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딜 (2) (168/225)

딜 (2)

미국 국가방위 연구위원회 산하의 과학연구개발국은 MIT의 부총장이었던 버나마 부시의 제안을 듣고 해리 홉킨스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건의해서 만들었다.

다가올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영국, 독일과의 과학 기술격차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별도의 과학 기술 그룹 조직을 만들어야만 한다는 의견을 듣고 루스벨트 대통령이 바로 '오케이'라는 짧은 대답과 함께 승인을 해줘서 창설됐다.

이때, 과학연구개발국이 창설된 시기는 유럽에서 독일이 전쟁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40년이었다.

“그 문제는 좀 더 생각해보는 것으로 합시다.”

“아닙니다. 지금 미리 인원들을 정리해놓아야 미국과의 협상이 마무리됐을 때 바로 투입할 수 있습니다.”

건국대학교 연구소장의 의견이 타당한 것 같지만, 미국과의 기술 교환 협상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는데 우리만 먼저 미국에 파견할 인원을 선정해놓기는 힘들었다.

“소장님이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까 현재 연구소 내의 유대인 출신의 과학자들이나 기술자들한테 문제가 있는가 보군요?”

“예, 미국이 요즘 과학자들에게 워낙 괜찮은 대우를 해주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유대인 출신들이 마음이 흔들리는 모습들입니다.”

“그럼, 그럴수록 지금은 파견 인원을 선발하지 않아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요?”

“저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차라리 보낼 사람은 빨리 보내고 그 대신 떠나는 그들에게 우리가 지금까지 베풀어줬던 최소한의 은혜는 갚으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연구소에 머무는 사람들은 독일에 그대로 머물렀다면 생명이 위태로웠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우리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그런 그들을 1935년부터 지금까지 돌봐줬다.

물론, 독일 출신 유대인 과학자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대학교 연구소에서, 많은 연구에 이바지한 것도 사실이지만 계약은 계약이었다.

“현재 독일 출신 유대인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반반입니다. 미국이든 여기든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탄압받고 목숨이 위태로운 것만 아니라면 그냥 어디든 안전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들입니다.”

“그래요? 그럼, 제일 중요한 멜리타 실러는 어떻습니까?”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미국이나 유럽은 싫다고 합니다. 그냥, 우리 조선인들처럼 정이 넘치는 사람들하고 살고 싶다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연구소장님이 미리 인원을 분류해 놓고 미국으로 떠날 사람들과의 계약도 따로 챙겨주십시오.”

건국대학교 연구소에서 대략 어떤 연구를 하는 줄은 알지만, 자세한 연구내용까지는 알지 못하는 내가 나설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그동안 보호해준 대가를 달라고 말하는 것이 조금은 치사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건 동양적인 사고방식이었다.

우리는 계약했던 대로 분명히 그들의 생명을 보호해줬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는 그 대가를 받아야 했다.

“그럼, 제가 책임지고 정리를 해놓겠습니다.”

“예, 그래 주십시오.”

연구소장과 대화를 끝내고 돌아서려고 하는데 연구소장이 나를 다시 불렀다.

“저…. 조지 대장님!”

“예, 소장님.”

“조선 출신 연구인력들이 언제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다들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건국대학교 연구소의 연구인력 대부분은 1930년대 초반부터 상하이 뤄리리-하둔 대학교에서 공부했던 조선인들이었다.

고향을 떠나서 외롭게 생활하던 그들의 나이가 어느새 서른에서 마흔 사이를 넘어가고 있었다.

지치고 힘들었을 연구인력들에서 희망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45년 이전에 우리는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앞으로 3년 남았습니다.”

“조지 대장님, 그게 진짭니까?”

“예, 그보다 좀 더 빨라질 수도 있습니다.”

연구소장은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내 손을 붙잡고 나한테 연신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기쁨을 표시했다.

“조지 대장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이제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들어서 내가 더 미안합니다. 그때까지는 조금 참고 다들 몸 건강하게 기다려 주십시오.”

“예, 열심히 연구하면서 건강 관리하겠습니다.”

‘이제는 미국을 상대로 터보제트 엔진 기술과 펄스제트 엔진 기술, 그리고 로켓 기술을 가지고 협상을 해서 미국이 가진 전자와 통신 기술을 배워야 한다. 그 외 나머지 산업기술들은 그래도 어느 정도는 국내에 기반을 닦아놨으니까 앞으로 대한민국의 산업기반을 만드는데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 * *

바이중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대학교 연구소를 들렀다가 돌아온 충칭의 미국 대사관은 상당히 바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중화민국 정부와 영국 대사관, 그리고 미국 대사관은 버마 전선에 대한 새로운 작전을 마련하는 모습이었다.

“조지 대장, 바이중에서의 일은 다 본건 가요?”

“예, 주석님”

“내가 과학 기술은 잘 몰라서…. 그동안 연구소에 신경을 쓰지 못해서 미안해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다른 일로도 많이 바쁘신데….”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서 단 하루도 쉼 없이 일하고 있는 김구 주석은 대한민국의 과학 기술 발전까지는 신경을 쓸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김구 주석은 독립을 꿈꾸는 많은 정파를 임시정부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단합시켜야만 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외교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국가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노력하느라 바쁜 사람이었다.

“조지 대장, 영국 대사관에서 우리 광복군의 인도 파견을 원하고 있어요. 그리고, 중화민국도 마찬가지고요.”

“그렇습니까? 그럼, 광복군의 이동 계획을 변경해야 하겠군요?”

“아무래도 그래야 하지 않겠어요?”

이범석이 지휘하는 1개 연대 규모의 광복군을 태평양 전선으로 이동시킬 생각이었는데 어쩌면 차라리 이번 기회에 영국 정부와 중화민국 정부의 요청을 들어주고 두 국가의 외교적인 지원을 끌어내는 것도 괜찮을 것만 같아 보였다.

“주석님, 그런데, 영국 정부와 중화민국 정부의 요청은 공식적인 요청입니까?”

“그건 아니에요.”

내가 생각할 때 영국은 솔직히 말해서 좀 양아치 같았다.

아쉬울 때는 뭐든지 다 해줄 것처럼 사탕발림하고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른척하는 나라였다.

그래서, 미국은 영국이 가진 돈이 될만한 것을 대가로 받아 가면서 영국을 돕는 것일 것이다.

“주석님, 영국 정부의 공식적인 요청이 아니라면 굳이 우리가 나서서 도와줄 필요가 있을까요? 그냥 이번 기회에 우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확실하게 승인하라고 하십시오.”

“조지 대장의 말이 맞긴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지금 전쟁을 돕는 영국의 다른 식민지들도 우리와 같은 조처를 해줘야만 해서 영국 정부의 입장이 난처한 것 같아요.”

절대 안 된다.

영국은 절대로 믿으면 안 되는 나라다.

제1차 세계 대전 때도 영국의 말만 믿고 도와줬다가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나라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럼, 주석님, 누가 협조 요청을 해온 겁니까?”

“클라크 커 주중 영국대사와 콜린 멕켄지 영국군 총사령관과 장제스 총통의 요청이에요.”

“장제스 총통까지 나선 걸 보니까 영국 정부의 완전한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라고 해도 어느 정도는 공식적인 입장을 띈 요청이군요?”

“그래요. 우리 임시정부와는 직접적인 외교 관계가 없다 보니까 중화민국을 통해서 요청한 모양이에요.”

“음….”

이제 충칭에서의 일을 마무리 짓고 미국으로 돌아가면 쑹메이링은 장제스 총통의 지시를 받아 가면서 미국 정부와 전후 처리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미국과 영국, 그리고 중화민국이 우리나라 문제를 의논할 때 우리 입장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어야만 한다.

아니, 이들 세 나라에 우리 대한민국의 온전한 독립을 확실하게 보장을 받아야만 했다.

“주석님, 영국을 지원하는 문제는 미국이 영국을 대하는 방식으로 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철저하게 등가에 따라서 우리가 하나를 주면 영국도 우리 임시정부가 원하는 일을 하나 해달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가 그렇게 나가면 장제스 총통이 또 난리를 칠 텐데요?”

“그 문제는 같이 온 COI의 찰스 레머와 국민당 재정부장인 쑹쯔원과 이야기해서 해결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쑹쯔원과 서로 협력하자고 합의한 내용이 있으니까 아마 잘 될 겁니다.”

나라를 잃고 남의 나라 땅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사람들이 쉽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고난과 고초를 겪고 있었다.

어느 것 하나도 쉬운 일이 없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원하는 대로 남들 눈치를 보지 않고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흠….”

“주석님께서는 임시정부 사람들과 함께 장제스 총통을 만나서 압박을 조금만 해주십시오. 그럼, 나는 미국과 중화민국의 사람들을 통해서 장제스 총통을 설득하겠습니다.”

다음 날부터 김구 주석과 임시정부 관계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장제스 총통을 만나서 대한민국의 확실한 연합국 승인을 요청했고 나도 미국 대사관을 통해서 영국대사와 영국군 총사령관에게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연합국으로 승인하라고 요청했다.

* * *

“오랜만에 보는군요?”

몇 년 동안 보지 못한 사이에도 쑹메이링은 여전히 기품을 잃지 않은 모습이었다.

“예, 여사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짓던 쑹메이링은

“이번에 내가 워싱턴에 가서 일을 보는 걸 돕겠다고 했다면서요?”

“예, 쑹쯔원 재정부장님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화민국과 대한민국은 일본이라는 공통된 적과 싸우고 있는 동지이지 않습니까?”

“그래요? 아무튼 많이 좀 도와주세요.”

“예, 여사님.”

충칭 공항에서 버마의 랑군으로 향하는 수송기 안에서 쑹메이링과 나는 현재의 전황과 중화민국과 대한민국의 미래에 관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조지 씨, 미군이 필리핀에서 쫓겨났고 버마도 일본군의 공격으로 위험하다고 하던데 혹시 다른 정보라도 들은 것이 있나요?”

“아닙니다. 나도 쑹메이링 여사님이 알고 계시는 정도까지만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럼, 앞으로 미국과 영국이 언제부터 일본군을 상대로 승리를 할까요?”

일본군의 최대 영역은 필리핀과 버마까지였다.

그 이상을 넘어선다는 것은 일본군의 능력을 봤을 때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내 생각도 여사님이 예상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일본의 한계가 여기까지라고 생각하는데 그럼, 여기까지가 한계라는 말인가요?”

“그렇지 않을까요?”

일본과 1937년부터 전쟁을 하는 중화민국은 일본이 미국과 영국을 공격하는 순간 만세를 부르면서 좋아했을 것이다.

독일 군사고문단장인 팔켄하우젠이 예견했던 대로 일본군 스스로 폭주해서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해 버렸다.

“그럼, 조지 씨가 보기에는 우리 중화민국은 어떤 스탠스를 취하면서 미국과 영국 정부를 상대해야 할까요?”

갑자기 변화된 쑹메이링의 태도가 적응이 잘되지 않았지만 이미 돕겠다고 약속한 마당에 초반부터 쌀쌀맞게 대할 수가 없어서 대답할 수 있는 것은 하나씩 차분하게 대답을 해줬다.

“중화민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너무 멀리 내다보지 말고 당장 눈앞의 일부터 하나씩 해결하는 것이 나을 겁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 거죠?”

“일본군의 격퇴와 공산당의 박멸입니다. 당장 이 두 가지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중화민국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지 씨도 총통님과 같은 말을 하는군요?”

“예, 중화민국은 그 두 가지를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만 합니다.”

현재의 전쟁 상황은 일본이나 독일 모두 풍선이 터지기 바로 전까지 불었을 때처럼 국가의 모든 역량을 투입해서 최대치까지 팽창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풍선에 날카로운 것이 닿는다면 바로 터지듯이 이제 일본과 독일은 쪼그라들 일만 남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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