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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 (1) (167/225)

딜 (1)

각자 자신들의 위치에서 자신들의 조국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충성하고 자신들이 꿈꾸는 이상을 위해서 싸우고 있는 최전선에서 상대를 동정하고 봐줄 여유는 없었다.

현재, 중화민국에 파견된 COI 요원들은 분명히 중국 공산당의 공작에 넘어간 상태였다.

하위 조직에서 특정 상대를 이쁘게 포장해서 정보를 보고하기 시작하면 정책의 결정권자는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큰 실수를 하게 마련이었다.

“조지 씨, 그건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찰스 레머는 자신이 속한 조직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니까 살짝 표정이 변했다.

“레머 씨, 내가 경험에서 우러나 충고를 하는 겁니다. 중국 공산당은 바퀴벌레보다 더 생명력이 깁니다. 그들은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그 누구와도 기꺼이 한 침대를 쓸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중국 공산당은 살아남기 위해서 아내도 공유할 수 있다는 말에 찰스 레머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정말 그 정도입니까?”

“예, 공산당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기꺼이 그렇게 합니다. 중국 현지 요원들은 이미 포섭이 된 것 같으니까 최대한 빨리 조치하십시오. 내가 에드거 후버에게 연락하기 전에 말입니다.”

이렇게 하면 미국 정부와 중국 공산당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진다.

앞으로 국공 내전이 벌어지고 국민당군이 패퇴하는 과정에도 중국 공산당이 미국을 상대로 장난질은 절대로 못 할 것이다.

“상대를 너무 높게 봐도 안 되지만 상대를 너무 경시해도 안 됩니다. 내가 아는 중국 공산당은 중화민국이라는 나라를 완전히 공산화할 때까지 끝까지 갈 겁니다.”

“으음, 알겠습니다. 그건 내가 다시 조사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나는 분명히 레머 씨에게 경고했습니다.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렇지 않아도 COI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에드거 후버에게 이곳 상황을 알릴 겁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압박을 했으면 분명히 어떤 조치가 있을 것이다.

압박은 이 정도만 하면 될 것 같았다.

* * *

찰스 레머와 함께 저우언라이를 만나고 미국과 중국 공산당의 협상을 지켜본 다음 날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다이리 국장에게 듣기로는 두웨성 대형께서 가장 아끼는 동생이셨다고요?”

중화민국 국민당의 재정부장이자 쑹메이링의 친오빠인 쑹쯔원이 찾아왔다.

“아…. 예”

“이렇게 만나게 돼서 반갑습니다. 나도 한때는 두웨성 대형과 많은 사업을 공유했던 사이였습니다.”

“아…. 예, 그러셨군요?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로….”

쑹쯔원이 나를 만나러 올 일이 전혀 없는데, 생각지도 못한 쑹쯔원의 방문에 사실 좀 당황했다.

어제 있었던 미국과 중국 공산당의 비밀 협상 때문이라면 나를 찾아올 사람은 다이리 조사 통계 국장이었어야 했다.

“일단 뭘 좀 먹으면서 이야기를 합시다. 식사하지 않았다면 우리 집으로 초대를 하고 싶습니다.”

쑹쯔원은 최대한 나를 존중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나한테 이럴 이유가 없을 텐데 이런 모습을 보이자 도대체 나한테 뭘 원하고 이러는지 궁금하기 시작했다.

“쑹쯔원 부장님, 그냥 근처 호텔로 가시죠? 내가 계속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서요.”

“그럼, 그럴까요?”

커다란 둥근 식탁 위로 중국인들 특유의 허세가 깔린 많은 음식이 올려져 있었다.

많은 음식을 한 젓가락씩 맛을 보고 치워 나가면서 쑹쯔원이 입을 열었다.

“듣기로는 어제 미국 당국자와 중국 공산당 쪽 저우언라이와 만났다고 하던데…. 혹시 그 자리에 같이 계셨습니까?”

이미 다 알고 왔으면서 내가 난처하지 않게 서두를 꺼내고 있었다.

“예, 이번 조사단의 일 중의 하나가 중국 공산당과의 접촉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우리 국민당의 랜드리스 물품 유용 사건 조사인가요?”

“예,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쑹쯔원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마시면서 목을 축이더니

“조지 씨가 보시기에는 미국이 좀 너무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미국이 지원한 물자를 시장에 내다 판 쪽에서 할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국민당 정부의 사정을 모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단은 동조를 해줬다.

“뭐, 좀 그런 면이 없잖아 있기는 합니다.”

“변명 같지만, 미국이 지원한 물자를 시장으로 돌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국민들의 폭동으로 정권이 무너졌을 겁니다.”

나도 안다.

하지만, 아무리 다급하다고 하더라도 일 처리가 너무 서툴렀다.

미국 정부와 상의를 하고 시장에 물자를 풀었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미국 정부와 상의라도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우리가 인플레이션으로 정권이 곧 무너질 것 같다고 말을 했어야만 한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일본이 위조지폐를 대량으로 살포해서 중화민국 경제가 무너졌다고 말했어야 할까요?”

“아! 미안합니다. 당사자가 아니다 보니까 말이 헛나왔습니다.”

사람 좋아 보이던 쑹쯔원은 중화민국 경제가 완전히 무너진 것을 이야기할 때는 대상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크게 분노하고 있었다.

“미국은 우리 중화민국을 진정한 친구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상응하는 대가를 받아 갔죠. 그러다가 우리가 줄 것이 없어지니까 우리를 거지 취급하더군요. 조지 씨도 사업을 하시던 분이니까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알 겁니다.”

이래서 경제가 중요하다.

미국은 제1차 세계 대전 때 유럽에 깔아 놓은 대출금이 회수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공황을 맞이했고 중화민국은 일본과의 전쟁을 위해서 중화민국이 가진 모든 은을 미국에 양도하고 지원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중화민국 지도자들은 엄청난 굴욕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또 이런 일이 터진 것이다.

“저…. 쑹쯔원 부장님, 내가 미국의 관료도 아니고 내가 어떻게 관여할 여지도 없는 일들입니다.”

“아! 나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조지 씨에게 하나 부탁할 것이 있어서 만나러 온 겁니다.”

다이리는 찾아와서 협박하고 쑹쯔원은 찾아와서 부탁하고 이제야 중화민국 측에서 왜 이러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무슨 부탁입니까?”

“미국으로 귀국하면 조지 씨도 많이 바쁘시겠지만 내 동생의 미국 활동을 좀 지원해 주십시오.”

1942년 11월 장제스는 부인 쑹메이링의 신병을 치료하고 군사원조도 더 끌어낼 겸 해서 미국으로 보냈다.

우리나라의 미래가 결정됐던 카이로회담은 쑹메이링이 미국에 있을 때 구체적으로 논의됐고 일정도 결정됐다.

그만큼 쑹메이링의 미국 활동은 우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도 중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쑹메이링은 미국 정가에서 일어나는 일을 장제스에게 매일같이 보고하고 회답을 받아서 행동했다.

원래부터 부부 사이가 좋았던 데다 미국에 대한 쑹메이링의 영향력이 상당했기 때문에 장제스는 외교부장이나 주미 중화민국대사보다 쑹메이링에게 더 의존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미국 조사단의 방문으로 미국 정부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 쑹메이링의 미국 출장이 좀 앞당겨진 것 같았다.

“쑹쯔원 부장님, 얼마 전에는 다이리 국장이 찾아와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화민국을 떠나라고 하더니 오늘은 쑹쯔원 부장님이 찾아와서 일을 도와달라고 하면 좀 웃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크흠, 그것은 뭔가 혼선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원래부터 이렇게 하려고 했으면서 아닌 척하는 쑹쯔원 부장을 보면서 국민당 정부가 현재 얼마나 위기 상황에 내몰렸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럼, 뭐가 진실입니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중화민국 철수가 진실입니까? 아니면 지원을 부탁하는 것이 진실입니까?”

“둘 다 우리 중화민국 정부의 생각이요. 중화민국 정부를 도울 생각이 없다면 중화민국을 떠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를 돕는 것이 조지 씨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도 좋은 것 아닌가요?”

노골적인 협박이었다.

그러나, 어차피 지금은 중화민국 국민당을 살려줘야만 했다.

“내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돕고는 있지만 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대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와는 서로의 오해를 대화로 잘 풀기를 바랍니다. 그 대신 쑹메이링 여사의 미국 활동은 내가 최대한 지원을 하겠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쑹쯔원은 만남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하는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미국 정부는 당신들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지원을 요청하는 소리만 하고 있지, 막상 일본군과의 전투 소식은 들리지 않아서 국민당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냐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장비와 물자가 부족한데…. 우리는 지금 간신히 버티고 있다는 걸 조지 씨는 잘 알잖습니까?”

“나야 여러분들의 상태가 어떤지 알지만 내가 미국의 관료는 아니지 않습니까? 미국의 관료들은 중화민국이 일본군을 상대로 선전을 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흠….”

“미국 정부의 관료들이 통 크게 지원할 수 있게 뭔가를 보여줘야 할 겁니다. 지금처럼 계속 밀리는 모습만 보인다면 미국은 그냥 혼자 힘으로 일본을 상대할 생각을 할 겁니다.”

“조지 씨, 우리한테 뭘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중화민국의 모든 힘을 다해서 지원물자를 받을 루트라도 개척을 하십시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물자를 지원하고 싶어도 보낼 루트가 없잖습니까?”

“버마 루트라도 확실하게 만들라는 말입니까?”

현재 중화민국에 파견된 미국 군사고문단에는 버마 전선에서 장제스의 정예 병력 50만 명의 말아먹은 조지프 스틸웰도 없다.

중화민국군과 영국군이 조금만 노력한다면 버마 루트는 충분히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인도 주둔 영국군도 숨통이 트일 것이다.

“예, 버마 루트라도 확실하게 확보하고 있어야 지원을 할 것이 아닙니까?”

“좋습니다. 그럼, 미국 정부의 태도 변화를 기대해 봐도 되는 겁니까?”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나는 단지 쑹메이링 여사를 도와줄 수 있을 뿐입니다.”

“그것만이라도 제대로 도와주십시오. 그렇게만 해준다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중화민국 철수 문제는 내가 신경을 써 보겠습니다.”

서로가 원하는 딜에 성공한 나와 쑹쯔원은 악수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그날 밤 김구 주석과 찰스 레머에게 쑹쯔원과 나눴던 대화 내용을 설명해 줬다.

* * *

“쒜 에 에 엑!”

한 발의 미사일이 하늘을 향해서 높게 솟아올랐다.

카삼 로켓을 바탕으로 미사일을 연구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대학교 연구실은 드디어 쓸만한 지대공 미사일을 만들어냈다.

“어떻습니까?”

“성능은 괜찮아 보이는데 단가가 문제 아니겠어요?”

“로켓은 고체연료를 사용하고 무유도 방식이어서 저렴하게 대량 생산이 가능합니다.”

“그럼, 저것들의 크기를 축소하면 다연장 로켓으로도 쓸 수 있다는 소리네?”

“예, 저것 말고도 조지 대장님께서 말씀하셨던 제트 엔진을 이용한 미사일도 만들어 봤습니다.”

독일이 개발한 V1 로켓과 소련의 주력 무기 중의 하나인 카튜사 다연장 로켓이 동시에 얻은 꼴이었다.

물론, 카튜사 다연장 로켓을 만들기 위해서 연구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제주도의 하늘을 방어하기 위해서 지대공 미사일을 만든 것이다.

우리가 개발한 미사일에 VT 근접 신관을 결합하면 일본 항공대의 전투기들은 모조리 격추될 것이다.

“문제는 미국으로 기술 교환을 하러 갈 사람이군.”

“예, 그게 문젭니다. 우리도 그쪽에서 몇 가지 얻어야 할 기술이 있는데 그동안 미국 정부가 우리 연구원들을 가만히 놔둘지가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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