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뭐든지 불태워 버려라! (106/225)

뭐든지 불태워 버려라!

회의를 끝내고 김구 주석과 함께 주석실로 이동을 했다.

본토의 인민들과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는 연통제를 시행할 수 있다는 희망과 현재의 복잡한 전쟁 상황과 외교 상황 그리고 일제에 의해서 고통받는 조선의 인민들을 생각하는 마음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아주 미묘한 얼굴의 김구는 우리에게 차를 대접했다.

“한번 드셔보시오. 아이들과 어머니께서 국화를 따서 말리셨다고 하네요.”

“아! 어쩐지 향기가 좋더니 국화차였군요.”

“예, 향내를 맡고 있으면 정신도 맑아지는 것 같아서 머리가 복잡할 때는 가끔 마십니다.”

“향도 맛도 너무 좋습니다.”

국화차를 한 모금하고는 차에 대해 품평을 하는 것으로 차 대접에 감사를 표시했다.

“도산과 단재가 죽었습니다.”

“예?”

침통한 얼굴의 김구는 정말 슬픔이 가득한 얼굴로

“도산과 단재가 일제의 고문에 몸이 얼마나 상했는지 얼마 전에 죽었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아…!”

내 실수였다.

안창호 선생이나 신채호 선생을 좀 더 신경을 써서 보살폈어야 했는데….

“도산과 단재 말고도 또 얼마나 많은 조선인이 죽어야 우리는 해방이 될까요?”

“.....”

“그저 마음만 아플 뿐입니다. 조선을 위해서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세상을 떠나고 나처럼 쓸모없는 사람만 이렇게 남아서….”

김구 주석이 나와 백정기를 앉혀두고 도산 안창호와 단재 신채호를 이야기하는 것이 어떤 의도인지를 몰라서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혹시, 조지 대장. 국내의 독립 인사들을 탈출시킬 방법은 없나요?”

내가 알기로는 이 당시에 독립운동가들은 대부분 일제에 의해서 투옥돼 있거나 고문의 후유증으로 고생을 하고 있거나 그것도 아니면 이미 죽은 상태였다.

“누구 꼭 데리고 오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다들 고생하고 있는데 누구 하나만 콕 집어서 데리고 오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그럼, 고생하시는 분들을 모두 탈출시키자는 말씀이십니까?”

“그렇게 하기는 힘들겠죠?”

“예,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김구 주석의 희망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본 경찰들의 감시를 거의 24시간 받는 사람들을 단체로 탈출시키려면….

김구 주석은 내 대답을 듣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조지 대장. 미안합니다. 도산과 단재 같은 사람들은 그렇게 죽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허망하게 죽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지만 나와 광복군 정보대가 본토에서 탈출시킬 수 있는 사람은 한계가 있었다.

“그건 그렇고, 연통제를 할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이제는 하루라도 빠른 해방을 위해서 더 치열하게 싸울 일만 남았습니다.”

지금부터는 모든 것은 하늘에 맡기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했다.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처분을 기다릴 것이다.

“그럼, 조지 대장. 앞으로 연통제가 시행되면 조선의 청년들을 이곳으로 데려올 생각이지요?”

“예, 사람이 너무 부족해서 뭘 해보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당장, 만주의 동북항일연군을 지원해야 하는데 조종사들이 턱없이 부족해서 말입니다.”

“아까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이제부터가 중요한 시기인 것 같은데 조지 대장의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회의 시간에도 말씀드렸듯이 임시정부 분들은 하루도 빼지 말고 라디오 방송을 해주시고 주석님은 영국 쪽과도 외교적인 교섭을 해두시기를 바랍니다.”

“영국이요?”

“예, 광복군 잠수함대는 독일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구축함대는 영국 쪽에서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조지 대장.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말입니까?”

“우선 항공대와 경보병 대대는 맥아더 단장이 필리핀으로 떠날 때 같이 갈 생각입니다. 그리고, 잠수함대는 이미 구축해 놓은 벙커를 사용하면서 본토에 잠입하는 해병대와 정보대와 함께할 생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구축함대입니다.”

“아니 왜요? 구축함들도 일본군과 싸우면 되지 않나요?”

육군은 게릴라 전술로 일본군을 괴롭히고 싸울 수 있지만, 해군이나 공군은 그럴 수가 없다.

해군과 공군은 보급은 무조건 필수다.

당장 연료와 포탄의 보급이 없다면 군함과 전투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장식품일 뿐이다.

“주석님. 그랬다가는 우리 해군은 반년도 못 가서 구축함을 모두 잃고 말 겁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영국의 도움을 받아서 영국해군과 함께 하는 것이 최고의 선택입니다.”

“아! 그래요? 그럼, 내가 영국대사와 접촉을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음…. 그런데, 항공대가 필리핀으로 빠져나가면 중국군이 너무 힘들지 않을까요?”

“지금 당장 그렇게 할 것도 아니고 나중에 우리 항공대가 필리핀으로 이동하게 되더라도 우리의 이동은 철저하게 비밀로 해야 합니다. 중국군도 일본군도 절대로 몰라야만 합니다.”

“그럼, 항공대 전체가 떠나는 것은 아니군요?”

“예, 주석님.”

“잘 알았습니다. 조지 대장이 뭔가 생각이 있으니까 그런 결정을 했겠죠.”

광복군이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게 될지를 대충 들은 김구 주석은 어느 정도 안심을 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나는 김구에게 부탁을 하나 더 했다.

“주석님. 이것은 본토에서 활동 중인 조직원들의 명단입니다. 총 세부를 만들었는데 하나는 백정기 대장의 머릿속에 있고 다른 하나는 저한테 있습니다. 혹시라도 저와 백정기 대장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들을 좀 챙겨주십시오.”

“국내 조직의 명단이라고요? 아니, 두 사람은 끝까지 살아남아서 우리나라가 해방되는 순간도 함께해야죠?”

“우리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사람 일이란 모르잖습니까? 그래서, 명단을 주석님께 맡기는 겁니다.”

현재 독립을 위해서 싸우고 있는 사람, 그 누구라도 내일을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단두대 앞에 목을 내밀고 있는 사람처럼 언제 기요틴이 목을 덮칠지 모르는 상태에서 독립을 위해서 일제와 싸우고 있었다.

“주석님, 명단 속에는 현재 일제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중에 독립이 되고 나면 그들이 독립을 위해서 싸웠다는 것을 반드시 증언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남모르게 죽어라 싸우고도 처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내 반드시 이 명단에 들어 있는 사람들만큼은 끝까지 책임을 지겠습니다.”

* * *

마음이 답답할 때는 푸른 하늘을 마음껏 나는 것만큼 확실한 해결책이 없었다.

두 번째 만주 폭격에는 나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하늘을 날아올랐다.

“대장님. 이제는 폭격 비행에서 빠지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야! 너는…. 너 같은 베테랑이 내 옆에 앉아서 항법사를 하고 있으면 어떡해?”

박하성 소령은 내가 없을 때는 나를 대신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오늘은 내 옆에 앉아서 나를 끈덕지게 설득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제가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게 대장님께서는 기지를 지켜야 하지 않습니까?”

나 자체가 광복군 항공대와 다름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다른 항공대원들 역시 유사시에 대비해서 언제나 내가 탄 비행기를 호위하는 대형을 구축했다.

“내가 전투에 참가하는 것이 그렇게 불안하냐?”

“예, 대장님. 솔직히 불안합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전투에 참가하는 것은 제발 그만두십시오.”

“알았다. 앞으로는 자제를 하마.”

“자제가 아니라 이제는 전투에 참가를 그만하시고….”

“안돼! 히로히토의 모가지는 내 몫이다. 그리고, 중요한 전투에 너희들만 내보낼 생각은 나는 추호도 없다.”

결연한 내 대답에 박하성 소령은 더는 나를 설득하는 것을 포기했는지 조용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베이징을 지난 것 같은데 일본군은 왜 아무도 안 오지?”

“첫 번째 폭격 때도 그랬습니다. 일본의 방공망은 예상했던 대로 허술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겨우 이런 실력인 놈들한테 나라를 뺏기고 이렇게 개고생하다니…. 시발!”

조금만 더 일찍 개항하고 조금만 더 정신을 차렸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생각하니까 또 열을 받았다.

“시발! 그냥, 기수를 돌려서 경복궁을 폭격해 버릴까?”

“예?”

“생각하니까 열받잖아. 이런 허접한 놈들한테 나라를 잃은 왕과 신하들이 원망스럽다고.”

정조 대왕이 죽은 1800년에 조선의 역사는 끝났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도대체 얼마나 병신 같으면 100년 동안을 삽질만 할 수 있을까?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조금만 더 잘했으면 이런 질곡의 역사는 없었을 것이다.

“에이! 오늘은 폭격할 대상이 신징이지?”

“예, 신징입니다.”

“그래, 오늘은 신징에라도 분풀이를 해야겠다.”

* * *

1938년 11월 어느 날 오후 13시 만주국 수도 신징.

남서쪽 하늘에서부터 요란스럽게 들리던 엔진 소리와 함께 신징의 하늘 위로는 거대한 B-17 폭격기들과 수십 대의 bf-109 전투기들이 나타났다.

“빅 보스다. 우리는 지금 만주국의 수도 신징 상공에 있다. 선도기를 시작으로 신징에 잇는 모든 것을 불태운다. 알겠나?”

“예, 대장님.”

“알겠습니다. 대장님.”

B-17 폭격기 전대가 나타났음에도 신징에서는 아직까지는 특별한 반응이 없었다.

“이 새끼들은 대응 출격도 안 하나?”

“첫 번째 폭격 때도 그랬습니다.”

“하여간 대응이 느리기는…. 우리야 좋지. 깔끔하게 쓸어버리고 가자.”

첫 번째 폭격 편대가 땅으로 내리 꽃히기 시작하자 그제야 신징에서 반응이 왔다.

“펑!”

“펑!”

“대장님, 대공포입니다.”

“겨우 저 정도로 우리를 잡겠다고?”

웃음이 나왔지만 그래도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무전기를 들었다.

“적의 대공포 먼저 처리해라!”

“예, 빅 보스”

첫 번째 폭격 편대를 호위하고 있던 bf-109 전투기들이 대공포 진지에 기관포를 쏘면서 날아갔다.

“투 두 두 툭!”

“두 두두 두둑!”

한참 bf-109 편대가 대공포 진지를 공격하고 있을 때 이제야 관동군 항공대의 대응 출격이 이뤄졌는지 한 개 편대 정도의 전투기들이 다가왔다.

그때, 우리 폭격기 전대 위에서 폭격기들을 호위하고 있던 bf-109 일개 편대가 마중을 나갔다.

“시간 끌지 말고 차례대로 지정된 곳을 폭격한다. 지금 바로 시작해라!”

“에스 써!”

“알겠습니다. 가자!”

만주국 신징이 검은 연기와 붉은 화염에 휩싸이기까지는 시간이 그리 얼마 걸리지 않았다.

“쓩 꽝! 슈 우웅 꽈 광!”

“꽝! 퍼버엉!”

첫 번째 폭격 편대에 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편대까지 차례대로 신징의 주요 건물에 대한 폭격을 시작했다.

12대의 B-17 폭격기가 80t이 넘는 폭탄을 시원하게 뿌려버렸다.

“그래! 잘 탄다. 모조리 불태워버려라! 우리의 거지 같은 역사도 함께 깨끗이 불태워버려라!”

파괴는 새로운 건설을 위한 예정된 절차라고 누군가 그랬다.

힘들었던 기억들 그리고 비참했던 기억을 모조리 불살라 버렸으면 하고 소망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