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웨이, 알류샨 (3)
안개가 자욱하고 파도가 거친 바다를 부챗살처럼 가르면서 수십 발의 어뢰가 항공모함 준요와 류조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어뢰 경보! 어뢰 경보! 어룁니다!”
예감이 좋지 않다고 몸을 떨면서 순양함 마야에 탑승하고 있던 견시수 하시모토는 어뢰가 다가오는 것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있는 힘껏 소리쳤다.
“남동쪽, 1,800m, 어뢰 수십 발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어뢰 경보! 남동쪽 1,500m 어뢰 다수 접근 중!”
함대를 향해서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어뢰 수십 발을 보면서 도저히 빠져나가기 힘들겠다고 판단한 견시수들이 가장 먼저 겁에 질리기 시작했다.
“칙쑈! 어쩐지 예감이 안 좋더니….”
“조용해! 하시모토, 이 바보 새끼야 네가 재수 없이 어뢰를 부른 거야.”
“내가 무슨 어뢰를 부릅니까? 처음부터 예감이 좋지 않다고 했잖습니까?”
“뭐? 이 새끼야! 너 이리 와!”
그리고는 예감이 좋지 않다고 말했던 견시수 하시모토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죽어! 이 바보 새끼야! 재수 없는 너 때문에 우리가 다 죽게 생겼어.”
“으악! 왜 나 때문이야?”
“네가 처음부터 재수 없이 예감이 안 좋다고 했잖아.”
“아니, 그게 무슨…. 으악! 그만 때려 개새끼들아!”
견시수들 간의 구타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어뢰는 회피 기동을 하는 항공모함과 수송선을 향해서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쫓아 왔다.
“꽈 광!”
“꽝! 퍼 엉!”
광복군 잠수함들이 사용하는 독일해군의 음향탐지 능동 어뢰의 경우 영국해군은 이미 파훼법을 개발해 냈지만, 일본해군의 경우는 달랐다.
영국해군은 독일 유보트로부터 자국 상선을 지켜내기 위해서 사활을 걸고 대서양에서 독일 유보트를 상대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파훼법을 찾았지만, 일본해군의 경우에는 광복군 잠수함과 그동안 겨우 두 번 만나서 박살이 난 것밖에는 없었기 때문에 음향탐지 능동 어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이야! 어째서 광복군 잠수함들이 먼저 공격하겠다고 했는지 이제 알겠군. 어뢰 성능이 완전히 죽이는데. 뭐 쏘면 쏘는 대로 전부 명중이네.”
미국 해군 태평양함대 가토급 4번 함 SS –215 그라울러의 함장 하워드 길모어 소령은 아이스크림을 쪽쪽 팔면서 전장을 감시하다가 광복군 잠수함들의 맹활약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악! 뻑큐! 함장님, 이러다가 우리는 진짜 설거지나 하면 어떡합니까? 항공모함과 수송선만 노리겠다고 하더니 어뢰를 무차별 발사를 하는데요?”
음탐 반장이 일본해군 함대의 함정에 어뢰가 명중되면서 들려오는 폭음에 귀를 부여잡고 눈을 찡그리면서 물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일본해군 함대는 자그마치 23척이나 되는데 설마 그중에 우리 먹잇감이 없으려고….”
헤드폰을 다시 낀 음탐 반장은 다시 귀에 들려오는 요란한 폭음소리 때문에 헤드폰을 다시 벗어 버리면서 인상을 썼다.
“함장님, 계속 터져 나가고 있습니다.”
“괜찮다니까. 광복군이 모두 잡아주면 더 좋지 뭘 그래?”
“그래도…. 우리도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헤드폰을 다시 쓴 음탐 반장은 잠시 폭음이 들리지 않자 이제야 드디어 광복군 잠수함들의 공격이 끝난 것을 알아챘다.
“함장님, 드디어 모든 어뢰를 다 쏟아부은 모양입니다. 조용합니다.”
“일본해군 함정들의 엔진 소리는 아직 남아 있나?”
“예, 다행히 아직도 요란스럽게 울리는 엔진들이 좀 있습니다.”
“좋아. 그럼 우리도 사냥을 시작해 보자고.”
체스터 니미츠 제독이 해군부 항해 국장으로 있으면서 병기국을 끝까지 괴롭히면서 업그레이드를 시킨 마크 14 어뢰가 드디어 일본해군 군령부가 알류샨 열도를 점령하기 위해서 파견한 함대 함정들의 몸통에 꽂히기 시작했다.
“잠망경 올려!”
“잠망경 올리겠습니다.”
“살아남은 놈들 위치 잡아봐.”
“예, 함장님.”
살아남은 일본해군 순양함과 구축함을 확인 태평양함대 소속의 가토급 잠수함들은 어뢰관을 개방하고 광복군 잠수함에 일차 공격을 받고 정신을 못 차리는 일본해군 함대를 향해서 닥치는 대로 어뢰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 * *
“제독님, 미드웨이에서 일본 함대를 찾았다고 합니다.”
“위치는? 위치는 우리가 예상했던 지점이었나?”
“예, 예상 지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지점에서 발견했습니다.”
“빙고! 좋았어. 이젠 됐다.”
니미츠 제독은 알류샨 열도 부근에서 벌어진 대결에서 일본해군 함대가 대파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미드웨이를 노리고 접근하고 있는 일본해군의 주력인 제1 항공함대가 발길을 돌릴까 봐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었다.
그런데, 알류샨 전투의 소식을 들었는지 아니면 듣고도 무시하는지 모르지만, 다행히도 계속 미드웨이 공격에 나서고 있었다.
“제이슨 중위, 왜 뭔가 걸리는 거라도 있나?”
일본해군 제1 항공함대가 다행히 미드웨이로 와줘서 속으로 엄청나게 기뻐하면서 고개를 돌렸더니 부관인 제이슨 중위가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그게 제독님, 저는 일본해군이 이해되지 않아서….”
“뭐가 말이냐?”
“알류샨 열도에서 아군 잠수함들에게 함대가 전멸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텐데….”
“제이슨.”
“예, 제독님.”
니미츠 제독은 전쟁이 끝나면 막내 사위가 될 제이슨 중위에게 이번 기회에 고위급 지휘관들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서 말을 해주려고 했다.
“내가 지금까지 겪어본 아시아인들은 대개가 이성보다는 감성에 움직이더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은 네 아버지인 조지 씨뿐이었다. 지휘관은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해야만 한다.
이번 경우처럼 작전이 이미 실패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냉정하게 계산해서 작전을 지속할 것인지 아니면 작전을 종료하고 다음 단계 예비계획을 실행할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그렇지?”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금 일본해군 지휘관들은 마치 자신들이 하면 무조건 될 것 같다는 감성에 세뇌가 된 경우다. 절대 이런 방식으로 부대를 지휘하면 안 된다. 우리에게는 다행이지만 일본해군은 이것으로 끝이다.”
“제가 봐도 그렇습니다. 제독님.”
“항상, 지휘관으로 냉정하고 이성적인 머리를 유지해라.”
“예, 제독님. 감사합니다.”
아버지인 조지가 보내온 다양한 자료에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정보까지도 있었다.
미드웨이 해전에 관한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시간대별로 일본해군 함대들의 위치와 출격하는 항공기 대수까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일본해군 지휘관들의 상황대처 스타일과 작전 지휘 능력 심지어는 지휘관들의 성격분석까지도 있었다.
아버지가 니미츠 제독에게 넘겨준 자료가 모두 현실이 된다면 이건 도저히 질래야 질 수가 없는 전투였다.
* * *
전날, 서로 수색하는 과정에서 가볍게 탐색전을 벌였던 미국 태평양함대 제16, 17 기동부대와 일본해군 제1 항공함대는 새벽부터 본격적인 전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결전의 날인 1942년 6월 4일, 미드웨이를 향해서 접근하고 있던 제1 항공함대에서는 새벽 2시 45분부터 미드웨이 공격대의 발진 준비를 시작했다.
나구모 주니치 제독은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장관이 구상한 작전 그대로 미드웨이를 공격하기로 했고, 새벽 이른 시간인데도 아카기, 카가, 소류, 히류, 등 4척의 항공모함과 총 244기의 전투기와 폭격기들은 미드웨이를 공격하기 위해서 준비를 하느라 정신들이 없었다.
그런 함대의 모습을 지켜보던 나구모 주니치 제독은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뭔가가 불길한 것이 느껴졌다.
‘4일간 펼쳐졌던 워게임에서 단 한 번도 우리 함대가 승리하지 못했는데, 과연 이 작전이 성공할 수 있을까?’
‘야마모토 이소로쿠 사령 장관님의 말씀처럼 미국 태평양함대는 항공모함을 동원한다고 해도 2척 항공모함밖에는 동원하지 못할까?’
‘모든 것을 떠나서 우리 함대가 먼저 공격을 받게 되면 답이 없는데 어쩌지?’
나구모 주니치 제독은 그렇지 않아도 소심한 성격인데, 워게임 결과마저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결과가 쏟아졌었기 때문에 승리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오로지 믿는 것은 ‘전쟁의 신’인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장관의 작전 계획과 미국 해군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유능한 일본해군 병사들을 믿는 수밖에는 없었다.
“사령관님,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십니까?”
제1 항공함대 참모장 구사카 류노스케 소장이 나구모 주니치가 온갖 인상을 다 쓰고 있자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 함대가 워게임에서 봤던 것처럼 적들의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설마 그럴 일이 있겠습니까? 워게임을 진행한 상대편은 우리 일본해군의 자랑스러운 젊은 장교들입니다. 저는 미국 해군에 그렇게 유능하고 영리한 장교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본해군의 불행이겠지만 사실 일본해군 항공함대의 지휘관 중 합리적이고 전략적인 지휘관은 오자와 지사부로 소장 밖에는 없었다.
나머지 지휘관들은 전략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인물들 뿐이었다.
“그리고, 워게임을 통해서 몇 가지 보완할 점도 찾아내지 않았습니까? 보완 대책만 제대로 시행해도 이번 작전은 별 탈이 없이 성공할 겁니다.”
“참모장 생각에는 그럴 것 같아?”
“예,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참모장 구사카 류노스케 소장의 말에 용기가 생겼는지 나구모 주니치 제독은 항공 참모를 불렀다.
“겐다 중좌! 겐다 중좌!”
“예, 사령관님. 부르셨습니까?”
“잊지 말고 함재기 출격은 반으로 제한해라.”
“반으로 제한…. 말씀이십니까?”
“그래, 함대 방어를 위해서 반드시 함재기 출격은 반으로 제한한다.”
“예, 알겠습니다.”
비장한 표정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은 나구모 주니치 제독은 겐다 중좌에게 미드웨이를 공격할 1차 공격대의 출발을 명령했다.
“1차 공격대의 준비는 끝났나?”
“예, 명령만 내려 주시면 바로 미드웨이를 공격할 수 있습니다.”
“좋다. 그럼 미드웨이 1차 공격대를 출발시켜라.”
“예, 사령관님.”
“그리고, 만약에 대비해서 함대 상공에 나머지 전투기들을 띄워라.”
“사령관님, 나머지 전부를 말입니까?”
“그래, 미군 항공모함 2척이 이곳에 나타난다면 100여 기가 넘는 전투기와 폭격기들이 날아오지 않겠나?”
“예, 알겠습니다.”
나구모 주니치 제독의 명령에 따라서 항공모함 아카기, 카가, 소류, 히류 4척에서 100여 기가 조금 넘는 일본해군 항공대의 전투기와 폭격기가 날아올랐고, 조금의 시간 차이를 두고 미드웨이 1차 공격대가 출격한 후 대함 방어를 위해서 어뢰로 무장한 108대의 함재기들이 대기상태에 들어갔다.
일본해군을 맞이하는 미국 태평양함대는 체스터 니미츠 제독의 명령대로 최우선으로 일본해군 항공모함들을 공격하기 위해서 일본해군의 항공모함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으로 여러 기의 정찰기를 날려 보냈다.
"항모 2척, 전함 2척을 포함한 다수의 함정으로 편성된 일본함대 발견, 방위 320도, 거리 180마일, 침로 140도, 속력 25노트 이동 중.”
“다시 한번 더 알린다. "항모 2척, 전함 2척을 포함한 다수의 함정으로 편성된 일본함대 발견, 방위 320도, 거리 180마일, 침로 140도, 속력 25노트로 이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