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민다나오섬 디폴로그 훈련소 (120/225)

민다나오섬 디폴로그 훈련소

만주 안도현 명월구의 간도특설대를 지도상에서 깨끗이 지워버릴 정도의 엄청난 폭격을 하고 그 장면을 촬영한 사진을 삐라로 만들어서 조선에서 장이 서는 곳에는 모두 살포했다.

그렇게 미뤄뒀던 마지막 숙제를 끝낸 광복군 항공대는 휴식을 취하면서 필리핀으로 파견될 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에 맞춰서 필리핀 국방군 레인저 육성 요원들도 선발을 시작했다.

“저, 대장님. 필리핀은 이곳과는 기후나 환경이 달라서 저희가 가서 필리핀 국방군을 과연 제대로 교육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창호의 걱정스러운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앞으로 우리 광복군이 치러야만 할 수많은 전투를 생각한다면 밀림지대에서의 전투 교리도 반드시 미리 만들어놔야만 했다.

“너희도 이번에 필리핀으로 가게 되면 하나씩 새롭게 배운다는 심정으로 그쪽 필리핀 군인들과 장교들의 의견을 귀담아듣고 전투 교리를 한번 만들어봐.”

“당연히 그렇게 하겠지만 교관이 돼서 훈련받는 교육생들의 조언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런 생각은 버려라. 모르면 배우면 될 뿐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런 자존심은 개나 줘버려.”

“죄송합니다. 대장님. 잘 알겠습니다.”

“아니야. 지금은 네가 잘 몰라서 그러겠지만 나중에는 꼭 필요하게 될 거다.”

오창호에게 괜한 면박을 준 것 같지만 오창호는 내가 처음 정신을 차리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만들었던 윌로우스 비행학교에서부터 함께한 사람이라서 내 생각을 가장 잘 이해하는 광복군 장교 중 한 명이었다.

내가 이렇게 강력하게 뭔가를 지시하면 나중에 반드시 그런 작전을 하게 된다는 것을 오창호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은 필리핀 국방군 항공 교육 훈련단과 필리핀 국방군 레인저 교육 훈련단으로 나뉘어서 필리핀으로 출발했다.

내 건의를 받아들인 맥아더와 필리핀 정부는 필리핀 방위군 교육을 위해서 루손섬에 거주하는 수많은 일본 스파이들의 눈을 피해서 루손섬에서 멀리 떨어진 민다나오섬 북부 서해안 디폴로그에 임시로 비행장(현재의 디폴로그 공항)과 주둔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디폴로그 임시 비행장 근처에는 필리핀군 스카우트와 레인저들을 위한 훈련소도 함께 만들었다.

민다나오섬의 디폴로그 훈련소는 워낙 급하게 만들어서 그런지 어설프게 지어진 임시 막사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고, 아직도 제대로 된 훈련소를 만들지 못해서 야자수가 몇 그루 서 있는 한쪽 편에서는 여러 대의 공병대 불도저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면서 땅을 평탄하게 만들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디폴로그 임시 비행장 주위로 웃통을 벗어젖힌 병사들이 구보하고 있었다.

“체력은 너희들의 목숨이다. 하나에 왼발을 맞춰라.”

“하나!”

“하나!”

“동료는 너희들의 목숨이다. 옆의 동료와 함께 호흡을 맞춰라”

“하나!”

“하나!”

구보를 하는 필리핀인 병사들의 옆으로는 생김새가 약간 다른 동양인 교관과 조교들이 함께 뛰고 있었다.

* * *

중화민국 충칭, 미국 군사고문단 사무실.

“조지, 자네의 요청 때문에 민다나오섬에 새롭게 훈련소를 만들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

맥아더가 불러서 왔더니 시작부터 나한테 투덜거리면서 쓸데없는 일을 한 것 아니냐고 구박을 했다.

“단장님께서도 그렇게 한 이유를 다 아시면서 그러십니까? 지금 일본 해군 정보부에서는 일본 해군의 예상 공격 지점에 대한 첩보활동이 시작됐다고 제가 알려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래봤자 겨우 JAP 들이 아닌가?”

“그런 JAP 들에게 중국은 영토의 상당 부분을 잃었습니다.”

“그거야? 중국인들이니까 그렇지?”

맥아더는 또 한동안 중국 전선에서 일본군을 잘 틀어막자. 본인 잘나서 이런 전과를 올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감이 뿜뿜하는지 자기만의 착각에 빠져있었다.

“단장님, 단장님이 지휘하는 중국군 병사들은 독일 군사고문단 교관들에게 2년 이상 훈련을 받은 정예 군인들입니다. 하지만, 필리핀의 국방군은….”

“알아. 안다니까. 이제야 훈련을 받는 초보들이다. 그 말이지?”

“예. 아시면서 왜 그러십니까?””

알면서 왜 나를 보자마자 구박했는지 다음에 이어진 맥아더의 말에 맥아더의 잔머리를 알 수 있었다.

“이봐! 조지,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필리핀 국방군에도 전차대대를 한번 만들어 보려고 해봤는데….”

“단장님!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말도 꺼내기 전에 내가 먼저 거절하고 나서자 맥아더 단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아니, 왜? 말이라도 들어봐야 할 것이 아닌가?”

“단장님은 분명히 그러시겠죠. 필리핀 국방군 신병들의 실력이 너무 형편없으니까 광복군이 가서 좀 도와주면 좋겠다고 그러실 생각이시죠?”

“......”

내가 바로 되받아치자 계면쩍은 표정을 짓는 맥아더를 보면서 나는 확신을 할 수 있었다.

포병까지는 어떻게 가르쳐서 운용할 수 있지만, 전차를 운용한다는 것은 하루 이틀에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것도 대대급 이상으로 전차를 단체로 운영한다는 것은 오랜 시간 동안 호흡을 맞추고 훈련을 거듭해야만 제대로 된 실력이 나온다.

그런데, 겨우 한두 달을 훈련받은 병사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뿐만이 아니다.

전차병들은 전차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만큼 전차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고급 인력이 필요하다.

“이봐. 조지! 어떻게 안 되겠나? 어차피 광복군 전차대대원들은 지금 전차도 없어서 놀고 있지 않나?”

“단장님, 그들에게도 휴식은 필요합니다. 좀 쉴 수 있게 가만히 놔두십시오.”

“이봐. 조지! 그들이 중국 전선에서는 쓸모가 없지만, 필리핀에는 꼭 필요하다니까?”

지금은 1939년 겨울이다.

독일과 소련은 상호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폴란드를 나눠 가졌다.

그리고, 일본은 소련과 독일의 저의를 파악하기 위해서 난리가 아니었다.

이제 조만간 조선 총독으로 가 있는 고노에의 2차 내각이 들어서면 일본도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고 본격적으로 남쪽으로 시선을 돌릴 것이다.

광복군이 중국에서 대일전선에 참전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독립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왕 전쟁에 뛰어들어서 일본과 싸워야만 한다면 차라리 미국이나 영국과 함께해야만 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광복군이 가장 적은 희생으로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전장을 내가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디가 좋을까?

어디서 전과를 올려야 미국으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

“맥아더 단장님, 저는 미국 시민으로서 제 고국의 독립운동을 돕는 사람이지. 제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을 주도하는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한테 광복군 파견에 대한 결정권은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대가도 없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그걸 허락하겠습니까?”

지금 맥아더는 미국 정부의 지원도 자신이 원하는 만큼 이뤄지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지금까지 자신이 상대해왔던 아시아인들처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따라 주는 것도 아니어서 좀 답답한 상태였다.

“뭘 원하나?”

“예?”

“뭘 해주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나를 돕겠느냐는 말일세?”

아무리 필리핀이 사실상 자신의 영지나 다름이 없어서 그런다지만 맥아더의 필리핀 챙기기는 정말 대단했다.

“맥아더 단장님, 하루만 시간을 주십시오. 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미국인이지. 대한민국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일단 만나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의견을 먼저 들어 보고 단장님께서 수용이 가능하도록 조율을 해오겠습니다.”

“그래. 나한테 부담이 되지 않는 선으로 잘 부탁하네. 이왕이면 광복군 전체가 필리핀으로 이동해주면 나는 더 좋고. 알겠지?”

“예.”

* * *

중화민국 쓰촨성 바중, 대한민국 임시정부.

바중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공 방어망이 확실하게 갖춰진 ‘건국 대학교’와 함께 있어서 일본 육군항공대의 대규모 공습을 잘 막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연병장과 교실에서는 조선과 만주 그리고 연해주에서 탈출한 청년들이 조국의 독립과 새로운 조국 건설을 위해서 열심히 배우고 공부하고 있었다.

“조지 대장, 어서 와요. 또 급하게 온 것을 보니까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군요?”

김구의 주석실에는 이회영 선생과 홍범도 장군도 함께 계셨다.

“급한 일이기는 하지만 사고가 생긴 것은 아닙니다.”

“그래요? 그래, 무슨 일입니까?”

“맥아더 단장이 광복군의 필리핀 파견을 요청했습니다.”

“그럼, 여기 중국은 어떡하고요?”

“중국은 바중의 병력만 남기고 철수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광복군이 이제는 중국을 떠나서 미국과 함께 할 시간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음….”

김구 주석은 전부터 내가 해왔던 말이 있었기 때문에 고민하는 눈치였고 자유시 참변의 트라우마가 있는 홍범도 장군은 과연 미국을 믿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조지 대장, 미국에 이용만 당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모든 것은 우리 광복군의 활약에 달려 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단지, 지금은 우리가 필요해서 우리를 부르는 겁니다.”

“이거…. 참, 슬픈 일이군요. 보장받은 것은 아무것도 없고 우리가 하는 걸 봐서 나중에 대가를 준다니….”

“홍 장군님, 지금은 미국의 편에 서는 것이 나중을 위해서는 그나마 낫습니다. 만약, 우리가 소련이나 중국이나 영국과 함께한다면 그것은 나중에 더 비참해집니다.”

“이런 문제를 맞닥뜨릴 때마다 기분이 정말 씁쓸해집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까지 고민하던 김구 주석이 입을 열었다.

“조지 대장, 그래서 우리한테 보장되는 것은 뭡니까?”

“맥아더 단장이 보장할 수 있는 것은 광복군이 앞으로 미국과 함께 전쟁을 수행하는 동안 모든 물자와 장비 지원 정도 일 겁니다.”

“우리 청년들의 피 값이 겨우 우리가 사용할 장비와 물자군요?”

“죄송합니다. 그 정도 이상은 맥아더 단장도 확실하게 보장하지 못할 겁니다.”

“음….”

조선에서 점점 멀어지더니 이제는 중국을 완전히 떠나는 것이 걱정된 이회영 선생께서도 자기가 걱정하는 것을 물었다.

“그럼, 이제부터는 중국을 떠나서 장제스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가?”

“아닙니다. 바중은 그대로 유지가 됩니다. 그리고, 홍콩에 계신 여러 선생님의 가족분들도 이젠 바중으로 모두 모셔오셔야 합니다.”

“혹시, 홍콩도 위험한 건가?”

“예, 아직은 시간이 좀 남아 있지만, 지금쯤이면 홍콩에도 일본군 첩보대들이 활발하게 활동을 시작했을 겁니다.”

“우리가 현재 할 수 있는 선택 중에 가장 나은 선택이 그것이라면 그렇게 해야겠지요.”

“주석님. 일단 우리가 사용하는 장비와 물자를 지원받기로 했지만 좀 더 큰 것을 한번 협상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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