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따로, 해군 따로, 각자 제 갈 길로 (2)
둘리틀 중령의 도쿄 폭격으로 대본영 참모본부에서만 사단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해군의 군령부도 마찬가지였고 해군 수뇌부들 간의 서로 격렬한 설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사령장관, 당신 미쳤소?”
“해군 대신님, 그게 무슨 소립니까? 이 방법 말고 우리한테 해결책이 있습니까?”
“그냥, 점감 요격 작전으로 방어를 하는 것이 좋다니까요. 당신이 제시한 그 코스는 우리가 진주만을 공격할 때 지나갔던 항로 그대로인데, 설마 미국이 아직도 그걸 파악하지 못했을 것 같소?”
“내가 노리는 것이 바로 그 설마입니다. 설마 같은 항로로 다시 공격할 거라고 누가 생각하겠습니까? 그렇게 우리 연합함대는 태평양함대를 전멸시키고 하와이를 점령하는 겁니다.”
일본 육군에서 ‘작전의 신’이 츠지 마사노부 대좌라면, 일본해군의 경우는 ‘전쟁의 신’으로 추앙받는 사람이 바로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관이었다.
“허….”
“아니…. 그게…. 말이….”
“도대체 뭐가 문젭니까? 너무 간단하지 않습니까?”
“야마모토 이소로쿠 사령장관, 우리 3함대가 미국 잠수함들 때문에 남양 군도에 건설해 놓았던 기지와 항구들이 피해를 본 것은 계산하지 않는 거요?”
“기지와 항구가 피해를 받았지, 우리 해군 전력이 실질적으로 피해를 본 것은 겨우 몇 척의 구축함과 순양함 그리고 수송선이 아닙니까? 그 정도는 우리 해군의 역량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미국 해군 태평양함대 잠수함들의 본거지인 하와이를 아예 점령하자는 거요?”
“예, 아예 원천 차단을 하면 좋은 것 아닙니까?”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관이 주장하는 허황된 작전에 시마다 시게타로 해군 대신과 나가노 오사미 해군 군령 부장은 어이가 없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실, 1942년 3월 초에 네덜란드령 자바섬 공략이 끝난 이후 일본해군 수뇌부는 다음 전쟁 전략을 가지고 서로 날카롭게 의견 대립을 보이면서 좀처럼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해군 군령 부장인 나가노 오사미 제독을 비롯한 일본해군 수뇌부는 대부분 나구모 중장의 인도양 작전이 끝난 이후에는 태평양 남동방면에 전력을 집중하여 뉴기니섬의 포트모레스비를 점령하고, 이어서 솔로몬 군도를 지나서 뉴칼레도니아, 피지, 사모아 등으로 진출해서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사이의 보급과 연락선을 차단하는데 최우선 순위를 두는 작전을 구상했고 여기에는 육군도 찬성했다.
그러나, 연합함대 사령장관인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현존하는 일본해군의 가장 큰 위협은 진주만 기습 공격에서 살아남은 태평양함대의 항공모함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장관은 일본군이 일단 필리핀과 포트모레스비를 점령한 이후에는 태평양 남동방면으로 전진하기 전에 먼저 중부 태평양에서 미드웨이와 알류샨 열도를 점령하고, 이걸 저지하러 나오는 태평양함대를 완전히 격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야마모토 사령장관, 당신은 정말로 미국 해군이 우리 생각대로 움직일 것으로 생각하는 거요?”
“내가 겪어본 미국인들의 합리성에 따르면 그런 결론이 나옵니다. 그들은 분명히 우리 연합함대가 똑같은 작전을 펼치지는 않을 것이고 생각할 겁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말은 참 쉬웠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연합함대 전체가 동원되는 대규모의 작전이 필요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이 작전에서 만일 미국의 항공모함 부대가 반격하려고 전장에 나오면 나구모 중장의 기동부대가 격멸하면 되고, 만일 싸우러 나오지 않는다면 일본해군은 미드웨이와 알류샨 열도를 쉽게 점령하게 될 것이므로, 이곳에다가 미국 본토를 폭격할 수 있는 비행장을 건설해서 폭격기도 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이미 확보한 마셜 제도 및 길버트 제도와 연계하여 하와이의 미국 항공모함들이 꼼짝하지 못하도록 감시 및 견제할 수 있어서 그 이후에는 뉴칼레도니아든 피지든 사모아든 일본군은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이면 더는 태평양함대를 신경을 쓰지 않고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주장하더니 이제는 거기서 더 나아가 하와이를 점령하자고 하고 있었다.
“누구를 하와이 점령 작전을 위해서 상륙시킬 생각이요?”
“당연히 육군이죠.”
“야마모토 사령장관은 육군 대본영이 우리를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요?”
“이번 한 번만 도와주면 앞으로 더는 대본영 육군의 도움 따위는 필요치도 않게 됩니다.”
“그러니까 누가 스기야마 하지메 총장에게 도와달라고 하라는 거요?”
“그거야 당연히….”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장관은 시마다 시게타로 해군 대신과 나가노 오사미 군령 부장을 쳐다봤다.
구차하게 육군에 아부하는 것은 너희가 하고 빛 나는 전공과 영광은 자신이 챙기겠다는 심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보시오! 야마모토 사령관! 난 절대 그런 짓을 할 수 없소.”
조금 전까지도 스기야마 하제메 참모총장과 다퉜던 나가노 오사미 군령 부장이 화를 내면서 강력하게 거절을 표시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요. 나도 도조 히데키 총리대신에게 머리를 숙일 생각은 없소.”
“그럼, 제가 연합함대 사령장관 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 저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진주만 공습 작전이 성공한 이후로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장관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해군 수뇌부들이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여 주지 않으면 항상 이런 식으로 사임을 하겠다고 협박을 일삼았다.
“흠….”
“허…. 야마모토 사령관! 정말 너무 한다고 생각하지 않소?”
예산은 육군만큼 타내면서 눈에 띄는 전공이 부족한 해군의 처지에서는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장관과 같은 대중적인 인기 스타가 필요했다.
하지만,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그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일본해군을 마음대로 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지금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주장하는 작전은 일본해군 전체의 운명이 걸릴 정도의 규모의 큰일이었다.
그래서, 해군 수뇌부들은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의견을 들어 줄 수가 없었다.
잘못하면 단 한 번의 작전으로 일본해군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었다.
“두 분이 지금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만약에 말입니다. 대본영이 지나의 모든 공항을 완전히 초토화하면 이제 미국은 무엇을 이용해서 도쿄를 공습할까요? 그것은 바로 태평양함대의 항공모함입니다. 그걸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시마다 시게타로 해군 대신과 나가노 오사미 해군 군령 부장도 그 사실을 잘 안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폭격기나 항공모함의 성능을 봤을 때 도쿄를 공습을 해와도 도쿄에 그다지 큰 피해를 주지는 못한다.
“시마다 시게타로 해군 대신님! 나가노 오사미 군령 부장님! 앞으로 단 한 발의 폭탄이라도 고쿄 근처에 떨어지면 그때는 어떡하실 생각이십니까?”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장관이 말에 정신이 번쩍 든 두 사람은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제안한 작전을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미국 태평양함대의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폭격기들에 의하여 다시 한번 일본제국의 심장인 수도 도쿄가 벌건 대낮에 공습을 받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진다면 미국 태평양함대 항공모함의 접근을 사전에 차단하지 못한 해군에게 모든 비난이 집중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히로히토 일왕의 명령으로 대본영의 시다바리 신세가 될 것이다.
일본해군 수뇌부는 만일 앞으로 도쿄 폭격과 비슷한 일이 한 번이라도 재발할 경우를 생각하면 정말로 밥맛이 싹 달아날 지경이었다.
대본영의 시다바리 노릇을 한다는 것은 영원히 육군의 종이나 머슴이 된다는 소리였다.
“야마모토 사령장관! 하와이 점령 작전만 뺍시다. 그렇게 한다면 내가 동의를 해주겠소. 솔직히 나는 스기야마 하지메의 얼굴은 더는 보기 싫소.”
먼저 항복한 사람은 나가노 오사미 해군 군령 부장이었다.
“그럼, 해군 대신님께서는 어떡하시겠습니까?”
“나도 하와이 점령 작전을 위해서 도조 히데키 총리 대신에게 머리를 조아릴 수는 없소. 그러니까 하와이 점령 작전은 뺍시다.”
시마다 시게타로 해군 대신과 나가노 오사미 해군 군령 부장은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무모하게만 보이던 야마모토 제독의 작전이 꽤 그럴듯하게 보였다.
이렇게 사직하겠다고 협박해서 일본해군의 수뇌부 두 명을 설득한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바로 연합함대 참모장에게 작전 브리핑을 지시했다.
“우카키 마토메 참모장, 두 분께 자세하게 작전을 브리핑해드리게.”
“예, 사령 장관님.”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장관의 작전계획대로 잘 진행돼서 이번 기회에 남아있는 미국 태평양함대의 항공모함들을 몽땅 바닷속에 처넣어버리면 그만큼 좋은 일은 없을 것이고, 만일 미국 항공모함들이 싸우러 나오지 않더라도 일본군이 미드웨이와 알류샨 열도를 차지하게 된다면 미국 항공모함이 일본 본토에 접근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 될 테니까 도쿄 폭격 같은 험한 꼴을 다시는 당할 위험은 없어지는 셈이었다.
* * *
둘리틀 중령의 도쿄 폭격으로 시작된 변화의 바람은 일본도 미국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도쿄가 대낮에 불타면서 벌어질 앞일을 정확히 예측하고 준비하는 곳은, 이 세상에 단 한 곳뿐이었다.
“대장님, 도쿄가 불타면서 일본 대본영과 군령부가 갑자기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 역시, 조지 대장님의 예상이 맞았군. 일본군들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빨리 파악해봐.”
“대본영과 군령부 모두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데, 혹시 조선의 우리 동포들이 괜한 피해를 보지는 않겠죠?”
“그건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일본 육군의 부대이동과 해군 기동함대의 고베항 입항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만큼은 반드시 알아내야만 한다.”
“예, 대장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광복군 정보대에서 조선과 일본의 정보망을 책임진 백정기는 대원들의 보고에 이제 일본군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필리핀을 공략하고 점령하기 위해서 어디서 병력을 빼서 어떻게 동원할 것이냐?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영국해군을 격멸하기 위해서 출동했던 함대는 언제 돌아올 것이냐? 너희들이 돌아오는 그때가 바로 일본이 망하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대장님, 알아냈습니다.”
“육군 쪽인가? 아니면, 해군 쪽인가?”
“대장님, 해군 쪽입니다. 드디어, 나구모의 기동함대가 고베항에 도착했답니다.”
“그럼, 그놈들한테서 절대로 눈을 떼지 마라. 그놈들이 움직이는 시간을 반드시 정확하게 알아내야 한다.”
“예, 알겠습니다.”
사무실을 나가는 대원들을 보면서 백정기는 며칠 전 자신을 찾았던 도고 시게노리 외무대신과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어쩌면, 당신과 내가 나눴던 대화는 이제 곧 현실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