괌과 사이판 그리고… (1)
어전회의의 결정에 따라서 일본 육군은 마리아나 제도 방어를 위한 31군을 편성하고, 만주의 관동군이나 지나 방면군에서 급하게 병력을 차출해서 배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워낙 이곳저곳에서 병력을 차출하다 보니 지휘체계가 통일되지 않았고 서로의 의견이 맞지 않아서 방어 준비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니까 니미츠 제독은 현재 우리 군의 준비가 상륙작전을 벌이기에는 많이 부족하지만, 그것은 일본군도 마찬가지니까 광복군을 이용해서 괌과 마리아나 제도를 빠르게 점령하자는 말이요?”
해군 참모총장인 어니스트 킹 제독은 항상 신중하게 결정을 하는 니미츠 제독이 먼저 나서서 괌과 마리아나 제도를 점령하자는 말에 조금은 놀랐다.
“예, 제독님. 우리가 점령전을 준비하는 동안 일본군도 그에 맞춰서 방어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됩니다. 만약, 그렇게 일본군이 완벽한 방어 준비를 한 상태에 우리가 상륙작전을 진행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니미츠 제독, 그렇기는 하지만 너무 무리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너무 앞서 나가면 뉴기니의 맥아더가 처음에 계획한 대로 작전 진행 속도를 맞추라고 난리를 칠 텐데?”
현재, 태평양 사령부는 일본군에 대한 반격 준비가 완벽하게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광복군이 먼저 앞서서 치고 나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질질 끌려가는 상황이었다.
“제독님, 저는 광복군의 의견대로 따라가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니미츠 제독, 원래 우리가 계획하고 있던 것보다 너무 빨리 진행되는 것 같은데 정말 괜찮은 거요?”
니미츠 제독은 어니스트 킹 제독이 작전의 성공 여부에 반신반의하고 걱정을 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태평양전도 한 곳을 가리키면서 앞으로 진행될 작전의 끝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제독님, 광복군의 최종 목표는 바로 이곳입니다.”
니미츠 제독이 손으로 가리킨 곳은 바로 한반도 남쪽 끝인 제주도였다.
“아니, 니미츠 제독. 그게 말이 됩니까? 계획보다 서두르는 것도 문제가 되는데 오키나와를 그냥 지나치고 어떻게 그곳을 점령하겠다는 말이요?”
“제독님, 그것까지는 우리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광복군 지휘부는 제주도를 점령할 모든 준비는 이미 끝마쳤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광복군은 제주도를 수복하고 바로 본토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하는 유격전을 펼칠 계획이라고 합니다.”
니미츠 제독의 단언에도 불구하고 어니스트 킹 제독은 광복군이 추진하겠다는 작전이 미덥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래요?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는 너무 허술한 것 같은데…. 만약, 그러다가 본토에 상륙한 광복군이 모두 전멸이라도 한다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광복군은 죽더라도 조선의 본토에서 죽고 싶다고 합니다. 저도 혹시 우리 군의 작전에 지장을 줄지 몰라서 말리고는 있지만, 현재 우리 군 사령부에 광복군에 대한 지휘권이 없어서 광복군을 통제할 방법이 없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같이 피 흘린 동료들인데 죽으러 간다는 건 말려야 하지 않겠어요?”
“제가 아무리 말려도 말을 듣지 않고 있습니다.”
어니스트 킹 제독은 니미츠 제독이 너무 착해서 광복군들에게 끌려다닌다고 생각하고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그냥 광복군에 대한 모든 보급을 끊어버리시오!”
“제독님, 제 생각에는 그냥 광복군을 활용해서 괌과 마리아나 제도까지는 탈환하고 그다음에 보급품을 가지고 다시 작전을 조율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니미츠 제독은 일단 우리가 일본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위치까지는 확보하자는 말이요?”
“예, 제독님. 신형 폭격기의 개발이 끝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괌과 마리아나 제도만 확보한다면 일본 전역을 아군의 공격 범위 안에 둘 수 있습니다.”
“음….”
니미츠 제독의 건의를 들은 어니스트 킹 제독은 이렇게 어마어마한 규모의 상륙작전을 혼자서만은 결정할 수 없었다.
이 정도 대규모의 작전은 수만 명의 상륙군과 상륙 지원함대와 수송 함대의 동원은 필수적이었고 이 정도 사안은 반드시 합동참모회의를 통해서만 작전의 진행을 결정할 수 있었다.
“합동참모회의를 통해서 작전의 승인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지.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알겠습니다. 제독님.”
니미츠 제독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품고 있었고, 그러한 인간관이 부드러운 인상과 관대하고 겸손한 태도로 나타났기 때문에 그를 만나본 사람은 친근하고 편안하며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겉모습과 달리 강인한 내면을 가지고 있어서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이익과 위험부담을 계산하여 행동할 수 있었다.
평소 행동은 신중하고 조심스러웠으나 필요하면 놀라울 정도로 대담하고 공격적으로 돌변했다.
그리고, 니미츠 제독은 근본적으로 미국인이다.
미국인인 그는 일본과의 전쟁에서 자신의 조국, 미국의 희생을 대신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사람이었다.
* * *
워싱턴 육군부 건물을 찾은 어니스트 킹 제독은 전략적 동맹 관계인 육군 항공대의 사령관인 헨리 아놀드 장군과 함께 육군 참모총장인 조지 마셜 장군을 찾아갔다.
“마셜 장군, 몇 가지 미리 협의를 해야 할 사항이 생겨서 찾아왔습니다.”
“그래요?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그런데, 두 분은 어떤 일을 협의하자는 겁니까?”
육군에서 독립하고 싶어 하는 헨리 아놀드와 함께 어니스트 킹 제독이 찾아오자 마셜 장군은 뭔가 불길한 제안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먼저 물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게 돼서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우리 쪽 작전을 좀 서두르고 싶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해군 쪽의 작전을 서두르다니요?”
“우리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일본이 ‘절대 국방권’이라는 방어 계획을 수립했답니다. 그래서 작전 진행을 좀 서두르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육군 쪽에게서도 보조를 좀 맞춰줄 수 없나 하고 협의를 하러 온 겁니다.”
미국 육군 참모총장인 조지 마셜도 기본적으로는 육군의 전공이 더 빛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하지만, 현재 미국이 유럽이든 아시아든 어느 한쪽을 빠르게 정리할 수만 있다면 전쟁을 더욱더 손쉽게 끌어갈 수 있다는 것에는 공감하고 있었다.
“혹시, 해군과 항공대의 요구가 우리 육군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거절하겠습니다.”
“마셜 장군이 오해를 한 것 같군요. 그런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새롭게 진행할 작전에 맞춰서 육군도 작전 진행 속도를 빠르게 진행해 줬으면 좋겠다 싶어서 온 겁니다.”
“그래요? 그럼, 일단 어떤 작전인지 들어는 보겠습니다.”
조지 마셜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어니스트 킹과 헨리 아놀드가 설명하는 작전의 내용을 들었다.
“그러니까 두 분은 일본군이 ‘절대 국방권’을 완성하기 전에 일본군의 허를 찌르는 기습을 해서 마리아나 제도를 점령하자는 말씀이지요?”
“예, 맞습니다. 마리아나 제도를 점령할 수만 있다면 이번에 개발된 신형 폭격기로 일본 본토를 바로 공격할 수 있고 우리 잠수함들은 일본으로 향하는 모든 수송선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음…. 가정이기는 하지만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작전이군요?”
“가정이 아닙니다. 마셜 장군도 알다시피 이번에 우리는 길버트 제도와 마셜 제도를 광복군과 함께 쉽게 점령했습니다. 이번에 마리아나 제도 역시 광복군을 활용해서 빠르게 점령할 생각입니다.”
“그거야 나도 잘 알죠.”
내심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과 협조하면서 일본에 빼앗겼던 섬들을 빠르게 다시 수복하는 해군이 부러웠던 조지 마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광복군을 이용한 점령전은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습니다. 아! 생각해 보니 그것도 아니군요. 이 작전도 서두르지 않으면 나중에는 정말로 힘든 상륙작전을 진행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예?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내가 좀 전에 일본이 ‘절대 국방권’을 선언하고 방어 준비에 들어갔다고 했죠?”
“예, 그랬었죠.”
일본군의 상륙 저지 전술이 이번에 바뀌면서 미군의 피해를 강요하는 전술이 채택됐다는 것을 알아낸 어니스트 킹 제독은 인상을 구기면서 일본군의 바뀐 전술을 마셜 장군에게 설명했다.
“마지막 한 명 남더라도 끝까지 싸운다고요? 그럼, 일본군 전원을 사살하기 전까지는 점령전이 마무리가 안 된다는 소립니까?”
“예, 이번에 획득한 정보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남서 태평양 사령부에도 일본군의 바뀐 전술에 대한 지침을 내려주십시오.”
“아니, 어떻게 그런 미친 전술이 있습니까? 마지막 한 명까지 죽음을 각오하다니요?”
“그게 민간인도 포함이랍니다.”
“뭐라고요? 그게 사실이라면 일본이 드디어 미친 것이 아닙니까?”
어니스트 킹 제독은 일본군의 황당한 방어 전술에 어이없어하는 조지 마셜을 보면서 계속해서 설득했다.
“그래서, 이렇게 작전의 속도를 높이는 겁니다. 원래의 계획에 맞췄다가 나중에 진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라서 현재 확실히 점령이 가능한 곳은 최대한 빠르게 점령할 생각입니다.”
“두 분의 설명을 들으니까 어느 정도 이해는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남서 태평양 사령부의 맥아더 장군이 어떻게 나올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태평양 전선의 지휘권을 하나로 통합시켜달라고 계속해서 요구하는 중이라서요.”
“맥아더 장군은 아직도 지휘권을 달라고 그럽니까?”
“예, 유럽 전선의 연합군 통합지휘관이 맥아더 장군의 참모 출신인 아이젠하워 장군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미국 육군의 지휘관들 대부분은 맥아더의 이야기만 나오면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맥아더가 너무 빠른 승진을 거듭하다 보니 다른 지휘관들 대부분이 독선적인 성격의 맥아더의 밑에서 참모나 부관 출신으로 함께 일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맥아더 장군은 대통령의 명령으로 다독이고 이번 작전까지만 협조를 부탁합니다.”
조지 마셜은 어니스트 킹 제독과 헨리 아놀드 장군의 얼굴을 한참 보더니 입을 열었다.
“두 분은 작전 진행 속도를 높이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라는 말이죠?”
“괌과 마리아나 제도는 앞으로도 반드시 점령해야만 하는 곳이고 우리가 점령하는 순간부터 전쟁의 판도를 완전히 뒤집을 수 있는 곳입니다.”
“음…. 좋습니다. 그럼, 합참의장님과 다시 한번 의논을 해봅시다.”
뛰어난 분석력의 소유자인 조지 마셜 육군 참모총장은 육군의 이익보다는 미국의 이익을 선택하고 합동참모회의의 소집을 요청했다.
그리고,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의견은 배제된 체 전격적으로 괌과 마리아나 제도 점령 작전이 시작됐고 나중에 자신만 합동참모회의에서 제외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더글러스 맥아더가 온갖 몽니를 부리는 바람에 태평양 전선에서 미군의 주공격 방향이 필리핀 방면으로 바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