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현해탄을 지나가는 배들을 침몰시키겠습니다
영국과 프랑스의 양해 속에 뮌헨 협정이 체결되고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를 병합하자 체코슬로바키아의 동맹이었던 소련은 체코슬로바키아를 지원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 돼버렸다.
하지만, 독일은 그런 소련과 영국, 프랑스의 눈치 따위는 처음부터 보지 않을 생각이었는지 거기서 멈추지 않고 폴란드에 대한 영토적 야심을 계속해서 드러내자 유럽은 점점 전운이 높아져만 갔다.
“김구 주석님 이하 임시정부의 여러 요인분과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현재 유럽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어서 이제는 우리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군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야 할 것 같아서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요 직책을 가진 사람들과 광복군의 지휘관들을 한자리에 모은 이유는 이제 본격적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될 조짐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년에는 전 세계를 전쟁의 구렁텅이로 집어넣는 제2차 세계 대전의 시작인 폴란드 침공이 일어난다.
지금부터는 진짜 정신 바짝 차리고 대비를 해야만 했다.
잘 준비하고 잘 대처하지 않으면 강대국들이 보기에 한낱 장기판의 졸보다 못한 우리나라는 이번에도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그들의 결정에 따라서 뜻하지 않게 험한 일을 또 겪게 될 것이다.
“조지 대장, 요즘은 충칭도 매일 같이 공습을 받고 있는데 이대로 괜찮을 것 같습니까? 나는 중국군이 버틸 수 있을지가 걱정입니다.”
대부분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은 중국에서마저 독립 투쟁을 할 수 없게 된다면 이제는 어디로 가서 일본과 싸워야 하는지 그걸 걱정하고 있었다.
“아직은 괜찮습니다. 그리고, 장제스 총통이 이제 와서 일본에 항복하지는 않을 테니까 다들 걱정들은 내려놓으십시오.”
“조지 대장이 그렇게 말하니까 안심이 되기는 한데…. 그래도, 장제스 총통이 덜컥 항복이라도 할까 봐서 계속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소.”
내가 개입하기 전까지는 당시 상황상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국의 장제스와 친하게 지내고 장제스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가난한 임시정부를 그나마 도와주는 나라가 오직 중국뿐이었으니 그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독립문제를 논의할 때 그것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방해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중국 일변도의 몰빵 외교 때문에 미국과 영국은 해방된 대한민국이 중국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경계를 하게 됐고 그런 경계심이 우리나라에는 악영향을 주게 됐다.
“장제스 총통의 중화민국 정부는 혹시라도 충칭을 잃게 되면 란저우나 쿤밍으로 후퇴를 해서라도 일본과 끝까지 싸울 겁니다.”
“그래요?”
“예, 그러니까 중국에서의 투쟁은 상황이 더 악화하더라도 계속할 수 있습니다.”
“그럼, 다행인데 이렇게 점점 서쪽으로 밀려나다 보면 우리나라 본토와 너무 멀어지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오늘 회의를 하자고 여러분을 모신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혹시, 무슨 좋은 대책이라도 있습니까?”
“연통제를 부활했으면 합니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일본 놈들에 의해서 조직 자체가 무너진 지가 벌써 20년이 다 되어갑니다.”
연통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19년 7월에 설치해서 1921년 후반까지 운영했던 국내 관리 조직이었다.
“이번에는 방법을 바꿀 생각입니다. 그때는 소수의 사람이 직접 활동하면서 움직였기 때문에 일본 경찰들의 눈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뭔가 다른 특별한 대책이 있다는 겁니까? 연통제를 부활시킬 수만 있다면 당연히 해야지요.”
회의에 참석한 모두가 연통제 부활을 환영하면서 어떤 방법으로 연통제를 부활시킬 건지를 물었다.
연통제를 시행할 수만 있다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비록 적은 숫자지만 본토의 인민들을 직접 통치할 수가 있었다.
명실공히 실질적인 정부가 되는 것이었다.
“지금부터는 그동안 국내에 침투해서 매국노를 암살하고 일제 시설들의 폭파를 담당했던 광복군 정보대의 백정기 대장이 연통제 시행에 대해서 설명을 하겠습니다.”
내 소개와 함께 백정기는 말쑥한 정장을 갖춰 입은 모습으로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안녕하십니까? 광복군 정보대에서 국내 조직을 담당하고 있는 백정기입니다. 지금부터 광복군 정보대가 준비 중인 연통제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짝짝!”
“짝짝!”
국내에서 조직을 만드느라 고생했을 백정기를 박수로 환영을 해줬다.
“감사합니다. 먼저, 국내에는 현재 여러분들이 모르는 핵심 조직원들이 약 350여 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벌써 조직이 가동되고 있었습니까?”
“예, 그 조직들의 도움을 받아서 지금까지 매국노들과 악질적인 일본인들을 처단하고 있었습니다.”
“이야! 그런 사실을 우리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네.”
“우리한테도 좀 알려주지, 그랬습니까?”
“그동안은 조직은 구축하고 조직원들의 확실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 이제야 보고드립니다.”
백정기의 상황 설명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 왜 이제야 이런 중요한 정보를 말하는지 이유를 이해했다.
“그래서, 그 조직을 동원해서 어떻게 연통제를 하겠다는 겁니까?”
“일단, 예전에 연통제가 실패했던 이유는 일제의 강력한 감시도 있었지만, 국내의 우리 인민들에게 임시정부와 광복군이 어떤 활약을 하고 있는지 전달할 방법이 없어서 호응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이번에 저희 정보대는 라디오방송국 만들 생각입니다. 그래서, 본토의 인민들을 상대로 임시정부의 소식과 광복군의 승리를 발 빠르게 전할 생각입니다.”
우리는 1942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소리’ 방송을 지금부터 시작할 생각이었다.
일본이 아무리 또라이 같은 놈들이라고 해도 조선에 있는 모든 라디오를 압수하지는 못할 것으로 판단했고 오일장이 설 때마다 계속해서 삐라를 뿌린다면 라디오보다는 삐라가 살포되는 것을 막는 데 더 힘을 쓸 것으로 판단했다.
“우리가 방송국을 만들어서 방송하는 것을 본토의 인민들이 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라디오가 어디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에 대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최소한 십만 명 이상은 방송을 듣게 할 생각입니다.”
“오!”
“정말입니까?”
회의에 참석한 모두가 다들 놀란 표정으로 드디어 본토와 연결되는 체계가 생겼다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예. 그뿐 아니라 한두 가지 정도 더 본토와 연결할 방안을 만들 생각입니다.”
기존의 350여 명의 조직원은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한 트럭이나 트랙터와 같은 농기계의 운전과 정비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렇지 않은 조직원은 거점별로 상점을 가지고 있어서 유사시에는 수천 명으로 바로 확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가지 의정원의 결의가 필요한 사항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밝은 표정으로 보고를 하던 백정기는 어두운 얼굴로 의정원의 결의가 필요한 일을 보고했다.
“무슨 일입니까?”
“왜? 안 좋은 일입니까?”
의정원 의원들도 백정기의 표정이 변했다는 것을 깨닫고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물었다.
“예, 조선 인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어쩌면 조선 인민을 헤치는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렇게 뜸을 들입니까? 시원하게 말을 해보십시오.”
“내년부터는 현해탄을 건너는 배들을 무작위로 침몰시키려고 합니다.”
“아니, 왜요?”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조건 침몰을 시킨다고요?”
의자에 앉아 있던 의정원 의원 몇 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그 이유를 따졌다.
“예, 이유는 바로 일제가 제정한 국가 총동원법 때문입니다.”
국가 총동원법은 올해 5월부터 시행한 일본의 전시통제법으로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전쟁에 전력을 집중하기 위해서 인적, 물적 자원을 마음대로 동원하고 통제할 목적으로 만든 법이다.
전시에는 노동력, 물자, 자금, 시설, 사업, 물가, 출판 등을 완전히 통제하고, 평시에는 직업능력 조사, 기능자 양성, 물자 비축 등을 명령했다.
그리고, 이 법은 일본 본토는 물론, 일제 강점기의 조선과 타이완, 만주국에도 적용되어 강제징용, 징병, 식량 공출 등 전시통제체제가 시행되었다.
“그것은 지금부터 내가 설명하겠습니다.”
현해탄 차단 계획은 내가 세웠는데 아무래도 여기서부터는 내가 보고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단 한 명의 인민의 생명이라도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이런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 말이 안 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현해탄을 지나가는 배들을 무조건 침몰을 시키겠다는 이유가 뭐냐는 겁니다?”
“우리 인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 수도 있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우리 인민들이 일본으로 끌려가서 노예처럼 사는 것을 막을 생각입니다.”
임시정부 쪽의 요인들은 내가 하는 말을 이해를 못 한 표정이었지만 광복군 지휘관들은 내가 하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들은 표정들이었다.
“이미 일본 놈들은 군속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군속이지만 나중에는 징용 그리고 더 나중에는 징병을 하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우리 조선 인민들의 반란이 두려워서 총을 쥐여주지 않는 일본 놈들이 징병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요?”
무슨 의미겠는가?
그것은 일본이 막판으로 몰렸다는 소리였다.
일본은 조선인을 경찰과 군인 만들 때 일본을 하늘 높이 찬양하고 끝없는 충성을 보이는 놈들만 받아줬다.
그런데, 그런 놈들이 일반 조선인을 군인으로 받아 준다는 소리는 전쟁터에 나가서 고기 방패의 역할이나 하라는 소리였다.
“이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광복군이 그렇게 할만한 능력은 됩니까?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과연 효과는 있을까요?”
“전투기와 잠수함을 동원해서 가끔 작전을 펼친다면 100% 차단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효과는 분명히 있을 겁니다. 최소한 자발적으로 일본군과 징용에 지원은 하지 않겠지요.”
“일본이 우리 광복군의 전투기와 잠수함을 찾아내지 못한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광복군들의 목숨을 걸고 매일같이 작전을 펼칠 생각은 없습니다. 어쩌다 한두 번씩 작전을 하고 그걸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크게 선전할 생각입니다.”
“침소봉대할 생각이군요?”
“예, 우리 인민들이 돈의 유혹에 빠질 때 한 번쯤 정도는 고민을 하게 만들 생각입니다.”
모든 조선 인민이 일본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서 일본으로 가는 것을 어떻게 하든지 조금이라도 막고 싶은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