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제주도다
일본 대본영은 ‘절대 국방권’ 지역인 사이판과 마리아나 제도를 방어할 목적으로 일본 육군은 31군을 새로 편성했고 오바타 히데요시 중장을 사령장관으로 임명했다.
일본 해군은 중부 태평양 방면 함대를 창설하고 사령장관에 나구모 중장을 임명했다.
그리고, 일본 해군 중부 태평양 방면 함대에 4함대와 6함대도 배속시켰다.
리치먼드 터너 제독이 지휘하는 제58 기동부대는 니미츠 제독의 명령을 받고 상륙작전에 대비해서 마리아나 제도 차단 작전에 돌입했다.
“뭐라고? 아니, 군을 편성하고 함대를 편성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방어 준비가 안 된 거야? 오바타 사령 장관에게 지금 당장 사이판으로 들어가라고 해”
마리아나 제도를 방어하기 위해서 증원되던 병력 수송선이 태평양 함대 잠수함 사령부 소속의 잠수함 때문에 잇따라 침몰하고 마리아나 제도 곳곳을 제58 기동부대 소속 함재기들이 공습하기 시작하자 마리아나 제도의 방어가 취약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 도조 히데키 총리는 ‘절대 국방권’을 반드시 사수해야 한다고 제31군사령부에 어서 빨리 사이판으로 출발하라고 재촉했다.
대본영의 재촉에 급하게 사이판에 도착한 일본 육군 제31군 사령부는 마리아나 제도의 방어를 위한 긴급 계획을 제출했고 바로 군정을 실시했다.
그리고, 일본 제31군은 미군의 마리아나 제도 상륙이 임박했다고 생각하고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미군의 상륙에 대비했다.
“어서 오십시오. 광복군을 기다리다가 목이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이봉창은 상륙작전을 현장에서 지휘하기 위해 본대보다 먼저 상륙한 김원봉 중령을 기쁜 표정으로 맞이했다.
“이봉창 동지, 그동안 고생이 많았습니다. 이봉창 동지의 활약 덕분에 우리 광복군이 미군들 앞에서 제대로 위신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아이고,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요. 일단, 우리 집으로 들어가시죠.”
이봉창과 김원봉은 이봉창이 사이판에서 운영하는 술집으로 들어갔고 미군의 공습에 대비해서 지하에 만들어둔 공간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지금 일본군의 움직임은 어떻습니까?”
“일본군은 미군이 이렇게 빨리 사이판을 공격할 줄 예상을 못 한 것 같습니다. 한참 방어 시설 공사를 진행하다 대충 서둘러서 마무리를 짓고 지금은 미군의 상륙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음…. 그럼, 사이판의 일본군은 어느 정도까지는 방어 준비가 되어 있다는 소리군요?”
“예, 사이판은 그래도 준비를 좀 해놨습니다. 아! 참, 혹시 우리 광복군이 담당한 지역이 사이판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이봉창 동지가 알려준 대로 우리는 티니안섬 점령을 담당하기로 했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이곳 사이판보다는 티니안에서 조선인들이 훨씬 더 많이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티니안섬 쪽의 조선인들은 광복군이 상륙하면 함께 싸울 준비도 끝내놨습니다.”
이봉창과 김원봉은 그동안 이봉창이 수집해 놓고 광복군에 전달하지 못했던 일본군에 대한 정보를 받아서 분석하고 미군에 넘겨줘야 할 정보는 따로 분류했다.
미군의 상륙에 대비해서 사이판 남쪽 해안에 죽치고 있던 일본 육군 43사단은 미리 해상에 표적용 깃발을 부표까지 만들어놓는 등 여러 가지 방어 준비를 하고 기다렸다.
미군의 함포사격에서 살아남은 일본군 생존자들은 다가오는 미군에게 기관총과 야포를 쏘면서 맹렬히 저항했고, 일본군의 격렬한 저항 때문에 미군 해병대는 해안 상륙이 완료되고 교두보가 확보될 때까지 무려 1,000여 명의 사상자와 장갑차 20대 등의 손실을 보았다.
그러나, 일본군의 저항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계에 이르렀고 결국 제47 여단과 전차 9연대 4중대는 전멸하고 말았다.
하지만, 야간에는 역시나 자신들의 주특기를 발휘한 일본군의 야습이 어김없는 이어졌고 불행하게도 미군의 화력에 말 그대로 녹아 내려버렸다.
상륙작전 첫날, 미군은 폭 1km의 교두보를 확보하고 내륙으로 10km 지점까지 진출하는 전과를 올렸다.
해안에 교두보가 확보되자 상륙한 미군 상륙군 지휘부는 예상보다 많은 사상자 숫자에 놀랐다.
“아니, 겨우 10Km를 내륙으로 전진하는데 사상자가 1,000명이 넘게 발생했다고? 이거 완전히 예상 밖인데.”
상륙군을 지휘하는 홀랜드 스미스 장군은 예상치 못한 사상자의 숫자에 놀랐는지 인상을 찌푸리면서 죄 없는 모래사장을 걷어찼다.
“전처럼 전차를 앞세워 상륙작전을 펼쳤다면 사상자들의 숫자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쉽습니다.”
“JAP 들이 해안에 미리 부표까지 설치해놓고 집중 포격을 할 줄은 몰라서 그런 거지.”
“일본군도 점점 영악해지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진행될 상륙작전은 이번 전투를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 같습니다.”
“뭐,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고 아무튼 이렇게 상륙작전을 도와줘서 고맙소.”
“아닙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고마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우리 광복군도 미군과 함께 싸우는 동료가 아닙니까?”
홀랜드 스미스 중장은 이번 전투를 끝으로 광복군의 도움이나 조력을 더는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워서 한 말인데 김경천 대령은 홀랜드 스미스 장군의 말을 모르는 척 해버렸다.
“앞으로는 함께하기 힘들다고 하니까 동료를 잃은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그동안 정도 많이 들었고요.”
그때, 김경천 대령 곁으로 광복군 통신 장교가 다가왔다.
“연대장님, 일본군 전차가 출현했다고 합니다.”
“미친놈들인가? 한밤중에 전차 기동을 한다고?”
“예, 연대장님. 약 30에서 40대에 가까운 전차들이 돌격을 시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전차 대대는 아직 상륙도 못 했는데…. 일단, 무반동총으로 저지해보고 안되면 바로 후퇴를 하라고 해.”
“예, 알겠습니다. 연대장님.”
김경천 대령과 광복군 통신 장교가 한국어로 대화를 주고받자 홀랜드 스미스 중장은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겼는지 궁금해하면서 다가왔다.
“김 대령, 무슨 일입니까?”
“아! 예…. 일본 놈들이 미쳤는지 야밤에 전차를 끌고 나왔습니다.”
“그래요? 그럼, 큰일이 아닙니까? 우리 전차대라도 투입할까요?”
“아닙니다. 어쩌면 무반동총으로도 쉽게 막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예?”
“일본 놈들의 전차는 워낙 형편없기로 유명합니다. 이미, 중화민국 전선에서 우리가 직접 상대해봐서 잘 압니다.”
“정말, 걱정 안 해도 되겠어요?”
“예, 일단 막아보고 안되면 그때는 지원을 요청하겠습니다. 대충 좌표를 알려드릴 테니까 조명탄이나 좀 쏴 주십시오.”
사이판섬의 방어를 책임진 사이토 중장은 미군 상륙병들에 대한 해안 저지에 실패하고 잔여 병력을 타포 차우 산악지대로 후퇴시킨 다음 동굴을 활용해서 미군의 진격을 저지하기로 작전을 변경한다.
그리고, 사이판섬 안에 있는 전차들을 모조리 긁어모아서 37대의 전차로 이루어진 기갑부대를 편성하고 어둠을 틈타서 돌격을 감행했다.
위풍당당하게 진격하는 전차를 보면서 처음에는 광복군들이 동요를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수많은 조명탄이 하늘을 뒤덮으며 밝게 비추자 허접한 일본 전차의 실체가 바로 드러났다.
“언덕 위쪽에 전차다!”
“어? 저거 그때 그 깡통인데요? 전에 독일군이 넘겨준 대전차 무기에 그대로 뚫린 놈들하고 똑같은 놈들이에요.”
무반동총 사수가 갑자기 등장한 일본군의 전차는 예전의 깡통 전차하고 똑같다고 말하자 무반동총 반장은 사수의 철모 뒤통수를 때리면서 나무랐다.
“야! 일본 놈들이라고 바보만 있겠냐? 그동안 장갑을 보강했을지도 모르니까 포탑 접합부를 잘 노리고 쏴.”
“예, 알겠습니다.”
“준비됐으면 지정된 목표에 사격!”
무반동총 반장의 명령에 따라서 사수들이 하나둘 방아쇠를 당겼다.
“펑!”
“펑!”
“어? 저게 뭐야?”
“에이, 반장님. 저것들은 여전히 깡통이지 말입니다.”
“어? 진짜 그러네. 저 새끼들은 그렇게 쥐어 터졌으면서도 아무것도 보완하지 않은 거야?”
기세등등하게 등장했던 일본군 전차대는 광복군의 무반동총에 차례대로 터져 나갔고 이 한 번의 전투로 사이판에 주둔 중인 일본군이 가진 모든 전차는 사라졌다.
한편, 사이판에 주둔 중인 육군을 구원하고 미 해군 기동함대를 격멸하기 위해 달려온 일본 해군 연합함대는 필리핀해 해전에서 역관광 당하고, 사이판 주둔 일본군은 일본 대본영에 완전히 버려진 채 그대로 고립되어 버렸다.
그리고, 사이판섬 대부분을 점령한 미군은 다른 섬들에 대한 공세를 서두르기보다는 비행장 주변에 교두보를 만들고 방어하는 병력을 남긴 체 나머지 마리아나 제도 공략에 나섰다.
중부 태평양 방면 함대의 거의 대부분을 잃고 사이판에서 해군 육전대를 이끌던 해군 중장 나구모 주니치 제독이 권총 자살했고, 그 뒤를 이어 사이판 방어 책임자였던 육군의 사이토 장군도 자살함으로써 지휘체계를 상실한 잔존 일본군 4,000여 명은 태평양 전쟁 사상 최대 규모의 반자이 돌격을 감행했고 결국에는 모두 전멸을 당함으로써 사실상 사이판섬에서의 일본군 저항은 끝이 났다.
사이판 전투에 이은 괌 전투의 패배로 일본이 생각한‘절대 국방권’의 붕괴는 명백해졌고, 미군의 필리핀 진공 및 일본 본토 공습 준비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괌은 마리아나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이었고, 이후 니미츠 제독과 주요 참모들을 포함한 미 해군의 태평양 전쟁 지휘부는 하와이에서 괌으로 이전했다.
괌은 태평양 전쟁 대일 전의 중요기지로서 일본과 필리핀으로 향하는 모든 미군 전력의 집결지가 되었으며 대규모 기지와 항구, 비행장이 들어섰다.
* * *
1943년 12월 5일 제주도 모슬포항 앞바다.
타이완과 오키나와 중간 해역을 통과한 미국 해군 태평양 함대 제58 기동부대 소속의 수십 척의 전함과 수송함이 새벽녘의 어스름한 어둠을 뚫고 제주도 모슬포 앞바다에 나타났다.
“조지 대장님은 나중에 제주도가 안정되면 오지. 왜 위험한 작전에 이렇게 같이 동행을 합니까?”
“이제 전쟁의 끝이 점점 다가오니까 나도 모르게 조바심이 생겨서 그렇습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제주도 상륙작전이 어떻게 진행될지도 모르는데….”
“작전은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내부적으로는 우리가 상륙만 하면 모든 작전이 완료될 겁니다.”
광복군 해병대장인 김원봉 중령은 내 안전을 걱정하고 있지만 사실 제주도 점령 작전은 이미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현재, 제주도에는 일본군 방어 병력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벌써부터 제주도에 잠입해 있었던 광복군 정보대 백정기에 의해서 중요한 상륙지점은 깨끗하게 개척이 된 상태였다.
“김원봉 대장, 이제 해안으로 해병 수색대를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서히 가까워지는 제주도를 보면서 김원봉 중령에게 해병대 수색대와 광복군 정보대와 접선을 시도하라고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슬슬 시작해 볼까요?”
“그럽시다. 섬에서는 이미 모든 준비를 끝내놨을 테니까 다들 다치지 않고 제주도를 점령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