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
필리핀 공습 작전에 참여한 일본의 항공대는 550여 대의 항공기를 보유한 제5 비행집단과 제11 항공함대였다.
제5 비행집단과 제11 항공함대는 개전 당일 재빨리 필리핀에 산재한 미군 항공대의 비행장과 항공기들을 공격해서 일본 육군 14군의 상륙과 전개를 지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일본 육군 14군의 계획은 첫 번째 단추에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각하, 제5 비행집단과 제11 항공함대가 필리핀에서 예상치 못한 반격을 받아서 작전 계획상의 제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일본 육군 14군의 참모장인 마에다 마사미 중장은 군사령관인 혼마 마사하루 중장에게 처참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전투 결과 보고를 했다.
“참모장의 표정을 보아하니 전투 결과가 많이 안 좋은 모양이지?”
“예, 사령관님, 죄송합니다.”
“항공대의 피해가 어느 정도길래 그러나?”
“이번 필리핀 공습 작전에 참여한 500여 대의 전투기와 폭격기 중에 120여 대 이상이 피격된 것으로 보고됐습니다. 아직 쑹산 항공기지로 돌아오지 못한 조종사들이 있는 것 같아서 자세한 숫자까지는 파악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마에다 마사미 중장의 보고에 혼마 마사하루 사령관은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이 되었다.
“500여 대가 출격해서 120여 대 이상이 현재 피격됐거나 실종된 상태라고? 그럼, 동시에 진행된 선발대들의 상륙작전은 성공 가능성은 전혀 장담하지 못한다는 소리이지 않나?”
“예, 사령관님의 예상처럼 바탄 섬과 루손섬의 아파리, 비간, 레가스피 그리고 민다나오섬의 다바오 등에 상륙한 선발대가 안전하게 상륙했는지도 파악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칙쑈!”
욕을 한마디 내뱉은 혼마 마사하루 사령관은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이마를 한번 쓸어 올리면서 서둘러서 대책을 세울려고 골몰했다.
“본격적인 상륙작전을 위한 주공 병력은 지금 작전 지역에 도착할 때가 됐지?”
“예, 사령관님.”
“지금 당장 멈출 수는 없겠지?”
“사령관님, 우리만의 단독 작전이 아니고 해군 3함대의 수송 지원을 받는 작전이라서….”
“칙쑈!”
“사령관님, 빨리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항공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상륙작전에 투입된 병력이 모두 물고기 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참모장, 돌아온 항공대를 다시 전원 출격시켜라. 다시 출격시켜서 상륙작전을 지원하라고 해. 그런데, 필리핀의 미군은 우리가 공격할 것이란 것을 어떻게 알고 있었지? 설마, 다른 곳도 필리핀과 같은 상황인가?”
이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혼마 마사하루 사령관이 참모장인 마에다 마사미 중장에게 물었다.
“다른 곳에서 실시되고 있는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오직, 필리핀에서만 미군의 반격을 받았습니다.”
“그래? 그러니까 확실히 뭔가 이상하지 않으냐는 말이다.”
“정보가 중간에 노출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다만, 필리핀지역의 미국 극동군 사령관인 맥아더의 대처가 빨랐다고 생각됩니다.”
“제길! 하필이면 우리 14군이 담당하는 곳이 미군 최고의 지휘관이 있는 필리핀이냐고?”
혼마 마사하루 14군 사령관이 알고 싶은 내용은 이유가 뻔했다.
대본영에서는 미국과의 전쟁을 반대하는 의견을 냈거나 육군의 전통적인 사상과는 다른 튀는 지휘관을 가장 먼저 사지에 집어넣었다.
“사령관님, 우리 14군은 앞으로 더 험난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침착하게 대처하시기 바랍니다.”
“그래. 고맙다. 일단, 상륙부대의 지원을 위해서 항공대를 빨리 재출격시키고 필리핀 현지의 정보망을 총동원해봐. 미군의 방어 전략을 알아야 뭐라도 시도할 수 있으니까? 알겠지?”
“예, 사령관님. 최대한 서둘러서 조치하겠습니다.”
* * *
일본 항공대의 중요 공격목표였던 클라크 항공기지와 마닐라의 수빅만 해군기지를 지켜낸 박하성 소령과 광복군 항공대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활주로에 하나둘씩 착륙을 하기 시작했다.
“박하성 소령! 박하성 소령!”
“예, 브레러튼 사령관님, 활주로까지 마중을 다 나오시고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
“박 소령, 할 이야기가 있어. 그러니까 나를 조용히 따라오게.”
“브레러튼 사령관님, 대원들에게 다음 명령을 내려야 하는데….”
“지금, 그럴 때가 아니야. 어서 가세.”
니엘슨 항공기지에 박하성 소령의 F6F 헬캣이 선두로 착륙하고 캐노피가 열리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브레러튼 필리핀 항공대 사령관이 박하성 소령이 기체에서 내려오자마자 손을 잡아끌고 아무도 없는 자신의 사무실로 데려갔다.
브레러튼의 표정은 무척이나 심각했다.
일본 해군 항공대의 예상치 못한 기습을 받은 클라크 항공기지와 마닐라항을 다행히 방어를 했지만 다른 곳은 사정이 여의치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한 박하성 소령은 조용히 브레러튼 필리핀 항공대 사령관을 따라갔다.
“박 소령, 좀 우습지만 맥아더 사령관이 당신들 광복군에게 재갈을 물릴 생각인 모양이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 광복군은 미군과는 협조하는 위치이지, 필리핀 국방군과 같은 관계는 아니지 않습니까?”
박하성 소령은 문득 조지 대장이 미국으로 떠나면서 앞으로 일본과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맥아더 사령관이 어찌 나올지 모르겠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조지 대장은 미국을 가는 이유가 대책을 찾기 위해서라면서 대책을 찾을 때까지 맥아더 사령관의 명령을 따라주는 척하고 있으라는 신신당부를 했었다.
“그게 아무래도 맥아더 사령관님께서는 필리핀인들로 구성된 군대를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오.”
“사령관님, 그게 말이 됩니까? 우리는 단지 미군을 돕는 협력자일 뿐입니다. 우리는 맥아더 사령관의 부하가 아닙니다.”
“알고 있소. 하지만, 맥아더 사령관의 명령은 극동군이 주둔하고 관리하는 지역에서는 절대적이요.”
“예? 아니, 니미 시발!”
브레러튼 필리핀 항공대 사령관은 지금 광복군이 어떤 심정일지 잘 알기 때문에 박하성 소령의 입에서 걸쭉한 욕이 튀어나와도 눈감아줬다.
“우리 광복군 항공대만 미군에 합류하라는 맥아더 사령관의 명령이 내려온 겁니까? 아니면, 광복군 전체에 맥아더 사령관의 명령이 내려온 겁니까?”
“필리핀에 있는 모든 광복군은 전부 해당될 거요.”
“그럼 만약, 우리가 맥아더 사령관의 명령을 거부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렇게 된다면 맥아더 사령관은 아마 맥아더 군법대로 처리할 거요.”
“시발! 진짜 X 같네.”
맥아더 사령관이 광복군 전체를 장악하려고 시도하지 않았으면 최대한 미국 극동군 사령부의 직전에 협조했을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은 맥아더 사령관이 지휘권을 행사하겠다고 통보한 이후로는 사실상 태업에 들어가 버렸다.
* * *
“대장님, 정말로 상륙하는 일본군 선발대의 수송선을 그대로 둡니까?”
“그대로 둬라. 맥아더 병신 같은 새끼가 우리 광복군을 제 놈 부하로 생각하는 모양인데 한번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하지만, 대장님. 우리가 여기서 미리 저지하지 않으면 우리 경보병 대대와 필리핀 레인저 부대가 일본군 선발대를 막아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전력을 노출 시키면 맥아더는 우리를 더 자신의 휘하에 두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 광복군 지휘관들은 이런 결정을 한 것이다. 조금 있다가 우리 대신 항공대가 출격해서 일본군 선발대를 공습할 것이다.”
태평양 전쟁 개전 첫날, 전쟁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어디서 자빠져서 놀다가 일본군의 공습이 다 끝나고 나서야 나타난 맥아더 극동군 사령관은 제일 먼저 한 일이 광복군을 자신의 명령체계 아래로 들어오게 만든 일이었다.
맥아더 사령관이 주장하는 핑계는 아주 간단했다.
전쟁이 벌어진 상황에서 통제가 되지 않는 병력과 함께 할 수 없다고 하면서 협동 작전을 위해서 극동군 사령부의 지휘 아래 들어오기를 강요했다.
강압적인 미군 극동군 사령부의 명령에 반발한 광복군 지휘관들은 미군이 모르게 비밀리에 만났다.
“역시, 예상대로입니다.”
“어째서 맥아더 사령관은 조지 대장의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할까요?”
“조지 대장님이 그동안 맥아더 사령관을 가장 많이 상대해서 그렇겠죠. 그러니까 맥아더 사령관의 생각을 먼저 읽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의 주요 지휘관들인 김경천, 지청천, 박하성, 최선학, 손원일, 박시창, 오창호, 김홍일 등의 장교가 모여서 맥아더 사령관의 명령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의논을 하기 시작했다.
“김경천 대령님. 그럼, 지금부터는 조지 대장님이 지시한 대로 하실 생각이십니까?”
광복군 해군 잠수함대장인 손원일 중령이 상급자인 김경천 대령에게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대책을 물었다.
“조금 있다가 잠수함대가 일본군의 상륙을 저지하지 않으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 것 같은가?”
“우리 경보병 대대와 필리핀 레인저 부대가 많이 고생할 겁니다. 적이 상륙하기 전에 저지해야지. 일단, 상륙하게 되면 일본군도 교두보를 확보하기 때문에 나중에 처리하려면 골치가 아파집니다.”
“그러니까 일본군이 상륙한 상황까지 가정했을 때 미군이나 필리핀군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냐는 말일세?”
“절대로 오래는 버티지 못할 겁니다. 길어 봐야 일주일 안에 마닐라를 일본군에게 뺏길 겁니다.”
경보병 대대를 지휘하고 있는 오창호 소령의 대답에 김경천 대령은 고심하는 눈빛이었다.
“대의를 생각한다면 일본군 선발대를 초전에 박살을 내고 일본군 본대의 상륙을 막아야 하는데….”
“저…. 김경천 대령님. 고민할 필요 없이 그냥 조지 대장님의 지시대로 움직이시죠?”
미국 윌로우스 항공학교에서부터 조지 대장과 함께해왔던 박하성 항공대장과 오창호 경보병 대대장 그리고 실질적으로 광복군 해군을 만들어 준 조지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 잠수함대장 손원일과 방공 구축함대장 최선학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그냥 조지 대장의 지시대로 움직이자고 요구를 했다.
“그게 그렇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 만약, 우리가 아무런 힘을 쓰지 않고 일본군의 공격을 그냥 보고만 있다가 필리핀을 잃게 되면 맥아더 사령관이 과연 가만히 있을까? 나도 맥아더 사령관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 봤는데, 그는 분명히 우리 핑계를 댈 사람이야.”
김경천 대령이 맥아더에 대해서 내심 걱정하는 것이 맞다는 것을 함께한 지휘관들은 모두 다 알고 있고 다 같이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맥아더 사령관은 명령대로만 움직이다가는 어떤 불상사가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이 문제였다.
“김경천 대령님, 맥아더 사령관이 부대에 복귀하고 가장 먼저 한 명령이 뭔 줄 아십니까?”
“나도 들었네. 필리핀을 공습한 일본 해군 타이완 쑹산 기지에 대한 폭격 취소?”
“예, 바로 그겁니다. 충분히 가능한 작전이었고 경험이 부족한 미군이나 필리핀 항공대가 아니라 우리 광복군 항공대가 가겠다고 했는데도 강하게 반대하면서 폭격을 취소시켰습니다.”
광복군 지휘관들은 맥아더 사령관이 어째서 그렇게 공격 취소 명령을 내렸는지를 어림짐작으로 다들 알고 있었다.
“그다음 명령이 우리 광복군에 대한 통제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한 가지뿐입니다. 조지 대장님의 예상처럼 그는 이 전쟁으로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를 올리고 싶을 뿐이지, 지금 당장은 일본군과 진정으로 전쟁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흠….”
“시발놈….”
“그 자식은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더니 결국에는….”
광복군 주요 지휘관들은 맥아더 사령관에 대한 불만을 차마 입 밖으로 끄집어내서 욕을 하지는 못하고 욕을 하려다 말고 속으로 삼켰다.
“그럼, 항공대장과 해군은 조지 대장이 지시한 대로 하자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