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X를 결국 만나게 됐다
‘시발! 오늘, 내가 저 새끼의 눈에 띄었으니까 이제 나는 편한 삶은 다 산 건가?’
이 자리에 올 이유가 딱히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회의실 안에는 존 에드거 후버 연방 수사국장도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
에드거 후버는 FBI의 첩보 수집 능력을 이용해서 유명인이나 유력 정치인의 뒤를 캐고 다녔고 그들을 감시하면서 비밀스러운 치부를 고스란히 기록한 비밀 파일들을 만든 사람이다.
에드거 후버가 이런 짓을 한 이유는 혹시라도 정치권에서 재기 되는 퇴진 요구가 있을 때마다 문제를 제기한 정계 인물들에게 관련 비밀 파일을 가지고 협박을 하기 위해서였다.
후버 수사국장은 이런 방식으로 죽을 때까지 거의 50여 년 동안 FBI 국장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일본과의 전쟁이 발발한 루스벨트 대통령의 재임 기간 중의 FBI는 국외 첩보까지도 관장할 정도로 권한과 위상이 강화되었고 후버 수사국장은 적성국 스파이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광범위한 도청과 감시를 통해서 미국 내의 수많은 고급 정보와 비밀 정보들을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와 함께 온다는 말처럼 루스벨트 대통령이 마련한 자리에는 적이 될 가능성이 많은 FBI의 에드거 후버 수사국장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 협력할 수만 있다면 나한테 크게 도움 될 존재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자, 조지, 그리고 미스터 김, 여기는 육, 해군 최고사령관 겸 총참모총장인 월리엄 리히 장군, 그리고 이쪽은 연방 수사국장 존 에드거 후버 국장이고, 저쪽은 정보조정국 코디인 윌리엄 도너번 장군이네.”
루스벨트 대통령이 새롭게 회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소개해줬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소개한 세 명 외에도 스팀슨 육군 장관과 헨리 아놀드 육군 항공대 사령관이 함께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아마도 도쿄 폭격 작전과 연관이 있는 회의처럼 보였다.
“내가 두 사람을 이 자리에 부른 이유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나한테 전해준 정보가 워낙 방대하고 정확해서 아직은 대일본 정보망의 역량이 부족한 우리 군과 정부 기관들과 교류를 하면 어떨까 해서 함께하자고 했네.”
나와 김규식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전해준 일본 정보는 미국이 일본과의 전쟁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엄청난 도움이 될 정보들이었다.
우리가 전해준 정보를 눈여겨본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 정보기관장들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계를 시도해보려고 이 자리를 만든 모양이었다.
“각하, 도쿄 폭격 작전을 위한 폭격기의 이동은 영국 정부의 협조를 받아서 충칭으로 이동시키기로 했습니다.”
“그럼, 폭격기의 조종사들은 어떻게 하기로 했지요?”
“육군 항공대 최고의 조종사인 조지 둘리틀 중령을 폭격대장으로 임명해서 같은 코스를 통해서 이동시킬 계획입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윌리엄 리히 육, 해군 총참모총장의 대답에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궁금한 점을 물었다.
“그럼, 해군에서는 이번에 어떻게 하기로 했죠?”
“해군에서도 서둘러서 도쿄 폭격 계획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것 때문에 체스터 니미츠 제독을 태평양 함대 사령관으로 임명했는데 아직도 준비가 덜 됐나요?”
“일단, 니미츠 제독은 태평양 잠수함 함대에 일본 해군에 대한 공격을 명령한 비상 작전을 명령하고 파괴된 태평양 함대를 수습하고 재건하고 있다고 합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어떻게 하든지 최대한 빨리 일본의 수도인 도쿄를 폭격해서 국민과 세계에 미국 정부의 결의를 보이고 싶은데 뜻대로 잘되지 않는지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럼, 언제까지 준비가 끝난다는 겁니까?”
“태평양 함대의 준비는 그리 얼마 걸리지 않을 겁니다. 제 예상으로는 3월 중으로는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3월 중이라…. 음…. 알았어요. 체스터 니미츠 제독에게 최대한 서둘러 달라고 해줘요.”
“예, 각하.”
윌리엄 리히 총참모총장과 급한 대화를 끝낸 루스벨트 대통령은 나와 김규식을 쳐다보면서
“조지, 미스터 김, 내가 좀 전에 말했듯이 우리 군과 정부를 좀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루스벨트 대통령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약간의 기시감을 느꼈다.
이게 아닌데….
원래라면 우리 광복군의 노력과 희생 덕분에 필리핀을 지킬 수 있었다고 먼저 고맙다고 말해야만 하는데 지금 루스벨트 대통령은 그것을 빼놓고 있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질문에 대답하려는 김규식을 막으면서 내가 먼저 나섰다.
“각하, 필리핀 전선은 어떻게 됐습니까? 혹시, 필리핀도 일본군에 함락됐습니까?”
“아니야. 조지, 우리 미군이 그렇게 약한 군대는 아니라네. 필리핀의 맥아더 장군은 일본군의 기습 공격을 잘 막아내고 있네.”
‘시발! 개새끼! 역시, 예상했던 대로 맥아더는 우리 광복군의 전공을 상부에 전혀 보고하지 않았구나.’
이렇게 되면 내가 대한민국 독립문제와 임시정부에 관련해서 말하려고 했던 모든 것들을 말할 수 없게 된다.
“극동군 사령부에서 올라온 보고에 우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 이야기는 없었습니까?”
내가 미국인이기 때문에 광복군을 옹호하고 광복군의 전공은 어디로 갔냐고 따지고 나서기 힘들다는 것을 눈치채고 김규식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물었다.
“그런 보고는 없었던 것 같았는데….”
루스벨트 대통령은 혹시 자신이 모르는 내용이 있었는지 스팀슨 육군 장관을 보면서 대답을 했다.
“각하, 극동군 사령부에서 보내온 전문에는 일본군의 기습 공격을 격퇴했다는 내용만 있었습니다.”
“허…. 우리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미 대표부가 받은 비밀 전문에는 일본군 항공대의 기습 공격을 격퇴한 우리 항공대의 전공이 자세하게 보고됐는데 극동군의 보고에서는 그 부분이 빠진 모양입니다.”
김규식은 광복군의 활약상을 인정받지 못한 것에 화가 나서 눈앞에 앉아 있는 두 명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첩보 수집과 전달 능력을 모두 내보이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나는 급하게 김규식을 말렸다.
“김규식 선생, 그만하십시오. 더는 위험합니다.”
김규식 선생은 옆에 앉은 내가 갑자기 우리나라 말로 말리고 나서자 자기도 실수를 깨달았는지 얼굴이 붉어진 채 급하게 입을 닫았다.
“조지, 미스터 김의 말이 무슨 말이지?”
“아직 살아있는 전신망을 이용해서 필리핀에서 있었던 전투 상황을 보고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예, 아직은 그게 가능합니다.”
내 말에 루스벨트 대통령은 후버 FBI 수사국장을 보면서
“후버 국장, 행정명령의 집행을 좀 더 서둘러야만 할 것 같소.”
“예, 각하. 알겠습니다. 일단, 하와이에 거주하는 일본인들부터 먼저 소개 조치하겠습니다.”
“그래요. 적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품은 채로 전쟁을 할 수는 없지요.”
광복군의 전공을 제대로 평가받고 싶었던 김규식 선생의 한 마디에 미국에 거주하는 일본인들만 앞으로 더 가혹한 수용소 생활을 해야 할 것 같았다.
FBI의 후버 수사국장과 대화를 끝낸 루스벨트 대통령은 다시 나와 김규식 선생을 보면서
“미스터 김, 필리핀에서 전해졌다는 정보를 나도 알 수 있을까요?”
김규식 선생은 이번에는 선뜻 나서지 못하고 내 눈치를 살폈다.
“선생, 이제는 어쩔 수 없잖습니까? 그냥 편하게 모두 말씀하시시오.”
우리나라 말로 김규식에게 말하는 나를 에드거 후버 FBI 수사국장이 유심히 쳐다봤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 진짜, 이제 미국에서 편하게 살기는 틀린 것 같은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일단 니미츠가 있는 하와이로 튈까?’
내가 에드거 후버의 안테나에 포착된 것을 두고 고민을 하는 사이에 김규식 선생은 필리핀에서 있었던 광복군의 활약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알려줬다.
“그래서, 지금 필리핀 마닐라를 점령하기 위해서 링가옌만으로 상륙한 일본군을 광복군과 필리핀 레인저 연대가 괴멸시켰다고?”
“예, 우리가 받은 정보 보고는 그렇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광복군 항공대는 잠을 잘 시간도 없이 필리핀 하늘을 지키고 있습니다.”
“흠….”
“그 말이 정말이요?”
“미스터 김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 필리핀 주둔 극동군을 실제로 구원한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이었다는 말인데….”
루스벨트 대통령은 잠시 생각에 빠졌고 윌리엄 리히 총참모장과 스팀슨 육군 장관은 새롭게 알게 된 정보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지 김규식 선생에게 다시 확인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미 대표부로 들어온 정보는 사실입니다. 우리 임시정부 내에서 서로 속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군요.”
“생각해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없군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루스벨트 대통령은 확실하게 결정을 했는지 다시 회의를 주재하기 시작했다.
“다들 봤겠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 미국이 일본과의 전쟁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에요. 그렇죠?”
“예, 함께 하면 우리 미군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언제나 루스벨트 대통령의 복심을 가장 잘 읽는 윌리엄 리히 총참모장은 바로 대통령의 의견에 동의를 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떤가?”
“함께 한다면 좋기는 하겠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어떻게 규정을 해야 할지 그게 문제이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문제였다.
이미 국제적으로 우리나라를 강제로 합병한 일본의 행위를 승인한 마당에 이제 와서 그것을 되돌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 문제를 가지고 김구 주석을 비롯한 임시정부 인사들과 김규식 선생 등과도 수많은 토론을 거치고 나서 다행히 우리는 결론을 마련해 놓은 상태였다.
그것이 바로 내가 며칠 전에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약속을 받아 내고 싶었던 태평양전쟁이 끝난 후 1879년으로 영토와 국가를 되돌리자는 것이었다.
단, 미국에 여기까지만 확실하게 확인하고 나머지 정치적인 강요를 하지 않기로 했다.
“각하! 얼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전쟁이 끝나고 난 다음에 동아시아는 1879년 이전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이것 하나만 약속해 주신다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기꺼이 미국과 함께 할 겁니다.”
이번에도 김규식 선생이 미국인이라서 나서기 힘든 나를 대신해서 나서줬다.
“1879년이요?”
“미스터 김, 왜 하필이면 1879년입니까?”
자리에 함께하고 있던 그 누구도 1879년에 아시아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런 회의 참석자들을 위해서 루스벨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대답을 해줬다.
“1879년에 일본이 오키나와를 합병했다고 하더군.”
“아! 그렇다면, 1879년을 기점으로 삼는다면 아시아는 평화로워지겠군요?”
“1879년이라….”
1879년이 갖는 의미를 충분히 깨달은 회의 참석자들은 전쟁이 승리로 끝날 때, 1879년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도 충분히 들어줄 수 있다고 판단을 했는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그 정도는 들어줘도 괜찮지 않으냐고 의견으로 찬성을 표시했다.
“미스터 김, 정말로 1879년 이전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약속해 준다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전적으로 우리 미국과 함께할 텐가?”
“대통령 각하께서 그 약속만 해주신다면 우리 대한민국 임시정부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일본에 침략을 당한 수많은 민족과 국가들이 모두 미국과 함께 할 겁니다.”
김규식 선생이 루스벨트 대통령을 상대로 열변을 토하고 있을 때 나는 앞으로 펼쳐질 에드거 후버의 마수에서 어떻게 도망칠지를 궁리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을 기어코 찾아냈다.
‘I Love Mr. Hoover. 하하. 넌, 이제 나한테 뒤질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