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날 일은 아무리 막으려고 해도 일어난다
“조지 대장, 우리 임시정부도 차라리 바중으로 이동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내가 아무리 실질적으로 광복군을 이끌고는 있다고 해도 광복군은 임시정부 아래에 있기 때문에 김구 주석에게 보고를 해야만 해서 충칭에 들렀을 때 김구 주석은 나한테 조심스럽게 임시정부의 이동에 관한 말을 꺼냈다.
“주석님, 왜?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요즘, 장제스 주석이나 쑹메이링 위원장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 같지 않아서 말입니다.”
“주석님, 무슨 일인지 좀 자세하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김구 주석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요즘 들어서 중화민국 정부의 태도가 조금 이상하게 변했어요. 내가 보기에는 뭐랄까? 이제 우리를 이용할 만큼 이용했다고 생각하는 그런 눈치인 것 같아요.”
“장제스 총통이 주석님을 대하는 태도가 그렇게 변했습니까? 한때는 주석님과 호형호제하면서 주석님을 잘 대해 줬지 않습니까?”
“아니에요. 이제 보니까 그때는 중화민국을 지지하는 같은 편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이제는 장제스 총통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국가들이 많다 보니까 우리처럼 전력에 큰 보탬이 되지 않고 부담만 되는 조직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나는 혹시나 내가 쑹메이링을 박대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나 하고 걱정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 이유만으로 이런 일이 생긴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아직까지는 우리를 더 이용해 먹을 것들이 많이 있을 텐데 역사와는 다르게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되면서 장제스와 쑹메이링의 간덩이가 부은 것 같았다.
“주석님, 차라리 잘됐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어차피 중국과 일본 그리고 소련의 공산주의자들과 거리를 두는 것이 나중을 위해서 훨씬 이득입니다. 그냥, 이번 기회에 바중으로 임시정부를 옮기십시오.”
미국이 꾸미는 거대한 음모 속에서 우리 대한민국이 쉽게 벗어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가서 미국으로부터 최소한 천대를 받으면 안 된다.
원래 역사에서처럼 재수 없이 찬밥신세 대우를 받다가 완전히 개무시를 받아서 두 쪽으로 나눠진다든지 아니면 진짜로 30년은 신탁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까지도 나올지 모르는 것이었다.
“조지 대장, 그럼, 여기 충칭에는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연락 사무소와 연락 장교만 두고 모두 바중으로 옮기겠습니다.”
“예, 그렇게 하십시오. 그리고, 다시 한번 당부드리지만 절대로 옌안의 조선 공산당과는 안부 연락도 주고받지 마십시오.”
“아니, 왜요? 옌안에서 광복군이 될 청년들을 넘겨받아야만 하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어요?”
“주석님! 안 됩니다. 공산당과 엮이면 나중에 진짜 골치 아파집니다. 병력을 넘겨받을 때만 가볍게 안부나 나누시고 다른 접촉을 절대로 피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장제스가 마음이 변한 것 같다면 앞으로 우리는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나도 그들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한 동포인데 어떻게 매정하게….”
“주석님, 우리가 안 보이는 곳에서 우리를 관찰하고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여겨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세상 곳곳에 적들의 눈과 적은 아니지만, 우리와의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 자들은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힘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눈치를 봐야 합니다.”
“영국과 미국을 말하는 거군요. 조지 대장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겠습니다.”
“우리가 나라를 다시 찾을 때까지는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김구 주석을 설득하고 있을 때 밖에서 주석실의 문을 급하게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형님! 형님!”
“주석님! 주석님!”
무슨 급한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는데 김구 주석의 비서와 드미트리가 동시에 주석실을 찾아왔다.
“무슨 일인가요?”
“주석님! 일본군이 몽골에서 소련군을 공격했습니다.”
“그게 진짭니까?”
일본군의 소련 침공이 김구 주석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이었다.
사실은 나도 그랬다.
지금, 일본군 상황에서 소련과 또 하나의 전선을 만들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답이 없는 놈들이었다.
‘나는 일본의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서 할힌골 전투는 벌어지지 않을 줄 알았는데,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건가?’
현재, 일본 지나 주둔군은 사력을 다해서 간신히 우한을 점령했지만, 전쟁은 갈수록 치열해져만 가고 있었다.
헤어날 수 없는 수렁, 드넓은 중국 대륙에서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끈질긴 중국군과 지구전과 소모전은 일본을 헤어 나올 수 없는 진흙 구덩이에 빠지게 했다.
중화민국군은 소련 군사고문단과 미국 군사고문단의 꼬임에 넘어간 단 한 번의 실수를 제외한다면, 미국의 군사고문단과 의용항공대 그리고 광복군의 어마어마한 도움을 받아서 일본군을 상대로 정말 잘 싸우고 있었다.
“아니, 아무리 관동군이 미친놈들이라고 하지만 정말로 몽골에서 전쟁이 벌어진 겁니까?”
“예, 주석님. 오전에 관동군이 소련군을 공격했습니다.”
“하…! 미쳤군요. 그런데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관동군 제23사단 제64연대 제3대대와 아즈마 야오조 중좌의 수색대가 만주국 기병대와 소련군 제11 기계화여단을 오늘 오전에 공격해서 소련군의 방어선을 돌파하는 것은 성공했지만 재빠르게 우회 포위에 들어간 소련군에 의해서 섬멸당했답니다.”
“하!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군요. 조지 대장은 이 상황이 이해됩니까?”
“저도 이해가 안 되기는 합니다만 주석님 저들은 관동군이잖습니까?”
“아! 관동군…. 조지 대장은 이번에도 관동군이 일본 수뇌부 모르게 독자적으로 벌인 사고라고 생각하는군요?”
“예, 저는 그렇게 생각됩니다. 그리고, 우리 광복군 항공대도 나서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할힌골 전투는 1차와 2차로 나뉜다.
이제 전투가 시작됐다면 관동군이 작살나게 깨지는 2차 전투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아 있었다.
“조지 대장은 소련과 일본의 전쟁이 이대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군요?”
“예, 주석님. 이대로 물러나면 그게 어디 관동군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소련과 협상할 일도 있었는데 이 일을 기회로 삼아서 그걸 한번 의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조지 대장, 소련과 뭘 의논한다는 겁니까?”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주당한 동포들을 군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럴 생각입니다.”
“그들은 이미 사상이….”
“소련이라면 치를 떨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소련이 우리 의견을 들어줄지 그것도 아직 모릅니다.”
대본영의 육군 참모차장 다다 하야오나와 작전부장 이시하라 간지는 지나 전선으로의 확전을 반대했던 것은 바로 소련 때문이었다.
그들은 독일과 군사협력이 가능해진다면 언제든지 소련을 공격하기 위해서 힘을 아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관동군의 생각은 대본영과는 전혀 달랐다.
일본 육군 참모본부는 몽골의 배후에 소련이 있었기 때문에 관동군에게 가능하면 분쟁을 일으키지 말라고 지시했지만, 이시하라 겐지를 추종하는 짝퉁 이시하라 겐지들이 득실거렸던 관동군은 여차하면 소련과 한판 붙기로 이미 내부 방침을 정하고 있었다.
할힌골 전투는 1939년 5월의 제1차 전투와 7월의 제2차 전투로 나뉜다.
1차 전투는 대대급의 미미한 아이들 수준의 전투였다면 2차 전투는 관동군 제23사단장인 고마쓰하라 미치타로 중장이 자신의 휘하 부대와 소련군의 전투 소식을 듣고 바로 부대를 진격시켜서 게오르기 주코프의 소련군 제57군단과 전투를 벌이면서 발생했다.
양측의 전투 인원은 일본군이 조금 더 많았고 전투에 투입된 중화기의 숫자는 소련이 더 많았다.
그리고, 전투 결과는 양쪽 모두 처참했다.
관동군 23사단은 전사·전상자가 17,000여 명이 넘어가면서 사실상 부대가 사라진 것과 같은 정도의 피해를 봤고 소련군 역시도 전사자만 8,000여 명이 생긴 전투였다.
그리고, 이 할힌골 전투는 시간이 한참 흘러서 9월 16일이 돼서야 정전협정이 체결되고 관동군사령관인 우에다 겐키치와 참모장 이소가이 렌스케중장은 패전의 책임을 지고 옷을 벗었다.
그러나, 정작 할힌골 전투를 기획했던 관동군 작전참모 핫토리 다쿠시로 중좌는 육군보병학교로 전근되었다가 1940년 10월 참모본부 작전 과장으로 영전했고, 같이 확전을 주장했던 쓰지 마사노부도 참모본부로 부임했다.
별것 아닌 것 같은 할힌골 전투의 영향은 엄청났다.
장고봉 전투와 할힌골 전투까지 두세 번에 걸쳐서 소련에 호되게 당한 일본은 소련을 도저히 이기기는 힘들다고 판단하고 시선을 돌려서 미국·영국과 맞서는 남방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태평양 전쟁의 발단이었다.
한 마디로 윗동네를 기웃댔다가 크게 두들겨 맞은 깡패 새끼가 힘을 숨기고 있어서 만만해 보이는 아랫동네를 노리자는 식으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이 할힌골 전투를 보면 이 당시 일본이 어떤 나라인지를 제대로 알 수가 있었다.
국가 통치 체계도 없고 국가 미래 계획도 없이 그저 쥐새끼들처럼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다가 결국에는 건들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려서 나중에는 원자폭탄까지 처맞게 된다.
“주석님, 아무래도 이번에 광복군 항공대가 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못다 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시죠?”
나는 이 전투에 참여해서 승리에 대한 지분을 차지하고 소련에 우리 동포들에 대한 문제를 확실히 요구할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지 대장! 설마, 소련과 일본의 전쟁에 끼어들 생각입니까?”
“예, 소련에 뭘 좀 받아 내려면 아무래도 그래야만 할 것 같습니다.”
* * *
김구 주석과의 만남을 정리한 나는 그길로 바로 소련 군사고문단의 파벨 뤼챠고프 소장을 찾아갔다.
“아이고! 고생들이 많으십니다.”
“여기는 어쩐 일로?”
그동안 미국 군사고문단 맥아더와 놀아주느라 좀 소홀했더니 파벨 뤼챠고프 소장은 바로 어쩐 일로 찾아왔냐고 물었다.
“뭐가 어쩐 일입니까? 북쪽에서 동지들이 고생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도 좀 도와줄까 하고 온 거지요.”
“그건 또 어디서 들었습니까?”
속으로는 광복군의 정보력에 놀랐으면서도 겉으로는 아닌척하는 파벨 뤼챠고프 소장을 보고 있자니 조금 우스웠다.
“게오르기 주코프 장군이 스탈린 동지의 지시로 왔다고 하던데…. 우리가 진짜 도울 일이 없습니까? 그쪽에 소련 공군이 많이 죽고 있다던데…?”
소련군 조종사들은 아직은 일본군 항공대를 상대할 만한 기체도 실력도 없어서 중국에서 모든 것을 몸으로 때우고 있었다.
“주코프 장군이 군단장으로 온 것은 또 어떻게 안겁니까?”
나는 파벨 뤼챠고프 소장의 얼굴을 보면서 말없이 살짝 웃어만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