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 이소로쿠 그리고 타라와 (1)
1943년 4월 14일, 하와이 진주만 태평양 함대 사령부.
“제이슨! 제이슨!”
“예, 제독님!”
니미츠 제독이 사령관실에서 급한 목소리로 부관인 제이슨 중위를 찾자 제이슨 중위는 바로 사령관실로 뛰어 들어갔다.
“예, 제독님, 찾으셨습니까?”
“이게 뭐지?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예? 어떤 걸 말씀하십니까?”
니미츠 제독이 들고 있는 서류는 하이포국에서 올라온 일본 해군의 암호분석 보고서였다.
“제이슨! 이 정보 보고 말이다. 이게 정말이냐?”
“예, 레이튼 정보참모의 보고에 따르면 사실일 확률이 매우 높다고 했습니다.”
길버트 제도의 타라와를 점령하기 위한 작전 실행을 며칠 앞두고 작전의 세세한 부분까지 점검하고 있던 니미츠 제독에게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긴급 정보 보고가 올라왔다.
“혹시,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갑자기 미치기라도 한 건가? 아니면, 허위 정보인가?”
“제독님, 하이포국에서는 실제 정보일 확률이 99%라고 합니다. 그리고, 허위로 그런 정보를 흘려봐야 일본 해군에 어떤 도움이 될까요?”
“우리 군의 정보 수집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서 허위 정보를 흘릴 수도 있지 않나?”
“제독님, 일본 해군이 의도적으로 허위 정보를 흘렸다고 하면 우리 군의 대처 상황을 직접 확인할 수 있어야만 하는데 일본 해군의 능력이 그 정도까지 될까요?”
제이슨 중위의 반론이 맞았다.
허위 정보를 흘리고 미 해군의 반응을 살펴서 암호체계를 변경할 생각이라면 미 해군의 반응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일본 해군은 그럴 능력이 없었다.
니미츠 제독은 레이튼 정보참모가 올린 암호분석 보고서를 들고 다시 한번 읽기 시작했다.
“‘1943년 4월 18일 야마모토 이소로쿠 사령 장관님께서는 부겐빌의 해군 항공대 조종사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G4M 폭격기와 6기의 전투기의 호위와 함께 라바울 비행장을 출발한다. 부겐빌 부인기지 09:20 도착 예정.’이게 정말이라고?”
“예, 제독님, 저는 신께서 미국을 위해서 일본 해군을 한 번에 끝장내버릴 기회를 주신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이거 생각해보니까 밑져야 본전이군.”
“예?”
“이 정보가 거짓 정보라고 하더라도 우리 전투기 조종사들이 실제를 가정하고 훈련한 셈 치면 된다는 말이다.”
“아! 예, 그렇습니다. 전투기 조종사들이 그날 하루만 고생하면 됩니다.”
“제이슨! 빨리, 레이튼을 내 방으로 불러라.”
“예, 제독님.”
“이봐, 레이튼, 이 정보를 내가 얼마나 신뢰하면 되겠나?”
“제독님, 99.999% 신뢰하셔도 됩니다.”
레이튼 대령의 대답이 끝나자 니미츠 제독은 다시 한번 지도를 살피면서 전투기들의 항속거리를 계산했다.
“그런데, 레이튼.”
“예, 제독님.”
“내가 야마모토 이소로쿠를 없애버리면 혹시 야마모토 이소로쿠보다 더 나은 지휘관이 일본 해군의 연합함대를 지휘하는 것은 아니겠지?”
“제독님, 제 대답은 Never입니다. 우리 미국 해군의 태평양 함대가 건재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제독님이라는 존재 때문이듯이 일본 해군에서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사라진다면 일본 해군은 그날부터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할 겁니다.”
“그래? 확실하지?”
“예, 그렇습니다.”
니미츠 제독은 레이튼 대령이 자신을 진심으로 존경한다고 말하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거 작전에 P-38을 투입하면 될 것 같은데, 레이튼 자네 생각은 어떤가?”
“통상적인 경계비행으로 위장을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좀 부족하지는 않을까?”
“아닙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를 호위하는 전투기의 숫자는 6기라고 했습니다.”
“그래? 그럼, 통상적인 경계비행으로 위장하자고,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 이젠 당신과 헤어질 시간이 왔군.”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제거를 결심한 니미츠 제독의 눈빛은 단 한 점의 인정도 찾아볼 수 없는 냉혹한 사냥꾼의 눈빛이었다.
“저…. 제독님.”
“뭔가? 제이슨.”
“만약, 야마모토 이소로쿠 사령관이 제거된다면 일본 연합함대는 한순간에 지휘 통솔 체계가 마비됩니다. 그때를 놓친다는 것이 조금 아깝지 않으십니까?”
솔직히, 타라와섬 한곳을 수복하기 위해서 이번 기회를 쓰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하지만, 현재 태평양 함대에는 섬들을 점령하기 위해서 병력을 수송할 마땅한 대책이 없었다.
“제이슨, 수송선과 상륙할 병력을 지원할 함대가 부족하다. 조금 아깝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다.”
“제독님, 우리가 앞으로 공격할 예정인 모든 섬에는 조선에서 끌려와서 방어시설을 구축하고 있는 조선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활용한다면 섬을 점령하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조선인 노동자들을 활용하자는 것인가?”
“예, 제독님. 그리고,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암살에 성공하는 순간 태평양 함대 전체가 공세로 돌아서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언제까지 지루한 소모전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적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확실한 일격을 가해서 전황을 완전히 뒤집어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이슨 중위의 건의를 받은 니미츠 제독은 시선을 태평양이 그려진 지도로 돌렸다.
‘제이슨의 말처럼 대대적인 공세로 변경은 하기 힘들더라도 최소한 일본 해군의 수송 능력과 보급 능력을 마비시킬 수는 있지 않을까? 잠깐, 길버트와 마셜 제도의 공격은 제이슨의 말처럼 시험 삼아서 광복군에게 작전을 맡겨 볼까? 일본군의 경계 태세를 점검하는 차원에서 광복군을 이용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제이슨, 잠수함 함대 사령관을 불러와. 지금 바로. 아! 그리고, 손원일 중령과 최선학 중령도 불러라.”
“예, 제독님.”
* * *
1942년부터 8월부터 무려 6개월간 솔로몬 군도의 과달카날섬 점령을 위해서 미국 해군과 혈투를 벌인 일본의 육, 해군은 결국에는 막대한 피해를 보고 1943년 2월, 20여 척의 구축함을 동원해서 간신히 야간 철수를 하게 되면서 그 비참한 참패의 막을 내렸다.
과달카날에서 피나는 전투 끝에 끝내는 일본군들을 몰아내고 여세를 몰아서 과달카날섬과 근처 다른 여러 섬이 있던 솔로몬 제도를 완전히 점령한 미국은 공격 방향을 바꿔서 중부 태평양해역으로 진군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중부 태평양 공략의 핵심 목표는 길버트 제도의 타라와섬이었다.
타라와섬은 여러 개의 환초로 이루어졌고 이 환초에서 제일 큰 섬은 베티오섬이다.
타라와섬 외곽 2km 정도 떨어진 바다에서 잠망경이 먼저 떠올라 주변을 살피고 잠시 후, 대한민국 광복군 해군 잠수함대의 잠수함이 조용히 물 밖으로 부상했다.
그리고, 잠수함에서 내린 몇 명의 인원이 해변을 향해서 조용히 접근했다.
“어서 오시오. 만나서 반갑습니다.”
“예, 만나서 반갑습니다.”
서로 간의 신분 확인을 위해서 몇 번에 걸쳐서 불빛으로 신호를 주고받은 두 명의 남자는 해변의 야자수 나무 밑에서 만나서 인사를 나누고 정보를 주고받았다.
“언제나 섬을 공격할 생각입니까? 섬의 방어시설이 점점 보완되고 있습니다.”
“혹시, 전에 주셨던 지도와 달라진 점이 많습니까?”
“예, 이번에 탱크 14대가 새로 들어왔습니다.”
“탱크요?”
“예, 기존에 설치한 대포들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는지 섬에 탱크도 들어왔습니다.”
잠수함을 내려서 타라와에 침투한 광복군 대원은 밤이라 어두워서 표정은 자세히 알 수가 없지만 목소리가 심각하게 변했다.
“그럼, 탱크는 어떻게 처리할 생각입니까?”
“불을 지를 생각입니다. 그리고,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 작전 날짜나 빨리 정해 주십시오. 시간이 늦어지면서 함께하기로 한 동지들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 미안합니다. 다행히 작전 날짜가 정해졌습니다. 작전 실시일은 4월 18일 20시입니다.”
“4월 18일 20시요?”
“예, 우리가 먼저 상륙해서 해안 방어 초소를 공격하기 시작하면 그때 내부로 침투한 광복군 대원들의 지휘를 받아서 작전대로 움직여 주면 됩니다.”
타라와섬을 지키기 위해서 주둔 중인 일본군은 약 2,500여 명 정도였고, 타라와섬의 방어시설 건설을 위해서 일하는 조선인 노무자들이 약 1,400여 명 정도였다.
그중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연통제와 사이판의 이봉창에 포섭된 조선인들이 주동이 돼서 수백 명의 조선인이 내부에서 호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 * *
1943년 4월 17일, 하와이 진주만 미국 해군 태평양함대 사령부.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난 건가?”
“예, 제독님.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거 작전은 마크 미쳐 제독이 훌륭하게 성공시킬 겁니다.”
“제발 이번에 확실하게 없애야 할 텐데….”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분명히 작전대로 성공할 겁니다.”
니미츠 제독은 통상적인 무선 교신으로 위장한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거 명령을 지시하고 그 후로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 체,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거 작전은 부하들의 능력에 맡기고 결과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 참, 길버트 제도와 마셜 제도 탈환 계획도 점검했지?”
“예, 작전이 벌어질 모든 섬의 정보를 확보했고 점령 작전에 필요한 인원과 물자를 분배했습니다.”
니미츠 제독은 제이슨 중위의 건의를 받아들여서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거 작전과 함께 두 가지 작전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
하나는 길버트 제도와 마셜 제도를 점령하는 작전이었고 다른 하나는 중부 태평양의 일본 해군 3함대와 일본 육군의 수송과 보급 능력을 제거하기로 했다.
“내부 호응에 실패하면 작전 진행이 힘들 텐데 그에 대한 대비는 확실하지?”
“예, 제독님, 내부 호응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바로 작전을 변경해서 침투 병력에 의한 점령전으로 전환할 생각입니다.”
“그래? 그렇게 작전을 변경하더라도 괜찮겠나?”
“섬을 지키고 있는 일본군 병력이 많지 않기 때문에 기습을 통해서 충분히 점령이 가능할 겁니다.”
“흠….”
모든 군사 작전은 완벽할 수가 없다.
허점을 찾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기습 작전은 실패하더라도 다음 상륙작전이 준비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다지 부담은 없었다.
“중부 태평양에 떠다니는 일본의 수송선을 최소한 밤 이상을 침몰시켜야 할 텐데 내가 원하는 성과가 나올지 모르겠군.”
“잠수함대도 제독님이 원하시는 만큼의 성과를 보일 겁니다.”
“만약, 이번 작전이 모두 성공한다면 일본 해군은 진짜 끝인 건가?”
“예, 제독님. 이제 우리가 공세의 고삐를 쥘 수 있게 됩니다.”
니미츠 제독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가장 걱정되는 길버트 제도와 마셜 제도의 점령 작전을 한 번 더 살펴보고 시선을 돌려서 시계를 쳐다봤다.
‘신이여! 제발! 제발! 모든 작전이 성공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