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군도에 숨겨진 광복군의 칼
일본 해군 정보부는 태평양 전쟁을 준비하면서 아시아 태평양 곳곳에서 살고 있는 일본인들을 이용해서 정보를 수집했다.
사이판에 침투한 이봉창은 조선인들만으로는 내가 내린 지시를 수행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시아 태평양 곳곳에 흩어져서 살고 있는 조선인과 외국인 그리고 친해진 일본인 등 이용 가능한 모두를 이용했다.
조선인들은 일본이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남양군도를 위임통치를 시작한 직후부터 남양군도로 노동 이주를 했다.
시모노세키에 있었던 니시무라 척식회사가 ‘지상낙원’이네 ‘별천지’라네 하면서 사탕발림으로 속여서 전라도 광주에서 90여 명을 모집했고 그 뒤를 이어서 북선 출신이 두 번째로 남양군도에 들어갔다.
그리고, 오키나와현 출신의 노동 이민이 대거 이뤄지고, 태평양전쟁기에는 조선인의 대규모 강제징용이 이어졌다.
사이판의 최고 유곽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성비가 좋다고 소문 난 유곽인 ‘후지 마루’의 주인 기노시타 쇼조는 오늘도 가게의 입구에서 자주 찾는 손님들과 쓸데없는 농을 즐기고 있었다.
“아이고, 우리 소좌님은 오늘에야 찾아오셨네요.”
“내가 다른 것은 참겠는데 이것은….”
사이판에서 삼 년째 근무 중인 류모 소좌는 자신의 새끼손가락만 한 물건을 주물럭거리면서 당장 여자가 필요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좌님,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소좌님이 제일 이뻐하는 애로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런데, 요 며칠은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한 이틀 오시지 않던데?”
“아! 그건 말이지. 요즘, 유류 창고에 석유를 저장하느라고 좀 바빴어.”
‘후지 마루’의 주인 기노시타 쇼조는 가게를 찾는 손님들을 통해서 사이판(남양군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아랫도리 이하에서 벌어진 일만큼은 위아래가 없다는 일본인들 특유의 성향을 이용해서 가장 손쉽게 정보를 얻고 있었다.
“아니, 갑자기 석유는 왜?”
“내가 알겠나? 상부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우리 같은 쫄짜 들이야 뻔하잖나.”
“아니, 소좌님이 쫄짜라면….”
“우리는 육군대학을 나오지 못하면 다 같은 개차반일 뿐이네.”
그때, 안에서 영업이 준비됐다는 소리가 들리자 류모 소좌를 안으로 안내하고 기노시타 쇼조는 다시 가게 입구로 나왔다.
“어이! 전상! 일은 끝났나?”
“아! 기노시타 쇼조 사장님. 예, 오늘은 좀 일찍 끝냈습니다.”
“그럼, 이리로 와서 시원한 물이라도 한잔하고 가게.”
“그래도 되겠습니까?”
전경운은 남양군도 여러 섬에서 야자 농장 관리원으로 일하면서, 조선인과 오키나와인, 그리고 원주민인 차모로 인들을 동원해서 야자유의 원료인 코프라의 가공과 수확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조선인이었다.
“일은 아직도 힘들지?”
“예, 저는 이런 곳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래? 그래도 전상이 살아남으려면 할당량을 채워야만 할 것이 아닌가?”
“그게 힘들다는 소립니다. 사람이 사람을 매질하면서 일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
전경운은 일본에서 대학까지 나왔지만, 돈을 크게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서 남양군도에서 일하고 있었다.
“전상, 부모님은 여전히 몸이 많이 안 좋으신가?”
“예, 그것이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올 이유가 없죠.”
“음…. 이따, 밤에 시간이 된다면 술이나 한잔하겠나? 지금은 내가 영업을 해야 해서 말이야.”
“내일 일할 것을 생각하면은 술을 마시면 안 되지만…. 사는 게 참 힘드네요. 저녁에 한잔하러 오겠습니다.”
“그래. 그럼, 이따 밤에 보세.”
기노시타 쇼조는 가게를 찾는 단골손님들에게서 정보를 수집하고 안면을 익힌 여러 사람과 가끔 술을 한 잔씩 하면서 차곡차곡 한 명씩 동조자를 포섭해나갔다.
특히, 기노시타 쇼조는 일본 해군 4함대 소속의 장교와 고참 병사들에게서 수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일본 해군은 태평양 해양 패권을 잡기 위해서 남양군도의 주요 지역을 군사 기지화해서 미국과의 한판 대결을 준비하고 있었다.
더불어서 남양군도의 일본 해군 기지는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지역을 침략하기 위한 전진기지 역할도 하고 있었다.
“전상, 많이 힘든가?”
“예, 많이 힘든 정도가 아니라 이건 인간이라면 할 일이 절대 못 됩니다.”
“쯧쯧…. 다들 그렇게 힘들어하던데. 전상도 그렇게 신세 한탄만 하다가 곧 이곳을 떠나겠군.”
“당장이라도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에이 시발!”
“부모님 병원비 때문인가?”
“예, 많이 힘드네요. 사실, 나는 여기 남양군도에 와서야 우리 조선인이 어떤 위치인지를 제대로 알게 됐습니다. 설마, 이 정도일 줄 몰랐습니다.”
“내가 전상을 도울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이봉창은 전날 밤 술을 한잔하면서 왜 조선인이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이런 지옥 같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전경운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둘은 뜻을 함께하는 동지가 됐다.
다음날도 새로운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기노시타 쇼조는 가게 문을 열고 가게 앞을 깨끗이 쓸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기노시타 쇼조의 눈에 어디서 많이 본 옷이 들어왔다.
“어이! 어이!”
기노시타 쇼조는 가게를 쓸던 빗자루를 던져 버리고 조선 처녀로 보이는 여자 앞으로 뛰어갔다.
눈에 보이는 여자는 기노시타 쇼조의 조카 또래로 보이는 조선인 처녀가 분명했다.
“어이, 아가씨 아가씨는 이곳에 왜 온 거야?”
급하게 조선 여자에게 뛰어간 기노시타 쇼조를 막는 사람이 있었다.
“기노시타 쇼조 사장, 이 조선 계집이 마음에 들어? 하긴 맨날 밥만 먹고는 못 살지. 이 계집도 데려가서 기노시타 쇼조 사장네 가게 구색을 좀 갖춰 볼 텐가? 여기서는 조선 계집이 없으니까 아마 잘 팔릴 거야.”
“이 조선 여자는 뭡니까? 그동안은 내지에서 게이샤들이 주로 왔잖습니까?”
“아! 그건 조선에 천황폐하께 충성 다하는 여자가 한 명 있잖나? 이토 히로부미 공의 딸이라는 여자 그 여자가 나서서 우리 황군을 위로하라고 보낸 조선 계집일세.”
이봉창은 자신의 조카 딸보다 어린 조선 소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여기서 이 어린 조선 소녀가 일본군에게 당할 일들이 눈앞을 선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이 조선 계집은 얼맙니까? 내가 사겠습니다.”
“이번에는 기노시타 쇼조 사장이 산다고…. 뭐, 우리 사이에 못 팔 것도 없지. 그리고, 나중에 또 조선 계집들이 들어오면 보내줄까?”
“나중에 조선 계집들이 또 들어옵니까?”
“그럼, 천황폐하께 충성 다하는 그 여자가 조선 계집들이야 얼마든지 황군을 위로하기 위해서 보내줄 거네.”
* * *
맥아더 단장의 요청으로 필리핀군의 군사고문단과 훈련단으로 파견할 광복군 부대와 장병들을 조정하고 있던 나한테 유자명 선생과 백정기가 찾아왔다.
“조지 대장님, 오랜만에 사이판에서 소식이 왔습니다.”
“이봉창은 연락을 주고받다가는 노출될 위험이 있으니까 따로 연락하지 말라고 했는데 혹시 무슨 안 좋은 일입니까?”
이봉창을 사이판으로 파견할 때부터 때가 되면 내가 먼저 연락을 할 것이라고 급하게 필요한 일이 아니면 연락을 자제하라고 했는데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반드시 죽여달라는 사람과 일본 해군 4함대의 규모와 각각의 기지 그리고 주요 지휘관과 그들의 사진 등을 보내왔습니다.”
“반드시 죽여달라는 사람이요?”
일본 해군 4함대는 보유 전력은 항만 방어 함정과 정찰 항공대 정도로 ‘이쓰쿠시마’, ‘야에야마’, ‘노토로’등이 주요 함정이었고 캐롤라인 제도, 팔라우 제도, 마셜 제도 등의 방어를 위해서 해군 육전 방어대를 두고 있었다.
그리고, 수상함은 추크 제도, 잠수함은 콰잘레인 환초에 주둔하고 있었다.
이봉창이 보내온 일본 해군 4함대의 정보는 이미 내 머릿속에 있었다.
내가 이봉창에게 원했던 것은 광복군과 미군 해병대가 남양군도를 공략할 때 내부 호응을 해주는 것이었다.
“예, 배정자를 죽여달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배정자! 이토 히로부미의 첩이자 딸년인 년이요?”
“예, 바로 그년입니다.”
“그년이 남양군도에서 무슨 문제라도 일으킨 건가요?”
“요즘 남양군도에 일본군 위안부로 조선인들이 한두 명씩 온답니다. 그게 바로 배정자 그년 때문이랍니다.”
“벌써요?”
“예, 이봉창이 조선 남자들은 어떻게 포섭이라도 해서 일본군과 싸워 보겠지만 조선 여인이 노리개로 끌려 온 것은 도저히 볼 수가 없답니다.”
유자명 선생의 보고에 내 두 주먹은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가면서 불끈 쥐어졌다.
내가 알고 있던 사실보다 일본이 더 일찍부터 조선인을 위안부로 끌고 간 것인지 아니면 나 때문에 역사가 변하면서 빨라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그렇게 막고 싶었던 일 중의 하나가 발생한 것이었다.
도대체, 조선의 매국노 놈들은 동족을 얼마나 팔아 처먹어야만 만족을 할까?
아니, 우리를 같은 동족이라고 생각은 하기는 할까?
언제나 제 주둥이가 호강하고 제 뱃가죽만 부르면 무슨 짓이든 다 할 놈들이었다.
“백정기 대장, 혹시, 윤봉길이 지금 국내로 들어갔나?”
“아직 아닙니다. 지금 각종 무기와 폭약을 준비하고 국내에서 공산당 당원들의 훈련을 위한 병사들을 차출하고 있습니다.”
암을 그대로 두면 그 옆 세포까지도 암으로 발전한다는 사실을 내가 잠시 놓치고 있었다.
친일파 매국노들의 재산 환수 문제 때문에 몇 명 미뤄 뒀던 놈들을 이번 기회에 모두 정리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이번에 윤봉길이 국내에 들어갈 때 백정기 대장도 같이 간다. 같이 국내에 들어가서 그동안 미뤄뒀던 모든 개새끼를 정리한다. 그리고, 일제에 협력하라고 개소리를 하는 연놈들도 모두 죽여라!”
“모두 말입니까?”
“그래, 미안하다. 너희들의 안전을 위해서 이러면 안 되는데 이젠 더는 봐줄 수가 없다. 암은 암일 뿐이지 내 몸의 세포가 아니다.”
“예! 대장님! 감사합니다!”
백정기는 내가 죽을지도 모르는 명령을 했는데 도리어 나한테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그동안 죽이고 싶은 놈들이 많았는데 광복군의 지침과 내 명령 때문에 꾹 참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차라리 조선 총독이 바뀌고 정신없을 때 일을 치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감사합니다. 대장님. 제가 책임지고 모두 지옥으로 보내주겠습니다.”
“저…. 조지 대장님, 이왕 일을 치를 생각이라면 일제 경찰과 검사로 일하면서 우리 독립인사들과 민족을 탄압하는데 앞장서는 놈들도 죽여버리죠.”
유자명 선생도 그동안 꾹 참고 있엇던 것이 있었는지 일제의 경찰과 검사로 일하던 놈들을 다 죽이자고 했다.
“그렇게 하십시오. 이번 기회에 청소를 한번 하고 지나갑시다.”
그래, 깨끗이 쓸고 가자.
눈에 보이는 대로 깨끗이 청소하자.
그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정리를 하자. 이래서 봐주고 저래서 참아주고 이제는 그런 건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