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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맺어진 동맹 (126/225)

피로 맺어진 동맹

1941년 10월부터 루스벨트 대통령에게는 조만간 일본이 미국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수없이 많은 정보가 들어왔다.

그리고, 루스벨트 대통령은 12월 1일 일본의 침공에 대비해서 전군에 비상 경계령을 발동했다.

“내가 처음에는 조지 대장님의 말을 잘 이해하지를 못했어요. 그런데, 워싱턴과 뉴욕에서 생활하면서 조지 대장님이 경계하는 미국의 참모습을 보게 되고 알게 된 사실이 참 많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모든 외교를 책임지고 있는 김규식은 수년간의 미국 생활로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제대로 깨달은 것 같았다.

“이제는 김규식 선생이 힘들고 어려웠을 때, 미국인 선교사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선생을 도왔는지를 아시겠습니까?”

“예, 인간적인 측은지심 때문에 나를 도왔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다른 의도도 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겠더군요.”

내가 좀 여유가 있는데 눈앞에 내가 돕지 않으면 곧 죽을 것만 같은 아이가 있다면 대부분 사람은 어떻게 할까?

자신밖에 모르는 냉혈한이 아닌 평범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불쌍한 아이를 도울 것이다.

바로, 김규식이 그런 케이스였다.

“그렇다고 너무 미국인을 계산적인 사람으로만은 보지 마십시오. 내 생각에는‘미국인의 선행에는 공짜는 없다.’가 맞는 표현일 것 같습니다.”

“내가 그 정도도 모르겠습니까? 다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와는 너무 달라서 많이 놀랐다는 소리입니다.”

확실히 김규식의 말처럼 지금 한창 진행 중인 제2차 세계대전은 파시즘과 군국주의에 대한 미국의 응징이 아니라 미국기업들의 이해관계와 돈 그리고 이익을 놓고 벌이는 투쟁의 장이었다.

전쟁 전부터 미국의 정치가들은 오직 미국의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과 미국의 국가이익을 추구했던 것이지, 경제 거래를 하는 상대방 국가가 민주 국가냐 독재 국가냐는 것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갈등의 해결 방법도 평화적 협상인지 군사적 대결인지는 중요하지도 않았고, 미국이 그토록 부르짖었던 민주주의, 자유, 정의 등은 미국의 이익 앞에서는 그저 말뿐인 허상이었다.

그 증거로 첫째, 포드, 제너럴모터스, IBM, ITT(국제전신전화회사), 스탠다드오일 등의 미국의 대기업들은 1933년 히틀러 집권 이후 독일에 엄청난 투자를 했고 상상 못 할 이익을 보면서 독일에서 기업 활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전쟁 기간에도 전차와 전투기, 석유, 정보 통신 기술 등 전쟁 수행에 필요한 핵심 전략 물자들을 나치 독일 정부에 공급했다.

미국 대기업이 독일군 전차의 절반을 생산하고, 수입 석유의 90% 이상을 공급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

둘째,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이 해방한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에서 미국은 점령군으로 반파시스트 세력을 일관되게 억압했고 금융가, 기업가, 대지주 등 파시즘을 실질적으로 지원했던 보수 세력들과 손을 잡았고 각국의 보수주의자들과 함께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축했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참전하게 된 진짜 목적은 민주주의의 회복이 아니라 미국 경제의 해외 팽창이었다.

미국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전쟁으로 힘든 동맹국 영국마저도 속였다.

1941년 8월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처칠 영국 총리가 전쟁의 목표로 제시한 대서양헌장의 '민족 자결' 원칙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것이었다.

또한, 독일과 한반도의 분단, 냉전의 시작도 전적으로 미국이 주도해서 이루어졌다.

해방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미국의 실체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정권을 잡지 못했고 그 틈을 노리고 미국의 실체를 잘 알고 있던 이승만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서 반공 친일 매국 정부를 구성했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에 대해서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나와 김규식이 있었다.

“김규식 선생, 미국이 원래부터 그런 국가였다는 것을 알고 접근하면 미국 정부와 정치가들을 대하기가 쉬울 겁니다.”

“요즘은 나도 미국의 실체를 아니까 예전처럼 의리나 인정 같은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참, 그런데, 조지 대장님은 일본과 전쟁이 예상된다면서 워싱턴은 어떻게 오신 겁니까?”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 워싱턴에 왔습니다.”

“아!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일본의 침공 정보라도 알려주실 생각입니까?”

“아니요. 일본군의 공격 정보를 알려줄 생각이기는 하지만 그 대상이 루스벨트 대통령은 아닙니다.”

* * *

1941년 12월 6일 토요일 워싱턴.

체스터 니미츠의 집이 있는 Q 스트리트의 아파트를 아들인 제이슨 해군 중위와 함께 찾아갔다.

“아버지, 니미츠 국장님에게는 오늘 저녁에 집에 방문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지만 무슨 일 때문에 국장님 댁을 찾으시는 겁니까?”

“너 결혼 문제도 있고 니미츠 국장하고 나눠야 할 이야기가 좀 있어서 그런다.”

“아버지, 메리가 아직은 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학교를 졸업하면 그때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아니, 니미츠 국장이 한동안은 바쁠 것 같아서 미리 이야기를 해놓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들 제이슨은 갑자기 미국을 찾아온 나를 반기면서도 니미츠를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다는 말에 걱정이 많은 표정이었다.

“왜? 걱정되느냐?”

“예, 아버지가 미국에 오셨다는 것은 이제 정말로 전쟁이 시작된다는 건데, 솔직히, 저는 전쟁 때문에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갈지 좀 걱정됩니다.”

어린 시절 제1차 상하이 사변을 직접 경험했던 제이슨은 해군 장교이기는 하지만 전쟁을 반대하고 있었다.

나는 걱정이 가득한 제이슨의 어깨를 토닥여 주면서

“제이슨,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아무리 막으려고 해도 어차피 언젠가는 터질 문제였다.”

“그래도 걱정이 됩니다. 제 동기들도 친구들도 그리고 저도 전쟁에 나서야 하지 않습니까?”

제이슨의 걱정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늙은이들의 정치적인 결정으로 청년들이 피를 흘린다고 했던가?

아직은 세상을 제대로 알지도, 즐겨보지도, 살아보지도 못한 애꿎은 젊은이들이 전쟁으로 인해서 앞으로 엄청나게 많은 숫자가 죽어 나갈 것이다.

하지만, 이 전쟁이 없다면 미국은 세계 유일의 강대국이 되지 못하고, 대한민국은 독립을 하지 못한다.

나는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서 수많은 젊은이의 죽음을 외면하는 쪽을 선택했다.

“조지 씨, 어서 오십시오. 워싱턴을 오랜만에 들리셨군요?”

“예, 그동안은 상황이 워낙 급하게 돌아가서 움직일 시간이 없었습니다.”

나의 방문을 환영하는 니미츠와 그의 가족들 사이로 예비 며느리인 메리의 모습도 보였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제독님 댁은 화목하고 밝아서 좋습니다.”

“하하, 그렇습니까? 사실은 내가 초급 장교 시절에 가족들을 워낙 많이 고생을 시켜서 지금은 그냥 가족들이 원하는 대로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나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몇 년만 더 지나면 내가 할 일은 다 끝날 테니까 그때는 정말로 샤본이 원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맞아요. 아내가 원하는 대로 살면 가정은 언제나 화목합니다. 하하.”

태평하고 여유로운 니미츠의 행동은 당장 내일부터 일본과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정보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진주만 공습을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 몰랐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미국의 정치인들과 기업가들 그리고 은행가들은 전쟁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다.

니미츠와 그의 부인인 캐서린, 그리고 그들의 두 딸과 우리 부자는 함께 식사하면서 메리가 학교를 졸업하는 대로 제이슨과 결혼식을 올리기로 이야기를 마무리를 지었다.

그리고, 나와 니미츠는 남들이 모르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조금 쌀쌀했지만, 커피 한 잔씩을 들고 아파트 베란다로 나왔다.

“조지 씨가 나를 밖으로 불러낸 걸 보니까 정말 중요하게 할 이야기가 있나 보군요?”

“예, 제독님. 정말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그래, 무슨 일입니까?”

“내일, 하와이시간을 기준으로 아침 7시에 일본군이 진주만을 공격할 겁니다.”

“예?”

니미츠는 들고 있던 커피를 베란다 바닥에 모두 쏟을 정도로 깜짝 놀랐다.

“조지 씨, 그게…. 정말입니까?”

“예, 사실입니다.”

“그럼, 어서 빨리 진주만에 경계경보를….”

니미츠는 내 대답이 끝나자마자 돌아서서 바로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제독님! 니미츠 제독님!”

내가 갑자기 큰 소리로 자신을 부르자 니미츠는 나가려다 말고 몸을 돌렸다.

“제독님! 루스벨트 대통령이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을 과연 모르고 있을까요?”

루스벨트 대통령이 일본군의 공격을 몰랐을 리가 없었다.

다만, 어쩌면 정확한 날짜까지는 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루스벨트 대통령은 일본 왕이 개전 명령은 내린 12월 1일, 일본의 공격이 예상된다고 전군에 경계경보까지 내린 적도 있는데 진짜로 몰랐을까?

내 생각에는 절대 아니다.

일본군의 공격을 알았지만, 정확한 위치와 시간을 몰라서 진주만이 공격받도록 방치한 것이다.

그래야 미국이 전쟁에 참여할 확실한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니미츠는 베란다 밖으로 나가려다 말고 내 질문을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니미츠 제독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미국은 지금 전쟁을 원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통해서 세계 제일의 패권 국가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진주만 장병들을 희생양으로 받친 겁니다.”

내가 아는 지휘관 중에 가장 합리적이고 인간적인 니미츠는 내 말에 서서히 분노하는 눈빛이었다.

“지금의 그 분노는 잠시 참으시기를 바랍니다. 일개 개인과 국가의 경영자들은 생각이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조지 씨, 정말로 내일 아침 7시에 일본군이 진주만을 공격하고, 우리 정부에서는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니미츠는 어느새 분노의 감정을 삭히고 이제는 한기가 솔솔 풍겨지는 냉정한 목소리로 나한테 되물었다.

“내일 아침 일본군이 진주만을 공격하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미국 정부가 알고 있었느냐 모르고 있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내일 일본의 공격으로 전쟁은 시작됩니다.”

“조지 씨는 대의를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아니요. 나는 내가 가르치고 키운 해군 장교들의 목숨과 삶도 중요합니다.”

“니미츠 제독님께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신다면 어차피 벌어질 전쟁을 빠르게 종결을 지으시면 됩니다. 제독님도 알다시피 전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죽어 나가는 건 말단 병사와 초급 장교들입니다. 그리고, 전쟁은 이미 벌어졌습니다. 누구도 막을 수도 없습니다.”

니미츠는 애타는 목소리로 말리는 내 눈동자를 한참 쳐다보더니

“조지 씨, 이 정보는 언제 알았습니까?”

“일본이 미국과 전쟁을 결정한 것은 12월 1일입니다. 그리고, 정보가 내 손에 전해진 것은 12월 2일, 이 정보의 진위를 확인하고 오늘에서야 확실한 정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제독님을 찾은 겁니다.”

“그런데, 조지 씨는 일본의 공격 정보를 왜 나한테 알려주는 겁니까? 어차피 진주만 공격을 막을 수도 없다면서요?”

나도 니미츠의 눈동자를 쳐다보면서 한참 뜸을 들였다.

“음…. 그건 말입니다. 니미츠 제독님, 당신은 이제 내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동양에서 사돈도 가족으로 인정하고 가족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미리 내일을 준비하라고 알려준 겁니다.”

“내일이요?”

“아니요, 내일이자. 다가올 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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