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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탕 속의 혼전 (1) (192/225)

진흙탕 속의 혼전 (1)

먼저 침투한 해병 수색대원들이 일본군의 해안 경계망을 하나씩 제거해 나갈 때, 새벽녘 거친 파도를 헤치고 상륙용 단정들이 셀 수도 없이 제주도 모슬포 해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해안의 모래톱에 도착한 상륙용 단정에서는 전투 무장을 한 병사들이 단정을 박차고 나가면서 자신들의 공격 목표를 향해서 빠르게 움직였다.

“김원봉 대장, 최대한 빠르게 알뜨르 비행장을 점령하고 나머지 지역은 순서대로 차근차근 공략합시다.”

“조지 대장님, 그렇지 않아도 그렇게 할 생각이었습니다. 어차피 이곳은 섬이라서 일본군이 어디 도망칠 곳도 없지 않습니까? 일단, 우리 군의 목표인 알뜨르 비행장을 먼저 점령하고 나머지들은 차분히 정리해나갈 생각입니다.”

“그래요. 좋군요. 최대한 일본이 이곳 사정을 늦게 알아야만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죠?”

“예, 수색대가 지금쯤, 제주도의 모든 무전과 통신 시설을 먼저 점령했거나 파괴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해변을 관찰하던 내 눈에 해병대의 단정 상륙이 거의 마무리 되어가고 있었다.

“해병대 병력의 상륙은 거의 다 끝난 것 같은데, 이젠 슬슬 대공포와 전차를 상륙시킵니다.”

“예, 알겠습니다.”

광복군의 제주도 상륙작전을 지원 나온 미국 해군 태평양 함대의 구성은 전투용 함선보다는 수송선이 훨씬 더 많았다.

광복군이 제주도를 점령 이후,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일본 해군의 봉쇄에 대비해서 고립된 상태에서도 1년 이상은 충분히 버틸 만큼의 탄약과 포탄, 그리고 식량과 의약품을 가져왔다.

“자, 그럼, 슬슬 우리도 움직여 볼까요?”

“아직은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을 텐데 괜찮겠습니까?”

“내 나라 내 땅이 아닙니까? 그리고, 나는 해병대를 믿습니다.”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김원봉 중령을 뒤로하고 다시 상륙 병력을 실어 나르려고 돌아온 단정에 몸을 맡겼다.

모슬포 인근 알뜨르 비행장의 외곽 방어를 위해서 설치된 철조망으로 다가간 해병대원들은 절단기로 철조망을 가볍게 절단하고 하나둘씩 조를 이루면서 비행장 안의 막사와 창고. 그리고 경계 초소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장이나 지휘관으로 보이는 해병대원들의 수신호에 맞춰서 막사와 창고로 일제히 돌입해 들어갔다.

“꽝!”

막사 앞으로 다가선 광복군 해병대원들은 발로 문을 힘껏 걷어차고 서둘러서 일본군을 향해 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손들어!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잠을 자고 있다가 느닷없이 들이닥친 침입자들을 보면서 잠이 덜 깬 눈으로 쳐다보는 일본군을 향해서 다시 한번 소리를 쳤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제노바 협정으로 포로가 됐다. 만약, 반항하거나 지시에 불응하는 자가 있다면 즉결 처형하겠다. 빨리, 손 들어!”

막사 안의 일본군을 체포하는 대원들과는 달리 대공포 진지와 알뜨르 비행장 외곽 경계 초소를 점령하기 위해 떠났던 대원들은 초소 점령이 쉽지 않았는지 일본군과 교전에 들어갔다.

“탕!”

“타당!”

“야! 그냥, 저 새끼들 항복 받지 말고 모두 죽여!”

“예.”

대공 초소와 외곽 경계 초소를 노렸던 해병대원들은 초소의 문짝과 벽이 너덜거릴 정도로 사격을 하고 마무리로 수류탄을 던져버렸다.

“따 다 다 다 당!”

“따 다 다 당!”

“꽝!”

“꽈광!”

수류탄이 터짐과 동시에 총을 쏘면서 반항을 하던 일본군의 반격이 조용해졌다.

“진즉 이렇게 할 걸 괜히 조심하느라고….”

“저…. 소대장님.”

“왜?”

“대대장님께서 작전이 끝났으면 당장 튀어오랍니다.”

“에이…. 시….”

모슬포 알뜨르 비행장을 빠르게 점령한 대한민국 광복군 해병대는 보급품 하역을 기다리고 있던 수송선들을 모슬포항으로 서둘러 입항을 시키고 선적하고 있던 보급품들을 하역하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총소리와 함께 폭탄이 터지는 소리에 놀라서 잠이 깬 모슬포의 주민들은 아침 해가 떠오른 지 한참 지나서야 겁에 질린 표정으로 하나둘씩 방문을 열고 나와서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저기…. 아저씨, 무슨 일이래요? 혹시, 전쟁이라도 났데요?”

“나도 잘 모르지…. 새벽에 들리던 총소리가 지금은 안 들리는 것을 보니까 일이 끝난 모양인 것 같은데….”

“아저씨, 그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 한 번 가볼까요? 비행장 근처인 것 같던데.”

“아이고, 아서라! 이럴 때는 이불 속에 대가리 박고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것이 최고다.”

“그래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너무 궁금하잖아요.”

옆집 학생의 보챔에 부 씨는 어떡할까 고민을 하다가 자기도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함께 하기로 한다.

“그럼, 우리 조용히 한번 다녀올까?”

“예, 조용히 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만 알아보자고요.”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던 모슬포 주민 몇 명은 총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렸던 알뜨르 비행장 근처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그리고, 그들은 꿈에서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태극기가 비행장 한가운데에서 휘날리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됐고 부산하게 움직이는 병사들의 어깨에 태극기가 떡하니 붙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 어? 저건 태극기가 아닌가?”

“아저씨! 저기 군인들의 어깨에도 태극기가 붙어 있는데요.”

“정말로 라디오로만 듣던 광복군이 제주도에 들어 온 것일까?”

“아저씨, 내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광복군 같은데, 가서 한번 물어볼까요? 진짜로 광복군이라면 우리가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안 되잖아요?”

하지만, 모슬포 주민들의 시도는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그동안 일본군과 경찰의 강제 동원에 시달리면서 어느새 폭력에 길들어진 모슬포 주민들은 바짝 쫄은 모습으로 양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혹시, 모슬포 주민들입니까?”

“예! 맞습니다. 총소리가 들려서 무슨 일인가 하고….”

“아직 모든 작전이 마무리되지 않았습니다. 당분간 연락이 갈 때까지는 집으로 돌아가서 안전하게 기다려 주십시오.”

“혹시…. 광복군입니까?”

“예, 우리는 제주도를 해방하려고 온 광복군입니다.”

병사의 대답을 들은 모슬포 주민들은 바로 환희와 감격이 가득한 얼굴로 양팔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리면서 만세를 외쳐대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만세!”

“대한 광복군 만세!”

만세를 외치는 주민들의 모습에 놀란 병사가 주민들을 말렸다.

“여러분!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닙니다. 아직은 위험하니까 집으로 돌아가서 기다려 주십시오.”

하지만, 병사의 외침은 그저 허공 속으로 흩어지는 헛소리가 돼 버렸다.

만세를 한참 외치던 모슬포 주민들은 빠르게 모슬포 마을 뛰어가서 마을 주민들을 모두 데리고 나왔다.

“거기! 광복군 양반, 우리가 뭘 도와주면 되겠어요? 저기 나르는 짐이라도 들어 줄까요? 아! 그리고, 아직 밥들은 안 먹었죠? 조금만 기다리시오. 지금 마을에서 잔치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요.”

“우리가 뭘 도와주면 됩니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만 하시오.”

“군인 아저씨, 저기 나무 상자를 옮기면 되나요?”

모슬포 주민의 대표인듯한 노인이 나서서 광복군들이 옮기는 보급품들을 같이 나르게 시켰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마을에서는 아낙들이 음식을 만들어서 바리바리 챙겨왔고 고사리손의 아이들까지 나서서 광복군의 물자 하역을 도왔다.

아직도 다른 지역은 완벽한 토벌이 이뤄지지 않았는지 간간이 총소리가 들리는 와중에도 모슬포 주민들은 광복군을 돕기 위해서 나서고 있었다.

그런, 모슬포 주민을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이 있었다.

‘김원봉이 제주도 상륙 전에 우리 광복군이라는 물고기는 인민이라는 물과 함께해야 진정한 가치가 있다고 했던가? 그 말은 확실히 맞는 것 같군. 이렇게 순박한 제주도민을 학살한 개새끼와 서북 정신병자 놈들은 절대로 이 땅에 발도 못 붙이게 하겠다.’

“저…. 대장님.”

“응? 무슨 일이인데?”

내가 잠시 이승만과 서북 청년단을 생각하고 있을 때 유자명 선생과 드미트리가 다가와서 불렀다.

“이제 작전이 거의 끝나가는 것 같은데 사이판에 연락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사이판에 연락해서 제주도 점령 작전이 끝났으니까 바로 후속 작전을 진행하라고 해!”

“예,”

“유자명 선생은 무슨 일입니까?”

“예, 이 명단은 그동안 우리 정보대가 파악해 놓은 제주도 거주 일본인들과 부역자들입니다.”

“아! 그래요? 그럼, 이것들만 잡아들이면 제주도 수복 작전은 완전히 끝나겠군요.”

“뭐, 일단은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가동은 하지 않았던 비밀 무기공장도 한 번쯤은 시험 삼아서 운행을 해봐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그래야죠. 공장 관계자들을 불러 모아서 바로 시험 가동을 해보십시오. 그게 없으면 또 미군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합니다.”

몇 년 전에 일본군들의 눈을 피해서 건설해 놓았던 사린가스 제조시설과 소이탄 제조시설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다면 일본을 폭격할 폭탄을 미군에 구걸해서 사용해야 했다.

아직까지는 미군이 오키나와를 점령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군이 보급해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제주도를 점령한 의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었다.

바쁘게 작전을 협의하고 지시하고 있을 때 김원봉 중령이 곁으로 다가갔다.

“김 중령, 일본군과 경찰의 무전과 통신 시설은 확실히 점령했죠?”

“아? 예. 그건 이미 끝났습니다.”

“그럼, 혹시 외부로 탈출을 시도하는 일본인들은 없었습니까?”

“우리 상륙작전이 워낙 빠르게 진행돼서 그런지 외부 탈출도 없었습니다.”

“다행이군요. 그럼, 한라산에 레이다 기지는 어떻게 됐습니까?”

“주민들이 병사들을 도와줘서 이미 한라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제주도민들에게 너무 신세를 지는군요. 아무튼 레이다만큼은 빨리 설치되어야 합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예정보다는 더 빨리 설치가 될 겁니다.”

알뜨르 비행장을 점령한 해병대는 다음 작전으로 제주읍과 그 외 제주의 읍, 면의 일본군 시설과 경찰서를 점령하고 제주도에 거주 중였던 일본인들을 모두 체포했다.

그리고, 그사이에 대기 중이던 수송선에서는 2차 상륙작전을 준비 중이었던 광복군의 육군 병력이 하나둘씩 상륙을 하기 시작했다.

날이 어두워져 갈 무렵, 알뜨르 비행장에는 사이판에서 출발한 대한민국 광복군 항공대의 수백 대의 폭격기와 전투기가 날아왔다.

“이렇게 우리 광복군이 한곳에 모이니까 정말로 조국 해방이 얼마 남지 않은 느낌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 손으로 직접 일본군을 몰아내고 제주도를 해방하니까 뭐라 말하기 힘든 감정이 드네요.”

늦은 밤까지도 모슬포항에서는 아직도 훤하게 불을 밝힌 체 보급품들의 하역이 진행 중이었고 제주도를 장악한 병력은 제주도를 방어하기 위한 진지 공사와 시설 공사에 투입된 상태였다.

“자, 다들 모였으면 작전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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