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오카의 삽질 그리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쇼윈도 동맹
1940년 5월, 소련과 분할로 폴란드를 점령한 히틀러는 이제는‘가짜 전쟁’을 끝내기로 했다.
히틀러가 이런 전략적인 판단을 하기까지는 소련의 핀란드 침공이 아주 큰 역할을 했다.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하면서 독일은 당분간은 소련과의 전쟁을 염두에 둘 필요가 없어지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히틀러가 다음 침략 목표로 폴란드의 동맹국인 영국과 프랑스로 잡았을 때 일본 총리는 아베 노부유키의 뒤를 이어서 1940년 1월부터 요나이 미쓰마사였다.
요나이 미쓰마사는 외무대신 아리타 하치로와 함께 전임 총리대신인 아베 노부유키처럼 독일과의 군사동맹을 반대했다.
그러나, 독일군이 파죽지세로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를 연달아 공격해 들어가자, 일본 육군은 지금이 바로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독일의 공격을 받는 유럽의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은 일본이 그토록 원하는 남방 자원지대를 식민지로 가진 국가들이었다.
일본 육군은 독일과 전쟁으로 정신이 없는 그들을 대신해서 아시아 식민지를 차지할 생각에 몰두했다.
일본 육군은 독일이라는 떡상 중인 대세 코인과 동맹을 반대하는 요나이 미쓰마사 총리대신을 그대로 둘 수가 없었다.
1940년 7월 초, 됭케르크 철수작전이 실행된 지 몇 주 후에 일본 육군 대신 하타 슌로쿠가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내각을 붕괴시키기 위한 행동을 시작했다.
우선, 하타는 육군의 원로 데라우치와 스기야마를 만났고, 그들의 지지를 얻었다.
다음으로, 그는 요나이 미쓰마사 총리대신을 면담하고 압력을 행사했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그러자 하타는 다시 육군성의 실세인 군무 국장 무토 아키라를 내각 비서실장에게 보내서, 육군의 요구를 전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리대신이 별다른 반응이 없자 그는 문서를 통해서 총리에게, 국내에서의 새로운 구조와 새로운 외교정책을 주장하는 육군의 조언을 전달했다.
하타는 군사적 사회주의(군국주의) 추진과 함께 독일과의 동맹을 요구했다.
하지만, 총리대신은 자기의 생각은 육군 대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대답했다.
결국 육군과 계속된 의견 충돌을 빚은 요나이 미쓰마사 총리는 하타 육군 대신의 사임을 요구했고, 육군에게 새로운 육군 대신 추천을 요청했다.
하타는 즉시 사임했고, 그날 오후 육군의 실력자 3인방들이 만났다.
3인방은 육군 대신, 육군 참모총장, 교육 총감이었고, 이들 3인에게는 신임 육군 대신 결정 권한이 있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에, 하타는 요나이 미쓰마사 총리대신에게, 현재 시점에서 내각에 보낼만한 육군의 장군을 찾을 수 없었다고 통보했다.
육군 대신을 찾을 수 없게 된 요나이 내각은 그대로 붕괴했고, 결국 요나이 미쓰마사는 천황에게 사임을 표명했다.
천황의 측근들이 다음 총리로 고노에 후미마로를 추천했고, 천황의 승인을 받은 고노에가 육군 3인방에게 신임 육군 대신 추천을 요청했다.
그래서 결정된 자가 바로 도조 히데키였다.
그리고, 도조 히데키가 육군 대신인 고노에 2차 내각은 독일과의 군사동맹을 처음부터 강력하게 추진했다.
* * *
1941년 5월, 필리핀 민다나오섬 디폴로그 기지.
광복군의 필리핀 이동은 일본군 첩보부대의 눈을 피해서 쿤밍- 버마 루트를 이용했다.
그것도 버마 랭군의 일본 대사관 정보부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 랭군은 들리지도 않고 바로 항구로 이동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젠 어느 정도 시간도 흘렀으니까 다들 이곳 기후에 적응은 했죠?”
광복군이 처음 필리핀에 도착해서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풍토병과 기후였다.
거기에 지독히 달려드는 모기는 덤이었다.
“아휴! 처음에는 정말 견디기 힘들더니 이제는 그나마 적응이 좀 됐습니다.”
“병사들도 이제는 적응이 돼서 다들 건강은 이상은 없죠?”
“예, 그동안 의무대에서 치료를 받던 병사들까지 모두 복귀했습니다.”
지난 일 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먼저, 더글러스 맥아더는 일본과의 전운이 감돌기 시작하자 루스벨트 대통령의 명령으로 필리핀에 미국 극동군 사령부를 창설했다.
그리고, 독일은 서유럽을 완전히 석권하고 도버해협을 사이에 두고 영국과 지루한 항공전에 돌입했다.
“내가 여러분들을 모두 소집한 이유는 중대한 정보가 입수됐기 때문입니다.”
나는 조만간 벌어질 진짜 제2차 세계대전인 독소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 지휘관들을 소집했다.
“일본이 미국을 공격한답니까?”
이제 대부분의 광복군 지휘관들은 일본과 미국의 전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닙니다. 이번에 들어온 정보에 따르면 그 전에 독일과 소련이 먼저 전쟁을 시작할 것 같습니다.”
“독일과 소련은 서로 불가침조약을 맺지 않았습니까? 그 조약을 맺을 때도 충격적이었는데 이번에는 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서로 전쟁을 한다고요?”
처음, 독일과 소련이 불가침조약을 맺었을 때 세상 모든 사람이 놀랐다.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반드시 타도해야만 할 대상이라고 외쳐대던 두 국가의 상호불가침조약은 그만큼 충격적이고 엽기적이기까지 했다.
그리고는 둘이서 사이좋게 폴란드를 나눠 먹었다.
“독일이 선공입니까? 소련이 선공입니까?”
“독일이 선공을 할 것 같습니다.”
“미쳤군요.”
“드디어 독일도 망조가 드는군요.”
광복군 지휘관들이 독일 군사고문단 그리고 소련과 미국의 군사고문단들과 함께 작전하고 생활을 하면서 늘어난 것은 대국적인 시각이었다.
우리 광복군 지휘관들은 비록 우리만의 계급체계로 대령이 최고 계급이지만 보는 눈만큼은 다른 나라 장성들보다 훨씬 뛰어났다.
“예, 아마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마음이 아프군요. 우리를 지도해줬던 구데리안이나 만슈타인은 절대로 소련과의 전쟁을 찬성하지 않았을 텐데….”
김경천과 지청천 등 광복군 장교들은 초창기 독일 군사고문단과 함께했던 기억 때문에 독일군 장성을 상당히 우호적으로 생각했다.
“국가 지도자인 히틀러의 결정입니다.”
“히틀러 총통은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보지, 정말로 유럽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걸까요?”
영국과 프랑스가 인정한 적당한 선인 체코슬로바키아까지의 합병을 하고 멈췄으면 제2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시아의 일본은 미국과 소련에 의해서 진즉에 박살이 났을 것이다.
“그럼, 일본이 필리핀을 공격할 이유가 사라진 겁니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에 있어야만 할 이유가 없잖습니까?”
일본과 독일이 군사동맹 상태니까 독일이 소련을 공격하면 일본도 자동으로 소련을 공격하는 거냐는 질문이었다.
“아닙니다. 지금 돌아가는 꼴이 좀 웃깁니다.”
이 당시 일본은 세계전략이란 것 자체가 없었다.
아니 있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자기들만의 상상으로 만들어낸 일본의 원하는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좀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군부에 의해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일본 정부는 세계전략 자체를 만들 수가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군부와 내각에 왜 그렇게 미친놈들도 많은지….
그 대표적인 놈이 바로 이 당시 내각의 외무대신을 맡았던 마쓰오카 요스케였다.
고노에 후미마루의 2차 내각에서 외무대신을 맡은 마쓰오카는 제일 먼저 독일 이탈리아와 함께 삼국 동맹을 체결했다.
그리고, 여기에 소련까지 끌어들여서 4국 동맹을 추진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스탈린과 히틀러의 속마음은 전혀 모른 채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알고 혼자 꼴값을 떨고 다닌 것이었다.
마쓰오카의 가장 큰 잘못은 일본 군부와 내각의 사람들에게 소련을 준동맹으로 인식을 시켰다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소련이 일본을 절대 공격하지 않을 거라고 오판을 하게 만들었다.
“뭐가 웃긴다는 말입니까? 일본이 소련을 공격하게 되면 우리가 필리핀에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냐고 하니까….”
“일본은 소련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이제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우리가 진짜로 피를 흘리면서 싸워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는 소립니다.”
나는 광복군 지휘관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던 세계정세와 그에 따른 분석을 해주기 시작했다.
“여러분들도 다들 아시다시피 우리가 중국에서 필리핀으로 떠나올 때 일본은 진짜 중국을 포기하고 미국과 화해를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군부의 반대로 이미 실패를 하지 않았습니까?”
“예, 맞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군부는 일본의 총리대신을 무려 세 명이나 날려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고노에 후미마로를 다시 총리대신으로 만들었습니다.”
여기까지는 겉으로 이미 드러난 사실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일본의 스텝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조지 대장님, 지금까지는 별다른 것이 없어 보이는데요? 전처럼 중국에서 공세를 지속하고 있고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되자 북베트남도 점령했고…. 설마, 북베트남 점령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겁입니까?”
“예. 영국과 미국은 일본에 중국 전선에서 철수하라고 계속 경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정면으로 들이받아 버린 겁니다. 그 덕분에 맥아더 중국 군사고문단장이 다시 병력을 지휘할 수 있는 극동군 사령관이 될 수 있었죠.”
루스벨트 대통령이 맥아더를 얼마나 싫어하는지를 모르는 광복군 지휘관들은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조치로 우리 대한민국은 앞으로 맥아더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 것이다.
“뭐, 그건 여러분들이 지금은 몰라도 되는 문제고, 일단 일본의 고노에 내각은 이제부터 진짜 망한 겁니다.”
“지금도 승승장구하고 있는 일본이 망한 거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대본영 작전과는 지나와의 전쟁을 빠르게 끝내기 위해서 프랑스의 식민지인 베트남 북부 하노이 일대를 확보해서 비행장을 건설하고 장제스 지원 루트를 끊으려고 했다.
처음에는 프랑스 식민 통치 당국과 외교 교섭에 벌여서 일본군을 하노이에 평화적으로 진주시키려 하였으나 실패했고 결국, 1940년 9월 26일 무력으로 점령했다.
영국과 미국은 일본의 북베트남 점령에 즉각적으로 반발했고 미국은 철강 제품의 대일 수출을 금지했다.
그리고, 영국은 잠시 닫아놓았던 버마 장제스 지원 루트의 재개를 통보해왔다.
이로써 일본과 영국, 미국과의 관계는 더욱 나빠졌다.
이 모든 것이 무리한 추진한 중일전쟁 때문이었다.
“그 증거가 바로 미국의 동원령입니다. 미국은 이제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일본과 전쟁을 할 겁니다. 유럽의 독일을 패퇴시키고 아시아의 일본을 제압하기 위해서 전쟁을 벌일 겁니다.”
“그동안 구경만 하던 미국이요?”
“예,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미국은 잊으십시오. 이놈들도 다 똑같은 놈들입니다. 여기 필리핀도 보십시오. 벌써 전쟁 준비를 하고 있잖습니까?”
1941년 4월 마쓰오카 요스케 외무대신과 스탈린의 결단으로 일본과 소련은 불가침조약인 중립 조약을 맺었다.
일본 육군은 만주를 노리는 소련을 주적으로 보고 관동군을 중시했는데 장고봉과 할힌골 전투에서 처참한 패배를 맛보고는 어느새 겉으로 만만해 보이는 미국을 주적으로 돌려놓았다.
이런 방향 전환의 가장 큰 판단 근거는 바로 독일군이 유럽을 장악하고 영국을 곧 제압할 것이란 전망 때문이었다.
만약, 독일이 유럽을 제패하게 된다면 제1차 세계대전 때처럼 승자의 편에 서서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얍삽한 판단이었다.
“일본 놈들을 보면 진짜 미친놈들 같습니다.”
“나는 일본 놈들이 미친 짓을 하는 걸 보면서 이런 미친놈들한테 나라를 잃었다는 것이 더 슬픕니다.”
일본의 미친 짓 덕분에 우리나라가 독립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쁘기도 하지만 자괴감이 들기도 하는지 광복군 지휘관들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그럼, 조지 대장님. 이제 일본군과 싸우는 것만 남은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