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국방권?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3)
일본 연합함대의 기함인 전함 야마토와 무사시를 제거하기 위해서 출동한 미국 해군 제16 기동부대 스플루언스 제독은 잠수함 사령부의 연락을 받고 일본 해군 전함 야마토와 무사시가 어뢰에 피격은 됐지만, 탑재한 모든 어뢰를 소모한 잠수함들이 기지로 복귀하는 바람에 야마토와 무사시의 생존 여부를 정확히 확인할 수가 없었다.
“제독님, 정찰기의 보고에 의하면 야마토와 무사시는 아직 침몰하지 않은 상태라고 합니다.”
“그렇게 많은 어뢰에 두들겨 맞았는데도 침몰하지 않았다고? JAP 들이 튼튼하게 만들기는 했군.”
“이젠 마무리를 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그래야지. 다행스럽게도 미드웨이에서 죽어간 뇌격기 조종사들의 넋을 위로할 수 있게 됐어. 이번 전투의 모든 공은 TBF 어벤저 뇌격기 조종사들에게 돌리자고.”
스플루언스 제독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어쭙잖은 성능의 뇌격기와 미흡했던 전술로 죽어야만 했던 조종사들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조국을 위해서 충성을 다하고 사라져간 조종사들의 명예를 회복해 주고 싶었다.
“자! 복수의 시간이다. 모든 뇌격기를 출격시켜!”
“예, 제독님.”
제16 기동부대 뇌격기 공격대의 시야에 검은색 연기 내뿜으면서 느린 속도로 항해를 이어가고 있는 전함 야마토와 무사시를 필두로 한 일본 해군 호위함대가 들어왔다.
“이야! 아직도 안 죽고 버티고 있었네.”
미드웨이 해전에서 뇌격기 편대를 지휘했던 제임스 중령은 일본 해군 연합함대 제1 항공함대에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한 채 죽어갔던 동료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드디어 미드웨이 해전에서 죽어갔던 동료들의 의미 없던 죽음을 복수할 시간이 찾아왔다.
“제군들! 우리 눈앞에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유해를 실은 일본 해군의 자존심이라는 전함 야마토와 무사시가 있다. 제군들! 저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살려서 보내줄까? 아니면, 죽어간 우리 동료들의 복수를 해야 할까?”
제임스 중령이 지휘하는 뇌격기 전대는 미드웨이 해전에서 죽은 동료와 선배들을 잊지 않고 있었다.
뇌격기 전대의 조종사들은 새롭게 개량된 어뢰와 레이다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폭격 전술로 이번만큼은 확실히 복수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했다.
“복수해야 합니다.”
“진주만과 미드웨이를 반드시 갚아줘야 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쓰레기를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십시오.”
눈앞에 곧 죽을 것 같은 복수의 대상을 놔두고 외면할 대원들은 한 명도 없었다.
“좋다. 대형은 그동안 연습해왔던 대형으로 돌입한다. 제1파가 먼저 공격을 시작한다. 모두 준비됐나?”
“예,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좋다. 제1파부터 차례대로 공격선에 돌입한다. 고고고!”
TBF 어벤저 뇌격기 전대는 편대별로 차례대로 일본 해군 호위함대를 공격하기 위해서 공격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밤새 미국 해군 잠수함들의 공격에 시달렸던 야마토의 함장 모리시타 대좌는 동쪽 하늘을 가득 뒤덮은 TBF 어벤저 뇌격기들의 출현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필리핀 육군 항공대는 왜 아직도 오지 않는 거냐?”
“모르겠습니다. 구원 요청을 그 정도 했으면 분명히 올 텐데…. 뭔가 문제가 생긴 모양입니다.”
“다시 한번 구원을 요청해라. 이대로 야마토와 무사시를 잃을 수는 없다. 더구나 우리 함대는 야마모토 이소로쿠 사령장관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어서 구원을 요청해봐!”
“예, 함장님.”
그러나, 미국 해군 TBF 어벤저 뇌격기들은 야마토와 무사시를 더는 살려줄 생각이 없는지 대형을 갖추고 하강을 하기 시작했다.
“어뢰! 어뢰! 3시 방향 거리 2000 어뢰입니다.”
“어뢰! 어뢰! 3시 방향 거리 2100!”
야마모토 이소로쿠 전 연합함대 사령장관의 유해를 운반하는 호위함대 오른쪽에서 일제히 어뢰를 투하하고 빠져나가는 TBF 어벤저 뇌격기들은 자비가 없었다.
탑재한 어뢰를 순차적으로 떨구고 지나가면서 야마토와 무사시의 명복을 빌었다.
“함장님! 더는 항해를 지속할 수가 없습니다. 엔진과 조타 기능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야마모토 이소로쿠 사령장관의 마지막을 모실 수 있어서 기뻤었는데…. 모두 이함을 해라! 살아남아야 할 사람을 살아남아야 하겠지.”
“함장님….”
“나는 야마토와 끝까지 함께 하겠다. 어서 이함을 해라!”
야마토의 함장 모리시타 대좌와 무사시의 함장 이노구치 대좌는 자신들의 전함과 함께 운명을 맞이했고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유해는 탈출한 장교들의 손에 맡겼다.
일본 해군 호위함대 승조원들의 탈출이 어느 정도 진행된 상황에서 지옥의 귀곡성 같은 기괴한 소리를 내면서 야마토와 무사시가 옆으로 조금씩 기울어지더니 서서히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면서 바닷속으로 영원히 잠들었다.
* * *
도쿄 카스미가세키 일본 해군 군령부.
“도대체 요즘 들어서 왜 이런 일만 생기는 거냐? 얼마나 작전을 허술하게 진행했으면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생기는 거냐고? 입들이 있으면 말을 좀 해보라고?”
야마모토 이소로쿠 전 연합함대 사령장관의 유해를 운반하던 전함 야마토와 무사시의 침몰 소식을 전해 들은 나가노 오사미 군령부 총장은 군령부 참모들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총장님, 저희의 분석으로는 아무래도 아군의 암호가 노출된 것 같습니다.”
겐다 미노루 작전 1과장의 말에 나가노 총장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분명히 얼마 전에 점검할 때는 우리 군의 암호체계는 이상이 없다고 하지를 않았었느냐? 그런데, 인제 와서 군의 암호가 노출된 것 같다고?”
“총장님, 해군에서 암호가 노출된 것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너무나 공교로워서 그렇습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사령 장관님이 돌아가신 것도 그렇고 야마토와 무사시의 격침 소식도 그렇고 사실 이 모든 것들은 미국에 우리 해군의 정보가 노출되지 않고는 이뤄질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군의 암호체계를 전체적으로 점검했었지 않나?”
“아무래도 군령부의 점검에도 찾지 못한 곳에서 정보가 계속해서 새어 나가고 있는 모양입니다.”
나가노 총장과 겐다 대좌의 대화는 바보들의 대화 같았다.
해군에서 암호 노출은 되지 않는 것 같지만 다른 어딘가에서 암호가 노출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일단, 다시 한번 점검해보고 암호체계는 앞으로는 무조건 3개월에 한 번씩 바꿔라.”
“예, 총장님.”
나가노 오사미 군령부 총장은 한꺼번에 닥쳐온 난관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장관이 추진했던 ‘이’호 작전 때부터 시종일관 미국 해군에 얻어터지면서 그동안 제국해군이 점령했던 영토를 다시 하나씩 토해내고 있었다.
“천황 폐하께는 또 뭐라고 보고를 해야 할지….”
일본 해군부와 해군 군령부는 계속되는 전투에서 미군에 밀리다 보니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총장님, 이제 더는 한 발짝도 물러서면 안 됩니다. 절대 국방권이 깨지는 순간 도쿄는 미군의 신형 폭격기의 폭격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군령부 작전부장인 미와 요시타케 소장은 더 이상의 후퇴는 제국의 멸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지 않아도 둘리틀 폭격대의 도쿄 폭격으로 엄청난 피해를 본 일본군 수뇌부들은 도쿄가 다시 폭격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 바로 군령부 작전과 참모들은 모두 집합을 시켜라. 우리 제국의 절대 국방권을 사수할 대책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예, 총장님.”
일본 해군이 아무리 꽉 막힌 집단이라고 해도 그들도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빠르게 조치를 취해 나갔다.
그리고, 절대 국방권 사수를 위한 방어 작전 입안에 들어갔다.
심기가 불편한지 아니면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인지 상석에 앉은 히로히토 일왕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폐하, 죄송합니다.”
시마다 시게타로 해군 대신과 나가노 오사미 해군 군령부 총장은 히로히토 일왕에게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조아리면서 사죄를 했다.
“지금 죄송하다고 해서 일이 해결됩니까? 도대체 요즘 들어서 해군이 하는 일을 보고 있다 보면 이게 대일본제국의 해군인지 아니면 해군의 탈을 뒤집어쓴 놈팡이들인지 모르겠소.”
“뭐라고요? 총리대신! 말이면 다 말입니까? 우리 해군이 흠 하나 잡힐 일이 생겼다고 지금 해군 전체를 매도하는 겁니까?”
그러나, 총리대신이자 육군 대신인 도조 히데키는 히로히토 일왕보다 먼저 나서면서 노발대발 난리를 치고 있었다.
“내가 이런 말은 하지 않게 생겼소? 도대체 요즘 들어서 왜 이러는 거요? 제국 육군은 폐하께 승전 소식만을 전하고 있는데 해군은 패전 소식만을 전하고 있지 않소?”
“킁….”
시마다 시게타로 해군 대신과 나가노 오사미 해군 군령부 총장이 대답을 못 하고 난처해하자 히로히토 일왕이 말리고 나섰다.
“그만하거라. 너희는 왜 만나기만 하면 다투기만 하는 거냐? 육군도 해군도 모두 일본제국의 기둥인 것을 모르는 것인가?”
육군은 계속해서 승승장구하고 있고 해군은 연일 추태를 보이면서 히로히토 일왕의 마음은 점점 불안해져만 졌다.
이러다가는 정말로 정신 나간 육군 장군들에게 언제 죽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투지만 말고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느냐?”
“절대 국방권을 사수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절대 국방권을 어떻게 사수하겠다는 것이냐?”
미드웨이 해전의 패배는 육군이 알지 못하게 정보를 숨길 수가 있었지만, 이번 야마토와 무사시의 침몰은 필리핀 육군 항공대가 침몰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감출 수가 없었다.
“문제는 해군이 과연 절대 국방권을 사수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도조 히데키는 일본의 총리대신이면서 일본 전체를 생각하기보다는 여전히 자신이 육군의 지휘관 중의 한 명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총리대신, 그대는 일본제국의 총리대신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냐고 지금 내가 묻지 않았느냐?”
“일본제국인 모두의 정신을 하나로 모으면 이 상황을 돌파할 수 있습니다.”
도조 히데키의 기도차지 않는 대답에 히로히토 일왕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대본영 참모본부 작전 과장인 핫토리 다쿠시로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 황국의 병사들이 정신을 집중해서 반드시 적을 한 명씩만 죽이면 이 전쟁은 승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그렇게 싸우지 않는 병사들이 있다는 말인가?”
“폐하, 그게 아닙니다. 조종사 한 명이 정신을 집중해서 목숨을 걸고 적들의 항공모함과 전함을 공격한다면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도조 히데키는 히로히토 일왕과 대본영 회의에 참여한 사람들 앞에서 ‘특공’ 작전에 대해서 장황한 설명을 이어갔다.
“조종사들만 ‘특공’을 할 것이 아니라 절대 국방권을 사수해야 할 병사들도 옥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병사들만의 옥쇄가 아니라 일억 국민 전체가 옥쇄를 각오하면 이 전쟁은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한 명이 자살 특공을 주장하자 여기저기서 ‘특공’ 뿐만 아니라 ‘옥쇄’도 하자고 나왔다.
“‘특공’과 ‘옥쇄’만으로 제국을 수호할 수 있다는 말이냐?”
“폐하! 일억 국민 총 옥쇄라면 제국은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도조 총리대신과 시마다 해군 대신의 주장에 히로히토 일왕은 어떡하든지 최종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서 핑곗거리를 찾느라 고심하는 척했다.
히로히토의 재가가 없다면 작전은 승인 나지 않는다.
“나는 육군이 해군을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 적들의 공격이 너무 한곳으로 집중되는 것 같은데 해군의 숨통을 틔워줄 방법은 없겠느냐?”
“중화민국과 영국에 대한 공세를 시작하겠습니다.”
히로히토는 육군이 병력을 돌려서 태평양의 해군을 돕기를 바랬지만 육군은 절대로 해군을 도울 생각이 없었다.
해군을 도울 바에는 차라리 다른 곳에 전선을 더 형성하는 것을 원했다.
“그럼, 그렇게라도 해군의 숨통을 틔워주거라.”
이런 히로히토 일왕의 결정으로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서 온몸을 바친 한 사나이가 다시 한번 등장할 시간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