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쁘게 돌아가는 필리핀의 전황
“포위된 적들의 퇴로를 끊어라!”
“예, 연대장님.”
덫에 걸려든 일본군 대만 보병 2연대를 향한 광복군과 필리핀 레인저 연대의 공격은 너무나 매서웠다.
포위됐다는 것을 깨닫고 바우앙 시 방향으로 다시 도주를 시도하려는 일본군을 끝까지 붙잡고 늘어졌다.
일본 육군 제14군이 광복군에게 이렇게 손쉽게 각개격파를 당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상륙 현장에서 광복군 항공대의 방해로 항공대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했고, 현장 상황 때문에 무전이 불통 되면서 최종 지휘권자인 혼마 마사히루 중장의 통합적인 지휘를 받을 수 없었던 영향이 너무나 컸다.
처음 14군의 필리핀 상륙 작전계획은 상륙한 부대가 후속 부대를 기다리지 않고 최대한 빨르게 작전 목표로 진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부 참모가 상륙지점에서 교두보를 강화한 다음 진격하자고 주장해서 계획대로 빠르게 진격하자는 참모들과의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결국에는, 14군 사령관인 혼마 마사히루 중장은 빠르게 진격하자는 참모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박 소령! 포병대대는 포격 준비를 끝냈나?”
“예, 연대장님, 이제 그만 일본군 후방의 추격을 멈추십시오. 지금부터 바로 목표 지점으로 포격을 시작하겠습니다.”
“알았다. 이왕이면 우리가 할 일이 없도록 적들을 깨끗이 쓸어주었으면 좋겠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연대장님.”
포병대대장인 박시창 소령과 교신이 끝난 김경천 대령은 바로 일본군 후방을 쫓고 있는 지청천 중령을 호출했다.
“지 중령! 적을 이제 그만 쫓아라! 지금 바로 포병대대의 포격이 시작될 것이다.”
“예, 연대장님, 알겠습니다.”
“필리핀 레인저 연대에도 추격을 중지하라고 연락해줘라!”
“예. 알겠습니다.”
바우앙 시 인근 계곡 입구를 틀어막고 양쪽에서 일본군 대만 보병 2연대를 압박하면서 서서히 조여오던 필리핀 국방군들이 사격을 멈추고 더는 다가오지 않자 일본군의 분위기가 또 조금 이상해졌다.
“뭐야? 왜 이렇게 갑자기 조용해?”
“대대장님, 저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또…. 포격인가? 그렇다면, 어서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라! 어서 빨리 이곳을 탈출해라! 우리는 또 함정에 빠진 것 같다.”
“예, 알겠습니다. 연대장님.”
우에지마 지대장은 적의 포격을 의심하고 전 부대원들에게 현장에서 빠르게 탈출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박시창의 광복군 포병대대는 일본군이 도망갈 기회를 주지 않았다.
“꽈 광!”
“꽝! 꽝!”
“꽈 광!”
“악!”
“빠가야로! 이곳도 함정이었다. 어서 다들 몸을 숨겨라! 아니다. 빨리, 이곳을 탈출해라!”
빗발치는 포탄 속에서도 우에지마 지대장은 광복군과 필리핀 레인저 연대가 펼쳐 놓은 함정을 탈출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을 했지만, 그것은 결국 헛수고가 됐다.
“으악! 지대장님, 이제 어떡합니까?”
“무조건 바우앙 시로 도망쳐! 빨리, 여길 탈출하라고 해!”
바우앙에 상륙한 일본 대만 보병 2연대는 초반 상륙할 때부터 필리핀 레인저 연대의 강력한 기관총 공격으로 상륙한 일본군 가운데 가장 많이 병력을 잃었는데, 또다시 뭐 하나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병사들만 죽어 나가고 있었다.
세 군데의 상륙지점 현장 상황 때문에 무전이 불통인 상황에서 일본군이 상륙한 지점 곳곳에서 포성과 총성이 쉴 새 없이 들려오자, 일본 육군 제14군 참모장인 마에다 마사미 중장은 사령관인 혼마 마사히루 중장과 마찬가지로 불안감이 점점 커져만 갔다.
“사령관님, 이거 너무 불안해서 안 되겠습니다. 상륙 대기 중인 예비 병력을 상륙시키는 것이 어떨까요?”
“참모장 생각도 그런가? 아무래도 추가 병력을 보내야 할 것 같지?”
“예, 무전이라도 된다면 상황 파악이라도 하겠지만 이건 너무 답답합니다.”
“그럼, 대기 중인 병력을 지금 당장 상륙시켜.”
“카바로 보낼까요? 아니면, 지금 포성이 들리는 바우앙으로 보낼까요?”
“만약에 대비하자. 만약, 카바 쪽에서 밀려서 바우앙까지 쫓겨났다면 어디에 상륙을 시키는 것이 좋을까?”
“여기서는 무전이 불통이지만 상륙을 하면 혹시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럼, 참모장은 카바에 병력을 상륙시켜서 적의 배후를 치자는 생각인가?”
“예, 바우앙으로 상륙을 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너무 큰 것 같습니다. 바우앙 쪽의 병력이 현재 교전 중이라면…. 만약에라도 예비대가 상륙이 끝마칠 때까지 버티지 못한다면….”
“그래, 만약을 대비해야겠지. 알았다. 그럼 지금 바로, 카바로 병력을 투입해!”
혼마 마사히루 사령관과 마에다 마사미 참모장의 결정으로 카바 해안으로 상륙을 시도하는 일본군 예비대는 파도가 높아진 상황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상륙을 시도했다.
“어! 어! 저거 일본군 상륙 병력이지?”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아니, 확실합니다.”
카바 해안에서 혹시 있을지 모르는 일본군들의 이차 상륙을 대비하고 감시하던 광복군 관측병들의 눈에 해안으로 힘겹게 다가오는 일본군의 상륙 주정과 발동선들이 눈에 들어왔다.
“참모장님! 참모장님! 카바 해안으로 일본군 이차 상륙 병력이 나타났습니다.”
“규모가 어느 정도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참모장님, 일본군 이차 상륙 병력은 대략 1개 연대 정도로 추정됩니다.”
“확실히 1개 연대인가?”
“예, 거의 확실합니다.”
“상륙 장비 중에 혹시 야포도 보이나?”
“예, 보입니다. 정확한 수량의 전체적인 파악은 힘들지만 대략 30여 문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전차는?”
“전차도 대충 1개 대대급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음…. 일본군이 마지막으로 남은 모든 것을 털어 넣을 생각인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알았다. 적들의 행동을 계속 잘 감시해라.”
“예, 참모장님.”
김홍일 중령은 일본군 필리핀 상륙 전단이 마지막으로 남은 모든 예비 병력을 투입했다고 판단하고 즉시 김경천 대령에게 연락했다.
“연대장님, 카바 해안으로 일본군 상륙 전단이 마지막 남은 예비 병력을 모두 투입하고 있습니다.”
“카바 해안으로? 일본군의 규모는 어느 정도지?”
“규모는 1개 포병대대와 1개 전차 대대가 포함된 연대 병력인 것 같습니다.”
“증편된 연대 병력이라면 마지막 남은 예비대가 확실하겠군.”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가 여길 정리하려면 시간이 조금 걸린 것 같은데, 김 중령 생각에는 상륙한 일본군 예비대가 우리 뒤를 칠 만한 시간이 될 것 같나?”
“그것은 제가 장담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전차대만 따로 움직인다면….”
“그럼, 김 중령이 그놈들을 조금만 잡아 둘 수 있겠나? 8시간 안에 여길 모두 정리하고 그쪽으로 합류하겠다.”
“연대장님, 너무 무리하시는 것 아닙니까? 병사들이 힘들어할 텐데요?”
“이놈들까지만 정리하면 링가옌 만에 상륙한 병력은 정리가 될 테니까 이번만 조금 무리하지 뭐.”
“연대장님, 우리 광복군은 안전이 최우선이지 않습니까?”
“아니야. 할 일은 하고 맥아더의 면상에 대고 큰소리를 치자고. 그리고, 지금 이렇게 기세를 타고 있을 때 일본군을 확실히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알겠습니다. 제가 최선을 다해서 붙잡고 늘어져 보겠습니다.”
“김 중령, 미안하네. 하지만, 이번 한 번으로 링가옌만 쪽은 끝을 내버리자고.”
“예, 알겠습니다.”
* * *
태평양 함대 사령관으로 임명된 니미츠 제독이 임시로 사령관직을 맡고 있는 파이 제독을 시켜서 태평양 함대 소속의 모든 잠수함에 전한 긴급명령문은 일본 해군도 접수했고 광복군 해군도 접수했다.
“손원일 전단장, 태평양 함대의 명령문이 수령됐으니까 이제 미군 해군의 잠수함들이 움직이기 시작할 텐데, 우리 잠수함 전단도 이틈을 노려보는 것은 어떤가?”
“최선학 함대장님이 보시기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맥아더 사령관에게 우리 광복군 해군 전력이 모두 노출되는 것이 두려운 것뿐이지, 태평양 함대 사령부의 명령으로 이제 본격적으로 미군 잠수함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맥아더 사령관도 제대로 우리를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겠나? 이럴 때 우리도 묻어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음….”
링가옌 만에서 북서쪽으로 160km 떨어진 해상에서 미군 함대의 출현에 대비하던 다카하시 이보 제독의 함대도 카타리나 수상 비행정과 미국 육군 항공대의 공격을 받았으나 가벼운 피해만 입은 채로 스콜 속으로 도망을 치려고 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결국에는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아니, 덜미를 잡힌 것이 아니고 이미 언제 죽을지 모르는 단두대에 목을 걸치고 있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차라리, 미군 항공대가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으면 편하게 사냥했을 텐데 괜히 건드려서….”
“그래도 우리가 추격하고 있다는 것을 아직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습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건가? 하지만, 일본 해군은 소나는 없어도 견시수들의 훈련이 잘되어 있으니까 항상 조심하고 들키지 않게 슬슬 접근해 보자.”
“예, 함장님.”
“통신병, 통신 부이를 띄워라. 우리 광복군 잠수함 전단을 모두 이 해역으로 모아라.”
“예, 함장님.”
잠망경을 통해서 링가옌만의 일본 3함대 수송 선단을 노려보는 손원일의 눈빛은 먹잇감을 노리는 늑대의 눈빛처럼 무섭게 빛났다.
“함장님, KSS 002함과 KSS 004함, 그리고 KSS 007함이 근처 해역에 도착했답니다.”
“우리까지 4척이면 저놈들을 반 정도는 잡을 수 있겠군.”
미군 항공대의 공격을 피해서 먼바다로 피신한 다카하시 이보 제독의 수송 선단은 노심초사하면서 필리핀 상륙 작전이 성공하길 빌고 있었다.
필리핀을 점령하지 못하면 동남아시아 남방 지원지대의 자원 수송에 심각한 영향을 받게 되고, 남양 군도와 동남아시아의 연결이 끊어지기 때문에 해군의 입장에서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육군을 돕고 있었다.
“어! 어! 어룁니다. 남서쪽 1,500m 어룁니다.”
“어뢰 경보! 어뢰 경보! 남쪽 1,800m 지점에도 어뢰입니다.”
일본 수송 선단의 노련한 견시수들은 사방에서 선단을 노리고 달려오는 어뢰를 발견하고 즉시 어뢰 경보를 발령하기 시작했다.
“제독님! 우리 함대가 미군 잠수함들에 노출된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뭣들 하나? 빨리 회피 기동을 해라!”
“방향이 제각기 다른 방향에서 어뢰가 함대를 향하고 있습니다.”
“그럼, 포위됐다는 소리잖아? 멍청아! 그럼, 살릴 수 있는 배부터 살려야 할 것 아냐?”
다카하시 이보 제독의 명령을 받은 장교들은 재빨리 작고 날렵한 소해정과 구축함들로 어뢰가 오는 방향을 막게 했고 크고 순발력이 떨어지는 순양함과 전함을 함대 대형 안쪽으로 모았다.
수송 선단 제일 바깥을 작은 소해함들과 구축함을 배치했고 너무나 느려터져서 도저히 어뢰를 피할 방법이 없는 수송선들도 함대의 대형 외곽을 막았다.
“꽝!”
“산지 마루가 피격됐습니다.”
“꽈 광!”
“1035 소해함이 피격됐습니다.”
“칙쑈! 칙쑈! 어떻게 어뢰가 한 발도 빗겨 나가지 않고 모두 명중할 수 있지?”
“저희도 잘….”
“빨리 함포라도 쏴서 반격해라! 이대로 계속 당하기만 할 건가?”
“예, 제독님.”
다카하시 이보 제독은 미군 잠수함들이 발사한 어뢰에 피격돼서 터져 나가는 함선들을 보면서 분을 참지 못하고 배 난간을 주먹으로 두들겨 패면서 이를 갈았다.
필리핀에 투입된 제16 전대의 아시가라, 나가라, 구마 제5 전대의 묘코. 나치, 하구로 제2 수뢰 전대의 진쓰 제15 구축대의 나쓰시오, 오야시오, 구로시오, 하야시오 제16 구축대의 유키카제, 도키쓰카제, 아마쓰카제, 하쓰카제, 가운데 무려 7척의 함정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3함대의 피해는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3함대의 주요 활동 근거지인 남양 군도의 많은 해군 기지들이 이봉창의 건네준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공격한 진짜 미국 태평양 함대 잠수함들의 공격을 받아서 기지나 항구에 정박 중이었던 수많은 수송선과 구축함 그리고 소해정들이 침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