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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 결국은 우리가 막아야만 하는 거야? (133/225)

D+2, 결국은 우리가 막아야만 하는 거야?

12월 7일 일본군 선견 상륙 부대는 루손섬 북부의 바탄섬과 비간 비행장, 아파리 비행장, 루손섬 동남부의 레가스피 비행장, 민다나오섬의 다바오를 공략하기 위해서 상륙을 시도했다.

“연대장님, 진짜로 일본군의 상륙을 막지 않으실 겁니까? 일단, 일본군이 노리고 있는 비행장들을 잃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상황이 아주 복잡해집니다.”

필리핀 마닐라의 미국 육군 극동군 사령부보다 더 빠르게 일본군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있는 광복군 육군 지휘관들은 광복군 해군과 항공대가 일본군을 막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대로 상황이 계속해서 진행된다면 나중에는 오늘 입은 피해를 만회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하는지 그동안의 수많은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 김경천 대령에게 광복군의 육군만이라도 일본군의 필리핀 상륙을 저지하자고 요청했다.

“나도 안다. 하지만, 상황이….”

광복군 육군만으로 일본군 선발대를 막아내기 위해서는 부대원들의 만만찮은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김경천 대령이 걱정하는 것은 빛이 나지도 않을 일을 하면서 피 같은 광복군 병사들을 잃는 것이었다.

당장, 광복군이 일본군 선발대는 막아봤자 맥아더 사령관이나 미국 정부가 그것을 알아줄까?

현재, 돌아가는 사정을 봤을 때는 그렇게 되기는 힘들어 보였다.

“연대장님, 맥아더 사령관이 아무리 싫어도 일단 우리 일은 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연대장님, 타이완의 가오슝과 저둥, 그리고 쑹산 비행장에서 날아오는 일본 항공대를 막아내기도 벅찬 상황인데, 만약 일본군이 노리는 비간과 아피리 비행장까지 뺏긴다면 우리는 앞으로 필리핀을 방어하기는 더욱 힘들어집니다.”

1920년대부터 일본군을 상대로 한 수없이 많은 전투 경험을 가진 육군 지휘관들은 일본군이 먼저 승기를 가져가면 얼마나 무서워지는지 너무나 잘 알았다.

“부관! 항공대에 연락해주게.”

“예, 연대장님.”

“이보게. 박 소령. 아무래도 우리를 좀 지원해줘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나?”

광복군 항공대의 지휘관인 박하성 소령은 까마득한 경력을 가진 광복군의 선배가 오죽했으면 이렇게까지 아쉬운 소리를 할까 싶었다.

“김 대령님, 진짜 일본군의 상륙을 막으실 생각이십니까?”

“그렇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일본군이 비행장을 확보하게 놔두면 안 될 것 같아서 말이야.”

“그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왜 일본군의 상륙을 막아야 합니까?”

“나도 자네들이 왜 그러는지 잘 아네. 그렇지만, 맥아더 사령관의 문제는 맥아더 사령관의 문제고, 일본군의 상륙은 일본군 상륙이네. 이것들은 전혀 별개의 일이라는 말일세.”

“김 대령님, 우리 광복군의 희생으로 일본군 선발 부대의 상륙과 비행장 확보를 막아봐야, 그것은 미국 극동군 사령부의 공이 될 겁니다. 피는 우리가 흘리고 공은 맥아더가 가져갈 겁니다.”

“그래도, 나는 나중에 피를 더 흘리느니 지금 차라리 우리가 나서서 막고 싶네.”

이미 수많은 전투 경험이 있는 광복군 지휘관 중에 그 사실을 모르는 지휘관이 있을까? 하지만, 맥아더의 성정상 공은 자기 차지가 될 것이고 광복군은 앞으로도 더욱 험한 일에 동원될 것이 뻔했다.

“김 대령님, 조지 대장님께서 워싱턴에서 새로운 지시를 내려줄 때까지만 참으실 수는 없으시겠습니까?”

“박 소령, 자네도 잘 알겠지만 모든 일에는 때가 있네, 지금 막지 않으면 호미로 막을 일을 나중에는 가래로 막게 될 거야.”

“하아…. 알겠습니다. 결국은 우리가 막아야만 할 일이군요. 지금 바로 전투기들을 보내겠습니다.”

광복군 항공대의 항공 지원을 약속받은 김경천 대령은 휘하의 부대에 급하게 연락하기 시작했다.

“바탄섬에 상륙하는 일본군은 그대로 둔다. 그리고, 마닐라 동남쪽 레가스피 비행장도 포기한다. 우리는 비간과 아파리 비행장을 점령하기 위해서 상륙하는 일본군만 격퇴한다.”

“예, 연대장님.”

김경천 대령의 명령에 따라서 광복군 육군 지휘관들은 서둘러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광복군 항공대의 항공 지원이 끝나고 나면, 비간과 아파리에 상륙을 시도하는 일본군을 바로 몰아내야 했다.

“연대장님, 그런데, 필리핀 레인저 부대는 어떻게 합니까? 그들의 지휘권이 저희한테는 없지만 필리핀 레인저 부대를 동원해서 함께 전투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겁니다.”

“안다. 하지만, 이번에는 레인저 부대는 배제하고 우리끼리만 전투하자. 너희도 잘 알듯이 우리가 필리핀 레인저 부대를 동원하면 맥아더가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을지 모른다.”

“진짜, 그 개새끼는 어떻게 한 번도 도움이 안 됩니까? 알아보니까 전쟁이 터진 날 새벽에 호텔에서 파티를 벌이느라고 대처가 늦었답니다. 아니, 아무리 일본군이 허접하다고 해도 그렇지. 이미 전쟁이 터질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경고를 했는데도….”

“언제 우리가 남들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냐? 도움이라면 그저 우리 동포들의 피땀이 어린 정성이 전부였지. 그리고, 다들 병사들에게 죽지 말라고 전해라. 남의 전쟁에서 피를 흘리는 것도 서러운데 목숨까지 잃게 되면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고 해라!”

“예, 연대장님.”

* * *

F6F 헬캣 전투기들이 지상에서 상륙을 위해서 움직이는 일본군을 향해서 맹렬히 기관총을 쏘아댔다.

“두 두두두 두!”

“두 두두두 두!”

“우리가 한 놈이라도 더 잡아주면 육군이 편하다. 다들 피곤하겠지만 조금만 더 신경을 집중해라!”

“예, 편대장님.”

일본군의 선발 상륙 부대는 제공권을 장악하기 위해서 필리핀에 주둔 중인 미군 항공대를 공격했던 일본군 항공대가 피해만 본 채 후퇴를 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작전대로 그대로 상륙을 시도했다.

“저 새끼들은 어떻게 된 게 융통성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들이 죽을 구덩이로 어떻게 저렇게 들어오는지….”

“그것이 일본군의 장점이자 단점이잖나.”

박시창 소령과 지청천 중령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하늘에서 신나게 일본군 상륙 부대를 조지던 항공대가 하나둘씩 전장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이제 항공대가 빠질 시간인가 보군. 박 소령, 잘 부탁하네.”

“벌써, 우리 포병대가 나설 시간이 됐습니까?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깨끗이 녹여 드리겠습니다.”

대답한 박시창 소령은 무전기를 들고 일본군 상륙 지점에 대한 포격을 지시했다.

“전포! 지정된 좌표로 사격을 시작한다. 준비된 포대부터 사격 시작!”

“꽈 광!”

“꽝!”

박시창 소령의 명령이 있고 불과 몇 초도 지나지 않아서 일본군 상륙 부대가 웅크리고 있던 지역으로 광복군 포병대의 포격이 빗발치듯이 쏟아져 내렸다.

“그런데, 비간과 아파리는 우리가 막는다지만, 레가스피 쪽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그쪽에 대한 일본군 상륙을 극동군 사령부에서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는 것 같던데….”

“박 소령, 연대장님께서 어째서 비간과 아파리만 막는 줄 아나?”

“혹시, 의도적인 겁니까?”

“그래, 레가스피가 뚫리면 마닐라의 동남쪽이 바로 노출될 테니까 극동군 사령부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지겠지.”

김경천 연대장과 지청천 참모장(광복군은 연대급이지만 사단 확대를 대비해서 참모체계를 갖췄음)은 조지 대장의 경고를 듣고 맥아더 사령관이 처음 세워둔 필리핀 방어 작전계획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상당히 많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맥아더 사령관이 어떤 경우에라도 마지 못해서라도 방어 작전계획대로 움직이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맥아더 사령관은 분명히 마닐라를 방어하려고 하겠군요?”

“그렇겠지. 하지만, 마닐라는 방어하기 쉬운 곳이 아니야. 나중에는 결국 포기하겠지.”

“그럼? 나중에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뭘 어떡하나? 원래의 방어 작전대로 바탄반도로 기어들어 가게 만들어야지. 우리는 맥아더 사령관이 움직이지 않으면 움직이게 할 생각이네. 그래서, 앞으로도 일본군 공격은 바탄반도와 클라크 비행 기지 그리고 수빅만 해군 기지만 막을 생각이네.”

“이야! 맥아더 사령관이 똥줄이 타서 우리한테 도와달라고 애원할 모습이 벌써 눈에 선합니다.”

“설마 그러겠나? 맥아더 사령관은 절대로 본인은 그렇게 하지 않을 거네. 불쌍한 서덜랜드 참모장을 보내겠지.”

“하기는…. 그렇겠군요.”

“박 소령, 이 정도면 된 것 같네. 포격을 멈추게. 다음은 우리가 소탕전을 벌일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박시창과 지청천이 나눴던 대화에서 이미 예상이 됐듯이 마닐라 동남쪽을 노리고 레가스피에 상륙한 일본군은 치열한 전투 끝에 레가스피 비행장을 점령하고 교두보를 확보하고 말았다.

필리핀공략의 주력군인 일본군 14군은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필리핀공략을 위해서 자신들이 보낸 선발대는 상륙 거점을 확보하지도 못했고 비행장을 점령한다는 작전 목표도 실패했는데, 팔라우에서 지원을 나온 병력은 힘들게 점령하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레가스피 비행장을 점령하고 확보해 버렸다.

그리고, 레가스피 비행장을 잃고 미치기 일보 직전인 곳이 한 곳이 더 있었다.

“이봐! 서덜랜드! 지금 뭐 하자는 건가?”

“사령관님 저희는 최선을 다해서….”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최선을 다했으면 그깟 일본군 선발대 정도는 막아줬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사령관님, 그게 아니고, 우리 항공대가 일본군 항공대의 공습을 막아내지 못하면서….”

“그럼, 실력이 좋은 광복군 항공대에 출격을 명령했으면 됐을 것 아닌가?”

“광복군 항공대는 현재 루손섬 일대의 중요 시설을 방어하느라 여력이 되지 않습니다.”

“필리핀 국방군 항공대는 그동안 교육을 그렇게 받았으면서 실력이 그것밖에 안 된다는 소린가? 어떻게 20대 40의 싸움에서 지냐는 말이야?”

“사령관님, 그래도 나머지 상륙 지점은 방어를 하지 않았습니까? 레가스피는 바로 탈환하겠습니다.”

“아시아 함대의 하트 제독은 뭐 하고 있지? 아시아 함대가 팔라우에서 레가스피로 접근하는 일본 해군을 막아줬어야만 할 것 아닌가?”

“그게…. 해군과는 아직 협조체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계획은 계획일 뿐이라는 것이 증명된 것이 바로 필리핀 방어 작전 계획이었다.

맥아더 사령관과 휘하의 사단장들 그리고 참모들이 모여서 필리핀을 방어하기 위해서 머리를 맞대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서 마련한 작전계획이었지만, 처음부터 꼬여서 계획대로 실행하지 못하게 되면서 결국에는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하트는 그때 뭘 하고 있었는데?”

“사방에 흩어져 있던 아시아 함대를 수빅만 기지로 모으고 있었습니다.”

“수빅만으로?”

“예, 사령관님. 그래서 팔라우에서 접근하는 일본 해군을 막지 못했습니다.”

“아니, 일부러 일본 해군의 접근을 감시하기 위해서 흩어 놓은 것을 왜 다시 수빅만으로 모아?”

육군 따로 해군 따로 항공대 따로 놀다 보니까 작전계획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맥아더 사령관은 서덜랜드 참모장에 필리핀 극동군에 소속된 모든 지휘관을 불러 모으라고 명령했다.

“서덜랜드! 지금 당장! 아시아 함대의 하트 제독과 브레러튼 항공 사령관 그리고 대한민국 광복군의 김경천을 불러라!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겠다.”

“예, 사령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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