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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미츠 제독의 첫 번째 명령 (141/225)

니미츠 제독의 첫 번째 명령

“적들을 아군이 구축해 놓은 함정 안으로 몰아넣어라!”

“예, 편대장님. 그런데, 하늘에서 내려다보니까 우리의 유인작전이 눈에 훤하게 보이는데 일본군들은 그걸 모르고 계속 함정으로 기어들어 가네요?”

“그럴 수밖에 없지. 땅에서는 한 면을 보는 것이고 우리는 하늘 위에서 전체를 보는 거니까 그렇지.”

“편대장님, 일본군을 얼마나 더 몰아야 합니까?”

“우리가 휴대한 기관총탄과 기관 포탄이 떨어질 때까지다.”

“마닐라 서남부에 상륙한 놈들은 이놈들이 마지막이니까 그럼 링가옌 만에 상륙한 일본군은 이걸로 끝이군요.”

편대장은 민감한 무전 내용이 나오자 바로 편대원들의 입단속에 나섰다.

“쓸데없는 무전은 지금부터 금지다.”

“예스. 써!”

“알겠습니다.”

바우앙에 상륙했던 다나카 대좌의 대만 보병 2연대는 필리핀 국방군 방어 병력을 밀어내고 바우앙시를 막 점령하려는 찰나에 미군 전투기들의 공습을 받게 되자 필리핀 국방군을 추격하는 것으로 목표를 변경하고 한참을 쫓다 보니까 원래 목표였던 바우앙시에서 한참 벗어난 이름 모를 계곡에 들어서 있었다.

“여긴 어디냐?”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다나카 대좌는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에 급하게 부대를 정지시키고 부관을 불러서 지도를 꺼내게 했다.

“바우앙 동쪽, 리안 비행장 방면으로 약 1.5km 정도 이동한 것 같습니다.”

다나카 대좌는 작전참모와 부관의 대답을 들으면서 시선을 다시 하늘로 돌렸다.

“저것들은 뭔가 좀 이상하지 않나? 공격을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를 왜 계속 따라오지?”

“저도 그게 아까부터 계속 이상했습니다. 연대장님, 마치 우리를 이쪽으로 모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작전참모의 재수가 없는 말이 씨가 됐는지 공격을 할 듯 말 듯 계속해서 저공비행과 상승을 반복하던 미군 전투기들이 하나둘씩 지상의 일본군을 향해서 내려 꽃이기 시작했다.

“타 다 다다 당!”

“투 두두두 둥!”

“공습이다! 엎드려!”

“칙쑈! 뭔가 이상하더라니….”

일본 육군 제14군 사령관 혼마 마사히루 중장은 ‘M’ 작전은 처음부터 불안한 작전이라고 생각했다.

상륙해안의 필리핀 국방군이나 미국이 제대로 싸운다면 상륙한 일본군 선두를 당분간 좁은 해안평야에 갇히게 되고 일본군이 상륙해안 남쪽의 중부 루손섬 평야로 진출하면 좋은 도로를 타고 마닐라까지 바로 갈 수 있었지만, 반대로 마닐라 부근의 미군 주력도 트럭을 타고 상륙해안으로 재빨리 달려올 수 있었다.

만약, 일본 14군의 나머지 병력이 모두 상륙하여 강력한 방어태세를 갖추기 전에 상륙해안 부근의 필리핀 국방군이 제대로만 반격을 한다면 좁은 해안평야에 갇힌 일본군 선두 부대들은 분쇄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상륙을 지원하기 위해서 나온 해군 3함대도 마찬가지로 걱정거리였다.

링가옌 만의 상륙 선단이 일본 해군 3함대의 주력임을 미군이 알아차린다면 미국 해군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항공기와 함정, 잠수함 등을 총동원해서 공격할 것이다.

혼마 마사히로 중장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바로 일본 해군 3함대의 상륙 지원 선단이 미국 해군의 공격으로 치명상을 입는 것이었다.

해군 3함대가 공격받아서 사라지면 아직 상륙하지도 못한 병사들은 당연히 침몰하는 배와 함께 물고기 밥이 될 것이고 이미 루손섬에 상륙한 병력은 보급과 퇴로가 끊긴 상태에서 비참한 패배에 직면하게 될 것이 두려웠다.

그리고, 그런, 혼마 마사히로 중장이 불안해하는 일본 제14군의 불안 요소를 알아챈 사람이 미군 내에서 한 명이 나타났다.

* * *

루스벨트 대통령으로부터 구두로 이미 태평양 함대 사령관에 내정되어 있던 니미츠 제독은 항해 국장 자리를 그동안 항해 부국장으로 함께 일했던 후배에게 인계하고 하와이로 떠날 준비를 서둘렀다.

“제이슨, 준비는 다 끝마쳤느냐?”

“예, 제독님.”

니미츠 사령관과 부관인 제이슨 중위는 위장 신분증을 이용해서 샌프란시스코행 기차표를 구했고 신분을 위장한 채로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대통령께서는 일본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 못한다면 워싱턴으로 돌아올 생각도 하지 말라고 하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제독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일본과의 전쟁은 반드시 미국의 승리로 끝이 날 겁니다.”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대답하는 제이슨 중위를 보면서 듬직하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던 니미츠 제독은 제이슨에게 이유를 물었다.

“제이슨, 넌 그렇게 생각하느냐?”

“예, 저는 우리 미국의 승리는 확실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을지, 얼마나 우리의 희생을 줄일 수 있을지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음…. 그렇구나. 그런데, 조지 씨는 따로 무슨 말은 없더냐?”

자신의 모든 힘들 다해서 도와주겠다고 했던 조지에게서 아직까지는 아무런 연락이 없어서 조금 걱정됐던 니미츠 제독은 혹시 제이슨을 통해서 조지가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물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아버님은 제독님께서 태평양 함대 사령관으로 부임하실 때 전해 드리라고 몇 가지 정보를 주셨습니다.”

“그래? 무슨 정보지?”

“지금 여기서 살펴보시겠습니까?”

“어차피 하와이에 도착할 때까지 시간이 많이 남을 텐데 지금부터 미리 정보들을 살펴보는 것이 좋지 않겠나?”

“알겠습니다. 제독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이슨 중위는 아버지 조지가 전해준 서류를 가방에서 꺼내서 니미츠 제독에게 넘겨줬다.

제이슨이 넘겨준 서류를 한창 읽기 시작하던 니미츠 제독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화하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제이슨! 다음 역에서 바로 내리자.”

“예?”

“아! 참, 여기가 지금 어디쯤이지?”

“제독님,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할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습니다.”

“아니다. 급하게 태평양 함대에 전할 정보가 있다. 태평양 함대나 해군부와 연락 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바로 내리자.”

하와이 진주만의 태평양 함대 사령관으로 부임하러 가던 니미츠 제독은 조지가 전한 정보 중에 자신이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대목을 발견하고 샌프란시스코로 가던 도중에 열차에서 서둘러서 내리려고 했다.

“저…. 제독님, 제독님께서 급하게 처리하셔야 할 일이 태평양 함대가 수행해야 할 명령이라면 일반 통신으로는 명령 전달이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아! 참, 그렇지. 그럼, 제이슨! 좀 더 빨리 샌프란시스코로 갈 방법이 없겠나?”

“제독님, 다음 역에서 내려서 자동차로 이동한다고 해도 기차보다 빠르다는 보장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명령을 내리시려고 그러십니까?”

“이 전쟁의 초반 판도를 완전히 바꿀만한 방법을 찾았다.”

“정말로 그런 정보가 그 서류 안에 있었습니까?”

“너는 조지 씨가 이 정보들을 나한테 주라고 줄 때 내용을 확인하지 않았었느냐?”

“예, 아버님이 서류는 반드시 제독님께만 보여드리라고 하셔서….”

니미츠 제독과 그의 부관인 제이슨 중위가 샌프란시스코 해군 기지에 도착했을 때 진주만으로부터 한 가지 정보가 전해졌다.

“하아…. 예상 밖으로 너무 큰 피해를 보았는데 이러면 진짜로 방법은 한 가지밖에는 없겠는데…. 어쩔 수 없는 건가?”

샌프란시스코행 기차 안에서부터 안절부절못하던 니미츠 제독은 진주만으로부터 들어온 하나의 정보를 듣고는 결심을 굳힌 표정이었다.

“제이슨! 기밀 통신실로 가자.”

“예, 제독님.”

기밀 통신실로 걸어가는 도중에 니미츠 제독은 제이슨 중위를 보면서 씁쓸한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제이슨, 사람의 인생에서 누구도 내일 일어날 일은 미리 알 수는 없다고 하더니 정말로 그런 것 같다.”

“예? 그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작년에 킴벨 제독이 태평양 함대 사령관으로 부임할 때 나도 후보 중의 한 명이었다고 하더구나. 그런데, 만약 내가 작년에 태평양 함대의 사령관이 됐다면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막을 수 있었을까?”

전쟁은 일개 개인의 노력으로 막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니미츠 할아비가 와도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을 막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 니미츠 제독은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감정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제독님, 신께서 제독님께서 하셔야 할 일을 남겨 두시기 위해서 이제야 태평양 함대의 사령관이 되게 한 것은 아닐까요?”

제이슨 중위의 대답에 걷다 말고 니미츠 제독은 걸음을 멈췄다.

“내가 해야 할 일?”

“제독님, 제가 상하이에서 보고 느꼈던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이미 벌어진 상황이라면 전쟁을 최대한 빨리 끝낼 방법을 찾는 것이 지휘관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휘관은 전쟁을 빨리 끝내야 한다?”

“예, 전쟁은 결국 정치의 연장선상에서 발생하는 일이지만 그런 정치적인 문제보다는 병사들의 희생을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도 나한테 조지 씨와 같은 말을 하는구나.”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 아니겠습니까? 저도 최선을 다해서 제독님을 돕겠습니다.”

제이슨 중위의 다짐에 니미츠 제독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다시 발걸음을 뗐다.

“파이 제독, 웨이크섬을 포기했다고요?”

“예, 사령관님. 일본군이 이미 웨이크섬에 상륙한 상황에 웨이크섬을 지원하는 것은 너무 늦은 조치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불필요한 희생만 발생할 것 같아서 그렇게 조치를 했습니다.”

“음…. 이거 우리가 초반에 너무 두들겨 맞고만 있는 것 같은데 파이 제독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기습을 당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파이 제독, 이렇게 두들겨 맞고만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나는 일본 해군에 반격할 생각입니다.”

권투 시합을 할 때도 상대의 펀치가 소나기처럼 쏟아지면 가드를 올려서 방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 펀치가 나오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적절한 반격을 해야 한다.

하다못해 잽이라도 한번 날려줘야 상대도 경각심을 갖는다.

“사령관님. 그럼, 어떻게 반격하실 생각이십니까?”

“지금부터 내가 불러주는 곳으로 태평양 함대 소속의 모든 잠수함과 항공기를 출동시키시오.”

니미츠 제독은 조지가 전해준 정보를 바탕으로 일본의 남양 군도에 산재한 일본 해군 기지와 필리핀 마닐라를 공략하기 위해 상륙한 14군을 지원하는 일본 3함대의 뒤통수를 제대로 날려버릴 명령을 내렸다.

“사령관님, 북 마리아나 제도에 흩어진 일본 해군 기지를 모두 공격하실 생각이십니까?”

“북 마리나아 제도의 일본 해군 기지들을 공격해서 일본군의 필리핀과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한 공격을 차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욱 골치 아파집니다.”

“사령관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는지는 알겠습니다만 현재 우리 함대 장병들의 사기가 워낙 떨어져 있어서….”

“파이 제독! 내가 도착해서 명령을 내리면 그때는 시기를 놓칩니다. 파이 제독이 잠수함대 장병들에게 일본에 동료들의 복수는 해야 하지 않겠냐고 특별히 강조를 좀 해서 출전을 시켜 주십시오. 이것은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 * *

“태평양 함대의 긴급 전문이 사방으로 뿌려지고 있습니다.”

“무슨 긴급 전문인가?”

“마닐라와 팔라우에 정박 중인 일본 해군의 수송선과 함선을 주요 공격 대상으로 삼고 눈에 보이는 대로 격침을 시키라는 명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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