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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은 물이고 우리는 물고기다 (185/225)

인민은 물이고 우리는 물고기다

미군은 일명 개구리 뛰기 또는 전략적 요충지 우회라고 불리는 일본군 거점 우회전략을 구사하고 있었다.

솔로몬 전역의 콜룸방가라를 우회한 것을 시작으로 일본이 신경을 써서 구축한 거점들을 모두 피하고 지나치는 대신 그 주변의 방어가 취약한 곳을 점령한 뒤 빠른 속도로 비행장, 군항을 건설해 거점으로 삼고 항공기와 군함을 이용해 일본군의 보급선을 끊어서 지나쳐버린 일본군 거점을 말려 죽이는 전법을 택했다.

라바울이나 트럭처럼 방어가 강력한 곳은 지상군을 투입하는 대신에 주변을 고립시킨 상태에서 항공대의 폭격과 잠수함의 공격만으로 무력화를 시도했다.

하와이 진주만 미국 태평양 사령부 광복군 주둔지.

길버트 제도와 마셜 제도를 점령하고 일본군 포로와 조선인 강제 징용자들을 분류해서 조선인 강제 징용자 중에 입대할 사람을 모아서 광복군의 병력을 보충하기 위한 훈련소를 만든 김원봉 중령이 일을 마치고 하와이로 돌아왔다.

“요즘처럼 승리만 한다면 우리나라의 독립도 이제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은데 다들 표정들이 왜 그렇습니까?”

광복군 지휘관 회의에 참석한 김원봉은 다른 지휘관들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자 이유를 물었다.

“김 중령, 독립작전이 변경됐습니다.”

“예? 작전이 변경되어요? 어떻게 변경이 됐길래 다들 그러십니까?”

“일단, 자리에 앉아봐요. 내가 설명을 해줄 테니까.”

김경천 대령은 김원봉 중령에게 그동안 광복군 지휘관들 사이에 논의됐던 작전 변경 내용을 알려줬다.

“김 대령님, 차라리 잘 된 것 같은데 왜 다들 그런 표정입니까? 우리 민족이 스스로의 힘으로 피는 좀 흘리겠지만 독립을 쟁취할 수 있다면 좋은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상관없지만,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갈지 걱정이 돼서 그런 겁니다.”

김경천 대령의 대답에 김원봉 중령은 조금은 한심하다는 눈빛을 보였다.

“내 생각은 여러분들과는 조금은 다릅니다. 우리의 투쟁은 조선 인민들의 지지와 지원 속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지금까지는 그러지를 못했지만, 그래도 그나마 지금까지는 조지 대장님과 미국의 지원으로 이렇게 일본과 싸울 수라도 있었죠?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조선 인민들의 지지와 지원이 없이 일본과 싸울 수가 있을까요?”

김원봉 중령은 숨을 한번 몰아쉬고 다시 광복군의 다른 지휘관들을 향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여러분! 조지 대장님도 결국은 미국인입니다. 만약, 미국 정부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이상한 짓이라도 한다면 우리는 조지 대장님으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일본과 싸워야 합니다. 물론, 그런 일이 생기면 절대로 안 되겠지만 혹시라도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여러분은 어떡할 생각들입니까?”

“조지 대장도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작전을 변경하자고 하더군요.”

“나는 조지 대장의 의견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작전을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김 중령은 우리 조선 인민들이 얼마나 죽더라도 국내에서 작전을 진행해야 한다는 거요?”

“그러면 안 됩니까? 그들도 조선 인민입니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누구는 피를 흘려 싸우고 누구는 눈치만 보고 누구는 일제의 개로 살고…. 이런 상황에서 독립이 된다면 우리 조선인들끼리 서로 잘났다고 싸울 겁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지금부터 일제와 일제의 개들은 처단하고, 눈치만 살살 보던 인민들도 독립전쟁에 참여시켜야 합니다.”

김원봉 중령의 주장에 광복군 지휘관들도 이젠 다들 마음을 정했는지 표정이 변했다.

“전부터 나는 인민은 물이고 우리는 물고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인민이라는 물을 떠나서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물의 품으로 돌아가서 같이 피와 땀을 흘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짝짝짝! 나도 전적으로 김원봉 중령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나는 김원봉의 말이 끝나자 손뼉을 치면서 김원봉 중령의 의견에 강하게 동조했다.

내가 이렇게 나오자 나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지휘관들도 박수를 치면서 김원봉 중령의 의견에 동의를 표시했다.

“나도 찬성합니다.”

“저도 김원봉 중령님의 의견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광복군 육군의 지휘관들을 보면서 이쯤에서 그들도 선비 같은 생각을 버리기를 바랬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살아가는 그들이 자신들만의 희생만을 전제로 하는 것이 언제나 내 마음에는 들지 않았었다.

“이제 우리 물고기들은 우리를 품어줄 인민들의 품으로 돌아갑시다.”

“좋습니다. 그럼, 앞으로의 독립작전을 변경하는 것으로 합시다.”

김경천과 지청천 등의 육군 지휘관들도 확실히 마음을 바꿨는지 같이 박수를 쳤다.

“아! 그런데, 이번에 내가 조선인 포로들의 분류 작업하다가 느낀 것이 있는데 말씀을 드려도 될까요?”

“김 중령, 뭔데 그럽니까?”

“아….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말을 하겠습니다.”

“나중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면 당연히 말을 해야지요.”

김원봉 중령은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흠흠, 아무래도 우리가 조선인 강제 징용자들의 협력으로 길버트 제도와 마셜 제도를 쉽게 점령하면서 미군은 일본군의 전투력을 너무 경시하는 것 같습니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럴 수도 있는 것이 아니고 그랬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미군은 나중에 분명히 큰코다칠 겁니다.”

김원봉 중령이 좋은 점을 지적했다.

나도 이쯤에서 우리 광복군과 조선인들의 협력이 미군의 작전에 얼마나 크게 영향을 주는지 알려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미군이 일본군의 괴이한 발악에 놀라서 오키나와와 타이완의 직접적인 점령보다는 광복군의 제주도 상륙에 좀 더 무게를 두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다가 미군이 크게 피해를 보고 전진을 멈추면 어떡하려고요?”

“아니죠. 그럴 경우에는 미군 대신 우리가 먼저 들어가겠다고 하면 되잖습니까?”

“아니 우리가 오키나와에 왜 들어갑니까?”

“우리는 오키나와에 상륙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따로 있지 않습니까?”

“그럼, 오키나와는 건너뛰고 바로 제주도로 갑니까?”

“예, 제주도 상륙과 점령, 그리고 국내 무장 투쟁입니다.”

광복군 지휘관들은 미군의 작전에 맞춰서 대책을 수립하고 어서 빨리 제주도에 상륙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 * *

니미츠 제독은 내가 경고한 광복군의 마리아나 제도 상륙작전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광복군의 요청에 따라서 마리아나 제도 점령전을 추진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남서 태평양 사령부 맥아더 장군의 요청으로 전력이 분산된 상황에서 태평양 사령부만 너무 앞서 나가는 것은 아닌지 고민 중이었다.

니미츠 제독은 태평양 함대 사령부의 참모들을 소집해놓고 회의를 하고 결정이 내려진다면 해군 참모총장인 어니스트 킹 해군 참모총장과 협의해서 맥아더를 비롯한 반대파들을 입을 막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독님, 무슨 고민이 있으십니까?”

“응, 광복군이 요청한 작전을 함께 진행해야 할지 아니면 맥아더 장군의 남서 태평양 사령부와 작전 진행 속도를 맞춰 나가야 할지 고민 중이야. 다들 어떻게 생각하나?”

“제독님, 제가 듣기로는 광복군은 우리가 함께하지 않더라도 작전을 진행할 것 같던데…. 그대로 놔둬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나도 그것 때문에 여러분을 소집한 거야. 사실, 지금 우리 사령부의 진격 속도가 원래 계획보다는 좀 빠르기는 하거든.”

대답을 한 니미츠 제독은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 태평양 지도를 보면서 이번 작전 목표인 북 마리아나 제도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기만 점령한다면 일본과의 전쟁은 승리는 거의 확정적인데….”

“제독님, 저는 일본군과 일본인들에 대한 공작이 이미 진행 중인 상황에서 시간을 너무 질질 끌게 된다면 공작효과가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현재 광복군의 건의를 받아들인 니미츠 제독의 결정으로 괌과 사이판 그리고 그 외 북 마리아나 제도의 여러 섬의 일본군과 일본인들에 대한 공작용 삐라가 뿌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트럭 환초 지역에서 일본해군을 괴롭히고 있던 태평양 함대 소속의 모든 잠수함을 빼내서 괌과 사이판 그리고 그 외의 북 마리아나 제도의 차단에 주력하고 있었다.

일본군이 점령한 섬의 보급과 병력 충원을 막고 있었다.

“아무래도 시간을 질질 끌다 보면 효과가 떨어지겠지?”

“예, 분명히 그럴 겁니다.”

“음, 맥아더 장군이 문제군. 벌써부터 우리 사령부만 너무 앞서나간다고 정해진 작전대로 진행하라고 난리던데….”

“맥아더 장군님은 자신보다 우리가 여론에 주목받는 것이 싫어서 그럴 겁니다. 만약, 맥아더 장군의 작전 진행 속도에 맞추기 위해서 우리가 움직이지 않더라도 광복군이 움직이지 않겠습니까?”

미국 정부가 아직까지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외교상 승인을 하지 못한 상황이라서 미군은 광복군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이게 왜 문제가 되냐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특수관계국이기 때문에 미국 해군 태평양 함대 사령부는 광복군을 지원하면서도 협조는 할 수 있지만, 지휘는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광복군은 일차적으로 미국 해군 태평양 함대 사령부와 작전 협조는 하지만 실제적인 작전은 독자적으로 실행하고 있었다.

“지금도 일본군은 괌이나 사이판에 병력을 보충하고 있지?”

“예, 방어 병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는지 만주와 중국에서 병력을 빼서 괌과 사이판으로 계속 보내고 있습니다.”

“음…. 작전을 어차피 시도할 거라면 아무래도 서둘러야 하겠지?”

“예, 제독님. 일본군의 방어 준비가 모두 끝나고 나면 섬들을 점령해야 할 우리 병력의 피해가 커질 겁니다.”

니미츠 제독은 참모들을 소집해서 의견을 듣기 전부터 이미 마음속으로는 사이판과 괌을 공격하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다만, 이렇게 참모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이유는 자신이 혹시나 놓치는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문제는 작전 진행을 위해서는 맥아더 장군을 비롯한 반대파들을 설득해야만 한다는 것이군.”

“제독님, 남서 태평양 사령부와 보조를 맞추다가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 현재 남서 태평양 사령부는 뉴기니섬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제독님, 어차피 남서 태평양 사령부와 우리는 경쟁 관계가 아닙니까? 굳이 저쪽과 보조를 맞출 필요가 있을까요?”

해군이 주축인 태평양 함대 사령부의 참모들은 니미츠 제독에게 육군의 대표인 맥아더를 신경 쓰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 문제가 정치와 연관이 되면 시끄러워져서 말이다…. 아무래도 참모총장님과 이야기를 좀 해봐야 할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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