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전승국 자격을 얻어 봅시다
인상이 살짝 찌그러진 에드거 후버 연방수사국장은 일본 경제가 불안하고 무너질 조짐을 보이는 것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때문이냐는 태도로 다시 물었다.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그것을 설명해야만 여러분들이 빠르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 같군요.”
김규식 선생은 지금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군이 대한민국 수복을 위해서 실행했고 준비하고 있었던 계획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최근, 몇 년간 일본 내에서 진행된 ‘인민전선의’의 재부상과 폭동 사태는 모두 우리 광복군 정보대가 벌인 일입니다.”
미국의 첩보기관에서도 일본 내에서 벌어진 공산주의자들의 폭동 정도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다만, 어째서 그런 일들이 일어났는지 내부 사정까지는 자세히 알지 못했을 뿐이다.
“미스터 김, 일본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이 광복군 정보대의 공작으로 일어났다는 말이요?”
“예, 맞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화민국을 침략한 일본 내부를 흔들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일본 내부의 혼란을 유도했던 겁니다.”
“확실합니까? 그 정도 규모의 폭동을 조장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자금과 인력이 필요할 텐데….”
역시나 에드거 후버 연방수사국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능력을 믿지 않았다.
나와 김규식 선생은 어떤 방식으로 미국 정부와 협력하고 미국 정부의 협조를 받아 낼지를 상의한 결과 이쯤에서 광복군이 준비한 국내 진공 작전과 일본과 독일이 중화민국과 영국을 상대로 준비 중인 위조지폐 공작에 대해서 알려주기로 했었다.
“이쯤에서 여러분들에게 영국 정부를 상대할 수 있는 좋은 외교적인 카드를 한 장 드려야 할 것 같군요.”
김규식 선생의 말이 끝나자 좁은 회의실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의 이목이 쏠렸다.
“일본과 독일은 중화민국과 영국의 경제를 무너트리기 위해서 현재 위조지폐를 만들고 있습니다. 일본이 준비 중인 제조 공장의 위치는 파악했지만, 독일이 위조지폐를 만들고 있는 곳은 어딘지 우리도 모릅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직접 찾아보시기를 바랍니다.”
“미스터 김! 위조지폐라고요?”
“예, 전쟁 중인 상대방의 경제를 한 번에 무너트리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 일본이 준비한 계획은 사실상 현재는 실패했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광복군 정보대는 정보를 얻고 당시 여기 조지 씨의 대형이었던 두웨성에게 알려줬더니 중화민국 정부는 일본이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위조지폐 작전을 막아버렸습니다.”
“중화민국 정부가 일본이 준비 중인 위조지폐 생산 시설을 습격이라도 했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중화민국 정부는 지폐 발행량을 수십 배 늘리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김규식 선생의 대답에 경제 지식이 상당한 참석자들은 중화민국 정부의 대처에 오히려 혀를 찼다.
“허….”
“아니 그럼, 결국에는 일본이 원한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닙니까?”
“어떻게 보면 그렇습니다만 일본도 엄청난 손해를 입었습니다. 최신 전함 한두 척을 건조할 비용을 쏟아부었거든요.”
“허….”
“미스터 김, 일본이 준비했던 작전은 중화민국이 그런 식으로 막았다지만 독일이 준비하는 작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그게 문제군요?”
“그것은 여러분들이 영국 정부와 따로 접촉해보십시오.”
사실, 김규식 선생이 던진 말은 우리가 준비한 떡밥 중 하나였다.
영국 M-6가 우리에게 정보의 진위와 우리가 혹시 숨겨 놓은 정보는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접촉을 시도하게 할 생각이었다.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전승국 자격 획득 문제 때문이었다.
“일본과 독일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이건 해도 너무 한 것 아닌가?”
“각하, 전쟁이 끝나면 이 일에 대해서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합니다.”
자본주의의 끝판왕인 미국의 입장에서는 위조지폐범은 반드시 박멸해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 아무리 전쟁 중이라지만 세계 경제 질서를 통째로 흔들만한 일을 일본과 독일이 꾸미고 있었다고 하니까 다들 그 사실에 딱 한 명을 제외하고는 광분했다.
“미스터 김, 일본 내의 공산주의자의 폭동을 어떻게 조장했는지 아직 설명이 없는 것 같은데….”
에드거 후버, 사가지 없는 자식이 말의 끝을 흐리는 방식으로 김규식 선생을 압박했다.
“일본의 비열한 작전에 눈이 뒤집힌 두웨성은 짝퉁 천국으로 유명한 중화민국답게 중국 내의 위조지폐 전문가들을 총동원해서 일본 엔화를 미친 듯이 찍어냈습니다. 두웨성은 광복군에게 위조지폐를 주면서 일본에 대한 공작을 부탁했습니다.”
“허….”
“그 사실이 진짭니까?”
김규식 선생이 회의 참석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려고 할 때, 지금까지는 피곤했는지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듣기만 하고 있던 루스벨트 대통령까지도 상당히 놀랐는지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봐! 미스터 김. 그럼, 일본의 계획과는 반대로 일본에 위조지폐가 엄청나게 풀렸다는 말인가?”
“예, 각하. 그렇습니다.”
“그럼, 일본 내에 위조지폐가 얼마나 풀렸지?”
“두웨성이 찍어서 주는 대로 풀었기 때문에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양은 모릅니다. 다만, 현재 유통되고 있는 현금의 10% 이상은 아마 가짜 돈일 겁니다.”
“그 작전이 언제부터 진행이 된 거야?”
“1937년 일본이 중화민국을 침략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입니다.”
김규식 선생의 대답이 끝나자 루스벨트 대통령과 해리 홉킨스 보좌관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몇 년 전부터 일본의 엔화가 가짜가 많았다면 그 돈의 상당수는 미국의 은행들 사이에서도 유통이 됐을 것이다.
미국은 일본의 가장 큰 무역 상대국이기 때문에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각하, 일본 엔화의 위조지폐 문제는 함부로 밝히기도 힘들 것 같습니다.”
“두웨성…. 이 미친놈이…. 먼저, 그 짓을 하려고 한 일본 놈들도…. 이 문제는 최대한 빨리 영국 정부에 알릴 필요가 있는 것 같으니까 홉킨스 보좌관 내일 바로 영국대사를 불러줘.”
“예, 각하.”
루스벨트 대통령이 대화에 끼어들면서 김규식 선생의 설명은 잠시 중단이 됐다.
하지만, 에드거 후버 연방 수사국장은 김규식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기를 원했다.
“미스터 김, 남은 이야기를 마저 해주시오.”
에드거 후버 연방 수사국장의 요구에 김규식 선생은 다른 참석자들의 반응 살피고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광복군 정보대는 소련이 일본에 침투시켜 놓은 스파이인 리하르트 조르게를 통해서 일본 공산주의자들을 소개받아서”
“잠깐! 리하르트 조르게는 확실히 소련의 스파이요?”
“광복군 정보대가 파악하고 있기로는 소련의 스파이가 맞습니다. 비록, 소련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요.”
에드거 후버 연방 수사국장은 김규식 선생에게 취조하듯이 질문을 던졌다.
“잠깐만, 광복군은 리하르트 조르게는 어떻게 알게 됐습니까?”
여기서부터는 김규식 선생은 자세히 모르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내가 대신 나서서 대답했다.
“에드거 후버 수사국장님, 리하르트 조르게는 아그네스 스메들리의 소개로 알게 됐습니다.”
“조지 씨, 아그네스 스메들리요?”
“그녀는 후버 국장님도 예의 주시하던 인물이잖습니까? 그리고, 그녀가 공산주의자라는 것은 후버 국장님도 이미 잘 아실 테고요.”
“그러니까 아그네스 스메들리를 어떻게 알게 됐냐는 거요?”
“국장님, 국장님은 내가 꼭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묻는군요.”
“그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시오. 그저 궁금해서 그런 것이요.”
“별것도 아닌 이야긴데 궁금하시다고 하니까 마저 말해 주겠습니다. 처음 상하이에 도착해서 사업을 하는 과정에 상하이에 거주하는 미국인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 만났습니다.”
이것이 사실인데 뭘 더하고 빼고 하겠는가?
상하이에서 중화민국 정보를 수집하는 커닝엄 총영사도 이에 관련된 정보 보고를 이미 여러 차례 했을 것이다.
“음…. 혹시, 다른 소련 스파이에 대한 이야기도 아는 것이 있습니까?”
‘알고 있어도 에드거 후버 너한테는 안 알려준다.’
“아니요. 다른 누군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다면 이미 커닝엄 총영사에게 알려줬을 겁니다.”
“그렇군요. 내가 갑자기 궁금한 점이 생겨서 질문을 하다 보니까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새 버렸군요. 미스터 김, 일본 이야기를 마저 들을 수 있을까요?”
에드거 후버 연방 수사국장은 서로 난처해질 수도 있었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김규식 선생에게 남은 이야기를 마저 해달라는 말하면서 빠져나갔다.
“그럼, 그래도 될까요?”
에드거 후버 연방 수사국장의 요구를 받은 김규식 선생은 나머지 이야기를 계속해도 되겠냐고 루스벨트 대통령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 물었다.
원래, 이 자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미국의 군 정보기관이나 정부 정보기관과의 협력을 위해서 마련된 자리였고 지금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쾌 많이 지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미스터 김, 남은 이야기도 한번 들어보자고.”
“예, 각하, 알겠습니다.”
김규식 선생은 헛기침을 한번 다시고는 회의 참석자들을 돌아보면서 다시 입을 열엇다.
“흠, 두웨성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광복군 정보대는 일본의 혼란을 조장하기 위해서‘인민전선’에 자금만 지원한 것이 아닙니다. 광복군 정보대는 위조된 엔화를 달러로 바꿔서 그 돈으로 톰슨 기관단총과 브라우닝 권총을 사서 ‘인민전선’에 공급도 했습니다.”
“위조지폐를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었으면 은행을 통과했다는 말인가?”
“각하, 두웨성은 일본 은행에서 지폐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근무하다가 퇴직한 사람들을 포섭해서 일본 지폐에만 들어가는 희귀한 식물 섬유까지 알아내는 치밀함을 보였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보좌관인 해리 홉킨스에게 물었다.
“이거이거 일본의 지폐는 이제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봐야 하는 게 맞지?”
“그렇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얼마나 풀린지도 모르는 정교한 위조지폐가 같이 사용되고 있다면…. 정말로 일본 경제는 곧 망하겠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과 해리 홉킨스 보좌관의 대화를 가운데도 윌리엄 리히 육, 해군 총사령관 총참모총장이 김규식 선생에게 마저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우리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군은 두웨성이 공급해준 위조지폐로 일본의 혼란스럽게 만들고 부추길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우리 대한민국의 독립은 먼 길이라고 판단하고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습니다.”
“어떻게요? 해외에 나와서 사는 사람들도 얼마 되지도 않을 텐데 그 많은 일본군을 어떻게 상대할 생각이었습니까?”
김규식 선생은 이야기를 잠시 멈춰서 사람들을 집중시키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실, 대통령 각하께 제안했던 조선과 오키나와 분리 작전을 우리가 하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제주도와 오키나와를 잇는 해역을 잠수함으로 봉쇄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국내에는 레지스탕스와 같은 조직으로 일본의 행정과 경찰 조직을 마비시키려고 했습니다.”
“음….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이미 국내에 행정 조직이 있다고 했으니까 충분히 레지스탕스 조직도 가능하겠군요. 그런데, 잠수함을 이용해서 제주도와 오키나와를 잇는 해역을 봉쇄할 생각을 햇다는 것은 광복군에 잠수함이 있다는 소리지요?”
“독일의 최신형 잠수함은 아니지만, 보급형 잠수함 9척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답을 한 김규식 선생은 고개를 돌려서 나를 보면서
“조지 선생, 우리가 독일로부터 잠수함을 사 올 때 들었던 정보를 전해 주는 것은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