적으로 보시지 마시고 종합적으로 한번 봐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우리 미국은 엄청나게 유리한 카드 한 장을 손에 넣게 됩니다.”

헤리 홉킨스 보좌관의 간곡한 요청에 루스벨트 대통령은 피곤함을 무릅쓰고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어째서 해리 홉킨스가 종합적인 판단을 부탁했는지 금방 깨닫게 됐다.

“오호! 이것 생각 이상인데.”

“예, 바로 보셨습니다. 광복군의 제주도 점령과 일본의 요청을 한데 묶어서 생각하면, 우리 미국은 이제 아시아 전선에 소련을 굳이 끌어드릴 필요도 없고 중화민국을 지원해야 할 이유도 영국을 지원해야만 하는 이유도 사라집니다.”

“그렇지! 이 상태라면…. 우리 미국 해군과 광복군만으로도 일본을 완전히 포위했으니까.”

“맞습니다. 각하. 바로 그겁니다.”

“이거이거 아무래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확실하게 연합국으로 대우를 해줘야 할 판인데.”

“영국과 중화민국이 거절할 겁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지금 상황에서 영국과 중화민국을 자극할 필요는 없겠지. 대한민국 문제야 나중에 따로 우리가 나서서 해결해 주면 되겠지. 오늘은 피곤하니까 이만 정리하고 빠른 시일 내로 합동참모회의를 소집해 주게. 제주도 문제와 일본 정부의 비밀 접촉 문제를 함께 다뤄보자고.”

“알겠습니다. 각하.”

* * *

일본 정부 내의 비둘기파 쪽에서 스위스 주재 미국 대사관을 통해서 조심스럽게 접촉을 시도해온 사실이 공식적으로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에 의해서 제주도를 점령된 지 일주일이 지나서 합동참모회의가 소집됐다.

“다들 모였군. 항상 내가 시간이 없어서 긴 시간 동안 함께하지 못하니까 오늘도 회의를 서둘러 진행하지.”

“예, 각하.”

“먼저, 진주만 태평양함대 사령부에서 올라온 광복군의 소식으로 시작하지.”

루스벨트 대통령의 제안으로 합동참모회의는 빠르게 진행됐고 그에 따른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럼, 일단 제주도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그동안 잠수함과 전투기를 이용해서 일본 전체를 압박하자 그 말이지.”

“예, 각하. 현재 상태에서 오키나와까지 우리 해군이 점령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아직 이오지마도 점령하지 못한 상태라서 너무나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좋아. 그럼, 그 사실을 광복군에 통보하고 우리가 해줄 수 있는 만큼 지원을 하는 선에서 멈추자고.”

“알겠습니다. 각하.”

제주도 문제를 정리한 루스벨트 대통령은 다음 문제인 도쿄의 비둘기파들과 어떻게 내통을 할 것인지 의논하기 시작했다.

“도쿄에서는 강성 지휘관들과 쿠데타 위험이 있는 지휘관들은 최전선으로 보냈다고 하는데 이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좀 더 지켜보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쟁을 빨리 종결하고 싶었다.

그런데, 군 지휘관들의 생각은 약간 다른 것처럼 보였다.

“마셜 참모총장, 그럼, 모든 것이 밝혀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생각이야?”

“그건 아닙니다.”

“그런데, 왜 가만히 지켜보자고 하는 거야?”

“너무 갑작스럽게 발생한 일이라서 아직 대응 작전이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대응 작전이 따로 필요하겠나? 버마 전선은 영국군이 알아서 할 테고 중화민국 남부는 중화민국군이 알아서 할 테니까 우리 남서 태평양군 사령부는 필리핀 공략이라도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32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맥아더가 나서서 전황이 이러니저러니 하면서 설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번 기회에 맥아더의 입에 필리핀이라는 개뼈다귀를 물려줘서 주둥아리를 닥치게 하고 싶었다.

“각하,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게, 육군과 맥아더 장군이 원하는 일이잖소? 일본 육군의 작전 상황을 대충이라도 알고 있는 현 상황에 전력을 집중해서 필리핀을 공략하면 되지 않소?”

“알겠습니다. 필리핀 공략을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조지 마셜 육군 참모총장과 대화를 마친 루스벨트 대통령은 헨리 아놀드 항공대 원수와 어니스트 킹 해군 참모총장을 쳐다보면서

“뜻하지 않게 일본 비둘기파들의 접촉으로 일본 내의 사정을 어느 정도 파악했으니까 우리도 그들이 원하는 대로 도와줘야 하지 않겠나?”

“이오지마를 신속하게 점령하고 바로 일본의 모든 도시와 공장들을 폭격하겠습니다.”

“그 정도면 일본이 힘들어 할까?”

“태평양함대 잠수함 사령부의 모든 잠수함도 괌 기지로 이전해서 풀타임으로 공격에 투입하겠습니다.”

아직까지 원자폭탄에 관한 연구에서 좋은 소식을 듣지 못한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쟁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싶어 했다.

“그 정도면 일본이 항복할까?”

“시간이 문제일 것 같습니다. 버티다가 말라비틀어지다 보면 견디지 못한 군인들이 봉기하든지 국민들이 봉기하든지 하게 될 겁니다.”

“음…. 나중에 몇 개월 후에도 제주도가 안전하다고 판단이 되면 그때는 태평양함대 잠수함 사령부와 전략 폭격기 사령부를 아예 제주도로 옮기는 것은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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