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괌과 사이판 그리고… (2) (190/225)

괌과 사이판 그리고… (2)

히로히토 일왕의 명령으로 소집된 대본영 회의는 시작부터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총리대신이자 육군 대신인 도조 히데키는 ‘절대 국방권’을 선언하자마자 바로 뚫려버리면서 할 말이 없게 됐고, 해군은 미군의 함대에 힘 한번 제대로 못써보고 패배하는 모습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모두 모였는가? 이번에 사이판 전투에서 미군에게 패배하고 이제 우리 제국 전역은 미군의 폭격기의 공격 범위 안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대책들은 있느냐?”

그동안 건강상 이유로 도무지 힘을 쓰지 못하던 모습과는 달리 히로히토 일왕은 예전과는 다른 태도로 대본영 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

“폐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황국 군과 황국 신민은 끝까지 제국과 천황폐하를 보위할 것입니다.”

“총리대신! 그렇게 입에 발린 소리는 됐고 진짜로 대책이 있냐고 묻는 거다. 앞으로 있을 미군의 공습과 공격을 막을 방법이 있느냐?”

“.....”

“.....”

히로히토가 보채듯이 대본영 회의에 참석한 대신들과 장군을 몰아붙였지만 지금 당장 미군을 막을 마땅한 대책이 없는 참석자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아무도 대책이 없다는 소리냐?”

“폐하, 미군이 공격해 온다면 황국 신민 일억 명이 총 옥쇄를 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소리냐?”

“.....”

“.....”

“왜들 대답이 없느냐? 황국 신민 일억 명이 총 옥쇄를 하면 우리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냐고 묻지 않느냐?”

도조 히데키 총리대신이자 육군 대신, 육군 참모총장 스기야마 하지메 육군 대장, 시마다 시게타로 해군 대신, 군령부 총장 나가노 오사미 대장 중의 누구도 대답이 없었다.

“그럼, 이대로 일억 명이 모두 옥쇄해서 죽는 그 날까지 전쟁을 이어가자는 말이냐? 우리 일본 제국은 도대체 언제까지 전쟁을 해야 하는 거냐?”

“폐하! 절대로 그럴 일은 없습니다. 전쟁은 곧 끝이 날 겁니다.”

“폐하! 우리 황국은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겁니다.”

“그래? 그럼, 어떻게 하면 우리 일본 제국이 승리하고 황국이 영원할 수 있다는 말이냐?”

“.....”

“.....”

다시 한번 묻는 히로히토 일왕의 질문에 역시나 아무도 대답을 못 했다.

“왜 다들 대답이 없는 것이냐? 나는 지금까지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다 해줬다. 미국의 진주만을 공격하면 미국은 협상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협상은커녕 전쟁만 더 커졌다. 전쟁은 도대체 언제 끝이 나고 전쟁에서 정말로 승리할 수 있느냐? 아니면 혹시, 너희는 지금 나를 기만하는 것이냐?”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냐? 내가 전쟁에 승리할 방법이 무엇이냐고 지금 묻고 있지 않으냐?”

“황국 신민 일억 명이 총 옥쇄를 한다는 각오로 적들을 물리치겠습니다.”

도조 히데키의 대답에 히로히토 일왕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이미, 스즈키 간타로와 기도 고이치가 전해준 정보를 통해서 그동안 히로히토 일왕을 속이고 감춰왔던 전황을 모두 확인한 상황에서 군부는 끝까지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이미 뚫려버린 절대 국방권인데, 그래도 정말로 튼튼하게 방어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한가?”

“예…. 적들은 절대로 더는‘절대 국방권’을 넘어설 수는 없을 겁니다.”

“허…. 그래? 일단, 좋다. 그럼, 미국과 영국, 그리고 지나가 우리 제국의 무조건 항복을 주장하던데 그에 대한 대책은 무엇이냐?”

“대동아 공영권을 구축해서 우리 제국의 의도를 마음을 다해서 선전하고 동맹을 만들 생각입니다.”

“총리대신! 미국과 영국, 그리고 지나를 상대로 전쟁을 하는 마당에 그까짓 대동아 공영권에 속한 나라들이 얼마나 도움이 된다고. 그런 말을 하는 거냐?”

“대동아 공영권만 완벽하게 구축한다면 충분히 적을 상대할 만한 할 겁니다.”

“어떻게 말이냐?”

“대동아 공영권의 자원을 바탕으로 전쟁을 계속 수행할 수 있고 대동아 공영권에 속한 동맹들이 적들과 싸울 겁니다.”

“그게 진짜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

“아마…. 가능할 겁니다.”

히로히토 일왕의 판단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땅덩이가 넓은 국가 4개국 가운데 소련을 제외한 나머지 삼 개국을 상대로 전쟁 중인 와중에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허울뿐인 동맹이 전쟁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몰랐다.

“총리대신, 지금 오카다 게이스케, 와카스키 레이스로, 고노에 후미마로와 같은 중신들은 총리대신이 너무 무능하다고 총리대신을 교체하자고 하고 있다.”

“.....”

“왜? 대답이 없는 거냐? 정말로 중신들의 말처럼 전쟁에 승리할 능력이 안 돼는 것이냐?”

“그것은 아니지만….”

“총리대신! 그럼, 말이다. 한때는 우리의 동맹이었던 이탈리아 왕국의 무솔리니가 쫓겨났다. 그리고, 이탈리아 왕국은 연합국에 항복했다. 우린 정말로 승리할 수 있는 것이냐?”

“.....”

히로히토 일왕은 처음부터 원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더는 군부를 압박하지 않았다.

이 정도에서 더 압박한다면 군부의 반발로 자신의 목숨도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것을 히로히토 일왕을 잘 알고 있었다.

“이대로 하다가는 일본 제국의 승리는 절대로 장담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너희들의 분발을 촉구하는 것이다.”

“폐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만 가지고는 이 난국을 헤쳐나가기 힘들 것 같고 정말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뭐든 좋다. 너희들의 의견을 말해봐라.”

히로히토 일왕이 소집한 대본영 회의에서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전쟁 지도 방침이 내려졌다.

육군의 경우에는 도쿄에 죽치고 앉아서 전쟁의 승리를 주장하면서 닥치고 옥쇄와 닥치고 공격을 주장하는 지휘관들을 모두 최전선의 지휘관으로 보직을 변경했고 해군은 ‘절대 국방권’인 오키나와의 방어와 자원 공급망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필리핀의 방어를 위한 함대를 조직했다.

히로히토 일왕이 주재한 대본영 회의에서 결정된 조치가 일견 겉으로 보기에는 일본이 마지막 한 방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고 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아니었다.

도쿄에서 종전 협상을 방해할 만한 군부 인사들을 모두 도쿄 밖으로 쫓아낸 것이고 운이 좋게도 그들 덕분에 전쟁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면 협상에 이로울 것으로 생각하고 히로히토 일왕과 스즈키 간타로 추밀원 고문 기도 고이치 내대신이 마련한 대책이었다.

* * *

북 마리아나 제도 티니안섬.

“이봐요! 거기 아저씨! 나이도 많아 보이는데 웬만하면 그냥 빠지시죠.”

“내 걱정은 하지 마시오. 나도 충분히 일본 놈들하고 싸울 수 있소.”

“아니, 아저씨. 꼭 군인이 돼야만 일본 놈들하고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 남아서 미군의 일을 돕는 것도 일본 놈들하고 싸우는 것만큼 중요해요.”

“나는 여기 남아서 일하는 것보다 총을 들고 싶소.”

“아이…. 참, 아저씨는 나이가 너무 많다니까요?”

광복군 해병대 모병관과 사이판과 마리아나 제도에서 포로로 잡힌 조선인 강제 징용자 사이에 서로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거기, 아저씨! 이쪽으로 오세요. 광복군에 지원할 수 있는 나이는 이미 지난 것 같으니까 그냥 임시정부 일이나 좀 도와주십시오.”

“임시정부를 도와요? 어떻게요?”

“이쪽으로 와서 임시정부의 지휘를 받으면서 미군 기지를 건설하는 일을 하십시오. 그것이 싫으시다면 그냥 포로수용소에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시면 됩니다.”

“나는 일본 놈들하고 싸우고 싶다니까요?”

“안된다니까요. 일을 하실 거라면 이쪽으로 오시고 아니라면 그냥 수용소에서 편히 쉬시면 됩니다.”

나이가 마흔은 훨씬 넘어 보이는 조선인 강제 징용자는 이번에는 임시정부에서 파견된 사람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조선인 강제 징용자들과 광복군 모병관들이 벌이는 실랑이를 지켜보는 내 곁으로 워싱턴에서 임시정부 외교 부분을 이끌던 김규식이 다가왔다.

“김 선생님이 빠르게 대처해서 조선인 강제 징용자들이 일본군과 다른 대우를 받게 됐군요. 선생께서 일을 서둘러 마무리 지어줘서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이런 일이 원래 내가 해야 할 일인데 그렇게 고마워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그래도…. 아무튼 수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상 밖이네요? 나는 강제 징용자들이 그냥 편하게 쉴 수 있는 길을 택할 줄 알았는데….”

“예, 예상 밖이죠? 여기로 끌려온 사람들은 다들 일본에 열이 뻗친 상황이라서 광복군이 되겠다고 난리들입니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조선인들이 일본 놈들의 노예가 돼서 이렇게 끌려와서 고생한 모습을 지켜보자니 마음이 많이 안 좋습니다.”

“누구나 같은 마음 일 겁니다. 하지만, 김 선생님, 이제 얼마 안 남았습니다.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아! 그리고, 워싱턴에서 하던 일을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습니까?”

나는 처음 계획했던 일 가운데서 소련의 스파이 문제를 먼저 정리하고 나가는 것으로 결정하고 김규식 선생을 통해서 영국의 Mi- 6 와 에드거 후버의 FBI와 접촉하도록 했다.

“영국 정부는 외부적으로는 공식으로 연합국으로 인정은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이유는 우리가 예상했듯이 인도 문제 때문입니다.”

“그럼, 암묵적으로는 연합국으로 인정하고 우리나라의 신탁통치는 없다는 겁니까?”

“예, 일단은 거기까지는 합의를 봤습니다. 그리고, 그에 관련된 조약문서도 작성했습니다.”

“음…. 영국은 언제든지 말을 뒤집는 놈들이라서…. 일단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FBI의 에드거 후버 국장은 뭐라고 합니까?”

그동안 뉴욕의 마피아 빌리를 통해서 관리하고 감시하고 있었던 소련 스파이들의 명단을 FBI 에드거 후버 국장에게 모두 넘겨줬다.

“명단에 들어있는 스파이들을 조사해서 혐의를 확인하고 만약 명단이 사실이라면 앞으로는 임시정부의 일에 무조건 협조해주겠다고 합니다.”

“그래요? 좀 아깝기는 하네요. 알고 보면 그게 얼마짜린데….”

FBI의 에드거 후버 국장은 끝까지 비협조적이었다.

내가 넘겨준 영국과 미국에 넘겨준 명단은 소련의 원자폭탄 개발에 협조한 스파이들의 명단이었다.

소련의 뒤통수를 쳐서 대한민국도 원자폭탄과 원자력 기술을 확보할까도 생각을 해봤지만, 현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능력으로는 농축 우라늄을 구할 방법이 없어서 그냥 깨끗이 마음을 비우고 포기를 해버렸다.

“뭐, 미국의 반공주의자들과 이승만이 연결되는 것을 막을 수 있어도 그 나름의 성과가 있다고 볼 수 있겠죠.”

“조지 선생은 가끔 우남을 너무 신경을 쓰는 것 같은데 혹시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예, 내가 이러는 이유는 이승만은 위험한 작자이기 때문입니다. 김규식 선생도 알다시피 이승만은 권력욕이 끝이 없는 사람이라서 나중에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요?”

“그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입니다. 이승만에게 대한민국이나 대한민국 인민은 없습니다. 이승만은 오직 자신이 최고의 권좌에 오르고 싶다는 욕망만 가득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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