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 이소로쿠의 분노
1942년 6월 4일은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에게는 몹시도 가혹한 날이었다.
자신이 계획했던 모든 것이 실패했고 본인은 느끼지 못했지만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의 패배가 사실상 결정된 시간이었다.
“사령 장관님, 순양함 나가라의 보고에 따르면 항공모함 히류마저 피격돼서 현재 불타고 있다고 합니다.”
“뭐라고? 나구모는? 도대체 나구모는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그게….”
나구모 주니치 제독을 위해서 뭐라고 변명이라도 해보려고 했던 참모들은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표정을 보고는 변명하려고 했던 입을 서둘러 닫았다.
“지금부터 나구모 주니치 중장의 지휘권을 박탈한다. 더는 그 빠가에게 함대를 맡길 수가 없다.”
“저…. 사령 장관님, 아직은 전투 중인데….”
“필요 없다. 나구모 주니치에게 지휘를 계속 맡겼다가는 남은 함대마저 잃을 것 같다.”
‘MI’ 작전의 모든 것을 망쳐버린 나구모 주니치 제독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찬 야마모토 이소로쿠 사령장관은 만약 눈앞에 나구모 주니치 제독이 있었다면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북방부대는? ‘AL’ 작전을 지원하러 갔던 5함대는 아직도 연락이 안 되나?”
“어제, 미 해군 잠수함들의 매복 공격을 받고 있다는 연락을 받은 이후로 아직….”
“칙쑈! 왜 내 옆에는 전부 바보 멍청이들만 있는 거냐? 어느 한 놈도 내가 계획한 작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거냐?”
제5함대 사령관인 호소가야 모시로 중장이 지휘하는 북방부대는 항공모함이 두 척이나 포함된 중요한 함대였다.
나구모 주니치 제독이 제1 항공함대를 날려 먹어버린 지금 일본 해군에는 엄청나게 귀중한 전력인데 5함대마저 소식이 없다는 소리에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카와세 시로에게 5함대가 공격받았다고 하는 곳을 철저히 수색하라고 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빨리 알아내라고 해!”
“예, 각하, 알겠습니다.”
5함대가 주축이었던 북방부대의‘AL’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서 본대에서 따로 지원하기 위해서 파견한 카와세 시로 제독의 호위함대에게 연락이 사라진 5함대의 행방을 빨리 찾으라고 재차 명령했다.
“곤도는 아직도 미 해군 태평양 함대의 항공모함을 못 찾은 건가?”
“예, 각하, 아직….”
“도대체 일들을 어떻게 하는 거야? 일이 벌어진 지가 언젠데, 아직도 미군 항공모함을 못 찾는 거야?”
연합함대 사령부 참모들은 ‘MI’ 작전의 실패를 지켜보면서 분노에 치를 떠는 야마모토 이소로쿠 사령 장관에게 뭐라고 변명도 할 수가 없었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뭐가 문제였을까?”
연합함대 참모장인 우카키 마토메 소장은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장관의 혼잣말을 잘못 듣고 자기에게 묻는 줄 알고 속없이 대답했다.
“첫째, 우리 함대에 레이다가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실패의 요인이었고, 둘째 워게임에서 드러났던 문제점을 수정하지 못한 것이….”
“그만! 입 닥쳐라!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미군 항공모함만 찾는다면 전세를 다시 역전 시킬 수 있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 연합함대에는 세계 최강의 전함 야마토가 있다.”
“예, 맞습니다. 야마토를 앞세워서 전세를 역전 시켜야 합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이 자기를 비난하는 것 같은 말에 버럭 화를 내자 우카키 마토메 소장은 바로 꼬리를 내렸다.
자정을 막 넘긴 6월 5일 새벽 0시 15분,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장관은 곤도 노부타케 중장에게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곤도, 아직도 적을 찾지 못했나?”
“예, 사령 장관님, 아직…. 아무래도 미 해군은 전력 열세를 깨닫고 전투를 피하는 것 같습니다.”
“음…. 그럼, 어쩔 수 없지. 지금부터 적들에 대한 추격은 중단한다. 대신,”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미 해군 태평양 함대의 항공모함을 파괴하는 것은 이미 실패했다고 깨닫고 다른 명령을 했다.
“작전상 미드웨이를 점령해야 하겠지만 현재 연합함대의 상태로는 점령한다고 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 같다. 그러니까 미드웨이를 미군도 사용할 수 없게 만들어라.”
“예, 사령 장관님,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미드웨이가 불타는 모습을 사진을 반드시 찍어라.”
“예, 알겠습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의 명령을 받은 곤도 노부타케 중장의 함대는 미 해군 항공모함의 추적을 중단하고 미드웨이로 기수를 돌렸다.
곤도 노부타케 중장에 미드웨이 파괴를 명령한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장관은 다시 뭔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봐! 우카키!”
“예, 사령 장관님.”
“카와세 시로는 아직도 연락이 없나?”
“저…. 그게…. 사령 장관님, 아무래도 5함대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수색이 끝나는 대로 바로 알류샨 열도의 미군 기지를 포격하라고 해. 그리고, 반드시 포격으로 불타는 미군 기지의 사진을 찍어서 가져오라고 해라.”
“예, 알겠습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자신이 구상했던 ‘MI’와‘AL’ 작전은 이미 실패했고 일본 연합함대가 자랑하는 항공함대의 전력도 3분의 1토막 났다고 생각하고 후속 조치를 하기 시작했다.
“우카키! 우카키!”
“예, 사령 장관님.”
“연합함대의 모든 병사와 장교들의 입단속을 시켜라.”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카키 마토메 참모장이 명령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되묻자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다시 화를 냈다.
“왜? 내 주위는 전부 빠가들만 있는 거냐? 우카키, 제발 생각을 좀 하고 살아라.”
“죄송합니다. 사령 장관님.”
“우리 연합함대는 미드웨이 전투에서 승리했고 알류샨 열도에서도 승리했다. 그리고, 우리 연합함대는 여전히 제1 항공함대가 건재하고 5함대도 건재하다.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나?”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장관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오늘 미드웨이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도 몰라야만 한다는 소리였다.
“저…. 사령 장관님, 함대에는 육군에서 지원 나온 병력도 탑승해 있습니다. 그들은 어떡할까요?”
“예정된 작전대로 상륙지점에 내려줘라. 그리고, 상륙지점에서 앞으로 영원히 이동을 시키지 마라.”
“예,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함대 내에 모든 함장과 지휘관들에게 내 명령을 전달해라.”
“예, 사령 장관님.”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장관을 비롯한 일본 해군의 최고 지휘부는 미드웨이 해전의 참혹한 전과를 철저하게 은폐했고 전략적으로 아무런 가치도 없는 미드웨이와 알류샨 열도를 일본 해군이 점령했다고 국민들에게 선전했다.
그리고, 간신히 살아남은 제1 항공함대의 조종사들과 승조원들은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모두 가둬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연합함대의 작전을 지원 나온 육군 병사들은 태평양 한가운데 외딴섬에 던져 버렸다.
* * *
하와이 진주만 태평양함대 사령부.
“제독님! 제독님!”
미드웨이 전투에서 승리했고 비록 항공모함 요크타운을 잃었지만, 나머지 16, 17 기동부대는 무사히 전장을 이탈했다는 소식에 안도하고 잠시 쉬고 있던 니미츠 제독을 정보참모인 레이튼 대령이 불렀다.
“레이튼, 나 여기 있다.”
“제독님….”
“왜? 무슨 일이 있나?”
레이튼 대령은 뭔가 급하게 보고를 할 것이 있는데 막상 얼굴은 허탈한 표정을 지은 채 니미츠 제독에게 선뜻 보고하지를 못했다.
“제독님, 미드웨이 기지와 알류샨 기지가 포격을 받았습니다.”
“뭐라고? 그럼, 혹시 미드웨이와 알류샨에 일본군이 상륙했나?”
“그건 아닙니다. 그런데, 차라리 상륙이라도 했다면….”
“레이튼 대령,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러는 거야? 속 시원하게 말을 해봐!”
“미드웨이 기지가 일본 해군의 포격으로 사상자가 어마어마하게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알류샨 열도의 기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꽝!”
니미츠 제독은 정보참모 레이튼 대령의 보고에 분을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쳤다.
“일본 해군은 이제 진짜 끝을 보겠다는 건가? 설마, 본토를 공격하는 것은 아니겠지?”
니미츠 제독은 당장 크게 피해를 본 미드웨이나 알류샨보다는 일본 해군의 본토 공격이 더 걱정됐다.
“제독님, 불행하게도 이번에 일본 해군의 암호체계가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아직 확실한 정보를 얻지 못했습니다.”
“암호체계는 암호체계이고 레이튼 대령의 생각은 어때? 일본 해군이 어떤 선택을 할까?”
레이튼 대령은 니미츠 제독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동안 머릿속으로 일본 해군의 작전 스타일과 연합함대 사령관인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성향을 대비시켜서 분석하고 천천히 대답했다.
“제독님께서 제 생각을 묻는 것이라면, 저는 이번에 벌어진 일은 일본 해군의 마지막 발악일 것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일본 해군의 마지막 발악?”
“예, 제독님, 그렇습니다.”
정보참모인 레이튼 대령의 희망 섞인 분석이 나오자 니미츠 제독은 조금은 안도하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레이튼, 어떤 근거로 그런 분석이 나온 거지?”
“이번에 일본 해군 연합함대는 무려 6척의 항공모함을 잃었습니다. 제가 아는 일본 해군은 이 사실을 분명히 숨길 겁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실을 밝히고 육군 밑으로 스스로 들어갈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주도권을 육군이 갖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 사실을 숨길 것이라는 말인가?”
“예, 하지만 제독님, 전쟁의 주도권을 놓치기 싫다기보다는 일본 내의 정치 역학에서 밀리기 싫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정치 다툼 때문에 모든 것을 숨길 것이다?”
“예, 아마 일본의 왕도 해군과 같이 패전에 관련된 모든 것을 숨길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육군의 독주를 전혀 제어하지 못할 테니까요.”
레이튼 대령의 분석을 들은 니미츠 제독은 레이튼 대령의 분석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조지의 정보 보고서에도 일본 육군과 해군의 다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적혀있었다.
일본 해군은 미드웨이 해전의 패배로 항모기동부대를 잃은 이후에도 육군의 눈치를 보면서 그전에 세워뒀던 대전략을 그대로 밀어붙였다.
‘MO’ 작전(동부 뉴기니 완전 장악)과 ‘FS’ 작전(호주 동쪽 남태평양의 도서 지역 장악)의 큰 골자를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전략 수행에 반드시 필요한 핵심 전력인 항모기동부대가 3분의 1토막이 나는 바람에 미드웨이 해전 이후로 펼쳐진 대부분의 작전은 항모의 지원을 상당 부분 내지는 아예 배제하는 것을 전제로 실행해야 했다.
그리고, 히로히토 일왕까지 개입한 미드웨이 패전 은폐 공작은 철저했다.
해군과는 적인 일본 육군과 내각의 고위 관료들도 몇 년 후 벌어진 필리핀 해전에서 참패를 당한 이후에야 겨우 소식을 들었을 정도였다.
“그럼, 레이튼 대령, 우리는 어떡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