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제거해야 하나? (1)
2년 만에 다시 돌아온 충칭은 둘리틀 폭격대의 도쿄 폭격에 분노한 일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도시 곳곳이 생각 이상으로 처참하게 파괴된 상태였다.
우리가 도착하기 얼마 전까지도 폭격을 당했었는지 아직도 복구를 못 한 곳이 많이 보였고 심지어는 치우지 못한 시체도 가끔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될 줄 알고 미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바이중으로 옮긴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이거 생각 이상으로 일본군의 보복 공세가 엄청났었나 본데요?”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내가 충칭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COI 극동 담당자 찰스 레머는 중화민국 주중 미국 군사고문단의 숙소를 향해 가면서 단 한 번의 보복 공세에 이렇게 수도가 초토화되다시피 할 정도로 허약한 중화민국군이 과연 일본군을 붙잡아 줄 수 있을지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조지 씨, 객관적으로 봤을 때, 중화민국이 일본군을 붙잡아 줄 수는 있을까요?”
“그건, 중화민국군이 어느 정도 외부 지원만 받을 수 있다면 방어는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조지 씨, 하지만 아무리 충칭이 임시 수도라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당할 정돈데…. 그게 정말 가능할까요? 솔직히 우리가 너무 큰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미국 정부 관계자들이 걱정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정말로 중화민국이 일본 육군을 붙잡아 줄 수 있느냐?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 중화민국에 왔지만, 확실히 미국 정보 관계자들은 중화민국군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레머 씨, 현재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군의 발목이라도 잡아줄 수 있는 군대는 오직 중화민국 군대밖에는 없습니다.”
“흠…. 이거 영 믿음은 가질 않고 점점 불안한 감정만 커지네요.”
“그렇게만 보지 말고 어차피 현재 상황에서 중화민국군밖에는 대안이 없으니까 최대한 지원을 해서 끝까지 일본군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져 주기를 바라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뭐, 일단 알겠습니다. 중화민국의 국민당도 만나보고 공산당도 만나보고 나서 결정하죠.”
“공산당은 웬만하면 믿지 마십시오. 그들은 일본군과 절대로 싸울 사람들이 아닙니다.”
“아니, 왜요?”
“내가 레머 씨한테 괜한 선입견을 줄 수 있으니까 일단 둘을 만나고 나서 다시 이야기합시다.”
“내가 보고서를 작성하기 전에 그 이유를 꼭 말해 주십시오.”
“하하,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COI 극동 담당자인 찰스 레머는 군사고문단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COI가 중화민국에 파견한 직원들을 만나고 바로 주중 미국대사관으로 이동했고, 나는 시간이 조금 남아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충칭에 파견한 사람들을 만나러 갔다.
“어! 아니, 김구 주석님이 충칭에는 어쩐 일로 계시는 겁니까?”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견 사무국에는 바이중에서 한창 새로운 광복군육성과 주중 동포들을 보호하고 있어야 하는 김구 선생이 있었다.
“아! 조지 대장! 일이 좀 있어서 장제스 총통과 마무리를 지어야 할 일 때문에 충칭에 왔습니다. 그런데, 조지 대장은 어쩐 일로 충칭에 온 겁니까?”
“예, 저는 미국 정부의 일 때문에 잠시 들렸습니다.”
“그래요? 마침 일이 있어서 미국으로 파견해야 할 사람이 있었는데 잘됐군요.”
“미국으로 사람을 보내요? 왜요? 임시정부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혹시, 하와이의 한길수라는 사람을 압니까?”
한길수.
1930년대부터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독립운동가다.
그리고,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 이중 스파이로 활동하면서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을 미국에 알렸지만, 그때는 주목받지 못했고 전쟁이 발생한 후에야 미국 정보기관의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예, 압니다.”
“그 사람 때문에 미국의 우남과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이승만이 임시정부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문제가 생깁니까?”
김구 주석은 말을 하기에 좀 복잡한 내용이 숨겨져 있는지 침통한 표정으로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우남이 한길수를 일본의 간첩으로 몰면서 미국 내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이승만은 이미 임시정부와 결별을 한 상태지 않습니까?”
“그것은 우리 임시정부와 사이의 결별이지요. 우남이 알고 있는 미국 내의 유력인사들이나 우남을 추종하는 동포들은 그 사실을 모르지 않습니까?”
“아!”
나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 정부와의 외교 관계만을 신경을 쓰다 보니까 이승만이라는 사람을 잠시 신경을 쓰지 못했다.
이승만은 윌슨 대통령의 제자라는 타이틀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었다는 것을 내세워서 이미 미국 국내에 상당한 인맥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이승만을 추종하는 미국 동포들의 숫자도 상당했다.
“우남의 뒤를 봐주는 미국 인사 중에 한미협회 회장 크롬웰이라는 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자가 계속 우리 임시정부와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메시지를 미국 국무부에 보고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는 루스벨트 대통령과 바로 통하는 사이지 않습니까? 이승만이 누구한테 로비한다고 해서 그게 루스벨트 대통령 정부에 먹히기나 하겠습니까?”
“조지 대장, 미국은 공산당도 있고 사회당도 있지만, 공산주의자들을 극도로 싫어하는 반공주의자들도 많다고 하던데 그걸 몰랐습니까?”
모를 리가 있나?
불과, 얼마 전까지도 반공주의자들의 우두머리 격인 연방수사국장인 에드거 후버와 만났는데.
“벌써, 이승만이 반공주의자들과 연결돼서 일을 꾸미고 있습니까?”
되묻는 나를 김구 선생이 알면서 왜 막지 않았냐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아! 선생님, 알고는 있었지만 이번에 일본 해군을 끝장낼 작전을 진행하느라 한동안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내 변명 같은 대답을 들은 김구 선생은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다시 나를 보면서
“커험, 한길수는 미국을 위해서 일하는 스파이가 아니고 일본을 위해서 일하는 스파이라는 식으로 모함을 한 모양이에요. 그리고, 계속해서 자신의 지인들을 통해서 우리 임시정부와 다른 메시지들을 미국 정치인들에게 말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냥, 조용히 죽여 버릴 걸 그랬나? 에드거 후버 연방수사국장을 상대하느라 내 주위 안전을 신경을 쓰다 보니까 이승만 쪽의 감시가 조금 약해진 모양인데….’
“그래서, 선생님은 어떡하실 생각이십니까?”
“중화민국에 있는 우리가 뭘 어떡하겠어요? 우사가 좀 더 노력해주는 수밖에는 없지요. 다만, 우사 혼자서 일하기는 힘들 것 같아서 임시정부에서 일을 도울 사람 몇 명을 미국으로 보내고 싶은데 가능하겠어요?”
“내가 일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갈 때 같이 데려가겠습니다. 준비해놔 주십시오.”
“그렇게 해주면 내가 좀 편하겠군요. 요즘은 장제스 총통이나 영국 대사관 쪽도 우리 임시정부한테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비협조적으로 나와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장제스 총통은 또 왜요?”
“중화민국 조사통계국 다이리 국장이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어요.”
‘미국이나 중국이나 임시정부의 일을 방해하는 놈들 천지네. 이 자식은 또 무슨 헛소리를 하고 다녔다는 건지?’
슬슬 짜증이 났다.
이승만이 없어도 대한민국은 독립할 수 있고 중화민국의 장제스가 없어도 카이로회담에서 대한민국의 독립이 결정될 것이다.
그런데, 제 놈들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임시정부의 일에 훼방을 놓는지 모르겠다.
“다이리는 또 무슨 소리를 하고 다닌다는 겁니까?”
“이렇게 갑자기 일본군의 어마어마한 보복 공격을 받은 이유가 우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더군.”
기가 차지도 않았다.
물론, 중화민국 정부 입장에서는 미국 정부가 정보 통제를 하는 바람에 일본군의 보복 공격에 대해서 제대로 대응을 못 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당장도 일본군과 매일 전투하는 처지에 그런 소리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일본군의 공격은 그전에도 매일 있었다.
“그 정도면 굳이 장제스 총통을 만날 필요까지는 없지 않습니까?”
“단지 그것뿐이라면 나도 굳이 충칭까지 오지는 않았을 거야. 처음 광복군이 중화민국군과 함께 일본군과 싸운다는 약속 때문에 외교적 승인을 했는데 지금은 그런 것이 없으니까 임시정부의 외교적 승인을 취소하겠다고 하더군.”
“뭐라고요? 아니 미친놈들도 아니고 외교 승인을 어떻게 그런 식으로 이랬다저랬다 합니까?”
“나도 그것이 좀 어처구니가 없어서 따졌더니 중화민국 쑨원이 주장한 삼민주의를 함께하겠다고 하면 외교 승인을 그대로 유지할 생각도 있다고 하더군.”
‘잠깐! 장제스가 벌써부터 전후 처리를 생각하는 건가? 중화민국 국민당 조사통계국이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해군이 거의 끝장났다는 것을 알아냈다는 건가?’
“국민당 놈들이 언제 그랬습니까?”
“왜? 혹시, 조지 대장은 뭐라도 집히는 것이라도 있는 거요?”
“예, 일본 해군은 이제 거의 끝났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해전에서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습니다.”
그제야 김구 선생은 의문이 해결됐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래서 그랬군. 그런데, 왜 갑자기 난데없는 삼민주의를 꺼낸 거지?”
“장제스는 벌써 전후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전후? 아직도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데…. 더군다나 일본군을 간신히 막고 있는 처지인데…. 아! 설마….”
의문이 풀린 김구 선생은 중화민국의 장제스 총통이 어떤 이유때문에 이렇게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압박하는지 알아낸 것 같았다.
“그 설마가 맞을 겁니다. 장제스는 대한민국을 온전히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건 절대로 안 돼. 전쟁이 끝나면 우리 민족은 반드시 독립을 해야 해.”
“주석님, 우리가 우리 힘으로 직접 본토를 수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마 연합국의 신탁통치를 받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안된다니까! 벌써 30년이 넘는 시간을 일제 밑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면서 살아온 동포들이야!”
“우리 광복군이 모두 죽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죽어서 대한민국이 독립할 수 있다면 나부터 앞장서서 죽으러 가겠네.”
이러면 절대 안 된다.
연합국은 결코 정의로운 나라들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좀 더 많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서 전쟁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우리 입장에서만 이야기하면 쉽게 이뤄질 것도 틀어질 수밖에 없었다.
“주석님. 지금 일본군과 미군, 그리고 중화민국군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수백만이 싸우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서 우리는 겨우 이만 명의 군인이 참전하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그래서? 힘이 없는 사람들은 힘 있는 자들의 말에 무조건 따라야만 한다는 소린가?”
“그 소리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협상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보이는 것보다 좀 더 유연하게 대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말인가?”
흥분해서 높아진 목소리로 김구 선생은 나한테 쏘아붙였다.
“우리가 본토 수복을 완벽하게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조용히 따르는 척해야 합니다.”
“조지 대장, 그건 무슨 소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