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미국 해군 태평양 사령부 사령관과 부관
일본과의 전쟁이 시작되면서부터 해군 정복을 입고 근무하는 중인 니미츠 항해 국장 옆에는 니미츠 항해 국장의 부관인 제이슨 중위가 서류를 잔뜩 들고 결재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제이슨. 그건, 또 뭐냐?”
“국장님, 이것들은 이번에 진주만에서 사망한 병사들과 장교들의 가족들에게 전달해야 할 서류입니다.”
제이슨 중위의 대답에 니미츠 국장은 그렇지 않아도 밝아 보이지 않았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하아….”
한숨을 내쉬는 니미츠 국장을 보면서 부관인 제이슨 중위는 어젯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니미츠 국장이 진주만에 대한 일본군의 공습을 알면서도 비상경보를 발동하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 아니냐면서 위로하기 시작했다.
“국장님, 저도 어젯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버지에게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은 국장님께서 막을 수 없었던 일인 것 같았습니다. 너무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제이슨. 너도 조지 씨처럼 그렇게 생각하느냐? 내가 진주만 공습을 알면서도 막지 않았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버지께 진주만 이야기를 듣고 저도 처음에는 공습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는 거냐?”
“예, 만약 진주만 공습을 막았다가 나중에 더 큰 희생이 발생하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입니까? 제가 보기에는 현재 우리 미국 해군은 일본 해군을 막을 전력이 없습니다.”
제이슨 중위의 말에 니미츠 국장은 한참 동안 제이슨 중위를 쳐다보다가
“제이슨, 그렇지만 지금 와서 보면 일본군은 처음부터 하와이를 점령할 생각이 없었다.”
“그것은 결과론적인 말입니다. 그때, 전해진 정보는 일본군의 공격이 있다는 것이었지. 일본군이 진주만을 공습만 한다는 정보는 없었습니다. 일본군이 공습만 하고 갈 줄은 아무도 몰랐다는 소립니다.”
“그래서, 제이슨 너는 내가 진주만 공습을 막지 않은 것이 잘했다는 거냐?”
“아닙니다. 국장님,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만약, 우리가 진주만의 공습을 막았다면 진주만 공격에 실패한 일본군이 다음에는 샌프란시스코나 로스앤젤레스를 공격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됩니까?”
“그것은 만약이라는 가정일 뿐이다.”
“국장님께서 지금 하고 계시는 생각과 말씀도 마찬가지로 만약이라는 가정이 깔려있지 않습니까? 제 아버지는 진주만에서 일본군의 공격에 당해 주는 것이 차라리 미국을 위해서 더 나은 선택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나도 조지 씨가 말했던 의견이 어쩌면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을 막지 않았다. 조지 씨 말처럼 일본 해군이 진주만 공습에 실패하면 다음은 어디를 노릴까? 아마, 진짜로 본토를 공격하려고 했겠지.”
조지는 그날 밤 니미츠에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일본 군부가 진주만 공격에 실패한다면 그다음에는 어떤 방식으로 모험을 할지 모른다는 점을 강조하고 강조를 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미국의 해군은 일본 해군을 막을 방법이 하나도 없었다.
일본 해군은 이미 미국 해군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그 단적인 예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미국의 태평양함대는 겨우 3척의 항공모함으로 전쟁 초기를 겨우겨우 버텨냈다.
하지만, 일본 해군은 크든 작든 10척이 넘는 항공모함을 운영하고 있었다.
10척이 넘는 항공모함이 샌프란시스코나 로스앤젤레스를 공격하기 위해서 온다고 상상을 해보면 니미츠 국장의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은 이해가 됐다.
“국장님, 맞습니다. 당장 미국에 커다란 타격을 줘서 우리 미국의 기를 꺾어야만 하는 일본군은 분명히 그렇게 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국장님께서는 진주만 공습에 대해서 마음속으로라도 책임을 지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계속 마음속에 담아두시면 나중에 마음에 병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제이슨, 나는 좀 더 큰 피해가 생길지 모르는 일을 막기 위해서 진주만의 작은 피해로 덮었지만, 지금 네 손에 들려있는 진주만 사망자들의 목숨은 누가 보상해야 하는 거냐? 진주만 공습을 미리 알고 있었던 나와 너는 아닐까?”
제이슨 중위의 손에 들른 전사자 명단은 분명히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누군가의 남편이었고, 누군가의 가족이었을 것이다.
니미츠 국장이 지적한 전사자들의 명단 앞에서는 제이슨 중위도 더는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국장님의 깊으신 생각을 제가 알지 못했습니다.”
“제이슨, 너는 앞으로 해군 지휘관으로서 나중에 함대를 지휘할 수도 있다. 그때는 병사들 누구 하나라도 목숨에 가치를 매길 수 없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마라. 누구나 전부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소중한 목숨이다.”
“예, 알겠습니다.”
“제이슨, 내가 진주만 때문에 고민하는 것은 내가 평생 짐으로 짊어지고 나갈 문제니까 나를 너무 신경을 쓰지 마라. 그리고, 나는 조지 씨의 말처럼 이 전쟁을 최대한 빨리 끝을 내서 병사들이 한 명이라도 덜 죽고 덜 다치게 만들고 싶을 뿐이다.”
“예. 국장님. 저도 최선을 다해서 국장님을 돕겠습니다”
부관인 제이슨 중위의 힘찬 대답에 니미츠 국장은 작디작은 미소를 보여주고 제이슨 중위가 들고 있던 전사자의 명단을 넘겨받았다.
* * *
어젯밤, 니미츠를 만나서 꽤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니미츠를 간신히, 아니 겨우겨우 설득했다.
처음 니미츠는 내가 아무리 말려도 진주만 공습을 막아야 한다고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니미츠 국장님, 국장님이 평소 가진 도덕성과 충돌하는 문제일 수 있지만, 지금은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지금 내 눈앞에서 내가 키워낸 장교들이 죽어 나가게 생겼는데 나보고 가만히 일본군의 공습을 지켜보라는 말입니까?”
니미츠의 눈빛과 말투는 내가 말 한마디 잘못하면 제이슨과 메리의 결혼도 없던 걸로 만들 기세였다.
“니미츠 국장님! 제발, 지금은 냉정하게 생각을 하십시오. 지금 일본군은 독일이 유럽을 장악한 것을 보고 자신들도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미쳐있습니다.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이 타격을 받지 않았다고 판단하면 그다음에는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그건 그때 문제요. 그리고, 우리 해군이 막을 수 있소.”
내가 니미츠를 쉽게 설득할 수 있다고 너무 자신했던 것 같다고 후회가 됐다.
확실히, 체스터 니미츠는 확고한 도덕심과 부하들을 아끼는 마음이 남달랐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블러핑을 조금 하기로 마음먹었다.
“니미츠 국장님, 일본 대본영은 진주만 공습 작전이 실패라고 생각되면 다음은 알래스카를 거쳐서 미국 본토에 대한 공격을 시작할 것이고, 잠수함들을 총동원해서 미국 서부 해안의 공업 시설과 조선 시설들을 공격할 겁니다.”
앞으로 일본 해군이 펼칠 작전을 미리 말해주는 거니까 내가 니미츠에게 완전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어쩌면 일본군이 좋아하는 특수 작전을 진행할지도 모릅니다. 만약, 미국 서부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 일본군 특수 부대에 동조하면 미국의 서부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겁니다.”
니미츠 역시 아시아 함대에서 근무했던 사람이고 일본에서도 생활을 해봤던 장교답게 내가 말하는 일본군 특수 부대라는 것이 어떤 종류의 군인들인지 아주 잘 알았다.
그리고, 일본인들의 습성도 잘 아는 편이었다.
“조지 씨, 그 정보는 확실합니까?”
미국 서부 해안에 일본군 특수 부대가 상륙한다는 소리에 니미츠는 조금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예, 특공 작전을 계획 중이라는 것까지 내가 확인했습니다. 물론, 이것이 실제 작전으로 이어질지는 나도 모릅니다. 하지만, 난징에서와 같은 일이 생기는 것은 미리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난징의 중국인 수십만 명 학살 이야기가 나오자 확실히 니미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미국이 일본을 본격적으로 제재한 것은 일본군의 광기를 직접 눈으로 목격한 이후였다.
바로, 난징의 학살 사건의 실체를 알고부터는 일본에 대한 제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음….”
“부하들의 희생은 안타깝지만, 현실적으로 미국 해군 태평양함대가 모든 일본 해군을 막을 방법이 있습니까? 항공모함 숫자가 10대 3입니다. 그리고 일본 역시도 엄청난 숫자의 잠수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짜로, 일본 해군을 막을 수 있습니까?”
넓디넓은 미국의 서부에 일본군 특공대가 상륙한다면 그것은 진짜로 재앙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일본을 아직도 자신들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일본인 이민 1세대들이 동조하기 시작하면 일본과 본격적으로 전쟁을 해보기도 전에 미국이 먼저 무너질 수도 있었다.
“음….”
“수많은 미국 국민을 위해서 이번만 참아 주십시오.”
미국은 일본이 워싱턴 대사관으로 선전포고용으로 보낸 비밀 지령을 진주만 공습이 있기 3시간 20분 전에 이미 감청해서 해독해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7일 오전 10시쯤(워싱턴 시각)에 일본군이 군사 행동을 시작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미국은 '만약의 사태가 생길 수 있으니 경계를 강화하라'라는 정도의 지시만을 내렸다.
왜 그랬을까?
내가 니미츠를 말린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어쩌면, 미국은 정말로 의도적으로 방치했을지도 몰랐다.
* *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 그리고, 일요일에는 나도 좀 쉬자. 하필이면 일요일에 보자고 불러내는 거야?”
“헤이우드, 그럴 일이 있어.”
이제 잠시 후에는 모든 라디오 방송이 중지되고 일본의 진주만 공습에 대한 특보가 나올 것이다.
“조금만 기다려봐. 아 참, 헤이우드, 뭘 마실 거야?”
그때였다.
미국의 모든 라디오 방송에서는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 소식이 흘러나왔다.
‘잠시 속보를 전해드리겠습니다. 하와이 시각으로 오늘 오전 7시 30분…. 일본군의 기습공격을 받았습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긴급 뉴스를 들은 헤이우드는 엄청나게 놀란 얼굴로 나와 라디오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조지! 설마…. 너, 저걸 알고 있었어? 그래서, 나를 불러낸 거야?”
“응.”
“야! 미친놈아! 지금, 일본이 우리 미국을 공격했잖아? 너는 그걸 미리 알았으면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던 거야?”
“아니, 나도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와서 확신할 수가 없었어. 다만, 진짜 일본이 우리 미국을 공격한다면 그럼 전쟁이 벌어지는 거잖아? 그래서, 나는 내가 그동안 모은 일본군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가지고 왔어.”
“그러니까 너는 확신은 못 했지만, 일본이 우리 미국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잖아?”
“응. 하지만, 헤이우드, 넌 내가 이런 정보를 떠들고 다닌다고 해서 누구 하나 내 말에 귀 기울여줬을 것 같아?”
내 말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내가 그런 소리를 지껄이고 다니면 미친놈으로 몰리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헤이우드 브룬은 1차 세계대전에 함께 참여했던 전우답게 나의 충성심을 믿어줬다.
“그래, 하긴 너처럼 미국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녀석이 의도적으로 일본의 공격 사실을 속일 이유는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왜 부른 거야? 나한테 넘겨줄 기삿거리라도 있는 거야?”
“아니야. 대통령을 만나고 싶어서 그래.”
“프랭키를?”
“응, 내가 아무리 대통령의 후원자라고 해도 전쟁이 터진 이 시점에서 쉽게 만나기 힘들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