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 날뛰는 전황 (1)
다행히도 오스트레일리아를 침공하려는 일본군의 공세를 뉴기니섬에서 막아내고 라바울의 일본군 10만 명을 고립시킨 상황에서 남서 태평양 사령부는 북쪽에서 전해진 뜻밖의 황당한 소식에 앞으로 합동참모회의의 결정이 어떻게 될지 걱정됐다.
“광복군이 제주도를 점령하는 작전에 성공했다고?”
“예, 어제 새벽 있었던 기습적인 상륙작전이 성공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서덜랜드 참모장의 보고에 맥아더는 난감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광복군이 제주도를 점령하게 됨으로써 미국이 목표로 하는 전략 목표인 일본 본토 상륙이 더욱 가까워졌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필리핀 수복의 중요성이 사실상 사라지게 만드는 효과를 냈다.
“Fuck! 이러면 필리핀은 이제 잊히는 거잖아?”
맥아더는 화가 얼마나 났는지 서덜랜드 참모장이 지켜보고 있는대도 담배 파이프를 입에 문 체로 험한 욕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서덜랜드, 광복군이 지금은 제주도를 점령은 했지만, 일본군의 공세를 이겨내고 끝까지 제주도를 지킬 수는 있을까?”
“사령관님, 모든 것은 일본 해군의 능력에 따라서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제 생각에는 일본 해군이 제주도만을 노리고 작전을 펼칠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쩌면 제주도를 지켜낼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Fuck! Fuck! 그럼, 필리핀은? 그럼, 필리핀은 어쩌라고?”
“사령관님, 현재 광복군이 제주도를 점령했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일본 본토를 직접 공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키나와를 점령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일본의 보급망을 끊기 위해서는 필리핀과 타이완 둘 중의 한 곳을 점령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그래, 좋은 지적이야. 아직은 기회가 남아있군.”
서덜랜드 참모장의 지적을 받고 한참 동안 고심을 하던 맥아더는 서덜랜드 참모장을 쳐다보면서
“합동참모회의에서는 일본 본토 상륙을 먼저 하자고 할까? 아니면, 일본의 자원 공급을 끊고 해안을 봉쇄해서 말려 죽이자고 할까? 서덜랜드가 보기에 어떤 선택을 할 것 같나?”
서덜랜드 참모장은 지금 맥아더 사령관은 필리핀을 다시 찾지 못할 것 같은 조급함 때문에 마음이 급해져서 성급한 결정을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맥아더 사령관의 마음을 진정시켜주면서 한편으로는 맥아더 사령관이 가진 능력을 알려줬다.
“사령관님, 우리 미국이 생각하는 이번 전쟁의 일차 목표는 유럽 전선을 빨리 정리하고 그 후 일본을 처리하는 것입니다. 시간은 충분할 것 같지 않습니까? 그리고, 만약 사령관님께서 필리핀 공략을 끝까지 주장하면 그대로 될 겁니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서덜랜드 참모장의 말이 맞았다.
이미, 영국의 처칠과 소련의 스탈린과의 테헤란회담으로 미국의 전쟁 처리 방침은 확실하게 정해진 상태였다.
유럽 전선이 정리되는 동안 일본을 서서히 말려 죽이면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자원 공급 차단과 전쟁 물자 생산을 막으면 된다.
“그럼, 우리는 우리대로 필리핀을 공략하겠다고 말하고 해군에게는 일본 본토 공습이나 하면서 일본 본토 상륙에 대비해서 병력과 물자를 보충하고 있으라고 하면 되겠군?”
“예, 바로 그겁니다.”
미국 육군 남서 태평양 사령부에서 맥아더가 서덜랜드 참모장과 머리를 맞대고 남서 태평양군사령부와 맥아더에게 유리한 작전을 구상하고 있을 때 진주만의 태평양 함대에는 김규식이 니미츠 제독을 찾아왔다.
“제독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니미츠 제독의 부관인 제이슨 중위는 어느새 진급을 해서 이제는 어엿한 대위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손님이 왔다고? 누구시지?”
“예,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교부 부장이신 김규식 선생입니다.”
“그래?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들어 오시라고 해.”
“예, 제독님.”
제이슨 대위의 안내를 받아서 사령관실로 들어온 김규식은 한동안 마리아나 제도의 여러 섬을 돌아다니면서 조선인 강제 징용자들과 정신대로 끌려온 조선 여자들의 문제를 처리하고 돌아다니느라 새카맣게 탄 얼굴로 니미츠 제독에게 인사를 했다.
“니미츠 제독님,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그런데, 일들은 잘 보셨습니까?”
“예, 제독님과 태평양 함대 장병 여러분들의 협조 덕분에 일을 수월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서로 악수와 함께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은 가벼운 대화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조금 지나서 김규식이 전달하는 정보를 들은 니미츠 제독은 분위기가 살짝 바뀌었다.
“제독님, 조지 대장이 제독님께 몇 가지 당부를 했습니다.”
“조지 씨가요? 어떤 당붑니까?”
지금까지 조지가 니미츠 제독을 한두 번 도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니미츠 제독은 집중해서 김규식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먼저, 제독님께 오키나와 공략은 최대한 서두르지 말고 늦춰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이오지마는 최대한 빨리 점령하시라고 하더군요.”
“오키나와는 공략을 늦추고 이오지마는 서둘러달라고요?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이유는 뭐라고 했습니까?”
“조지 대장은 일본군의 주요 전력이 오키나와를 방어하기 위해서 모이게 만들고 오키나와를 라바울처럼 차단한 다음 도쿄를 바로 공격하는 것이 미군의 희생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오키나와로 일본군 병력이 모이게 만들고 도쿄를 바로 공격하라고요?”
너무나 얼토당토않은 김규식의 말에 니미츠 제독은 한참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말로 조지 씨가 그렇게 부탁을 했습니까?”
“예, 왜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지 지금부터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김규식은 혹시 밖에서 다른 사람이 들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목소리를 낮추고 조지가 전한 말들을 하나도 빼지 않고 니미츠 제독에게 전달하기 시작했다.
“지금 도쿄에서는 일왕이 항복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일본 해군도 항복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습니다.”
“뭐라고요? 그게 정말입니까?”
“예, 사실입니다. 그리고, 일왕은 육군의 쿠데타가 두려운 나머지 육군 참모본부에 하고 싶은 작전을 마음껏 하라고 명령하면서 본토에 있는 강성 장군들과 장교를 모두 승진시켜서 최일선 전선으로 배치했습니다.”
“허어…. 진짜요? 그래서요?”
김규식이 들려주는 일본 도쿄 소식에 니미츠 제독은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으면서 더 이야기해달라고 재촉을 했다.
“아마, 인도의 영국군과 중화민국군이 고생을 좀 할 겁니다. 아! 필리핀의 미국 육군도 고생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일왕이 항복하기 위한 예비 조치라는 것을 제독님은 알고 계셔야 합니다.”
“김규식 씨, 정말로 일왕이 항복을 하겠다면 좋은 일이지만 그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조만간 중립국에 주재 중인 일본 외교관이 미국 정부 쪽으로 연락을 해 올 겁니다.”
“그걸 우리 정부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일본 정부가 우리 정부를 속인 일이 어디 한두 번입니까?”
“이번에는 믿을 만할 겁니다. 그리고, 일왕이 미국 정부를 속이려고 한다고 해도 미국 정부는 손해 볼일은 없을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일본 정부가 비밀리에 접촉해온다고 해서 미국 정부와 미군이 일본을 공격하는 것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 아닙니까? 혹시, 미군이 협상을 위해서 공격을 멈춘다고 해도 우리 광복군은 일본이 공식적으로 항복을 하는 순간까지는 일본 공격을 멈출 생각이 없습니다.”
“그거야…. 그렇죠.”
“그리고, 이번에 사이판을 점령하면서 오키나와와 타이완, 필리핀은 군사 전략적인 가치를 잃지 않았습니까?”
“뭐, 그렇기는 합니다. 당장, 일본 본토에 상륙할 것도 아니고 중화민국을 도울 것도 아니라면 말이죠.”
태평양 전선의 양대 축인 남서 태평양군 사령부의 맥아더와 태평양 함대 사령부의 니미츠가 서로 합의했던 작전이 태평양 함대의 독주로 조정이 필요하기는 했다.
“그럼, 일왕의 의도를 우리 정부에 알릴 생각입니까?”
“예,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단 일본의 의중을 알고는 있어야 대처를 하죠.”
“어차피 재정비에 시간이 필요하긴 했습니다. 정부의 방침이 정해질 때까지는 좀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제독님, 이오지마만큼은 먼저 점령하셔야 할 겁니다. 그리고, 일본 육군의 방어 전략이 바뀌어서 이오지마 점령 작전은 예전보다 큰 피해를 보게 될 겁니다.”
김규식 선생은 광복군 정보대가 수집한 이오지마의 일본군 방어 계획을 전달했다.
일본 육군의 이오지마 방어 계획을 전달받은 니미츠 제독은 앞으로 진행될 일본 본토 점령 작전이 걱정됐다.
“문제는 일본 본토 상륙입니다.”
“제독님, 지금까지 해오셨던 대로 일본인들을 회유할 수 있는 프로파간다는 계속해서 진행해야 합니다. 군부와 국민의 사이를 계속해서 벌려놔야 일본 본토 상륙작전에서 피해를 덜 보게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 * *
일본 육군 남방 방면군 15군 사령부는 이번 기회에 중화민국 국민당군의 목줄을 확실히 잡아채기 위해서 인도 침공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 저것들 움직임이 수상한데요?”
“움직임이 아무래도 전투가 임박한 것 같지?”
“예, 그동안 잠잠하더니 무슨 바람이 불어서 저럴까요?”
버마 북서부에서 활동 중인 광복군 2연대 병사들 눈에 전투 준비를 하는 일본군의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연대 본부에 연락해줘야 할 것 같은데.”
“그런데, 저놈들 어디를 공격하려고 저럴까요?”
“15군은 인도 국경을 넘어서 공격할 것이다.”
“저 새끼들만 막아내면 우리도 제주도로 갈까요?”
“아마, 당분간은 힘들 것이다. 수송 수단도 없고, 지금 중화민국 남부 전선에서는 계속해서 치열한 전투가 매일 벌어지고 있다고 하더라.”
“중화민국 남부 전선에서 전투가 벌어지는데 그게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고요?”
“우리가 지원하러 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에이…. 시발 중국 놈은 진짜 싫은데.”
“뭐, 어쩔 수 없잖나?”
무타구치 렌야 사령관의 작전 계획에 맞춰서 인도 국경을 넘을 준비를 하던 15군 사령부는 마지막 작전 점검에 들어갔다.
“영국군이 버마를 공격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영국군을 공격한다. 다들 이의는 없지?”
“예, 사령관님.”
15군 사령부 주요 지휘관들이 개편되면서 버마전선 경험이 전혀 없던 주요 지휘관들은 무타구치 렌야 사령관의 작전을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좋다. 그럼, 처음 계획대로 임팔을 먼저 점령하고 병력을 돌려서 바로 아삼지역으로 치고 들어갈 생각이다. 혹시 이의 잇는 사람 있나?”
무타구치 렌야 사령관은 임팔을 점령하게 되면 인도 독립 세력들이 일본군에 동조해서 함께 봉기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저, 사령관님, 사령관의 작전은 훌륭하지만 몇 가지 준비는 미흡한 것 같습니다.”
오바타 노부요시 참모장이 거만을 떨고 있던 무타구치 렌야 사령관에게 살짝 반항하고 나왔다.
“내가 만든 최고의 작전 계획 중에 뭐가 부족하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