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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 호텔, 무사시 료칸 (4) (178/225)

야마토 호텔, 무사시 료칸 (4)

지금 이렇게 광복군이 힘든 이유는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전쟁의 양상이 완전히 변했기 때문이었다.

독일 국민에게 국가 총력전을 주장하는 괴벨스의 말처럼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전쟁을 벌인 당사국들은 자국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 국가의 운명을 걸고 전쟁을 치렀다.

현대전은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 국가 총생산의 대부분을 쏟아부어야만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그럴 국가, 즉 영토와 국민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중세의 전쟁처럼 용병을 사서 전쟁을 치를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값비싼 전쟁 물자는 돈을 주고도 구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강대국들의 눈치를 봐야만 했고 강대국들의 의견을 어쩔 수 없이 따라야만 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급하게 여러분들을 이렇게 모이게 한 이유는 현재 광복군이 중요한 갈림길 앞에 섰기 때문입니다.”

광복군의 주요 지휘관들은 갑자기 무슨 일이냐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 며칠 지나면 중화민국의 장제스 총통을 대신한 쑹메이링과 루스벨트 대통령이 전후 아시아와 태평양 문제를 가지고 회담하고, 루스벨트 대통령은 영국의 처칠 수상과 소련의 스탈린 서기장과도 계속해서 회담하면서 전후 처리에 대해서 의논을 합니다.”

“조지 대장님, 그럼, 거기서 우리 대한민국의 문제도 운명도 결정이 된다는 말입니까?”

“예, 하지만, 이번 회담에서 정하는 대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전쟁이 끝날 때쯤 한 번 더 회담을 할 겁니다.”

우리 대한민국 사람은 한 명도 없는 자리에서 우리나라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말에 광복군 지휘관들은 잔뜩 짜증이 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요?”

“그럼, 언제 우리나라의 운명이 정해진다는 말입니까?”

“아니, 우리나라의 운명을 왜 그들이 결정합니까?”

“우리가 힘이 없으니까요. 세상 그 누구도 힘없는 자들의 말은 들어주지 않는다는 걸 다들 아시지 않습니까?”

개인 간에는 측은지심이라도 있어서 힘없고 불쌍한 사람들의 말을 들어줄 수도 있겠지만, 국가 간에는 절대로 그럴 일은 있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나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지금 정도의 광복군을 키워내고 유지해낸 것도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만약, 두웨성과 함께 위조지폐를 찍어내지 않았다면 이런 결과물은 나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겨우 몇만 명의 광복군으로는 강대국들이 전후처리를 의논하는 자리에 끼워 주지도 않았다.

아니, 아직도 연합국으로 대우조차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모험을 한번 해보려고 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자는 말씀입니까?”

“우리는 앞으로 미군의 작전 계획보다 먼저 움직일 생각입니다.”

내 대답에 광복군 지휘관들은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다시 물었다.

“예? 조지 대장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미군이 사이판을 공격할 계획이라면 우리가 먼저 사이판에 침투해서 일본군과 전투를 하고, 미군이 오키나와를 공격하려고 하면 우리가 먼저 오키나와에 침투해서 교두보를 확보하겠다는 말입니다.”

사실, 내가 하는 소리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광복군이 몇 명이나 된다고 그런 식으로 미군의 공격의 선봉에 서서 길을 여는 역할을 한다는 말인가?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남양군도 전체에 흩어져 있는 조선인들의 신병을 우리 광복군이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건 너무 위험한 계획이 아닙니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일본군이 남양군도로 끌고 온 조선인들이 모두 죽게 생겼습니다.”

“아니,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여러분도 모두 알겠지만 이번에 길버트 제도와 마셜 제도를 미군과 함께 점령하는 과정에서 현지에 강제로 끌려와서 일하던 조선인들의 협조가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일본군이 알아냈습니다.”

“그런데요?”

“그래서, 일본군이 이번에 새로운 명령을 내렸는데, 남양군도 전체의 방어시설 공사를 서둘러 완성하고 조선인을 처리하라는 명령이랍니다.”

광복군 지휘관들은 내 말을 듣자마자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질 못하다가 노예처럼 끌려와서 일만 하다가 죽어 나갈 동포들 생각에 분노하기 시작했다.

“내가 알기로는 수십만 명이 남양군도로 끌려왔다고 알고 있는데 그게 정말입니까?”

“예.”

드디어, 일본군들이 하는 짓거리에 크게 분노한 지휘관들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젠 그냥 다 죽여버립시다. 이제부터 나는 일본 놈들은 한 놈도 살려주지 않겠습니다.”

“조지 대장! 도쿄는 언제 또 갑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히로히토의 대가리를 날려버립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진짜 해도 너무 하는 새끼들이네요. 도저히 더는 사람 새끼들이라고 봐줄 수가 없네요. 그냥 무조건 죽입시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분노하고 화를 난다고 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대처해야 할 시간이었다.

“여러분 미안하지만, 나는 작전을 진행하면서 부족해지는 병력의 보충은 강제 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 노무자들을 광복군으로 만드는 것으로 해결할 생각입니다.”

내 결정은 흔히 하는 말로 다수를 위해서 너희를 희생하라는 논리였다.

수십만 명의 강제 징용자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현재의 광복군과 먼저 풀려난 징용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짓이었다.

“조지 대장님, 지금 대장님께서 하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 알고 말하는 겁니까?”

잘 알고 있다.

나도 독재자라고 불리는 자들과 똑같은 결정을 했는데 그걸 모를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내가 하는 변명도 다른 독재자들이 했던 말과 똑같을 수밖에 없었다.

“이 방법 말고 다른 좋은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수십만 명의 동포를 살릴 수 있는 길은 내 생각에는 이것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본토에서도 무장 투쟁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예? 정말입니까?”

“예, 본토에서도 무장 투쟁을 해야만 일본은 우리 국민을 믿을 수가 없어서 강제로 징집하거나 징용을 끌고 오지 못할 겁니다.”

본토에서도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겠지만 차라리 무장 투쟁을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가만히 순순히 일본의 총칼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였다가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앞으로 더 피해를 볼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독립까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국민의 희생도 그렇게 크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1894년의 동학이나 1919년 기미년 만세 운동 때처럼 일본군이 대대적인 토벌에 나서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여러분! 본토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조선인이 아닙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광복군 지휘관들을 쳐다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조선인이 아니냐는 말입니다. 왜? 어째서? 우리 광복군만 목숨을 바쳐서 일본과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본토에서 사는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조선인입니다.”

이왕 말을 꺼낸 김에 내가 지금까지 품고 있던 생각을 끝까지 말할 생각이었다.

“이 세상에 공짜가 있습니까? 세상 모든 일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본토에서 사는 조선인들도 일본의 통치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손에 총을 들고 나서야 합니다. 아닙니까? 왜 우리만 피 흘리고 싸워야 합니까?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는 미국 사람인데, 내가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체 무슨 빚을 졌다고 일본과 싸워야만 합니까?”

얼떨결에 해방되면 자신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선이 해방됐다고 죄의식을 가지고 미안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일본과 싸워 온 임시정부와 광복군에 미안한 감정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는 뭐는 어떻고 뭐는 어떻고 하면서 임시정부와 광복군을 씹어대는 온갖 뒷담화나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직접 피 흘리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자신들의 손으로 쟁취하게 할 생각이었다.

“조선인 모두가 일본군의 총칼에 죽어 나가더라도 나는 그들의 손에 총을 쥐여줄 생각입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스스로 노력해서 그걸 획득하게 할 생각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조선인 전체가 죽어도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그 순간 회의실 안은 정적이 찾아왔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봅시다. 조선의 인구가 3천만입니다. 조선에 있는 일본군은 겨우 2개 사단이고 경찰까지 합쳐봐야 10만 명 정도입니다. 그런데, 뭐가 겁나고 무서워서 싸우지 않는 겁니까? 자신들의 목숨은 중요하고 우리처럼 일본과 싸우는 놈들은 미친놈들이라서 목숨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겁니까? 내가…. 돈 많고 잘 사는 미국인인 내가 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합니까?”

“하지만 그들은 우리처럼 훈련을 받은….”

“조용히 하십시오. 여러분은 본토에 있는 다른 조선인들에게 무슨 빚이라도 졌습니까? 오늘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연락해서 대대적인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들도 우리도 똑같은 조선인입니다. 진정한 자유를 얻고 싶다면 본인들도 직접 싸우라고 독려할 생각입니다.”

내가 하는 말에 다들 충격을 받았는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회의실 안에 함께하고 있는 광복군 지휘관들도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를 내가 꺼내서 말했기 때문에 다들 머리가 복잡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우리나라가 독립하고 난 다음에 본토에서 간신히 목숨을 구걸하고 살던 놈들이 당신들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돈으로 당신들의 생활을 보살필 수도 있겠지만 당신들이 지금까지 한 노력은 국가와 민족으로부터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들도 직접 총을 들고 싸워서 죽고 다쳐봐야 당신들이 얼마나 힘든 길을 지금까지 헤쳐 나왔는지 알게 될 겁니다.’

그때, 김경천이 광복군 지휘관을 대표해서 나한테 질문을 했다.

“조지 대장, 정말로 그렇게 할 생각입니까?”

“예,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가 미국이나 영국, 중화민국 같은 나라에 제대로 인정받기는 힘들 것 같고, 우리 스스로 어떡하든지 일본을 몰아내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정입니다.”

지금, 김규식이 영국의 Mi -6를 통해서 처칠 수상과 연합국 승인 문제를 협의하고 있지만, 그것은 그것이었다.

이제부터는 본토의 조선인들도 총을 들고 일본과 싸워서 피를 흘리게 할 생각이었다.

조선인 대다수가 직접 일본과 싸운 경험이 있다면 나중에 광복군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폄훼하고 왜곡하는 놈은 절대로 생기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아니, 만약 그런 놈이 있다면 다른 조선인들 손에 맞아 죽을 것이다.

왜냐면 우리는 다 같이 총을 들고 피 흘리면서 일본을 몰아내기 위해서 싸운 동지이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우리 광복군이 연합국으로 인정이 받지 못하고 있습니까?”

“예, 지금 김규식 선생이 연합국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영국과 마지막 접촉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문제는 그 문제고 나는 본토에 사는 조선인도 유럽의 레지스탕스들처럼 스스로의 자유를 위해서 총을 들고 싸우기를 원합니다.”

“흠…. 조지 대장, 우리는 본토에 사는 동포들에게 빚이 있거나 대우를 받고 싶어서 이렇게 싸우는 것이 아니오.”

“잘 압니다. 잘 아니까 내가 이런 결정을 하는 겁니다.”

‘당신들은 30년이 넘도록 모든 것을 포기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나는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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