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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5분 (160/225)

운명의 5분

“적이다! 모두 전투 준비!”

이미, 일본해군 항공대의 전투기와 폭격기들이 미드웨이를 공습하기 위해서 찾아올 것을 알고 있었던 미드웨이 주둔 항공대의 조종사들은 비록 자신들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겁내지 않고 용감하게 일본 전투기들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27기의 미군 항공대의 F2F 버펄로 전투기와 F4F 와일드캣 전투기의 조종사들은 목숨을 걸고 100여 기가 넘는 일본 항공대와 전투를 벌였고 수적 열세와 기량의 차이로 어느새 하나둘씩 전장에서 지워져 나갔다.

“이 정도면 정리가 끝난 것 같다. 지금부터는 미드웨이의 비행시설과 할당된 목표를 공격해라!”

1차 미드웨이 공격대를 이끌고 있던 도모나가 대위의 명령이 떨어지자 일본 항공대 조종사들은 미드웨이의 연료저장시설, 병원, 창고, 그리고 수상비행기 운용시설과 활주로에 대한 폭격을 시작했다.

“꽈 광!”

“펑! 펑! 펑!”

“꽝!”

“펑! 펑!”

하늘 위에서는 일본 항공대의 폭격기들이 폭탄을 떨구고 지나갔고 미드웨이에서는 대공포들이 한 기의 일본군 전투기와 폭격기를 더 잡겠다는 각오로 대공포를 미친 듯이 쏘아댔다.

미드웨이 1차 공격대를 지휘하던 도모나가 대위는 결렬하게 저항하는 미드웨이 육상 대공포들의 포격으로 출동한 전투기와 폭격기들이 하나둘씩 격추되자 이빨을 앙다물고 자신의 공격대가 미드웨이를 끝장내지 못한 것을 분해했다.

“칙쑈! 이건 진주만 때하고는 완전히 다르잖아? 뭐가 이렇게 힘든 거야?”

도모나가 대위는 진주만 공습에도 참여했던 조종사로서 진주만 공습은 미군의 저항이 전혀 없었던 상태에서 진행됐기 때문에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이곳 미드웨이는 진주만과는 완전히 달랐다.

1차 공격대만으로 미드웨이를 평정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한 도모나가 대위는 본대에 2차 공격이 필요할 것 같다고 무전을 보냈다.

“미드웨이 육상 기지의 격렬한 저항으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연료가 부족해서 1차 공격대는 이만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도모나가 대위! 미드웨이에 대공포들이 그렇게 많이 배치돼 있나?”

“예, 섬 곳곳에 촘촘하게 대공포 진지를 건설해 놓았습니다.”

“설마…. 미군은 우리가 공격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알았다. 일단 복귀해라.”

“예.”

도모나가 대위와 통신을 끝낸 겐다 중좌는 나구모 주니치 사령관에게 미드웨이에 대한 1차 공격이 실패했고 추가 공격이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사령관님, 미드웨이 1차 공격대가 제 역할을 못 한 것 같습니다. 2차 공격이 필요하다고 건의해 왔습니다.”

“미드웨이에 대한 2차 공격이 필요하다고?”

“예, 미드웨이 전체를 대공포로 도배를 해놓았다고 합니다.”

“칙쑈! 혹시…. 설마, 아니겠지?”

나구모 주니치 제독은 워게임 당시에 일본해군 제1 항공함대가 계속해서 패배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나구모 주니치 제독의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럼, 미드웨이 2차 공격대를 준비해라.”

“사령관님, 그럼 미 해군 함대의 출현에 대비해서 갑판에 어뢰로 무장한 채로 대기하던 전투기들은 어떡합니까?”

“흠….”

“어뢰로 무장한 전투기들은 일단 격납고로 집어넣고 1차 공격대가 돌아오면 다시 투입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참모장 구사카 류노스케 소장의 의견에 나구모 주니치 제독은 겐다 중좌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네 생각은 어떻냐고 물었다.

“1차 공격대는 이미 미드웨이에서 격전을 치렀을 텐데…. 굳이, 다시 한번 보내실 이유가 있을까요?”

“이미, 미드웨이를 한번 다녀왔으니까 미드웨이를 찾기 위해서 헤맬 이유는 없을 것 아니냐?”

구사카 류노스케 참모장이 나구모 주니치 제독을 대신해서 대답하자 그제야 나구모 주니치 제독은 결정을 내렸다.

“그렇군. 이미 한번 다녀온 조종사들이 미드웨이로 향하는 길을 훨씬 빨리 찾겠지. 갑판의 어뢰로 무장한 전투기들은 격납고로 집어넣고 1차 공격대가 돌아오면 재무장을 시켜서 한 번 더 미드웨이를 공격하라고 해.”

그리고, 그 시각, 처음 두 척의 일본해군 항공모함밖에는 찾지 못했던 미군 정찰기들이 나머지 두 척 항공모함까지 마저 찾아냈다.

미드웨이 동북방 200km 해역에서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던 태평양 함대의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의 함재기 119기가 갑판을 박차고 이륙했다.

그러는 사이 일본해군 항공대의 공습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비행장을 비워야만 했던 미드웨이에 주둔 중이던 육군과 해병항공대의 뇌격기와 폭격기들이 경험 부족으로 서로 뿔뿔히 흩어지면서 전투기들의 호위도 받지 못한 채 일본해군의 항공모함 주위로 나타났다.

“저것들은 뭐지? 어디서 나타난 거야?”

“방향을 봤을 때 미드웨이 방향 같습니다.”

“미드웨이에서 출격한 뇌격기라고?”

“예, 그런 것 같습니다.”

나구모 주니치 제독은 겐다 중좌의 대답을 들으면서 속으로 안도에 한숨을 내쉬었다.

“빨리 저것들을 정리하고 미드웨이로 2차 공격을 보낼 준비를 해라.”

“예, 제독님.”

일본해군 제1 항공함대의 상공에는 상시 전투 감시를 위해서 항상 12~20기 사이의 전투기가 배치되어 있었다.

미드웨이에서 출발한 미군 항공대의 폭격기와 뇌격기들은 전투기는 어디다 버리고 왔는지 호위를 전혀 받지 못한 채로 계속해서 독자적으로 제1 항공함대 항공모함 공격을 시도하다가 전투 감시 중인 0식 함상 전투기에 차례로 요격을 당해서 바닷속으로 처박히는 신세가 되고 있었다.

“제독님, 미군 함대를 찾았습니다.”

“찾았어? 그럼, 결국 미 해군 태평양 함대도 이미 이곳에 있었다는 건가?”

“제독님,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제1 항공함대는 항공모함이 4척입니다. 그에 비해서 미 해군 태평양 함대는 아무리 많아 봐야 2척이 끝일 겁니다.”

“그럴까? 그렇겠지?”

미드웨이로 출발하기 전, 4일간 벌였던 워게임에서 처음으로 야마모토 이소로쿠 사령장관의 작전에 결함이 있다고 발견됐던 부분이 바로 미국 항공모함의 출현이었다.

하지만, 나구모 주니치 제독은 일단 수적 우위를 믿기로 했다.

“예, 당연합니다. 태평양 함대의 나머지 항공모함들은 분명히 툴라기에서 목격됐다고 했습니다.”

나구모 주니치 제독은 우려했던대로 미국의 항공모함이 등장하자 겁을 집어먹을 뻔했지만, 참모장인 구사카 류노스케 소장의 말을 듣고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켰다.

“정찰기들이 미 해군 함대를 찾았다면 근처에서 미 해군 함대의 항공모함도 찾을 수 있을 거다. 빨리 미 해군의 항공모함을 찾아라. 그래야 우리가 먼저 선공을 할 수 있다.”

“예, 제독님.”

오전 8시 10분경엔 일본 제1 항공함대의 정찰기도 미군 함대를 발견한다.

뒤이어서 또 다른 정찰기도 미국 태평양 함대의 항공모함을 발견했다고 보고를 했다.

그사이에 두어 번 정도 미드웨이에서 출격했던 미군 항공대 뇌격기와 폭격기들이 일본 제1 항공함대의 항공모함을 폭격했지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

그러나, 몇 차례에 걸쳐서 미드웨이에서 출격한 육군과 해병항공대의 공격에 노출된 제1 항공함대의 항공모함들은 회피 기동을 하느라 시간을 허비했고 함상기들을 발진시킬 수 있는 시간을 놓치고 있었다.

“다들 뭐 하고 있나? 빨리 갑판에서 대기 중이었던 함재기를 격납고로 집어넣고 귀환한 항공기들을 착함을 시켜야 할 것 아니냐?”

미드웨이 1차 공격대는 연료가 바닥이 난 상태였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착함을 해야 했다.

그런데, 갑판에는 미 해군 태평양 함대를 발견하는 즉시 공격하기 위해서 어뢰를 장비한 채로 출격에 대비하고 있었던 함재기들이 아직도 그대로였기 때문에 서로 뒤엉켜서 정신이 없었다.

“갑판에 있는 함재기들은 빨리 그냥 격납고에 집어넣으라니까. 빨리 서두르라고.”

“좀 전에는 미드웨이로 출격한다고 폭탄을 설치하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멍청이들아! 그냥 격납고로 집어넣으라고. 일단 격납고에 집어넣고 격납고에서 폭탄과 어뢰 교체 작업을 하라는 말이다.”

“격납고 내부는 너무 비좁아서 교체 작업을 하기가 힘듭니다.”

“퍽!”

“악!”

“대일본해군이 겨우 이 정도인가? 우리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아직도 작업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어떡하든지 작업을 해보겠습니다.”

작업이 어렵다고 보고를 하던 군조는 정강이를 걷어차이고 나서야 어쩔 수 없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갑판에서 대기 중이었던 공격기들은 미 해군 함대 공격용 어뢰를 제거하고 미드웨이를 공격하기 위한 지상 공격용 폭탄으로 무장을 교체하던 도중에 다시 폭탄을 제거하고 미 해군 항공모함을 공격하기 위해서 어뢰 교체에 들어갔고 미드웨이에서 귀환한 1차 공격대는 겨우 착함을 마무리 짓고 연료 재공급과 재무장에 들어갔다.

일본해군 제1 항공함대의 모든 항공모함의 갑판과 격납고는 아수라장으로 변해갔다.

분명히 진주만을 떠나기 전에 니미츠 제독과 함께 확실한 정보를 바탕으로 일본해군 제1 항공함대를 상대하기 위한 철저한 작전 연습까지 마친 상태로 미드웨이 전투에 출전했지만,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듯이 머리가 구상한 일을 손발이 해주지 못하면 그건 헛발질밖에 되지 않는다.

미 해군 16, 17 기동부대와 미드웨이에서 출격한 공격기들이 딱 그런 경우에 해당됐다. 다들 대규모 전투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각기 따로 놀면서 일본해군 제1 항공함대에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은 결코 일본 해군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나구모 주니치 제독의 명령으로 최초 무장 변경이 지시된 시간은 7시 15분, 그리고 대지용으로 바꾸고 있던 무장을 다시 대함용으로 바꾸라는 명령 번복은 8시 40분에 이루어졌고 그 작업이 완료되어 출격 준비가 된 것은 10시 20분이 조금 넘어서였다.

즉, 1시간 40분 동안, 제1 항공함대의 모든 항공모함의 갑판과 격납고는 아수라장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니, 좀 더 길게 본다면 처음 나구모 주니치 제독의 무장 교환 명령이 떨어진 7시 15분부터 10시 20분까지의 3시간 동안 언제든지 미 해군 폭격기들의 폭탄이 단 한 발이라도 떨어진다면 격납고에서 유폭이 일어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틈을 노리고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의 갑판을 이륙한 돈틀리스 급강하 폭격기들이 제1 항공함대 항공모함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적기 급강하! 적기 급강하!”

견시수의 날카로운 외침이 들리자 함대 상공이 텅 비었다고 깨달은 대공포들이 미친 듯이 포화를 함대 상공에서 떨어지는 중인 돈틀리스 급강하 폭격기에 퍼부었다.

“펑!”

“퍼벙!”

“펑!”

그러나, 대공 포화를 뚫고 항공모함으로 내리꽂히는 폭격기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막아라!”

“어떡하든지 저것들을 막아!”

“속도를 더 높이고 빨리 방향타를 꺾어라!”

사력을 다해서 회피 기동을 위한 변침을 시도했지만, 돈틀리스 폭격기들은 점점 더 가깝게 다가왔다.

“와우! 갑판에 홀인원 표시가 있는데요?”

“딱 좋은데…. 저것을 목표로 폭탄을 투하하자.”

“모두 들었지. 갑판에 홀인원 표시에 폭탄을 투하한다. 고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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