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따위 작전으로 필리핀을 지킬 수 있다고?
중화민국 미국 군사고문단장인 맥아더는 중국 전선에서 일본군과의 전투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군의 필리핀 침공에 관한 보고서를 전쟁부에 제안했다.
원래는 1940년 7월에 보고서가 작성되지만, 중국에서 군사고문단장으로 직접 일본군의 종잡을 수 없는 성향을 경험한 맥아더 덕분에 시기가 일 년 이상 앞당겨졌고 보고서에 맞춰서 미국 육군과 해군의 대처와 준비도 근 이 년 가까이 빨라졌다.
맥아더가 작성한 보고서에는 일본군은 선전포고 없이 바로 필리핀을 공격할 것이라고 예상했고 일본군의 필리핀 공격에는 강력한 항공력과 함대의 지원을 받는 병력 십만 명 이상을 투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일본군의 주요 목표는 마닐라가 있는 루손섬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일본군은 주력군의 상륙에 앞서 필리핀에 거주하는 일본인 삼만 명의 도움을 받아서 이미 지형을 파악한 상태에서 선발대를 여러 방향으로 상륙시켜서 비행장을 탈취할 것으로 보았으며 주력군이 상륙할 때는 여러 차례에 걸친 상륙작전이나 양동작전의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미국의 육군과 해군은 맥아더의 보고서를 참고로 오렌지 계획을 마련했고 계획에는 필리핀을 방어하는 미군 수비대의 목표를 일본이 마닐라만을 사용하는 것을 최대한 오래 저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목표를 위하여 미군과 필리핀군은 일본군의 상륙을 저지하되 실패하면 바탄반도로 들어가 농성할 생각이었다.
처음부터 미국은 필리핀을 지킬 생각이 없었고 중부 루손섬에서만 일본군의 진격을 막을 생각이었다.
“단장님, 찾으셨다고 해서 들렸습니다.”
맥아더 단장은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평소와 달리 얼굴에 미소까지 보이면서 나를 맞았다.
“오! 조지 대장. 왔나?”
“예, 단장님. 급하게 찾으신다고 해서….”
“아! 내가 전에 조지 자네에게 필리핀 항공대 육성 건에 대해서 말한 것에 대한 대답이 없어서 말이야.”
‘드디어, 미군 수뇌부들이 필리핀이 더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건가? 잘 됐군. 지금부터 제대로만 준비한다면 일본군의 발목을 제대로 붙잡고 늘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 단장님, 그 이야기라면 제가 얼마 전 미국에 들렀을 때 헨리 아놀드 육군항공대 부사령관과 체스터 니미츠 항해 국장에게 필리핀 방어에 광복군도 참여하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순간, 맥아더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내가 직접적으로 미군 수뇌부와 접촉한 사실이 맥아더의 자존심을 건든 모양이었다.
“이봐! 조지! 내가 먼저 물었지 않았나?”
“아! 죄송합니다. 저는 단장님께서 본국의 군 수뇌부들과 이견을 조율하신 상태에서 저한테 참여 의사를 물은 줄 알았습니다.”
“아니…. 조지, 자네한테 물은 사람은 난데. 그것을 본국의 수뇌부들과 상의하고 통보하다니….”
내가 맥아더의 제안을 듣고 맥아더에게 의사 표시를 하지 않고 바로 미국의 지인들에게 내 의사를 밝힌 이유는 맥아더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맥아더의 필리핀 방어계획은 맥아더의 독선으로 마련된 쓰레기 같은 작전계획이었다.
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광복군들의 목숨을 그따위 허접한 작전에 밀어 넣을 수 없었다.
“그래서, 본국에서는 어떻게 말을 하던가?”
“별다른 말은 없었습니다. 단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광복군 항공대는 필리핀 조종사 교육에 투입해달라고 했고 해군에서 하나 더 원한 것은 광복군과 중화민국 해군은 바탄반도 앞을 방어해달라고 했습니다.”
“뭐라고? 해군? 중화민국에 해군이 있었나? 아니, 광복군에도 해군이 있었어?”
“예, 상하이 해전에서 피해를 많이 보긴 했지만, 중화민국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도 해군은 있습니다.”
‘니가 그래서 안되는 거야. 넌 너만 잘 난 줄 알지? 남들도 너처럼 생각이라는 걸 할 줄 알아. 그런데, 너는 그걸 왜 모를까?’
솔직히 미국 육군 고위 장성 중에 쓸만한 사람이 있었다면 나는 어떤 로비를 해서라도 맥아더가 태평양지역 사령관이 되는 것을 막았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육군 고위 장성 중에서는 그나마 쓸만한 사람이 맥아더였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참고 있었다.
“그래? 그럼, 중화민국 해군과 광복군 해군은 규모는 어떻게 되나?”
“제가 알기로는 중화민국과 광복군이 공동으로 6척의 구축함대를 가지고 입습니다. 그리고, 잠수함대도 있다고는 하는데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 중화민국과 광복군이 공동으로 해군을 운영했군. 그런데, 잠수함대? 중화민국 해군에? 아니면 광복군 해군에? 그것도 아니면, 이것도 공동으로?”
“아닙니다. 광복군 해군입니다.”
“정말, 대한민국 임시정부 소속 광복군에 잠수함대가 있다는 말인가?”
“예,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마련했는지는 제가 미국인이다 보니까 저한테도 비밀이라고 알려주지 않아서….”
맥아더의 전공 쌓기 희생양으로 우리 해군의 잠수함을 넘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도 모르는, 아니 영원히 맥아더가 모르는 비밀로 남겨 놓은 생각이었다.
역시, 맥아더는 뜻밖의 이용 거리가 생각난 듯이 눈을 반짝이면서 서덜랜드 대령을 불렀다.
“서덜랜드! 서덜랜드!”
“예, 단장님.”
“내가 마련한 필리핀 방어 작전계획을 가지고 들어와 봐”
맥아더 단장은 서덜랜드 대령이 가지고 온 필리핀 방어 작전 계획을 내 앞에 펼쳐서 보여줬다.
“자, 조지. 잘 살펴보게. 자네가 워싱턴에서 들은 전쟁부의 작전계획과 차이점이 있나?”
미국 전쟁부의 오렌지 계획과 맥아더가 준비한 필리핀 방어계획에는 차이점이 많았다.
맥아더 장군은 1941년 7월 말에 태평양전선 미국 육군 사령관이 되자 전쟁부가 준비해놓은 오렌지 계획을 거부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맥아더는 자신의 부하와 필리핀인 군대를 신뢰했다.
“맥아더 단장님,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뭔가?”
“필리핀은 도로 옆에 밀림이 없습니까?”
“밀림 사이로 난 도로가 많지. 그런데, 그게 왜 궁금한가?”
내가 유격전을 배우라고 루스벨트 대통령까지 만나면서 그렇게 로비를 해서 중국 땅에 데려다 놨더니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필리핀 방어계획은 여전히 자기 스타일대로 구상을 해 놓았다.
광복군 항공대 B-17 폭격기 전대의 활약을 지켜보고 B-17 폭격기가 세상에서 제일 뛰어난 폭격기라고 착각을 한 건지 일본군에 대한 반격과 보복 공격을 모두 B-17 폭격기 위주로 만들었고 거기에 더해서 일본군이 상륙하는 지점에서부터 일본군과의 적극적으로 전투를 염두에 두고 작전계획을 세워 놓았다.
나는 솔직히 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맥아더 단장을 한참 동안을 쳐다봤다.
“단장님, 단장님께서는 일본의 마수로부터 필리핀을 지켜낸 영웅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셨습니까?”
자신을 보면서 묻는 내 태도가 맥아더가 보기에 불량스럽게 보였는지 바로 인상을 찡그렸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정말로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필리핀을 지켜낸 영웅이 되고 싶으신 겁니까? 아니면, 일본에 빼앗긴 필리핀을 되찾은 영웅이 되고 싶으신 겁니까?”
“조지! 단장님께 그 태도가 뭔가?”
서덜랜드 대령이 보기에도 내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말리고 나섰다.
“맥아더 단장님의 필리핀 방어 작전계획을 보니까 솔직히 저는 정말 실망스럽습니다. 물론, 전쟁부에서 만든 오렌지 계획도 실망스럽긴 마찬가지지만요.”
맥아더 단장의 성격을 이용할 생각이었던 나는 맥아더 단장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자존심을 계속 건드렸다.
잘 난 척을 잘하고 부하들의 전공도 자주 가로채는 그 성격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단장님. 만약, 단장님께서 처음부터 두 번째를 선택하신 거라면, 미리 축하를 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일본은 미국을 이기지 못할 테니까 필리핀을 수복하면서 신문기자들 앞에서 멋진 포즈를 취하시면 될 겁니다.”
“조지! 지금 내 앞에서 그게 할 소리인가? 말이면 다 말이야? 나한테 필리핀은…. 제2의 고향이다.”
그렇겠지.
당신 아버지 아서 맥아더가 총독이었던 시대에서부터 필리핀은 당신 집안의 영지나 다름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지금 필리핀 자치정부를 이끄는 작자도 당신의 부하나 다름없을 테니까
“그런데, 어떻게 필리핀인들의 생명과 재산은 안중에 두지 않고 이런 계획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까? 전쟁부나 단장님이나 모두 똑같습니다. 한쪽은 미리 포기하자고 하고 한쪽은 얼토당토않은 계획을 세우고…. 일본군이 난징에서 어떤 짓을 했습니까?”
내가 맥아더와 설전을 벌이자 옆에서 보기에 민망했는지 서덜랜드 대령이 나를 끌어안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고 했다.
“조지, 안 되겠네. 오늘은 이만 가지.”
그때, 맥아더가 화를 참는 돗 낮게 깔린 목소리로
“서덜랜드. 잠깐, 말해봐.”
“예?”
“말해 보라고. 만약, 내가 듣기에 네 이야기가 얼토당토않으면 조지 넌 진짜로 각오를 해야 할 거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맥아더는 빡 돌아간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면서 단어를 한 마디 한마디씩 끊어가면서 경고를 날렸다.
나는 서덜랜드 대령의 팔을 뿌리치고 필리핀 지도를 들고 맥아더와 서덜랜드 앞에 다시 섰다.
“먼저, 저는 맥아더 장군님이 우리 미국의 최고 장군님이시고 역사에 길이 남을 장군님이시라고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신 존 퍼싱 장군님보다도 맥아더 장군님이 더 훌륭한 분이시라고 생각합니다.”
내 말에 자존심이 뭉개졌을 맥아더를 추켜세우면서 조심스럽게 달랬다.
그리고, 필리핀 지도를 맥아더 단장과 서덜랜드 대령 앞에 펼쳤다.
“자! 두 분이 보시기에는 일본군이 어디로 상륙을 할 것 같습니까? 일본군이 아무리 미친놈들이라고 하지만 필리핀의 수도인 마닐라만으로 바로 상륙을 시도하지는 않을 테고 말입니다.”
내 말이 끝 남과 동시에 맥아더 단장과 서덜랜드 대령은 둘 다 루손섬 북부를 손으로 집었다.
“좋습니다. 일단, 두 분은 일본군이 루손섬 북부로 상륙할 것이라고 예상을 하시는군요. 자…. 두 분은 현재 군사고문단으로 일본군을 상대하고 계십니다. 그렇죠?”
“그렇지. 그런데 그건 왜?”
맥아더는 아무 말도 없었고 서덜랜드 대령은 그런 것을 왜 묻느냐고 했다.
“두 분께서도 너무나 잘 아시는 사실 하나를 생각나게 해드릴 생각입니다. 일본군은 매뉴얼의 군대라고 제가 예전부터 계속 말씀을 드렸는데….”
내가 모든 것을 알려주면 맥아더는 절대 그대로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맥아더가 스스로 필리핀 방어 작전계획을 수립하게 만들어야 했다.
“음…. 일본군의 특징이라….”
맥아더 단장은 중국에서 군사고문단장으로 상대했던 일본군의 작전 패턴을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분석하기 시작했다.
“기습…. 그리고, 또 기습.”
혼자서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루손섬 지역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루손섬 북부는 비행장을 노리고 상륙을 하는 것이고 진짜 상륙지점은 바로 여기군. 아니야. 일본 놈들이 이렇게 단순할 수가 없지. 이놈들은 저희가 무슨 전쟁의 신이라도 되는 줄 아니까….”
맥아더 단장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이 펼칠 필리핀 점령 작전인 ‘M 작전’을 제대로 파악해 나갔다.
이런 걸 보면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또 뛰어난 능력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