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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전 전야 (155/225)

결전 전야

하와이 진주만, 미국 해군 태평양함대 사령관실.

신임 사령관으로 부임한 니미츠 제독은 기습을 받은 진주만의 피해를 빠르게 수습하는 한편, 잠수함 전단을 동원해서 일본해군 3함대의 주요 활동 무대인 남양군도 항구와 시설, 그리고 필리핀과 오스트레일리아 침공을 방해하는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제독님, 무엇을 그렇게 보고 계십니까?”

태평양함대 정보부서인 하이포국에서 새롭게 올라온 보고서를 들고 들어온 제이슨 중위는 태평양이 그려진 지도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니미츠 제독에게 물었다.

“어? 언제 왔나?”

“조금 전에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무실에 들어오는 것도 모르시고 무엇을 그렇게 생각하고 계셨습니까?”

니미츠 제독은 부관인 제이슨 중위의 물음에 태평양이 그려진 지도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제이슨, 일본해군이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까? 아니지. 야마모토가 어떻게 움직일 것 같나?”

“제독님, 저 같은 초급 장교가 무엇을 알겠습니까마는 제가 야마모토라면 우리보다 유리한 전력을 이용해서 우리 해군을 한동안 빈사 상태로 몰아붙여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 것 같습니다.”

“제이슨,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냐?”

“저 말고 누구 다른 분 중에 그런 생각을 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래, 바로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무슨보고서냐?”

“예, 제독님. 하이포국에서 일본해군의 무전을 감청하고 분석해서 올린 새로운 보고서입니다.”

“그래? 어디 한번 보자.”

1. 일본해군 기동부대는 현재 인도양에서 철수 중이며, 다음 작전은 아마 태평양에서 실시할 것 같다.

2. 일본군은 오스트레일리아를 점령할 계획을 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3. 1번에서 좀 더 나가, 다음 작전은 라바울에서 출발한 부대가 산호해를 통하여 포트모르즈비를 공격하는 것으로 기동부대의 항공모함이 참가하지만 전부 참가하지는 않을 것 같다.

4. 3번에 이어서, 포트모르즈비 작전 다음으로 더 큰 작전이 예정된 것 같은데 일본해군의 정확한 목적이나 목표 대상 지역은 정확히 어딘지 현재는 모르겠다.

하이포국에서 올라온 보고서는 몇 줄 되지도 않았고 매우 간단하게 정리된 보고서였다.

“제이슨, 너도 이 보고서를 읽어봤나?”

“예, 제독님. 잠깐 확인을 위해서 파일을 열었다가 워낙 짧은 문장들이어서 바로 확인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 그럼, 넌 어떻게 생각하나?”

“저는 하이포국에서 올려보낸 보고서가 100% 신뢰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이미,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정보대에서도 이와 비슷한 정보를 받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그럼, 네 번째 항목, 하이포국에서 알아내지 못한 일본해군의 주된 공격 목표는 어디일까?”

“좀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야마모토라면 저는 미드웨이와 하와이를 노릴 것 같습니다.”

제이슨 중위의 말이 끝나자마자 니미츠 제독은 뭔가를 결심한 듯 군모를 챙기면서

“제이슨, 가자! 지금 당장 미드웨이 기지를 시찰할 준비를 해라!”

“예?”

“뭐하나? 나도 일본해군의 다음 공격 목표는 미드웨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내가 직접 가서 기지 시설들을 확인하고 방어 준비를 철저히 해놔야만 할 것이 아닌가?”

“제독님, 그럼 지금 바로 출발하시겠습니까?”

“그래, 일본해군이 언제 공격을 시작할지를 모르는데 준비를 서둘러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참모들도 함께 간다. 참모들도 준비하라고 해.”

“예, 알겠습니다. 제독님.”

부관 제이슨 중위는 니미츠 제독의 방을 나와서 바로 참모부에 연락하고 미드웨이 시찰을 위한 준비를 서둘렀다.

사실, 5월 초까지만 해도 미드웨이를 방어하는 병사들은 태평양의 모든 섬을 확보하려고 나선 일본군의 공격에 대비해서 고도의 경계 태세를 유지했지만 정작 별다른 큰 사건은 없어서 속으로 안심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사이에도 일본해군과 미국 태평양함대의 수뇌부는 미드웨이 부근에서 벌어질 일대 결전을 향하여 숨 가쁘게 움직이고 있었으나 미드웨이에서는 그런 자세한 사정을 알 수가 없었다.

미드웨이의 병사들은 대부분 자신이 지키고 있는 이 조그마한 섬이 자신들의 조국과 일본이 태평양의 패권을 놓고 모든 전력을 결집해서 일대 결전을 벌이는 결투장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가지기에는 미드웨이는 너무너무 작은 섬이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만한 가치는 별로 없어 보였다.

하지만, 미드웨이를 지키던 병사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1942년 5월 2일에 태평양함대 사령관인 체스터 니미츠 제독이 태평양함대의 참모들과 함께 갑자기 미드웨이로 시찰을 오면서 무참히 깨졌다.

카타리나 수상기에서 내린 니미츠 제독은 손바닥만 한 미드웨이를 하루 종일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미드웨이의 모든 곳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온종일 손바닥만 한 미드웨이를 훑어본 니미츠 제독은 제6 방어대대장 섀넌 중령에게 미드웨이를 지키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해 보라고 했다.

“새넌 중령, 미드웨이를 방어하기 위해서 지금 당장 내가 지원해줘야 하는 것들이 있나?”

“예, 몇 가지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자네가 필요하다고 말한 모든 것을 지원해준다면 일본군의 대규모 상륙공격을 막아내고 미드웨이를 지킬 수 있나?”

“예, 사령관님께서 제대로 지원만 해주신다면 미드웨이에서 성조기가 내려질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좋아. 고맙다.”

니미츠 제독은 만족한 표정으로 섀넌 중령에게 요구사항을 문서로 정리하여 정식으로 태평양함대 사령부에 제출하라고 말한 다음 자신의 힘이 닿는 데까지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참모들을 우르르 이끌고 다니는 해군 대장이 마치 기지의 중대장처럼 미드웨이의 방어시설을 하루종일에 걸쳐서 구석구석까지 꼼꼼하게 시찰하는 모습을 지켜본 미드웨이의 병사들은 태평양함대 사령부가 미드웨이를 결전장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고 뼈저리게 느꼈다.

섀넌 중령은 기지 사령관인 시마드 해군 중령과 의논하여 요구사항을 적은 문서를 5월 7일에 정식으로 제출했고 니미츠 제독은 약속을 지켰으며, 실제로 미드웨이에는 요구했던 것 이상의 지원을 해줬다.

* * *

체스터 니미츠 제독이 일본해군의 미드웨이 공격을 예상하고 미드웨이의 시설을 점검하고 철저한 방어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일본해군 군령부는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장관과 함께 연합함대의 기함인 전함 야마토의 함상에서 ‘MI’ 작전에 참여하는 주요 지휘관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MI’ 작전에 대한 워게임을 실시하기 위해서 준비했다.

“사령 장관님, 미국 해군이 우리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떡합니까?”

“어째서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건가?”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장관은 아직도 자신의 작전을 믿지 못하는 우카키 마토메 참모장에게 되물었다.

“미국 해군이 움츠러들 것이라고만 보기에는 현재 태평양함대의 공격적인 잠수함 운용이 눈에 상당히 거슬려서 그렇습니다.”

“이봐, 우카키 참모장.”

“예, 사령 장관님.”

“겁을 집어먹은 똥개가 어떤 행동을 하나?”

“곁으로 다가오지 못하게 맹렬히 짖습니다.”

“그렇지? 지금, 미국 태평양함대가 그런 꼴이야.”

“하지만, 아닐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해도 뭐가 문젠가? 우리는 전함 야마토가 있고 무려 여섯 척의 항공모함이 있다. 우카키 참모장이 보기에는 미국 태평양함대가 이것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태평양함대의 전함은 이미 작년 12월에 바닷속으로 가라앉았고 항공모함은 이제는 겨우 한 척이 남았을 뿐이다. 참모장이 보기에는 감당이 되겠나?”

“음….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군은 선제적으로 잠수함을 동원해서 우리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미드웨이와 하와이를 점령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이 전쟁은 우리의 승리로 끝이 난다.”

일본해군이 자랑하는 ‘전쟁의 신’인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장관의 자신감 넘치는 선언과도 같은 말에 우카키 마토메 참모장은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장관의 등 뒤로는 마치 형광등 100개가 동시에 켜진 듯한 후광이 비치고 있었다.

“제가 사령 장관님의 깊으신 뜻과 이상을 몰라보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잘 부탁한다. 워게임도 실수 없이 잘 진행해서 연합함대 지휘관들이 내 작전을 그르치고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해주게.”

“예, 알겠습니다. 사령 장관님.”

워게임은 적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봄으로써 아군 계획의 허점을 파악하고, 보완책을 마련하기 위한 계획 작성의 마지막 단계요, 백미라고 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규칙을 어떻게 정하든, 일단 정해진 규칙하에서 자유로운 작전과 운영 시도를 허용하고 거기에서 발견된 문제점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실제로 진주만 기습을 앞두고 벌어진 워게임에서는 모두가 진지하게 게임에 임했고 그때 발견한 수많은 문제점을 치열한 토론을 통하여 작전계획의 미비점을 보완하고 수정했다.

그러나, 이번의 ‘MI’ 작전을 위한 워게임은 완전히 달랐다.

야마모토 제독은 ‘MI’ 작전에 대한 워게임을 단순히 지휘관들이 자신이 만든 매뉴얼을 숙달하는 시간으로 만들 셈이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MI’ 작전을 수정해서 다시 준비할 시간적인 여유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5월 7일과 8일에 걸쳐 남태평양의 뉴기니 근해에서 산호해 해전이 벌어졌다.

일본해군은 경항공모함 쇼호를 잃고 정규항공모함 쇼가쿠가 폭탄 3발을 맞아 108명이 사망하면서 대파되었고 즈이가쿠는 항공대가 큰 피해를 보았다.

그리고, 미국 태평양함대는 정규항공모함 렉싱턴이 격침되고 요크타운이 대파되었다.

일본해군은 산호해 해전에서 전술적으로 승리했으나 포트모르즈비 공략에 실패함으로써 전략적으로는 패배했다.

게다가 일본군은 렉싱턴와 요크타운, 두 척의 항공모함이 모두 격침됐다고 믿었는데 요크타운은 결국에는 살아남았다.

* * *

이제 내가 개입한 태평양전쟁의 최고의 하이라이트가 다가온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을 때 FBI와 COI에서 동시에 나를 찾아왔다.

이미 연방수사국장인 에드거 후버 국장과 면담까지 했던 FBI에서 사람을 보내서 면담 자리에서 알려 준 독일과 일본 스파이 문제에 감사를 표시한 것은 이해가 되는데 어떤 연결점도 없는 COI에서 나를 찾아온 이유를 몰랐다.

“안녕하십니까? 조지 씨.”

“아? 예, 안녕하십니까? 그런데, 무슨 일로 나를 찾아온 겁니까?”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 옆 회의실에서 가졌던 회의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관한 모든 것을 김규식 선생이 맡았기 때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협조를 할 생각이라면 김규식 선생을 찾아갔어야 했다.

그런데,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COI에서는 나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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