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련, 이 개 같은 놈들이… (114/225)

소련, 이 개 같은 놈들이…

1939년 1월. 알바니아왕국은 외교권을 이탈리아에 넘김.

2월. 헝가리 왕국이 방공협정에 서명했다.

일본 중화민국 하이난섬 공격. 장제스 지원 루트 차단 목적.

3월. 독일 뮌헨협정 파기 체코슬로바키아 병합.

영국 폴란드 독립 보장.

4월. 히틀러 국방군에 폴란드 침공 작전 수립 지시.

이탈리아 알바니아 병합.

1939년 새해가 밝아오자 세상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채로 전 세계를 불태워 버릴 만큼 거대한 전쟁을 향해서 계속해서 다가가고 있었다.

그리고, 중일전쟁이라는 헤어나올 수 없는 늪에 빠져버린 일본도 유럽의 정세를 관찰하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일본에 유리할지를 놓고 내각에서 매일 같이 회의가 계속되고 있었다.

“큰일입니다. 어제, 의회에서 사이토 의원이 하지 말았어야 할 발언을 했습니다.”

전 총리였던 고노에 후미마로가 중일전쟁을 일으켜놓고 무책임하게 사임해버리자, 추밀원 의장이었던 히라누마 기이치로가 얼떨결에 총리대신을 맡아서 뒷수습을 하고 있었다.

히라누마 기이치로 내각은 기존의 고노에 내각이 주장한 과격한 군국주의를 누그러뜨리고 유화적인 대외정책을 펼칠려고 골몰했다.

“왜? 군부가 통제가 안 됩니까?”

“예, 총리 대신님. 이놈들이 워낙 미친놈들이 많아서 어디서 저희들끼리 작당해서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를 모르겠습니다.”

이타가키 세이지로 육군 대신은 자신도 관동군으로 근무하던 시절, 부하였던 이시하라 겐지와 함께 만주사변을 일으켰던 주제에 이제 와서는 군부 내의 급진적인 전쟁주의자 장교들을 비판하고 있었다.

“그러게, 세계정세가 미쳐 날뛰는데 왜 하필 이 시기에 지나를 침공해서….”

“그러게, 말입니다. 그렇게나 말렸건만 고노에 전 총리가 눈에 뭐라도 씨였는지….”

“사실, 말은 바로 합시다. 고노에 총리가 정말로 그럴 줄을 다들 몰랐습니까? 그 사람은 성격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만들 합시다. 지금은 고노에 전 총리를 탓하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어떡하든지 국내를 안정을 시켜야 하고 지나와의 전쟁도 마무리를 지어야합니다.”

히라누마 총리대신이 회의 참석자들을 말리고 나서자 이시와타 소타로 대장 대신은 심각한 표정을 한 채 바로 몇 장의 서류들을 오상 회의 참가자들에게 배포했다.

“어제, 사이토 의원이 의회에서 괜한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거기 보고서들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현재 경제 상황이 너무나 좋지 않습니다. 이러다가는 우리 일본제국이 정말로 망하게 생겼습니다.”

“대장 대신, 그 정도로 경제 상황이 안 좋습니까?”

히라누마 총리를 비롯한 다른 회의 참가자들이 아직도 일본 경제가 얼마나 개판인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 이시와타 소타로 대장 대신은 다시 서류를 몇 장 더 내밀었다.

“자! 다들 한번 봐 보시기 바랍니다. 그게 최근 도쿄 주식 시장 지표입니다.”

“아니. 이게 뭡니까? 이건 모든 종목이 대폭락을 하지 않았습니까?”

“예, 그것만 문제가 아닙니다. 군비 증강을 위한 전쟁채권도 하나도 팔리지 않고 있습니다.”

“전쟁채권도 안 팔린다고요? 그럼, 지나와의 전쟁은 앞으로 어떻게…?”

아무리 경제에 문외한인 군인 출신들이라고 해도 숫자를 읽을 수는 있었다.

내각 대신들이 보고 있는 도쿄 주식 시장 현황 서류에는 모든 것이 마이너스였다.

거기에 더해서 전쟁 군비를 충당하는 데 큰 도움이 됐던 전쟁채권도 팔리지 않는다는 소리에 다들 걱정이 태산 같은 표정들이었다.

“이런 상황에 군부는 계속해서 지나 전선의 확전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아주 이상한 일이 하나 생겼습니다.”

“무슨 일 말입니까?”

“또, 어디서 누가 쿠데타라도 일으킨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까?”

“그게 아니고 이걸 한번 봐 보시기 바랍니다.”

이시와타 소타로 대장 대신은 자신의 서류 가방에서 10엔짜리 지폐 여러 장을 꺼내서 내각의 대신들에게 몇 장씩 나눠줬다.

“대장 대신, 이건 10엔짜리 지폐가 아닙니까?”

“이 지폐가 뭐가 이상하다는 말입니까?”

10엔짜리 지폐를 들고 아무리 살펴봐도 별다른 이상한 점을 찾지 못한 히라누마 총리 이하 다른 대신들이 도리어 이시와타 대장 재신에게 물었다.

“그 10엔짜리 지폐는 아직 제국은행에서 발행하지 않은 일련번호를 가진 지폐들입니다.”

“뭐라고요?”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이시와타 대장 대신의 말에 회의 참석자 전원이 놀라 자빠질 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

“예, 사실입니다. 지금, 그런 지폐들이 일본 내에 얼마나 풀렸는지 대장성과 제국은행에서는 파악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장 대신, 이 10엔짜리 지폐는 위조지폐가 맞죠?”

지금까지 별말 없이 자리만 지키고 있던 요나이 미쓰마사 해군 대신이 이시와타 대장 대신을 보면서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위조지폐를 만들어 냈는지….”

“이 정도 위조지폐를 만들려면 돈이 얼마나 들어갑니까?”

“예?”

“아니, 이렇게 정교한 위조지폐를 만들어 내는 돈이 현금을 그냥 쓰는 것보다 돈이 더 많이 들면 누가 이런 것을 만들겠습니까? 내가 보기에는 이 정도 위조지폐를 만들려면 돈이 더 들어갔을 것 같은데.”

“아! 그러니까 위조지폐를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제야 요나이 해군 대신의 말뜻을 이해한 이시와타 대장 대신은 표정이 더 심각해졌다.

“요나이 대장, 그게 무슨 말입니까?”

다른 회의 참석자들은 아직도 요나이 해군 대신이 말하는 말을 이해를 못 한 눈치였다.

“이 정도 돈을 만들려면 일반적인 범죄자들은 아니라는 소립니다. 위조지폐는 현금보다 만드는 비용이 적게 들어야 이익이 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지폐는….”

“아! 이런이런…. 그리고 보니까 얼마 전에 경시청에서 인민전선 가담자들로부터 이상한 정보를 들었다고 했는데….”

“총리대신 각하, 경시청에서 무슨 이야기를 들으셨습니까?”

“인민전선을 지원한 곳이 소련 모스크바의 코민테른 본부가 아니고 중국에서 활동하는 코민테른 간부라고 했다고 하던데….”

“총리대신 각하, 그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대장 대신, 생각을 좀 해봐요. 모스크바도 지원하기 어려운 큰 자금을 중국에서 활동하는 일개 코민테른 간부가 지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 중화민국의 장제스가 이런 짓을 벌였다는 말씀이십니까?”

“장제스가 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소련이 만들어서 중국으로 우회를 했을 수도 있겠지요. 내가 생각해봐도 이 정도 지폐는 절대로 일반적인 범죄자들은 못 만듭니다.”

다들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그렇다고 뭔가 뚜렷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정도로 정교한 위조지폐를 만들려면 못해도 수백만 달러가 들어갑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범인이 소련인 것 같습니다.”

“그럼, 소련이 우리 일본 경제를 무너트리려고 의도적으로 위조지폐를 만들어서 인민전선을 지원했다는 소리요?”

“현재는 그렇게밖에는 생각이 안 됩니다. 이건 절대로 일반 범죄자들이 만들만한 지폐가 아닙니다.”

여전히 이시와타 대장 대신은 소련을 의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의심만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럼, 이시와타 대장 대신은 어떡하자는 말이요?”

“일단은 화폐교환을 해야만 합니다. 신권을 발행해서 위조지폐들을 전부 회수하고 앞으로 더는 위조지폐를 사용하지 못하게 막아야만 합니다. 여러분! 만약, 이대로 화폐교환을 하지 않고 지나간다면 우리 일본제국의 경제는 얼마 가지 않아서 그대로 무너집니다.”

“허! 이런 개 같은 소련 놈들.”

“소련 이 개 놈들이….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그럼, 우리도 장제스 정부와 소련 경제를 무너트리기 위해서 위조지폐를 만들어서 뿌립시다.”

“오! 그것 정말로 좋은 생각입니다.”

“나도 찬성합니다. 당했으면 당연히 갚아줘야죠.”

군인들 특유의 전투 본능이 되살아난 내각의 대신들은 중국과 소련에 돼 갚아줘야만 한다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철없는 군인 출신 대신들을 이시와타 대장 대신이 말리고 나섰다.

“여러분! 이 정도로 위조지폐를 만들려면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갑니다. 설마 지나와의 전쟁으로 힘든 이 와중에 쓰레기 같은 중국 돈과 소련 돈을 위조지폐로 만들자는 말씀들이십니까?”

“중국과 소련 돈이 쓰레기라면 그럼 다른 나라의 돈을 만들어서 쓰면 안 되는 거요?”

“어느 나라의 돈 을요? 설마, 영국이나 미국은 아니시겠죠?”

이시와타 대장 대신의 되물음에 아직은 영국과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다들 입 다문 조개들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험…. 그럼, 위조지폐는 이시와타 대장 대신이 조속히 처리하도록 하고 다음 의제로는 유럽 정세를 분석하면서 우리 일본 정부가 어느 쪽에 줄을 서야 할지를 의논합시다.”

독일은 일본과 정식적인 군사동맹을 맺으려고 계속해서 구애를 보내고 있었고, 히라누마 내각은 군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영국, 미국과의 대결 구도로 흘러가는 것만은 피하고 싶어서 독일에 결정적인 답변은 계속 미루면서 독일과 대소련 방공 공조만은 계속 유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것에 불만을 품은 군부는 톈진에서 일어난 한간(중국인 간첩) 암살사건을 빌미로 톈진의 외국인 조계지를 봉쇄하는 이른바 톈진 사건을 꾸며내서 영국과 미국을 자극하는 등 계속해서 내각 정책에 대한 방해 공작을 펼쳤다.

그리고, 히라누마 총리대신을 암살하겠다고 협박을 일삼고 있었다.

히라누마 내각은 외교 문제 때문에 70여 차례에 걸쳐 회의를 거듭했지만 결국 아무런 결론도 없이 시간만 끈 탁상공론에 그치고 말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결국 군사력에 대한 평가 차이에서 온 것인데, 아시아 최강인 일본이 과연 언제까지 영국·미국과의 군사적 대결을 피해야 하는지에 관한 대립이었다.

내각과 군부 양쪽은 모두 독일·이탈리아와 침략적 군사동맹을 체결하자는 데에 대해서는 본질적으로는 서로 반대하지 않고 있었다.

* * *

“야! 이 미친놈들아! 지금 지나와 한창 전쟁 중인데…. 너희들 미쳤어?”

한때는 작전의 신으로 불리면서 대본영 작전 과장으로 근무했던 이시와라 겐지는 2.26 사건으로 인해서 좌천을 당해서 다시 관동군으로 쫓겨와 있었다.

“대좌님이 보시기에는 우리가 미친놈으로 보입니까?”

“그래! 지금 너희가 제정신이라면 소련과 전쟁을 할 때냐? 아직 지나도 정리를 하지 못해서 쩔쩔매고 있는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선배님. 이게 다 선배님께서 하셨던 일들을 보고 작전을 구상하고 일을 추진하는 겁니다. 예전에 선배님께서도 이런 식으로 장쭤린을 암살하지 않으셨습니까?”

이시와라 겐지는 관동군 참모들을 보면서 기가 차지도 않았다.

상대를 봐가면서 일을 벌여야지. 이건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그건 하찮은 마적 떼인 장쭤린이고 이건 상대가 소련이라고, 러시아! 너희들 러시아가 얼마나 큰 강대국인지 몰라?”

“선배님! 우리 대 일본제국에 그 잘난 러시아도 졌지 않습니까?”

“아! 미치겠네. 세계 최후의 전쟁을 위해서 우리 대일본 제국은 조선과 만주를 기반으로 힘을 닦아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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