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토 호텔과 무사시 료칸의 최후 (1)
광복군 지휘관들과의 회의는 내가 한 결정을 절대로 번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인하고, 야마토와 무사시에 대한 공격 작전이 곧 있을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끝이 났다.
“아버지, 너무 무리하시는 것은 아닌가요?”
제이슨이 보기에도 내가 너무 무리하게 일을 진행하는 것처럼 보였었나 보다.
“그렇게 보였니?”
“예, 아버지, 저분들은 뭔가를 바라고 계신 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더 챙겨주고 싶어서 그런 거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이슨, 전우와 동지는 어떤 공통점이 있냐?”
“음, 한 가지 목표를 위해서 서로 노력하면서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는 점이 같은 것 같습니다.”
“제이슨, 그런 전우와 동지를 더욱 끈끈하게 만들어주는 매개체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전우의 피와 동지의 피다. 나는 앞으로 모든 조선인을 전우이자 동지로 만들 생각이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생소한 내 모습에 제이슨도 약간은 놀란 눈빛이었다.
나는 원래 이렇게 독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상태로 전쟁이 이어지다 보면 결과는 내가 전생에서 봤던 일과 똑같은 일들이 다시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이런 특단의 조치를 한 것이다.
* * *
세계에서 가장 큰 전함이란 타이틀을 가진 전함 야마토는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해군의 기함이었다.
길이만 해도 260m가 넘고 만재 배수량은 7만 톤이 훌쩍 넘는 대형함선이었고 주포는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의 거대한 구경인 18.1인치에 달했다.
거기에 더해서 200문이 넘는 대공포와 강력한 장갑 등 막강한 방어력을 갖추고 있어서 바다 위의 요새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전함 야마토는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는 전함답게 속력이 워낙 느렸고 유류 소비가 엄청났기 때문에 태평양 전쟁에서는 실제 전투에서 거의 모두 배제됐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본 해군의 상징으로 오랫동안 아껴졌고 사랑을 받았다.
“니미츠 제독님, 찾으셨다고요?”
“예, 조지 씨, 여기 이쪽은 정보참모인 레이튼 대령입니다.”
니미츠 제독의 소개를 받고 뛰어난 암호 해독 능력으로 태평양 전쟁의 분수령이 되는 모든 작전마다 활약한 레이튼 대령과 인사를 나눴다.
“조지 씨, 5월 6일 또는 5월 7일, 전함 무사시가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유해를 싣고 요코스카항으로 향한다고 했죠?”
“예, 우리가 획득한 정보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우리 하이포국에서 입수한 정보에는 그때까지 전함 야마토가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그래요?”
전함 야마토와 무사시를 한꺼번에 처리할 생각이었는데 계획이 약간 틀어지게 생겼다.
“예, 무사시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에 전함 야마토는 그대로 트럭 섬에 머무를 확률이 크다는 정보 분석입니다.”
“그럼, 야마토를 밖으로 유인해 내야 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유인한다고 해도 쉽게 움직일만한 전함이 아닙니다. 방법은 스스로 다른 곳으로 도망을 치게 만들어야만 합니다.”
“제독님, 트럭 섬까지 전투기나 폭격기들의 항속거리는 나옵니까?”
“예, 다행히도 이번에 마셜 제도를 점령하게 되면서 일단 기본적인 항속거리는 나옵니다.”
니미츠 제독의 생각은 트럭 환초에 처박혀 있는 일본 해군 3함대의 주요 함정들과 전함들을 밖으로 끄집어낼 생각인 것 같았다.
“나를 찾은 이유가 태평양 함대의 항공 전력이 좀 부족한 모양이군요?”
“예, 뭐 딱히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더 많은 전투기와 폭격기를 한꺼번에 투입해서 작전을 깨끗하게 마무리 짓고 싶은 생각일 뿐입니다.”
“광복군 항공대장으로서 제독님의 요청에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확실한 작전 계획이 나오면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예, 그렇게 하십시오.”
이렇게 항공대는 사냥감을 몰이하고 야마토와 무사시를 잡는 역할은 아마도 태평양 함대의 잠수함 사령부가 맡게 될 것이다.
니미츠 제독은 야마토와 무사시가 워낙 탄탄한 대공 방어망을 가진 전함들이기 때문에 항공대 전투기의 소모가 걱정돼서 독일 U보트 사령부의 잠수함들이 자주 쓰는 울프 팩 전술을 써서 두 척의 전함을 제거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아! 참, 그런데 니미츠 제독님.”
“예, 조지 씨.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겁니까?”
“예, 이번에 길버트 제도와 마셜 제도는 일본군 숫자와 조선인 징용자들의 숫자가 비슷했기 때문에 조선인들의 내부 협력이 가능했습니다.”
일본군은 방어 시설 건설을 위해서 급하게 인력을 공급하다 보니 강제로 얼마든지 끌고 올 수 있는 조선인들을 이용했다.
그 덕분에 섬을 지키는 일본군 숫자와 비슷한 숫자의 조선인 징용자들이 섬에 있게 된 것이다.
“다음 전략 목표인 사이판과 괌, 그리고 티니안까지는 일본군 숫자와 조선인 징용자들의 숫자가 별로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키나와부터는 원래부터 일본의 영토였기 때문에 지금부터 선전 공작을 해놓지 않으면 나중에 엄청난 피해를 볼 겁니다.”
“선전 공작이요?”
니미츠 제독이 우리 광복군 덕분에 너무 쉽게 길버트 제도와 마셜 제도를 점령하면서 일본군을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제독님, 일본군 교범에는 후퇴라는 단어 자체가 없습니다. 일본군은 단 한 명이 남더라도 죽을 때까지 싸우라고 교육을 받습니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아십니까?”
내 말이 끝나고 일본 생활 경험이 상당히 긴 편인 레이튼 대령이 나섰다.
“제독님, 맞습니다. 일본인들은 항복을 최고의 수치로 여깁니다. 아무래도 우리 군의 피해를 줄이려면 공작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제독님, 일본 정부가 감추고 있는 사실을 사진과 도표를 사용해서 일본인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게 선전을 하면 도움이 될 겁니다.”
“일본군과 일본인을 상대로 한 프로파간다라….”
니미츠 제독은 나와 레이튼 대령의 건의를 받고 지도를 힐끔 쳐다보고는
“그럼, 조지 씨. 다음 전략 목표인 사이판이나 괌 등의 마리아나제도까지는 지금까지 써왔던 전술이 유효하다는 겁니까?”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조선인이 끌려와 있기 때문에 괌과 마리아나 제도를 서둘러서 공격한다면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상 한계는 앞으로 6개월입니다. 이번에 일본 해군은 방어시설 공사를 서두르고 공사에 참여한 조선인들을 모두 처리하라는 명령을 내린 상태입니다.”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예, 만약 태평양 사령부에서 점령 작전 진행을 서두르지 않는다면 광복군이 단독으로 섬을 점령하는 작전을 진행할 생각이었습니다.”
광복군이 단독으로 괌과 마리아나 제도를 점령한다면 태평양 함대로써는 너무나 기쁜 일이겠지만, 반대로 광복군이 작전에 실패할 경우에는 광복군이나 조선인 징용자라는 조력자가 없는 상태에서 일본군의 더 강력한 저항과 맞닥뜨려야만 한다.
“음, 이거 아무래도 작전을 서둘러야 하겠군요.”
“예, 그렇게 하시는 것이 태평양 함대에는 좋을 겁니다. 우리는 3개월 이내에 작전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3개월이라고요?”
“예, 일본군 방어시설의 건설이 끝나면 아무리 내부 조력이 있다고 해도 점령 작전은 힘듭니다. 그래서, 이 작전은 최대한 빨리 서둘러야만 합니다.”
“3개월이라….”
나는 니미츠 제독이 될 수만 있다면 서두르게 만들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더해서 쐐기를 박았다.
“제독님, 일본군과 일본인을 상대로 하는 프로파간다는 미군의 희생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길입니다. 그리고, 괌과 마리아나 제도는 반드시 3개월 이내에 공격해야만 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예, 조지 씨, 알겠습니다.”
* * *
전쟁의 한복판인 하와이의 진주만에 서 있지만 여기서는 지나가는 군인들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전투기들만 없다면 겉으로는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 부럽다. 우리나라도 독립하고 나면 어떡하든지 강한 나라가 돼야 할 텐데.’
“조지 대장님, 찾으셨다고 하던데.”
“응, 어서 와.”
내가 내뱉은 폭탄선언에 광복군 지휘관들은 생각이 많아졌는지 지난 이틀 동안 아무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손원일 중령도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고 생각하나?”
“아닙니다. 저도 아버지께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배웠습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본인의 노력으로 쟁취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힘으로 독립하지 못하면 결국은 다른 누군가의 노예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은 무장 투쟁론자들의 주장이었다.
외교로 해결하자는 사람들과 스스로 실력을 더 키워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세상 물정도 모른다고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나는 자주 무장 투쟁론자들의 생각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너희 잠수함 전단 대원들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본국에 무기를 수송할 수단이 너희들 밖에는 없다.”
“괜찮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힘들어도 해야 할 일이라면 언제든지 맡겨주십시오.”
“그래, 그럼 앞으로 본국으로 무기 수송을 좀 부탁하자.”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처음 독일에서 잠수함을 구입할 때 운용할 수 있는 인원만 있었다면 더 많이 구입할 걸 하고 후회가 많이 됐는데 오늘은 특히 더욱 그랬다.
“손 중령.”
“예, 조지 대장님.”
“혹시 징용으로 끌려온 사람 중에 해군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모아서 교육을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임무를 교대할 인원이 없어서 승조원을 휴식도 없이 돌리고 있던 잠수함 전단 손원일 중령은 얼굴이 밝아졌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안될 게 뭐가 있어? 지원을 받아서 인원을 보충해놔야 함대를 늘릴 것 아닌가?”
“함대도 늘립니까?”
“그야 당연한 것 아닌가? 우리가 독립하면 지금 광복군 해군으로 우리나라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전쟁이 끝이 나면 블라디보스토크의 소련 극동함대를 막기 위해서라도 미국은 대한민국의 해군을 지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때 해군에 사람이 없어서 해군양성에 실패할 수는 없었다.
냉전의 시작 지점인 그때가 미국으로부터 전쟁에 쓰고 남은 군함들을 공여받을 유일한 기회였다.
“최대한 여유 있게 병력을 키워놔라. 분명히 말하지만 동해, 서해, 남해 모두를 커버할 정도는 돼야만 할 거다.”
“예, 고맙습니다.”
“아니, 내가 미안하고 고맙다. 잘 부탁한다.”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
“모두 집합했나?”
“예, 대장님, 그런데 대장님께서도 작전에 참여하실 생각이십니까?”
박하성 소령은 내가 직접 작전에 참여하고 출격하는 것이 걱정되는지 물었다.
“그럼 대한민국 최초의 전투기 조종사가 일본 놈들과의 싸움에서 나이 좀 먹었다고 뒤로 물러나 있어야 할까?”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만약 대장님께 이상이라도 생기면….”
“걱정하지 마라. 나 하나 죽는다고 우리나라의 독립이 뒤로 도망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진짜로 얼마 남지 않았다.”
활주로 옆에서 출격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내 앞으로 며칠 동안 찾지 않던 광복군 육군 지휘관이 나타났다.
“다들 한꺼번에 어쩐 일이십니까?”
김경천, 지청천, 박시창, 김홍일 등 광복군 육군 지휘관들 모두가 함께 내 앞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