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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지만 우리가 독자적으로 움직이겠습니다 (107/225)

미안하지만 우리가 독자적으로 움직이겠습니다

경성 본정통의 후루카와 의류 백화점.

“여기요. 여기! 후루카와 의류 백화점에서 옷을 한 벌을 사시면 추첨을 통해서 라디오와 자전거를 드립니다. 다리 아프게 여기저기 돌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후루카와 의류 백화점의 제품은 조선의 공장에서 만드는 국산품입니다.”

뭔가 앞뒤로 말이 안 되는 호객행위를 하는 후루카와 의류 백화점 앞에는 유행에 민감한 모던보이들과 신여성들 그리고 생활에 여유가 좀 있는 사람들이 성황을 이루면서 옷을 고르고 너도나도 추첨권을 받아 가고 있었다.

“거기, 아가씨. 추첨권을 다 썼는데 누굴 주면 되나?”

“아! 예, 입구에 가시면 추첨함이 있습니다. 거기에 넣어 주시면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언제 추첨하는 거지?”

“분기별로 말일 날 추첨을 해서 바로 다음 날 신문에 기사로 올립니다.”

딸의 손을 잡고 온 아주머니가 후루카와 의류 백화점 점원 아가씨에게 물어서 추첨함에 추첨 용지를 집어넣고 있었다.

“어머니, 이거 좀 보세요.”

“응, 뭐?”

어머니의 손을 잡고 왔던 딸이 추첨함 옆에 커다랗게 적어놓은 당첨 상품 내역을 가리켰다.

“여기 당첨되면 받을 수 있는 상품들을 좀 봐보세요.”

“왜? 뭐, 더 좋은 것이라도 준데?”

그리고는 당첨 상품 내역과 추첨 확률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어머! 어머! 세상에 이게 뭐니? 그럼, 100명 중의 한 명은 라디오를 받고 500명 중의 한 명은 자전거야?”

“아마, 그런 건가 봐요.”

“그럼, 추첨 용지를 많이 집어넣으면 확률이 더 높아지는 거잖아? 그렇지?”

“그렇겠죠.”

“앞으로 라디오를 받을 때까지는 무조건 여기서 옷을 사자.”

“그래요, 어머니.”

후루카와 의류 백화점은 오일장이 서는 시장까지 찾아다니면서 추첨을 통해서 라디오를 준다고 전국에 홍보를 하고 상품을 팔고 다녔다.

이런 후루카와 의류 백화점의 적극적인 홍보는 조선에서 옷 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재앙이었다.

후루카와 의류 백화점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이와 비슷한 상품을 걸고 홍보 행사를 해야만 손님을 빼앗기지 않기 때문에 내가 처음에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효과로 전국에 라디오가 풀려나가는 역대급 사건이 벌어졌다.

거기에 더해서 후루카와 그룹이 생산하고 판매하는 다른 상품들도 덩달아 후루카와 의류처럼 추첨 행사를 진행하고 나섰다.

‘조선 나이키’ 고무신과‘엄복동’ 자전거 등등.

* * *

“도쿄의 인민전선이 갑자기 무슨 생각인지를 모르겠습니다. 코민테른에서는 일본을 지원하지 않았다는데 어디서 그 많은 돈과 무기가 들어왔는지를 모르겠습니다.”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우리는 도쿄에서 지원해준 돈과 무기로 제대로 된 무장투쟁에 나설 수 있으면 된 것 아닙니까?”

일본의 공산당과 비슷한 시기인 1925년에 창당한 조선공산당은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총독부와 경찰에 발각돼서 갖은 탄압을 받았고 주요 당원들은 대부분 검거되었다.

결국, 조선공산당은 일제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1928년에 해산이 되었다.

그런데, 그런 조선공산당을 재건할 기회가 우연히 찾아온 것이었다.

“이재유 선생이 잡혀가신 이후로는 우리 당을 이끌 상무위원들도 없는데 누가 무장혁명을 지도합니까?”

“아니, 당의 상무위원이 있어야만 혁명을 할 수 있습니까? 꼭, 코민테른의 지도를 받아야만 우리 조선의 혁명이 가능합니까? 그런, 봉건주의와 사대주의는 언제쯤이나 버리실 겁니까?”

“뭐라고요? 전 세계 공산 혁명을 위해서는 당연히 모스크바 코민테른의 지도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흥! 그런 사대주의 근성을 버리지 않는 한 영원히 제국주의자들의 발바닥이나 핥고 있을 겁니다.”

어느 조직이나 강경파와 온건파가 있겠지만 조직 자체가 완전히 무너진 것과 다름없는 조선공산당은 당의 재건을 둘러싸고 심각한 대립이 시작됐다.

이런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립은 그나마 유지되고 있던 조선공산당의 남은 세력의 세분화를 부추겼다.

한바탕 무장투쟁을 두고 내부 분쟁이 일어났던 조선공산당은 온건파는 온건파대로 강경파는 강경파대로 각기 도움을 받고 협조하고 싶은 사람을 찾아 나섰다.

* * *

중화민국 해군부장 천샤오콴은 어려운 국가재정환경에서 장제스 국방위원장에게 겨우겨우 간청해서 일본으로부터 기술 지원을 받아 구축함을 겨우 몇 척 건조했었는데 그렇게 어렵게 만든 함대가 일본과의 전쟁으로 고스란히 사라지자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 지경이었다.

“사령관님. 해군 특무대에서 이상한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중화민국의 국토를 방어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바로 지난 세기 아편전쟁 이후에 나왔던 ‘해방론’인데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현실에 절망하고 있었다.

바다에서 막으면 될 일을 언제나 해군에 투자하지 않고 해군을 육성하지 않아서 중화민국 인민들이 죽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슬픔만 더해졌다.

“무슨 보고지?”

“푸저우에 두웨성 고문이 건설하다 말았던 시설로 잠수함들이 진입해 들어왔다고 합니다.”

“푸저우 비밀기지에 잠수함이 들어왔다고? 우리 해군의 모든 함정은 상하이에서 전멸을 했는데 거기를 누가 어떻게 알고 들어갔지?”

“그게…. 정확하지는 않지만, 조선인과 독일인인 것 같다고 합니다.”

“조선인과 독일인? 조선인들이 어떻게 잠수함을 운용할 수 있어? 혹시, 독일군들인가?”

푸저우 비밀기지에 입항을 했다는 잠수함의 정체가 몹시 궁금했던 천샤오콴은 그 궁금증을 바로 풀 수 있었다.

“사령관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누가 나를 찾아올 사람이 있었나?”

중화민국 해군이 일본 해군 3함대에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 이후로는 장제스 총통의 배려로 국방위원회에 참여는 하고 있지만, 천샤오콴을 아무도 찾지 않았다.

“아닙니다. 사령관님. 찾아온 손님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에서 온 사람입니다.”

“조선의 광복군?”

“예, 사령관님.”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천샤오콴 해군부장에게 손을 내밀면서

“아이고! 천샤오콴 부장님 오랜만입니다.”

“아! 두웨성 고문님을 돕는다고 하셨던…. 조지 씨시죠?”

“예, 두웨성 대형의 뜻을 받들어서 일제와 싸우고 있는 조지 리입니다.”

“잘 오셨습니다. 일단, 자리에 앉읍시다.”

나를 보고 나서 푸저우 비밀기지에 입항한 잠수함이 누구 것인지 대충 사정을 파악한 천샤오콴 해군부장은 그것을 확인했다.

“혹시, 푸저우 기지에 입항한 잠수함들이 대한민국 광복군의 잠수함입니까?”

“예, 두웨성 대형과 함께 일본군과 싸울려고 준비한 것이 이제야 도착했습니다.”

“이런…. 너무 늦게 왔군요. 두웨성 고문님은 이젠 하늘에 계시는데”

천샤오콴이 말하는 내용이 뭔가 조금 이상했지만, 중화민국 해군부장이고 사령관인데도 휘하에 군함이라고는 연안 포함 몇 척뿐인 상황이라서 허전한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했다.

천샤오콴의 말처럼 잠수함이 9척이 있었다면 상하이를 공격한 일본 해군 3함대에 엄청난 피해를 줬을 것이고 중화민국 해군이 전멸하는 상황까지는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천샤오콴 해군부장은 상하이 해전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입맛이 썼다.

“조금만 더 일찍 왔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도 주문하고 빨리 좀 보내달라고 수없이 요청했지만 이제야 도착했습니다.”

“끙…. 그럼, 앞으로는 푸저우 기지를 계속 사용하기 위해서 나를 찾아온 겁니까?”

“예, 두웨성 대형께서 비밀기지를 만드신 이유가 그것 때문이니까요. 두웨성 대형의 뜻을 이어서 일본에 복수할 생각입니다.”

푸저우의 잠수함용 비밀 벙커는 중화민국 내에서는 천샤오콴 해군부장과 벙커를 관리하는 중화민국 해군 특무대만이 아는 사실이었다.

그만큼 일본 해군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었다.

“조지 씨, 우리 중화민국 해군 장병들도 함께하면 안 되겠습니까? 상하이에서 침몰한 잠수함의 승조원들이 좀 있습니다.”

천샤오콴 해군부장은 중화민국 해군을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해왔었던 사람답게 이번 기회를 이용해서 광복군 잠수함대와 함께하면서 병력을 키울 생각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절대 안 됐다.

“천샤오콴 부장님. 죄송합니다. 우리도 함께하고 싶습니다만 잠수함대의 비밀 유지를 위해서 최대한 노출을 시키지 않을 생각입니다.”

“음…. 정말 아쉽네요. 그렇지만 광복군은 그럴 수밖에 없겠군요.”

“예,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중화민국 군내에는 너무나 많은 첩자들이 뒤섞여 있어서….”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럼, 우리 해군 특무대가 비밀 잠수함 벙커를 계속해서 경비해 줄까요? 아니면, 경비병들도 교체할까요?”

“감사하지만 경비병도 교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는 우리 해병대가 경비를 맡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라가 없는 대한민국마저도 해군에 투자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거대한 중화민국은 그저 수백만의 육군 병력을 무장하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 모습에 자괴감을 느낀 천샤오콴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영어가 가능한 수병들이 있다면 우리 해군이 어느 정도 함께 교육을 할 수 있습니다. 단, 이것은 끝까지 비밀을 유지해야 합니다.”

“잠수함 승조원입니까?”

“아닙니다. 구축함 승무원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구축함도 운용하고 있습니까?”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철저한 비밀 유지와 영어나 우리 한국어가 가능한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잠수함 승조원은 현재 중화민국 해군의 처지에서는 지금 당장 필요한 인력이 아니었다.

정말로 중화민국 해군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수상함인 구축함에서 근무하면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이거야말로 천샤오콴 해군부장에게는 불감청 고소원이었다.

“조지 씨, 구축함에 몇 명이나 필요하십니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천샤오콴 해군부장은 그 어떤 난관이 있어도 반드시 함께하겠다는 태세였다.

* * *

푸저우에 있는 잠수함 전용 비밀 벙커.

두웨성의 건설사가 일본 해군 정보부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 조선소를 짓다가 자금 부족으로 공사가 중단된 것으로 위장한 곳이었다.

“이제부터 이곳의 경비는 김원봉 대장의 해병대가 맡아야 합니다. 이 기지에 대한 비밀은 앞으로 최소한 3년은 유지돼야만 합니다. 가능하겠습니까?”

김원봉은 자신 있는 표정으로

“그 정도야 우리 해병대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죠. 3년입니까?”

“예, 3년 정도는 비밀이 유지돼야 합니다.”

“내일부터 항공 정찰에 대비해서 더 확실하게 위장을 하고 접근하는 사람을 모두 저승으로 보낸다면 3년이 문제겠습니까?”

“그럼, 잘 좀 부탁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 보급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보급은 홍콩에서 우리 화물선으로 매달 해줄 겁니다.”

김원봉과 대화를 마치고 잠수함에서 내리고 있는 손원일에게 가려는 나를 김원봉이 불렀다.

“조지 대장님. 혹시 김두봉이라고 아십니까?”

“예, 이름은 압니다.”

“그분이 제 처당숙이신데 조지 대장님을 한번 만나고 싶다고 하시는데 혹시 괜찮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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