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슈토베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117/225)

우슈토베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들은 스탈린의 또라이 짓 때문에 강제로 열차에 태워져서 6,400km에 달하는 거리를 이동했는데 그 와중에 병에 걸려서 죽거나 굶어 죽은 사람이 최소한 수천 명 이상이 발생했다.

그리고, 죽은 사람들의 시신은 도착하는 역마다 내려져서 어디로 버렸는지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북방에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계절, 1937년 10월 25일까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겨우 옷 몇 가지만 지닌 채로 타슈켄트 지역에 37,321명, 사마르칸트 지역에 9,147명, 페르가나 지역에 8,214명, 호레즘 지역에 5,799명이 보내졌고 최종적으로 약 100,000명이 카자흐스탄으로, 약 70,000명이 우즈베키스탄으로 보내져서 총 171,781명의 36,442가구가 강제로 이주가 되었다.

쓰촨성 충칭에서 바중으로 정부청사를 옮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내가 보낸 보고서와 요청 때문에 임시정부 요인들과‘건국대학교’ 학생들이 함께 바쁘게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걸 왜 하는지를 모르겠네?”

“이 역사책을 인쇄하는 것을 말하는 건가?”

“그래. 새롭게 농토를 개척해야 하는 우리 동포들한테 이게 왜 필요하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어른들이 뭔가 생각들이 있으시니까 준비를 하라고 시키셨겠지.”

건국대학교 학생들은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로 쫓겨간 연해주 동포들에게 우리나라 역사책이 왜 필요한지 그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조지 대장이 준비를 해달라고 한 것이 한글로 된 다양한 책이었지요? 그중에서도 우리나라 역사가 담긴 책을 많이 준비해달라고 했고요?”

이회영 선생은 건국대학교로 찾아와서 준비 상황을 점검하고 있는 김구 주석에게 물었다.

“예, 조지 대장의 보고서에 따르면 강제로 이주를 당한 동포들이 우리와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만들려면 역사책과 한글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참, 슬픈 일입니다. 나라가 없으니까 이런 수모를 당하고 연해주 동포들처럼 죽을 고생을 해야 하다니…. 모든 것이 내 책임처럼만 느껴집니다. 내가 아니 우리가 조금만 그때 정신을 제대로만 차리고 대처를 했더라면….”

나라를 잃은 것이 모두 자기의 책임이라도 되는 양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자조를 하는 이회영을 보면서 김구 역시도 같은 마음이었다.

“나도 그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때, 정신을 차리고 어떡하든지 나라를 잃지 않게 만들었다면….”

“지나간 일을 붙잡고 한탄을 해봐야 소용이 없겠지만 그때는 어찌 그렇게들 세상 보는 눈들이 없었는지….”

“그때는 우리가 우물 속의 개구리 꼴이었죠.”

이회영과 김구의 슬픈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홍범도가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런데, 동포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서는 농기구와 종자를 더 많이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홍 장군님, 조지 대장의 말로는 아마 오랫동안은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주를 당한 우리 동포들을 보기는 힘들 것이라고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이 전쟁이 끝이 나고 우리가 다시 나라를 찾으면 그때는 서로 만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게 그렇게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합니다. 이 전쟁이 끝나고 우리가 독립하더라도 세상은 보이지 않는 전쟁이 이어질 거라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전쟁이요?”

“예, 이 전쟁이 끝나기 전에 어쩌면 유럽에서도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전쟁이 끝나도 전쟁의 승자들끼리 서로의 이권을 다투면서 싸움을 벌이게 되면 전쟁은 끝이 났지만, 전쟁은 끝이 나지 않은 상태가 된다고 하더군요.”

“음, 그래서,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동포들을 위해서 우리나라 역사책과 한글로 된 책들을 준비하는 거군요?”

“예, 언제 다시 만날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한 민족이라는 것을 잊지 않게 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 * *

우슈토베(우즈베키스탄의 지방 도시)의 고려인 콜호스(집단농장)로 트랙터와 트럭들이 흙먼지를 피우면서 들어왔다.

재작년 늦가을, 우슈토베에 도착해서 매서운 겨울의 추위를 피하려고 대충 움막과 토굴 그리고 흙집을 짓고 생활했던 고려인들은 소련 당국에서 드디어 이주민들을 위한 지원을 해주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콜호스에 들어온 트럭에서 내려지는 물품들을 보고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우리를 위해서 보낸 물자들이라고 합니다.”

“이 많은 지원 물품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보낸 것이라고요?”

“예, 우리가 이렇게 쫓겨난 것을 막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우리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서 물자를 보냈답니다.”

트럭에서는 각종 식량 종자와 채소 씨앗 그리고 농기구와 약품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귀중한 한글로 쓰인 책들이 내려지고 있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우리를 잊지 않고 있었군요? 나는 몇 년 전에 독립운동을 하는 동포들만 탈출을 시키길래 우리는 그냥 버려진 줄 알았습니다.”

두 눈 가득히 눈물을 머금은 청년 한 명이 울먹거리면서 말을 하자 근처에 모였던 다른 동포들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가장 두려운 감정은 혼자가 된다는 것이다.

무리에서 버려져서 곁을 맡길 사람이 없는 상태가 된다는 것.

처음 이곳 우슈토베에 도착했을 때,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영유아와 나이가 많은 노인들 대부분이 죽었다.

추위를 막아줄 집도 없었고 배고픔을 달래줄 식량도 없었다.

그리고, 아픈 사람을 치료할 약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이 허허벌판에 버려진 것이었다.

그러나, 생존의 갈림길 앞에 선 우리 동포들은 강했다.

살을 에는 차가운 북방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상황 속에서도 수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방치된 황량한 갈대밭을 농기구도 없이 손으로 갈대를 베어야 했고 논을 만든 다음에는 온갖 잡초들을 뽑아야 했다.

그리고, 메마른 땅에 어떡하든지 물을 대기 위해서 수로를 파고 멀리 떨어진 강물을 끌어들였었다.

“여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전하는 편지가 있는데 받으시오.”

물자 수송을 책임진 소련군 장교가 편지 한 통을 내밀고 사라졌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힘들고 고통스러운 날을 보내고 계신 우리 동포들을 위해서 이것밖에 도와드리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중략….

언젠가 우리나라가 독립하고 좋은 날이 찾아오면 그때 다시 환하게 웃는 낯으로 만날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누가 먼저 부르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눈물짓던 동포들이 한목소리로 아리랑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 *

“죽여!”

“저 개새끼들을 다 죽여!”

복면을 쓴 두 명의 남자들이 일본군 군속들을 위한 교육이 진행되던 소학교에 나타나서 총을 꺼내 들었다.

“타 타 타당!”

“타 타 타당!”

“꽝!”

“꽝!”

윤봉길과 백정기의 대원들에게 군사훈련을 받은 강경파 공산당원들은 오늘만 살고 죽을 사람들처럼 행동했다.

마치, 필생의 원수라도 만난 사람들처럼 조선 총독부에서 새롭게 내려진 포고문에 따라서 일본군을 돕기 위한 예비 군속들이 모인 장소에 난입해서 톰슨 기관단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던져버렸다.

“으악!”

“미친놈들이다. 미친놈들이 나타났다!”

단 두 명의 강경파 공산당원들에 의해서 100여 명이 넘게 모여서 일본군 군속이 되겠다고 교육을 받고 있던 현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그 와중에 군속들을 교육하던 일본군 장교가 눈에 보이자 일본군 장교와 병사들은 그대로 벌집이 돼버렸다.

“이 개새끼들이 어디서 조선인들 꼬셔서 사지로 데려갈려고. 죽어!”

일본군 장교와 병사들을 벌집으로 만든 복면을 쓴 남자가 하나가 소학교에 모여서 교육을 받던 조선인들을 보면서 소리쳤다.

“이 시발놈들아! 아무리 먹고살기가 힘들다고 일본 놈들 가랑이 밑으로 기어들어 가서 돈을 벌 생각을 하냐! 개새끼들 너희도 다 죽어!”

그리고는 톰슨 기관단총의 탄창을 갈고 다시 움직이는 일본군 예비 군속들에게 총을 쏴대기 시작했다.

“타 타 타탄!”

“죽어! 개새끼들아!”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늦은 밤, 경성의 부유층들이 주로 모여 사는 주택가에 두 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저 집이 맞지?”

“예, 저 집이 바로 김활란 개년의 집입니다.”

“그럼, 어서 서둘러서 폭탄을 설치하고 가자. 오늘도 들려야 할 곳이 두 곳이 더 남았다.”

그리고, 둘은 김활란의 집의 담장을 조용히 넘어갔다.

강경파 공산당원들과 백정기의 정보대대원들은 노리는 목표가 조금 달랐다.

공산당원들이 오늘만 살고 죽을 사람들처럼 일반 조선인들이 모여서 일본을 위해서 일하는 곳을 주로 공격했다면, 백정기의 정보대는 조선의 지식인 척하면서 일반 조선인들에게 일본에 충성하라고 강요하는 매국노들을 하나씩 제거하고 있었다.

특히, 백정기의 정보대는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 연맹 윤치호, 김활란, 김성수, 박흥식, 방응모 등 27명과 협력을 약속한 25개 단체의 참가자들을 주로 노렸다.

발기인인 한상용 등 6명의 이사 들과 박영철 등 13명의 창립총회 준비위원들은 진즉에 지옥으로 보내버렸고, 그 외에도 일본에 나라를 팔고 지금까지 호의호식했던 윤덕영, 배정자 등도 집이 폭파되면서 불타서 죽었다.

“요즘 도대체 일들은 어떻게 하는 거냐? 밤사이에 또 이렇게 많은 조선인 협력자들이 죽었어?”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나 몰라라 책임을 지지 않고 내각을 해산했던 고노에 후미마로는 조선 총독으로 부임하자마자부터 조선 내의 폭동과 끊임없이 벌어지는 암살사건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 경무총감, 일을 어떻게 하는 거냐고?”

“저…. 총독 각하, 저희 경찰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이 모양이야? 요즘 들어서 하루라도 사고가 없는 날이 있었어?”

“총독 각하, 일선의 경찰이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범인들을 제대로 잡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발대발하면서 난리를 치는 고노에 총독에게 경무총감은 허리를 숙이면서 하소연하고 있었다.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널리고 널린 것이 경찰인데…. 일선에 경찰이 부족하다니?”

“총독 각하, 그게 아닙니다. 지금까지 조선인을 단속하던 조선인 경찰들이 이번에 모두 죽어 나가면서 조선인들을 감시할 체계를 잃어버렸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총독 각하께서 부임하시기 전에도 조선 내에서 여러 번의 암살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주로 죽은 사람들이 조선인 경찰들이었습니다. 그때, 하판락이나 노덕술과 같은 조선인 고등계 경찰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뭐? 그럼, 다시 조선인 경찰을 모집하면 될 것이 아니야?”

“조선인 순사들이 죽을까 봐서 아무도 고등계를 지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냥, 아무나 고등계를 시키면 되잖아? 그걸 변명이라고 내 앞에서 하는 거냐?”

“이미 그렇게 해봤습니다만 다들 죽기 싫다고 경찰을 그만둬버렸습니다.”

“그럼, 헌병대라도 동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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