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 이소로쿠 그리고 타라와 (2)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장관과 우카키 마토메 참모장을 태운 폭격기 2대는 6대의 A6M 0식 전투기들의 호위를 받으며 1943년 4월 18일 06시에 남태평양의 일본 해군 기지였던 라바울에서 출발해서 부겐빌 섬의 부인기지로 향했다.
“무어 중령님, 뒤를 잘 부탁합니다.”
“만약, 무슨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든 도울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런데, 미첼 소령, 확실히 야마모토 이소로쿠를 제거할 수는 있겠지?”
무어 중령의 질문에 미첼 소령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고 생각했다.
다만 하나 걸리는 것이 있다면 일본 해군 연합함대 사령장관인 야마모토 이소로쿠를 제거하기 위해서 미국 해군 항공대가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무선을 피하라는 명령이 내려지면서 공격대와 지원대가 서로 소통하기가 어려웠다.
오로지 믿는 것은 지원대가 눈치껏 알아서 행동해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신이 진주만을 복수하라고 주신 기회인 것 같은데 꼭 성공시킬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그래. 내가 어떡하든지 작전이 성공할 수 있도록 뒤에서 지켜보면서 지원하겠다.”
“예, 중령님, 뒤를 잘 부탁드립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거 작전을 책임진 존 미첼 소령은 후방지원을 맡은 루터 무어 중령에게 당부하고 활주로에 세워진 자신의 P-38 기체로 향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일본 해군 연합함대 사령장관을 제거하기 위한 작전은 짧은 시간에 급하게 준비되기는 했지만, 미국 해군 항공대는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시뮬레이션하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생각과는 달랐다.
‘이러면 안 되는데…. 시작부터 왜 이렇게 어수선하지.’
미첼 소령은 재빨리 수신호를 주고받으면서 문제가 발생한 두기의 기체를 후방으로 빼고 지원대에 공백을 메꿔달라고 요청했다.
‘무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이렇게 불편하고 힘든 일이었던 건가? 휴…. 그나마 예비로 지원대가 우리 옆을 지키고 있어서 다행인 건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출발한 자신의 공격대 전투기 두 대가 기계적인 문제가 생기면서 뒤로 빠져나가자 미첼 소령은 뭔가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들었지만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불길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리고, 바로 그때 기나긴 무선 침묵을 깨트리면서 캐닝 중위의 외침이 들려왔다.
“적기 발견! 적기 발견! 11시 방향에 적기 발견!”
캐닝 중위의 외침을 들은 공격대의 모든 조종사는 고개를 돌려서 서북쪽 상공을 쳐다봤다.
대략 3에서 4km 정도 떨어진 곳에 6대의 A6M 0식 전투기의 호위를 받으면서 날고 있는 두 대의 G4F 폭격기가 눈에 들어왔다.
“모두 전투 준비!”
“예비 연료통 제거!”
“고도 상승!”
“편대장님! 연료통이 제거되지 않습니다.”
미췔 소령의 명령대로 따르던 편대원 중 홉스 중위가 예비 연료통이 제거되지 않자 급하게 보고했다.
“뒤로 빠져라! 그리고, 혹시 나중에 예비 연료통이 제거되면 작전에 참여해라.”
“예, 편대장님.”
미첼 소령의 명령을 들은 공격대는 명령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목숨을 걸고 상대를 죽이려는 자들과 목숨을 걸고 상대를 막아야만 하는 자들의 싸움이 시작됐다.
연료를 아끼기 위해서 저공비행을 택했던 일본 해군 전투기들도 예비 연료통을 떼어내 버리고 급상승하면서 미국 해군 P-38 전투기를 막기 위해 나섰다.
“무슨 일이냐?”
“적기가 나타났습니다.”
“적기가?”
“예, 참모장님.”
난데없이 적기가 나타났다는 소리에 우카키 마토메 참모장의 눈은 바로 야마모토 이소로쿠 사령장관이 탑승하고 있는 폭격기로 향했다.
“제발! 사령 장관님께는 별일이 생기지는 않아야 할 텐데….”
하지만, 우카키 마토메 참모장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처음부터 야마모토 이소로쿠 사령장관이 탑승하고 있다는 걸 아는 것처럼 미국 해군 전투기들은 집요하게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탑승한 폭격기만을 노리고 있었다.
“투 투 투!”
“투 투 투!”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탑승한 폭격기 옆을 스치면서 두 기의 P-38이 지나갔다.
그러자, 호위를 맡고 있던 일본 해군의 A6M 0식 전투기 두 대가 뒤를 쫓았다.
“타 타 타!”
“타 타 타!”
“막아라! 사령 장관님께서 탑승한 비행기 옆으로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게 막아!”
야마모토 이소로쿠를 호위하던 6대의 일본 해군의 전투기들은 사력을 다해서 미국 해군 전투기를 막았다.
두서너 번 정도 정신없이 공방을 주고받고 있을 때, 절대로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고야 말았다.
“시간이 우리 편은 아니다. 모두 야마모토만 노려라!”
야마모토 이소로쿠를 제거하기 위해서 급격하게 기동을 해야 하는 P-38 전투기에게 주어진 전투 시간은 단 몇 분의 시간뿐이었다.
“다른 것은 모두 제쳐두고 야마모토만 노려!”
공격대 대장인 미첼 소령의 급한 목소리가 들리자 공격대와 지원대의 모든 조종사가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탑승한 폭격기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투 투 투! 죽어! 악마 새끼야!”
“투 투 투! 너만 사라지면 우리가 이긴다! 잘 가라!”
집중 공격을 받기 시작한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탑승한 폭격기는 누구에게 공격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엄청나게 두들겨 맞은 채로 시커먼 연기를 피워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밀림 속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퍼어 벙!”
“나이스! 잡았다. 다들 나머지들도 빨리 처리해라!”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제거됐다고 전투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호위해야 할 대상을 잃은 일본 해군 항공대의 A6M 0식 전투기들과 이미 작전에 성공한 미국 해군 항공대 P-38 전투기들은 서로를 죽이기 위해서 바로 개싸움에 돌입했다.
* * *
“존 미첼 소령이 지휘하는 항공대가 조금 전 카할리 지역을 다녀왔습니다. 오전 9시경 6대의 전투기들의 호위를 받는 두 대의 폭격기를 발견하고 공격해서 두 대의 폭격기 모두 격추했습니다. 그리고, 1대의 전투기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니미츠 제독은 할시 제독의 보고를 받으면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보고를 하던 할시 제독이 갑자기 감정에 복받쳤는지 큰 목소리로 승리를 외쳤다.
“제독님! 1943년 4월 18일은 우리의 승리의 날로 기록될 겁니다.”
“고생이 많았습니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 당분간은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철저하게 입단속을 부탁합니다.”
“예, 제독님. 당분간은 오늘의 전과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단속하겠습니다.”
“딱 일주일입니다. 일주일 안에 다른 연계 작전들이 끝이 날 겁니다.”
“예, 알겠습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를 제거했다는 사실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날뛰려고 생각했던 할시 제독은 니미츠 제독의 말에 감정을 진정시키고 이 전투는 아직 끝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대답했다.
“이제 나머지 작전도 성공한다면 정말로 1943년 4월 18일은 역사에 우리 미국 해군 승리의 날로 기록될 것이다.”
할시 제독의 보고를 받은 니미츠 제독은 눈은 길버트 제도의 작은 섬 타라와에 꽂혔다.
타라와 환초의 가장 끝인 베티오섬의 끝자락 해변의 모래사장에서 갑자기 작은 구멍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구멍은 점점 커지더니 안에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기어 나왔다.
“현재 시각, 19시 30분 모두 시간을 확인해라.”
지휘관으로 보이는 남자의 말에 구멍에서 기어 나왔던 남자들이 각자의 시계를 확인했다.
“모두 작전 목표를 기억하고 있겠지?”
“예, 소대장님.”
“좋다. 이제 우리는 역사에 기록될 전투를 시작한다. 대한민국 광복군 해병대가 어떤 존재인지 세계에 알려주자. 모두 자신 있지?”
“예, 소대장님.”
십여 명이 약간 넘는 남자들이 나지막하게 대답하자 지휘관으로 보이는 남자는 일일이 부하들의 손을 한 번씩 잡아주고는 공격 시작을 명령했다.
“살아서 당당하게 오늘 일을 이야기 하자. 그리고, 반드시 작전 목표를 완수해라!”
“예, 소대장님.”
“모두 무운을 빈다. 가자!”
뭔가 모르게 불안한 기색을 보이면서 노무자용 천막 막사 안에서 몸을 뒤척이던 정지석은 노무자가 가지기에는 비싼 물건인 손목시계만 쳐다봤다.
그리고, 그의 옆에서 정지석과 마찬가지로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던 최순길이 어깨를 갑자기 흔들자 놀라서 몸을 일으켰다.
“최형, 왜요? ”
“시간이 다 된 것 같은데 왜 아무런 일이 없지요?”
“아직 몇 분 남았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봅시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은 아니겠죠?”
“설마요…? 너무 걱정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봅시다.”
“크…. 윽.”
그때, 조선인 노무자용 천막 막사 밖에서 누군가의 신음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그리고, 천막 입구 가리개가 젖혀지면서 얼굴에 시커먼 위장을 하고 온몸을 태극기로 감은 군인들이 들어왔다.
“여기는 누가 책임잡니까?”
“우립니다.”
정지석과 최순길이 손을 들고 일어서자 얼굴이 새까만 병사들은 등에 메고 있던 톰슨 기관단총을 건넸다.
“자! 받으시오. 방아쇠만 당기면 총알이 나가니까 혹시라도 일본군이 이곳으로 오면 그대로 방아쇠만 당기시오.”
두 정의 톰슨 기관단총을 건넨 병사들은 다른 조선인 노무자용 천막 막사를 찾아서 막사 밖으로 나갔다.
1943년 4월 18일 20시 타라와 환초.
“꽈 과 강!”
“꽝!”
“퍼 엉!”
일본군 해안 경계 초소와 일본군 병력용 막사에서는 동시에 폭발 소리가 들려왔다.
적을 막기 위해서 밖을 경계하도록 만들어진 경계 초소의 가장 큰 취약점은 뒤가 약하다는 점이었다.
타라와섬을 점령하기 위해서 전날 새벽 가장 취약한 시간에 잠입해서 대기 중이었던 대한민국 광복군은 하루를 꼬박 세면서 바닷가 모래 속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작전 시간에 맞춰서 뛰어나와 일본군이 가장 경계심이 풀어졌을 시간을 노리고 기습을 시작했다.
“타 다 다 당!”
“탕! 탕! 탕!”
“적이다! 적의 기습입니다.”
“에 에 엥!”
대한민국 광복군 해병대의 갑작스러운 기습을 받은 일본군은 기습을 받고 십여 분이 흘러서야 사이렌을 울리고 전투 준비에 나섰지만, 그때는 이미 상황이 심각하게 변한 시각이었다.
“이게 뭐냐? 도대체 누가 우리를 공격하는 거냐?”
“아무래도 잠입한 적들의 기습 공격 같습니다.”
“잠입? 어떻게 여기로 잠입할 수 있어?”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타라와 경계 임무를 맡은 사바타 대좌는 부하들을 닦달했지만 적이 누군지도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계속해서 들려오는 폭발 소리와 총소리만 들어야 했다.
“빨리 적을 제압해! 다들 정신을 어디에다 두고 있는 거냐?”
정신없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부하들을 보면서 사바타 대좌는 이를 갈았다.
“칙쑈! 빨리 적을 제압해! 감히 내가 있는 이곳이 어디라고 기어들어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