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 삽질, 또 삽질
1939년 6월 27일, 일본 관동군 항공대는 107대의 항공기를 동원하여 톰스크 일대의 소련의 항공기지를 급습했다.
관동군 항공대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은 톰스크 공군 기지는 절반 이상이 파괴되었고 100대가 넘는 항공기를 잃었다.
내가 노리는 지점은 바로 이것이었다.
부족한 소련군의 공군력을 우리 광복군 항공대가 보충해 주고 그 대신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우리 동포들에게 트랙터와 식량과 종자 그리고 의약품이라도 전해주는 것이었다.
스탈린의 또라이 짓 때문에 1937년의 강제 이주로 죽어간 수만 명의 사람만 생각하면 나는 아직도 가슴이 너무 먹먹했다.
당시에는 우리가 힘이 없어서 겨우 몇천 명의 독립운동가들의 가족들만 탈출을 시켰지만, 이번에는 소련군을 돕는 조건으로 고려인 동포들을 위한 딜을 한번 해볼 생각이었다.
물론, 우리가 돕지 않아도 소련군은 관동군을 박살을 낼 것이다.
하지만, 아직 벌어지지도 않는 전투를 두고 어느 누가 결과를 미리 예상할 수가 있겠는가?
“우리가 그 정보를 어떻게 알았느냐가 중요합니까? 아니면, 당신들 소련군이 전쟁에서 적게 죽는 것이 더 중요합니까? 참고로 내가 정보를 얻은 곳은 미국 군사고문단이나 중화민국 조사통계국은 아닙니다.”
“음…. 확실합니까?”
“물론입니다. 우리 광복군의 정보 자산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소장님의 선에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주코프 군단장에게 연락을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사실 알고 보면 주코프도 결정권이 없었다.
주코프가 이 멀디먼 몽골 전선까지 온 것은 모두 스탈린의 특별한 지시 때문이었다.
독일과의 전쟁을 이미 예상했던 스탈린은 이번 기회에 극동 소련군의 주적인 일본 관동군을 확실히 밟아 놓을 생각으로 주코프를 파견한 것이었다.
“소장님, 스탈린 서기장은 양면 전쟁을 수행하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그나마 힘이 약한 일본군을 먼저 쓸어버릴 생각이 아닙니까?”
“헉…!”
“왜요?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까?”
소련군 내부에서도 극동군의 정보를 담당하는 몇 명의 고위 장성들만이 아는 사실을 내가 말하자 파벨 뤼챠고프 소장은 깜짝 놀랐는지 입을 살짝 벌리고 내 얼굴만 쳐다봤다.
“이번 기회에 아예 관동군을 쓸어버릴 생각이 있다면 주코프 군단장에게 지금 바로 연락하십시오. 그럼, 양면 전쟁을 벌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지 않습니까?”
스탈린은 일본과 불가침조약을 맺고도 일본을 믿지 못해서 모스크바가 독일군의 침공으로 위험에 처할 때까지도 극동의 소련군을 빼지 못했었다.
나는 지금 스탈린의 의심병을 믿고 지금 도박을 하고 있었다.
모스크바가 함락될 처지가 되지 않으면 스탈린은 끝까지 일본을 경계할 것이다.
* * *
모스크바에서 증파된 병력이 기차역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각종 군용장비를 하역하는 사람들과 뒤섞이면서 혼란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곳을 지나서 주코프 군단장과 소련과 몽골군 장성이 모두 모여있는 합동사령부 안으로 안내를 받았다.
“어서 오시오. 조선의 광복군이 우리를 돕고 싶다고 말했다고 하던데.”
“예, 일본은 소련이나 몽골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죽여없애야 할 적입니다. 마침, 소련군 항공대가 기습을 받아서 항공 전력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듣고 돕고 싶어서 연락했습니다.”
만약, 이번 전투에서 패배한다면 주코프는 언제 숙청을 당해서 죽을지 모르는 처지인데 같이 싸워주겠다고 찾아온 광복군이 얼마나 이쁠까?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공짜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런데, 광복군이 이상한 조건을 달았던데…?”
“아! 우리가 내건 조건이라고 해봐야 겨우 동포를 조금 돕자는 것이지, 주코프 장군님을 곤란케 할 만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당장 승리를 위해서 모스크바에서 있는 대로 병력을 지원받아서 끌고 온 주코프는 내심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초반에 기습을 당한 톰스크 항공기지가 입은 타격도 컸지만, 도무지 항공대 조종사들의 역량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에 비한다면 이미 파벨 뤼챠고프 소장에게 전해 들은 광복군 항공대는 자신이 보기에도 최고의 항공대였다.
“그러니까 조선인들에게 약간의 트랙터와 식량을 우리가 전해주기만 한다면 된다는 것이지?”
“예, 우리가 큰 걸 바라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듣기로는 그쪽으로 이주한 동포들이 많이 굶어 죽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같은 조선인으로서 최소한 기아 상태에서만큼은 벗어나게 해주고 싶을 뿐입니다.”
“좋아. 그럼, 여기서 함께 일본군을 상대하지.”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우리 항공대가 사용하는 항공유와 폭탄 등의 규격이 다를 텐데. 그걸 모두 소련군이 제공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내 대답을 들은 주코프는 살짝 짜증이 난 얼굴로
“그럼, 뭘 어떡하자는 거지?”
“우리 항공대가 폭격해주었으면 하는 곳을 미리 지정해주십시오. 우리는 보급 문제 때문에 장군님과 함께 전투에는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대신 관동군의 후방은 확실하게 쓸어드리겠습니다.”
소련군과 함께 생활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문제가 있었다.
먼저, 나는 소련 공군 조종사들의 기량을 높여줄 생각이 없었다.
함께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배우는 점이 많다.
그리고, 우리가 사용하는 전투기들은 앞으로 소련이 독일과 전쟁을 하면서 만나게 될 bf-109 전투기였다.
나는 이것을 소련군에게 미리 알려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우리가 지정한 날짜에 지정한 곳을 공격해주겠다는 말이지?”
“예. 대신, 소련 측에서 참관 장교를 보내주시면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내건 조건에 주코프는 이참에 관동군을 아예 박살을 내버릴 생각을 했는지 썩은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전투 상황판 앞으로 데려갔다.
그리고는 관동군이 주둔하고 있는 곳과 철도가 연결된 곳을 모두 찍기 시작했다.
“가능하겠나?”
‘하! 아무리 승리하지 못하면 목이 달아난다지만 우리를 봉으로 생각하나? 이걸 모조리 폭격하고 다니다가는 해가 바뀌겠는데….’
“가능은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곳을 폭격하러 다니다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재정이 거덜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 해준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보기엔 주코프는 아직 스탈린과 히틀러가 합의한 폴란드 분할 점령에 대한 비밀 협정을 모르는 것 같았다.
하긴 스탈린과 같이 의심병 많은 놈이 일개 군단 지휘관에게 그런 사실을 알려줄 리가 없었다.
만약, 그 비밀 협정을 알았다면 이렇게 관동군과의 전투에서 무리를 할 리가 없었다.
“장군님, 그럼 우리에게 의용군 병력을 지원해 주십시오. 그렇게 해주시면 장군님이 원하는 곳을 모두 폭격해 드리겠습니다.”
“갑자기 뜬금없는 의용군이라니?”
“남이나 다름없는 중화민국을 돕기 위해서도 의용대를 보내는 소련인데 같은 동포를 돕기 위한 의용대 정도는 보내주실 수 있지 않습니까?”
“흠….”
승리에 목숨이 걸린 주코프가 걸려들기를 빌면서 낚시를 던졌다.
하지만, 아무리 승리에 목말라 있다고 해도 이 문제는 주코프 혼자서는 결정할 수가 없었는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내 권한으로는 힘들 것 같군.”
“그렇습니까? 그럼, 폭격할 곳을 좀 줄여주십시오.”
내 요청에 주코프는 마지못한 표정으로 몇 곳을 줄이기 시작했다.
“장군님, 좀 더 줄여 주십시오. 우리가 요구한 것보다 장군님께서는 너무 많은 일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아니, 이왕 도와줄 거라면 화끈하게 이 정도는 해야지.”
“안 됩니다. 좀 더 줄여주십시오. 우리는 겨우 트랙터 몇 대하고 식량을 전달하는 것뿐입니다.”
결국, 주코프는 반드시 폭격을 해야 하는 곳만 다시 찍었다.
* * *
관동군은 7월 2일과 3일 양일에 걸쳐서 80대여 대의 전차와 100문이 넘는 대포를 동원한 10,000여 명의 병력이 소련군을 공격했지만, 446대여 대의 전차와 장갑차를 가지고 관동군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던 소련군에게 대패하고 말았다.
관동군은 정신력을 강조하는 군대답게 악착같이 싸우기는 했지만 수천여 명의 사상자를 낸 채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패주했다.
그리고, 관동군의 공세가 수그러들기만을 기다렸던 주코프는 현대화된 기갑 전력을 이용하여 8월 20일부터 대규모의 포병과 차량화 보병을 이용해서 화력지원을 하고 폭격기와 전투기를 모두 동원한 공중지원과 함께 기갑 전력과 보병을 포함한 50,000여 명의 대병력으로 강을 건너게 하는 대담한 기동 작전을 감행했다.
그뿐 아니라 500여 대의 전투기와 폭격기가 20일 새벽 5시 45분부터 관동군 진지에 대규모 폭격을 가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모든 포병 전력을 동원해서 관동군의 방어 진지를 향해서 포격을 가했다.
2만 명이 넘어가는 관동군은 강력하게 저항하면서 소련군에게 큰 피해를 줬지만, 소련과 몽골군의 500여 전차와 50,000여 병력은 피해에 아랑곳하지 않고 관동군을 포위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일본군 제23사단은 8월 25일에 이르러 소련군의 넓은 포위망 안에 갇혀버렸다.
8월 26일에 관동군 사령부는 포위망에 갇힌 제23사단을 구원하기 위한 작전을 펼쳤지만 실패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인 27일에는 제23사단이 포위망을 돌파하였지만 이마저도 결국 실패하였다.
포위된 관동군이 항복을 머뭇거리는 사이, 소련군은 포격과 항공 폭격으로 관동군 진영을 계속해서 타격을 가했고 31일에 이르자, 관동군은 사실상 완전히 붕괴가 됐다.
제23사단의 잔여 병력은 만주국 국경으로 겨우겨우 빠져나갔고 결과적으로 관동군은 할힌골 전투에 투입한 병력의 절반 이상을 날려 버렸다.
* * *
신징의 만철(남만주 철조주식회사) 본사에서는 오무라 다쿠이치 총재가 기겁할 만한 보고가 이어지고 있었다.
“철도의 수송망이 모조리 파괴되고 있다고? 아니, 우리 관동군 항공대는 지금 무엇을 하는데 철도를 보호해 주지 않는 거야?”
“총재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지금 소련군과 전쟁 중이지 않습니까? 관동군의 모든 항공기는 전장 근처 비행장으로 파견된 상태입니다.”
“빠가야로! 빠가야로!”
만철이 영업을 하지 못하는 순간, 만주국과 관동군은 사실상 마비가 된다.
모든 물류 수송을 철도에 의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운행 중이던 특급 열자 ‘아시아’ 호가 공격을 받고 다롄과 선양 그리고 신징의 역은 끊임없는 폭격을 받고 있었다.
“총재님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앞으로 몇 년 간은 만주 지역의 철도망이 망가져서 운행을 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만철 조사부장 다촌 센텐스는 간곡한 어조로 오무라 다쿠이치 총재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총재님, 운행 중인 모든 열차마다 대공포를 달고 다니면 어떻겠습니까?”
“열차마다 대공포를 달고 다니자고?”
“예, 관동군 항공대를 믿고만 있다가는 큰일이 나게 생겼습니다. 모든 기차역과 열차에 대공포를 달고….”
“야! 이 미친놈아! 돈은, 돈은 어디서 나오고?”
오무라 다쿠이치 만철 총재가 다촌 센텐스 조사부장에게 역정을 내고 있을 때 오늘도 잊지 않고 광복군 항공대의 맛집인 신징을 찾아온 B-17 폭격기와 bf-109 전투기들은 싣고 온 폭탄을 투하하고 있었다.
“폭격 편대는 지금부터 신징 역사 주변을 초토화시킨다.”
“예, 편대장님.”
4대의 B-17 폭격기들은 폭탄창을 개방하고 열심히 폭탄을 떨궜다.
“꽈 광!”
“꽝!”
“나이스! 잘 탄다.”
“스트라이크! 신징을 지도에서 지워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