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멸을 향한 갈등의 조짐 (152/225)

파멸을 향한 갈등의 조짐

“도쿄 폭격에 성공했습니다!”

내가 구축해 놓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정보대는 미국 정보부서와 일본 정보부서의 통신문을 중간에서 항상 감청하고 있었다.

둘리틀 중령의 도쿄 폭격이 진행된 시각, 갑자기 많아지는 일본군의 무전을 감청한 결과 미국보다 빠르게 도쿄 폭격에 관한 결과를 알게 됐다.

“만세!”

“만세!”

도쿄가 훨훨 불탔다는 소식에 나와 함께 자리하고 있던 김규식과 김호, 그리고 유일한이 모두 같이 소리 높여 만세를 외쳤다.

“어? 그런데, 조지 대장은 기쁘지 않습니까?”

큰소리로 만세를 외치던 김규식 선생은 내가 별로 기뻐하는 기색이 아닌 것처럼 보이자 왜 그런지 이유를 물었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우리 청년들이 죽을지 모릅니다. 도쿄가 홀라당 불탔다고 하니까 기쁘기는 하지만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니까 그게 또 만만치가 않아서요….”

“하기는….”

“생각해보니까 우리는 이제 겨우 한 걸음 뗀 것밖에는 아니었군요?”

“예, 우리는 이제 겨우 한 걸음 뗐을 뿐입니다.”

정말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서 실질적으로 이제 겨우 한 걸음을 뗀 것밖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앞으로 일본이 도쿄 폭격에 놀라서 수세적 전략에서 공세적 전략으로 변경하고 미드웨이와 알류샨 열도로 연합함대를 보내게 만들어야 한다.

“조지 대장이 보기에는 앞으로 어떻게 진행이 될 것 같습니까?”

김규식 선생은 나와 자주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깊숙한 부분까지 알고 있지만, 가끔 사업적인 문제와 국내 경제 개발 문제로만 만나는 김호와 유일한은 앞으로의 전황이 상당히 많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뭐, 별것이 있겠습니까? 이제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된 거죠.”

“그러지 말고 좀 알려 줄 수는 없습니까?”

“이제 일본이 한 번만 더 실수해주면 전쟁은 쉽게 끝낼 수 있을 겁니다.”

“실수요?”

“예, 일본해군이 한 번만 더 미친 척하고 태평양으로 나와준다면 이 전쟁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지….”

“지금 일본해군의 전력은 미국 해군을 능가합니다. 그러니까 일본해군의 전력을 반만, 딱 반만 깎아 낼 수 있다면 전쟁은 끝입니다. 여러분도 다들 아시다시피 미국의 생산능력이라면 금방 일본해군을 따라잡을 겁니다.”

“그렇죠. 미국의 공업력이라면 함대를 금방 구성할 수 있겠죠.”

하지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었다.

미국이 일본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너무 쉽게 이겨버리면 우리 광복군의 대접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렵게 겨우겨우 승리한 것도 아니고 너무나 손쉽게 이겨버린다면 옆에서 도와준 우리는 별다른 대접을 받지 못할 수도 있었다.

“김규식 선생, 선생이 보기에는 전쟁 종결 시점을 언제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까?”

“음…. 1944년 정도가 좋지 않을까요? 올해는 미국이 전쟁 물자를 생산하고 내년에는 반격하고 1944년이면 전쟁이 끝날 것 같은데….”

“1944년에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설마, 루스벨트 대통령이 4선에 도전한다고요?”

“선생이 보기에는 어떻습니까? 4선에 도전할까요? 하지 않을까요?”

음모론 중 하나가 루스벨트 대통령의 4선을 위해서 전쟁 승리 시기를 조절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나는 어쩌면 그것이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루스벨트 대통령의 4선 도전도 계속 신경을 써야만 했다.

“조지 대장의 말처럼 정말 루스벨트 대통령은 4선에 도전하겠군요.”

“예, 내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만약, 그랬을 때 전쟁 중인 상황이 재선에 도움이 될까요? 아니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을 때 재선에 도움이 될까요?”

함께 자리하고 있던 김호 선생과 유일한의 표정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이 전쟁의 종결은 우리의 힘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세계 제2차 대전은 오직, 미국이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서 모든 것이 정해진다.

“혹시, 그래서 조지 대장은 신무기가 개발된 것을 미국에 이야기하지 않은 겁니까?”

“예, 미국이 그것을 가지고 어떤 결정을 할 줄 몰라서 잠시 타이밍을 재고 있었습니다.”

김규식 선생이 말하는 신무기는 바중의 연구소에서 개발한 신무기로 ‘카삼’ 로켓을 기반으로 하는 지대공 미사일과 멜리타 실러가 연구한 제트 엔진이었다.

지대공 미사일과 제트 엔진을 양산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미국 역시도 지대공 미사일과 제트 엔진 기술을 갖게 된다면 전쟁의 승패를 자신들의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었다.

“일단, 신무기는 시간을 봐서 미국 정부와 접촉을 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우리는 1944년을 해방 원년으로 생각하고 계획을 진행시켜 봅시다.”

“1944년이라…. 하루라도 빨리 동포들에게 해방의 기쁨을 선사하고 싶은데….”

“어쩔 수가 없습니다. 우리 단독의 힘으로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솔직히 힘든 일입니다.”

워싱턴에서 우리 네 명이 대한민국의 미래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을 때 도쿄에서도 여섯 명의 남자가 지하 깊숙한 벙커 안에서 일본의 미래를 결정하고 있었다.

* * *

백주 대낮에 이루어진 도쿄 폭격은 심리적인 효과를 더욱 극대화했다.

게다가 둘리틀 폭격대에 의한 폭격이 진행된 시간이 하필이면 도쿄시 전체가 방공훈련이 끝난 직후여서 도쿄 시민들이 느낀 감정은 그야말로 오로지 충격과 공포뿐이었다.

하늘 높이 떠 있는 미군 폭격기가 자신들, 일본 제국의 비행기인 줄 알고 손을 흔들다가 떨어진 폭탄에 직격 돼서 타죽은 사람까지 생기면서 그 공포는 극에 달했다.

도쿄 북부를 완전히 불태운 불길이 고쿄 근처 쪽으로 점점 다가오자 도쿄 경시청과 소방서 그리고 도쿄 인근의 모든 군부대가 총동원돼서 불을 끄기 위해서 사력을 다했다.

“폐하! 송구스럽습니다.”

도조 히데키 총리대신 이하 대본영 정부 연락 회의 참석자들은 중앙 상석에 앉아 있는 히로히토 일왕에게 허리를 깊숙이 숙이면서 사죄를 표시했다.

히로히토 일왕은 벙커로 피난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낭패를 보았는지 아직도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 그대로였다.

“폐하! 두 번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정말 송구스럽습니다.”

히로히토 일왕이 아무런 말도 없이 대신들과 참모총장 그리고 군령 부장을 노려만 보고 있자 회의 참석자들은 다시 한번 허리를 숙이고 사죄를 했다.

“우리 일본 제국이 얼마 만에 외국군의 공격을 받았는가?”

“1300년대 여몽 연합군의 공격 이후로 처음입니다.”

“그렇군. 우리 일본 제국이 무려 600년 만에 처음으로 외국군의 공격을 받았고 제국인 수십만 명이 불에 타 죽었군.”

“폐하! 제가 할복을 하는 심정으로 반드시 원수를 갚겠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일본인 특유의 본성이 바로 드러나는 회의였다.

자신들이 먼저 때린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이 맞은 것만 기억하는 이해가 절대로 불가능한 특유 족속들의 회의였다.

미군 항공대의 공격을 받아서 도쿄에 엄청난 화재 발생했고 수십만의 사상자가 생겼다면 그에 대한 수습대책이 먼저일 텐데 대본영 정부 연락 회의는 시작부터 다른 곳에 포인트가 맞춰져 있었다.

“이제 다들 어떻게 할 생각들인가?”

“폐하! 미군 폭격기들은 지나의 충칭 공항에서 출발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중화민국에서 일본 본토까지 폭격기가 날아올 수 있는 모든 공항을 점령하고 도쿄에서 죽어간 시민들의 열 배를 보복하겠습니다.”

히로히토 일왕은 절대로 직접적인 명령을 하지 않는다.

그것이 왕으로서 위엄이라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전쟁의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인지는 모른다.

총리대신과 육군 대신을 겸하고 있는 도조 히데키의 말에 히로히토 일왕은 가만히 아무 말도 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때, 시마다 시게타로 해군 대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폐하! 지나 방면에서 출발하는 폭격기는 총리대신의 말처럼 방어할 수 있지만, 바다에서 출격하는 폭격기 들을 막기 위해서는 이번 기회에 미국 태평양함대를 끝장내야만 합니다.”

시마다 시게타로 해군 대신은 사실은 이 자리에서 나서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연합함대 사령장관인 야마모토 이소로쿠 사령관의 협박에 못 이겨서 어쩔 수 없이 나섰다.

“두 분 대신분들, 지금은 원래 우리가 최초에 계획했던 작전대로 밀고 나가야 하지 않습니까? 두 분 다 너무 무리하시는 것 같은데….”

“도고 외상! 무슨 소립니까? 그럼, 이대로 당하고 가만히 있자는 말입니까?”

처음부터 미국과의 전쟁을 반대했고 끝까지 미국과 협상을 하려고 했던 도고 시게노리 외무대신은 도조 히데키가 두 눈이 돌아간 상태에서 호통을 치자 말을 하다 말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럼, 해군 대신과 군령부는 뭘 어떡할 생각인가?”

“다시 하와이를 공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와이에 남아있는 미국 태평양함대의 전력을 유인해서 섬멸할 생각입니다.”

“어디서? 어떻게?”

“아직 확정적인 젓은 아닙니다. 다만, 미국 태평양함대를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정해졌습니다.”

“흠….”

“이번에는 확실히 정리할 수 있겠소?”

도조 히데키 총리대신 옆에 앉아 있던 스기야마 하지메 대본영 참모총장이 살짝 비아냥거리는 듯한 말투로 해군을 건드렸다.

“진주만도 우리 연합함대가 깨끗이 정리했는데 겨우 몇 척 남은 태평양함대를 정리 못 할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이번에 도쿄 1,000km 근처까지 미국 태평양함대가 접근한 것을 놓쳤다면서요?”

둘리틀 도쿄 폭격대대원들의 구출을 위해서 미국 해군은 제16 기동함대를 편성하고 수많은 잠수함과 구축함을 동원해서 폭격대원들 모두를 구출해서 떠났다.

“그러는 육군은 도쿄 하늘을 아예 텅텅 비워둬서 지금 이 사태를 만들었다면서?”

“뭐요?”

“고사포 진지들만 제대로 도쿄를 방어했어도 이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히로히토 일왕이 상석에 앉아 있는데도 일본 육군과 해군의 최고 책임자들은 잘못을 상대에게 떠넘기기만 할 뿐 서로 협조해서 미군과 싸우겠다는 소리는 절대 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보다 못한 도고 시게노리 외무대신이 다시 나섰다.

“제가 걱정되는 것은 이런 식으로 무리하게 전선을 넓혀도 정말 괜찮겠습니까?”

“외무대신은 우리 제국 육군을 못 믿는 겁니까?”

“도고 대신, 해군이 그렇게 무능해 보입니까?”

조선인의 피가 흐르는 도고 시게노리 외무대신은 언제나 이런 식의 대접을 받아왔다.

도고 시게노리의 실력이 워낙 출중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 자리까지 절대로 올라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짐이 보기에는 외무대신의 말도 맞는 것 같다. 정말, 이상이 없겠느냐?”

“폐하! 제국 육군은 언제나 폐하를 실망시켜드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폐하! 제국 해군은 언제나 폐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그런데, 왜 지금까지 필리핀 함락 소식이 들리지 않는 건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