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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싫어서 발버둥 치는 히로히토 (188/225)

죽기 싫어서 발버둥 치는 히로히토

1943년 9월 8일 이탈리아 왕국은 연합국에 항복하고 무솔리니는 히틀러의 도움을 받아서 간신히 로마에서 탈출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본이 반드시 지키겠다고 설정한 ‘절대 국방권’인 사이판과 마리아나제도를 미군에 빼앗겼다.

“두 분 각하! 이대로 우리 일본 제국이 얼마나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전임 외무대신이었던 도고 시게노리는 추밀원 고문인 스즈키 간타로와 내대신인 기도 고이치를 도쿄의 모처에서 은밀히 만나서 설득하고 있었다.

“두 분 각하! 며칠 전에는 절대 국방권이 뚫렸습니다. 이제 천황폐하께서 기거하시는 고쿄에 폭탄이 떨어져도 천황폐하께 뭐라고 변명도 못 하게 생겼습니다.”

도고 시게노리가 일본의 아픔을 자꾸 거론하자 추밀원 고문이 스즈키 간타로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화를 냈다.

“도고! 그래서 뭘 어떡하자는 거냐? 우리라고 이런 결과를 만들고 싶어서 만든 것이냐?”

“각하! 가을에 이탈리아 왕국이 항복했습니다.”

“누가 그걸 모르느냐? 그래서, 뭘 어떡하자는 거냐고?”

“이대로 가만히 앉아 계시다가 전쟁에서 패배하고 모두 전범으로 처형되실 생각이십니까? 아니면, 천황폐하께 모든 죄를 떠넘겨서 천황폐하를 전범으로 만드실 생각이십니까?”

“이놈, 말이라고 다 말인 줄 아느냐? 중요한 이야기라고 해서 한번 들어 보려 했더니….”

옆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기도 고이치 내대신까지 화를 내면서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내대신 각하! 각하께서 지금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서시면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뭐라고? 대관절 너는 지금 무슨 헛소린 거냐?”

“저한테 우리 일본과 천황폐하께서 영원히 살아남을 방법이 있습니다. 그래도 그냥 이 자리를 떠나시겠습니까?”

스즈키 간타로 추밀원 고문과 기도 고이치 내대신은 끓어오르는 화를 참으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럼, 네가 생각하는 천황폐하께서 앞으로도 영원히 건재하시면서 제국을 다스릴 방법을 말해봐라.”

“두 분 각하께서는 우리 일본이 무엇 때문에 미국과 전쟁을 벌였다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당연히 미국놈들이 우리 일본을 무시하고 목줄을 잡고 죽이려고 하니까 그런 것이 아니냐?”

“정말로 그 이유뿐입니까? 저는 전쟁이 발생할 당시 외무대신이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이 전쟁이 발생한 이유를 잘 압니다.”

“그럼 너는 무엇 때문에 우리 일본 제국과 미국 사이에 전쟁을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스즈키 간타로와 기도 고이치는 누가 노회한 일본의 정치인들이 아니라고 할까 봐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의논을 해야 하는 자리에서마저 일본이 먼저 미국을 공격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각하! 지금, 이 자리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놓고 이야기를 해서 우리 일본 제국과 천황폐하를 보위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모두 사실을 인정하고 길을 찾아야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크흠….”

“......”

뼈를 때리는 도고 시게노리의 말에 스즈키 간타로와 기도 고이치는 별다른 대답을 못 하고 불편한 표정만 지었다.

“우리 일본 제국이 이렇게 내일을 걱정하는 처지가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2.26 반란 사건 때문입니다. 그때, 만약 반란이 일어나지만 않았어도…. 우리 일본 제국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비통한 심정으로 이야기하는 도고 시게노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2.26 사건이 생각났는지 스즈키 간타로와 기도 고이치의 표정도 굳어졌다.

“그 망종들만 아니었어도….”

“그때, 그 사건만 없었어도 어떡하든지 군부를 통제할 수 있었을 텐데….”

일본이라는 나라의 흥망에 관련된 변곡점이 몇 곳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확실하게 일본을 패망으로 이끈 사건이 바로 2.26 사건이다.

비대하고 강력한 조직으로 내각마저 마음대로 갈아치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던 일본 육군은 이때까지만 해도 두 개의 파벌로 나누어져서 서로 견제가 가능했지만 2.26 반란 사건을 계기로 하나의 파벌이 완전히 소멸이 되면서 남은 한 개의 파벌을 통제하고 견제할 수단을 잃어버리게 됐다.

“두 분 각하! 지금, 미국이 얼마나 무서운 것을 계획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혹시, 도고 시게노리, 너는 지금까지 우리 모르게 미국과 내통을 하고 있었던 것이냐?”

스즈키 간타로가 의심의 눈길로 도고 시게노리를 추궁하자 도고 시게노리는 피식 웃으면서 대답을 했다.

“각하! 저같이 힘없는 조센징 출신의 전직 외무대신이 미국의 이용 거리나 되겠습니까? 누군지는 모르지만, 가끔 저의 집에 전쟁과 관련된 정보를 전해주는 놈들이 있습니다.”

“네 집에?”

“예, 저도 누군지는 모르지만, 일본이 망하더라도 나는 살아남으라고 하면서 계속 정보를 주는 놈이 있습니다. 저도 잡아 보려고 노력했지만 언제 정보를 던져놓고 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지금까지 찾지 못했습니다.”

“혹시, 너도 조센징들과 연관이 있는 것이냐?”

“각하! 우리 집안은 조선을 떠난 지가 벌써 수백 년도 더 지났습니다. 이런 제가 어딜 봐서 조선인으로 보이십니까?”

도고 시게노리의 대답은 상식적으로 판단했을 때 맞는 소리였다.

이미 수백 년 전에 조선에서 끌려온 도공 집안이 인제 와서 조선이 뭐가 좋다고 조선을 위해서 일하겠는가?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냐?”

아직도 도고 시게노리에 대한 의심의 감정을 거두지 않은 스즈키 간타로가 물었다.

“이걸 먼저 보십시오. 미국 놈들이 얼마나 간악한 짓을 계획하고 있는지 아셔야만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도고 시게노리는 아침에 광복군 정보대로부터 전달된 미국 정부의 계획을 스즈키 간타로와 기도 고이치에게 보여줬다.

“이런 미친놈들이…. 미국 놈들이 이런 계획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죽더라도 끝까지 싸워야 한다.”

“스즈키 고문님, 이러다가 진짜 우리 모두 죽는 것 아닙니까?”

“죽긴 뭘 죽습니까? 우리가 죽으면 미국 놈들은 안 죽습니까?”

도고 시게노리가 전해준 문서를 읽은 스즈키 간타로는 분노하면서 펄쩍 뛰었지만, 기도 고이치의 태도는 달랐다.

미국의 계획을 알고 나서는 표정부터가 완전히 겁에 질려 있었다.

“화를 내지만 말고 진짜로 미국 정부가 이런 짓을 한다면 막을 방법이 있습니까?”

분노하는 스즈키 간타로의 팔뚝을 붙잡고 흔들면서 기도 고이치가 말렸다.

“후유…. 도고, 너는 이게 진짜로 미국 정부의 계획이라고 생각하느냐?”

도고 시게노리는 대답 대신 그동안 광복군 정보대로부터 전달받았던 서류들을 스즈키 간타로 앞에 내놨다.

“이건 또 뭐냐?”

“저한테 정보를 주는 놈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미국 정부가 뭔가를 발표하기 전에 이렇게 정보를 전해주더군요. 고문님께서도 한번 읽어보십시오.”

도고 시게노리가 내놓은 서류는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최근 들어서 진행한 여러 가지 회담의 주요 내용이 들어있었다.

“이런 정보들이 미국 정부가 발표하기 전에 너한테 전달이 됐다는 말이냐?”

“예, 그래서 왜 이런 정보를 나한테 전달할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나중에 전쟁을 종결해야만 할 순간이 다가오면 저를 파트너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너를 종전 파트너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예,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자세한 정보를 전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정말, 도고 너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거냐?”

“당연하지 않습니까? 만약, 제가 이들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다면 제가 어떻게 두 분 각하께 이런 것들을 보여드리겠습니까?”

“음….”

“하기야 관련이 있다면 우리한테 이런 것을 보여주기는 힘들겠지.”

“그러나저러나 미국 정부가 정말 이런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 우리 제국의 앞날은 끝장이다.”

스즈키 간타로 추밀원 고문은 온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미국 정부가 정말 야비하고 간악하다고 생각했다.

루스벨트 대통령과 미국 정부는 영국, 캐나다 지도부와 제1차 퀘벡 회의에서 결정된 대로 일본의 10개 주요 도시에 원자폭탄 투하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의 50개 중소 도시에는 인구의 소멸을 노리고 생화학 가스를 살포할 작정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 전체를 폭격해서 아무런 생물도 살 수 없는 황무지로 만들고 농지에는 강력한 제초제를 살포해서 농작물 재배가 수십 년 동안 불가능하게 만들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미국이 개발 중인 원자력 무기는 얼마나 대단한 무기이길래 우리 제국의 10대 도시를 날려 버린다고 한 것일까? 저런 엄청난 무기가 정말로 개발되기는 할까?”

“내대신님, 아마 이 정보도 사실일 겁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저에게 정보를 전달해준 놈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음…. 독일에서도 이런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하더니…. 이게 정말로 사실이라면 우리 제국은 이대로 끝이다.”

“내대신은 이 신무기에 대해서 뭘 좀 아는 겁니까?”

“예, 도시 하나를 가볍게 지워버릴 수 있는 무기라고 알고 있습니다.”

“어허…. 그럼, 앞으로 어떡합니까?”

“나도 모르겠습니다. 이대로는 전쟁에 승산도 없고…. 그렇다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도 고이치 내대신은 원자폭탄에 대해서 뭔가를 알고 있는지 얼굴은 더욱 일그러졌다.

“그래서 제가 두 분 각하를 모신 겁니다.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우리 제국의 끝을 지켜봐야만 합니까?”

스즈키 간타로와 고도 기이치는 제국이 살아날 방법이 있다는 도고 시게노리의 말에 눈을 반짝이면서 물었다.

“천황폐하와 제국을 살릴 방법이 있다고?”

“예,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천황폐하의 안전과 제국을 살릴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정말이냐?”

“예, 두 분께서는 만족스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천황폐하만큼은 분명히 살릴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

“포기할 것은 빠르게 포기하고 지킬 것은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욕심을 부리다가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고 망국을 걱정하는 처지라니….”

“각하!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지킬 것은 확실히 지키고 줄 것은 줘야만 살 수 있습니다.”

도고 시게노리의 말이 맞기는 하지만 미국과 협상을 하기 위해서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다.

“천황폐하는 우리가 나서서 설득할 수 있다고 하지만 군부의 저항은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말이야?”

“다 방법이 있습니다. 두 분 각하께서 천황폐하를 확실히 설득하실 수만 있다면 군부를 통제할 방법은 아주 많습니다.”

“그러니까 뭘 어떻게 하자고?”

도고 시게노리는 스즈키 간타로와 기도 고이치에게 광복군 정보대에서 넘겨받은 문서를 하나씩 설명하면서 미국과의 전쟁에서 종전 협상을 위한 작전 짜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고 시게노리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어쩌면 계획이 실현 가능하겠다고 생각한 스즈키 간타로와 기도 고이치는 히로히토 천황을 만나러 갔다.

“폐하! 긴히 들일 말씀이 있습니다.”

“갑자기 무슨 일들인가?”

히로히토 일왕은 풀리지 않는 전황에 군부의 배신으로 언제 암살을 당할지 아니면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언제 전범으로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면서 신경쇠약 증세와 심각한 위궤양 증상까지 보이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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