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라. 모조리 불태워주마
저우언라이는 간쑤성 란저우에서 산시성 옌안으로 본거지를 옮기고 난 후에 중국의 공산당 세력을 늘리고 흩어진 공산당의 힘을 모으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저우언라이가 도움을 요청했던 동북항일연군에 대한 지원은 어떻게 계획됐나?”
“리커눙이 알려주는 지역에 대한 폭격은 약속대로 지원해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갑자기 공산당을 지원하는 것을 국민당 쪽에서 가만히 지켜 보고만 있을지 걱정입니다.”
내가 부재중일 때는 광복군 항공대를 맡아서 지휘하는 박하성 소령은 국민당과의 관계가 걱정되는 눈치였다.
나는 저우언라이와의 비밀회담에서 중국 공산당에 일방적으로 요구만을 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두 가지를 요구했다면 중국 공산당도 우리에게 두 가지를 요청했다.
그중의 한 가지가 바로 만주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북항일연군에 대한 지원이었다.
자체적인 공군이 없는 중국 공산당은 우리의 힘을 빌려서 동북항일연군을 지원할 생각이었다.
“그건 내가 해결할 방법이 있으니까 국민당의 반응 같은 것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돼, 나는 그것보다 우리 애들이 걱정이다. 조종사들의 체력은 괜찮겠어?”
“따로 폭격기 전대를 꾸려놨기 때문에 만주 폭격은 아무런 이상 없이 지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충칭을 폭격하기 위해서 날아오는 일본 항공대를 막는 거라는 거지?”
“예, 이번에 중국공군과 소련 의용항공대의 조종사들 다수가 사망하면서…. 솔직히 많이 힘듭니다.”
300여 명밖에 안 되는 조종사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광복군 항공대는 엄청난 체력적인 부담을 지고 있었다.
이렇게 체력적인 부담이 큰 상황에서 저우언라이의 요청을 받아들인 이유는 동북항일연군에는 상당수의 조선인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 스스로가 이데올로기를 포기할 수 없어서 중국 공산당과 함께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데올로기를 떠나서 고향을 떠나기 어렵고 광복군에 합류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고 위험해서 동북항일연군에 머무르는 경우가 있었다.
내가 노린 것은 바로 두 번째 경우에 해당하는 조선 청년들이었다.
독립 투쟁을 하는 그들을 돕기 위해서 태극기가 선명하게 그려진 전투기와 폭격기들이 지원을 온다면 최소한 조국으로부터 버려졌다는 마음만큼은 갖지 않을 것이고, 광복군 항공대를 볼 때마다 다른 한쪽에서도 조국을 되찾기 위해서 싸우고 있는 동료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저러나 문제는 문제다. 이렇게 혹사하다가는 우리 애들이 먼저 쓰러지겠다.”
“대장님, 저도 그게 걱정입니다.”
“아무래도 이번에 손원일이 오게 되면 국내에서 직접 조종사들을 모집해야 할 것 같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괜히, 국내 조직만 발각되는 것 아닐까요?”
“아니면, 소련과 접촉해서 중앙아시아로 쫓겨난 우리 동포들 가운데서 조종사를 구하든지 해봐야겠지.”
“소련과도 접촉을 하실 생각입니까?”
박하성 소령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지만 나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우리 대한민국이 독립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무슨 짓이라도 해야지. 그리고, 국내 본토에서 먼저 작업을 시도해 보고 안 되면 그때는 소련과 접촉을 해봐야겠지. 아! 참, 아직도 조선 총독을 임명하지 않았다고 했지?”
“예. 현재, 일본도 본토가 시끄러워서 정신이 없나 봅니다.”
“내가 보기에는 확실히 지금이 기회다. 유자명 선생을 좀 불러와라.”
* * *
“유자명 선생, 국내에 침투한 백정기를 좀 불러 주시고, 현재 만주 지역의 동북항일연군 대한 정보를 좀 듣고 싶습니다.”
“만주는 현재 사실상 힘의 공백 상태입니다. 일본 관동군은 화베이 전선으로 상당수가 이동하면서 그 공백을 메꾸기 위해서 만주인들과 몽골인 그리고 우리 조선인들로 부대를 창설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드디어 인력에 한계가 온 모양이군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만주 지역은 왜 확인하시는 겁니까?”
“중국 공산당의 요청으로 동북항일연군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중국 공산당이 워낙 음흉한 놈들이라서 우리를 함정에 빠트리지 않을까 싶어서 미리 확인을 하는 겁니다.”
“아…! 그렇다면 조지 대장님, 이 새끼들부터 모조리 불태워 주십시오.”
유자명은 눈에 쌍심지까지 켜면서 지도를 손가락으로 집으면서 반드시 죽여달라고 했다.
“거기 누구요?”
“조선인 지원자로 구성된 간도 특설대요.”
“아! 그 개새끼들요.”
“어? 조지 대장님도 아십니까?”
“예, 뭐 좀 주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놈들은 잠시만 그대로 놔두시죠?”
“아니 왜요? 그놈들은 조선인으로서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짓을 하려고 모인 놈들입니다. 감히 조선인을 토벌하겠다고 자원하고 나선 놈들입니다?”
“제 말은 없애지 않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매국노 놈들은 찔끔찔끔 죽여봐야 효과가 없습니다. 아직은 부대가 생긴 지가 얼마 안 돼서 인간쓰레기들이 좀 더 모여야만 합니다. 내가 나중에 한꺼번에 싹 불태우러 가겠습니다. ”
“아, 그런 생각을 하고 계셨군요. 그럼, 언제쯤이나?”
“내년쯤 되면 모일 만큼 모이지 않겠습니까? 그때, 한 번에 쓸어버리겠습니다.”
* * *
동북항일연군을 지원하기 위한 첫 번째 폭격을 위해서 B-17 폭격기 전대는 모든 무장을 갖추고 하나씩 활주로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리고, 뒤를 이어서 폭격기 전대를 호위할 bf-109 전투기 편대들이 따라서 날아올랐다.
“이야! 진짜 언제봐도 전투기들이 날아오르는 것은 보면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국내에서 조직을 점검하고 조직을 확장하고 있던 백정기는 호출을 받고 급하게 먼 길을 돌아왔다.
“백 대장. 오느라고 많이 힘들었지?”
“힘들죠. 일본 놈들의 눈을 피해서 오느라고 일주일이 넘게 걸렸습니다. 하하”
김원봉과 함께 일본에 대한 직접적인 투쟁에 선봉에 섰던 백정기는 호남형에 멋진 신사였다.
“그런데, 얼마나 급한 일이면 저까지 부른 겁니까?”
“응. 좀 심각하게 고민을 해봐야만 할 일이 생겼다.”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이든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직접 일본 놈들하고 싸울 일은 아니야. 드미트리가 오면 같이 이야기를 해보자고.”
“예, 대장님.”
드미트리가 사무실에 오면서 우리 셋은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영국과 미국 총영사들은 뭐라고 하더냐?”
“그들은 형님의 제안을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하다가 이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을 거라는 말에 좀 심각하게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본국에 보고하고 본국의 지시를 받겠답니다.”
“그렇겠지. 그럼, 언제쯤 연락을 주겠다고 하더냐?”
“최대한 빨리 연락을 주기로는 했는데 정확한 시간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나중에 일이 잘못돼서 중국이 공산당 천하가 된다면 상하이의 조계지는 중국에 반환된다.
나는 현재 열강들의 조계지가 계속 남을 수 있게 미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중국 공산당에 홍콩이 반환되고 어떻게 됐는지 너무나 잘 아는 나로서는 두웨성과 뤄리리가 부탁한 상하이를 끝까지 지켜주고 싶었다.
“그럼, 상하이 문제는 잠시 더 지켜보기로 하고, 지금부터는 우리 광복군 항공대의 인원 보충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해보자. 내 생각에는 본토에서 인원을 모집해야 할 것 같은데 둘은 어떻게 생각하나?”
“본토에서 말입니까?”
“응. 본토에서도 충원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나는 이왕이면 본토에서 사람을 모으고 싶다.”
“잠수함이 돌아오는군요?”
“응. 곧, 손원일 돌아온다.”
“그렇다면 해볼 만은 합니다. 하지만, 대상자를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포섭하기는 힘들 겁니다.”
백정기는 국내에 애써서 어렵게 만든 조직이 겨우 항공대 조종사들을 모집하다 노출되는 것을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분위기를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자면 삐라라도 좀 뿌리고 광복군이 어떤 전과를 올리고 있는지 소문이 나야 사람을 모으기가 쉽지 않겠습니까?”
“삐라와 소문이라…. 국내 조직원들은 전부 라디오를 가지고 있지?”
“예, 나중에는 단파 방송으로 작전을 지시할려고 모두 라디오를 지급했습니다.”
“백 대장. 본토에 라디오가 몇 대나 될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라디오가 보통 비싼 물건이 아닌데 누가 얼마나 가지고 있겠습니까?”
“그럼, 안 되는데…. 최소한 오만 대에서 십만 대 정도가 있어야 본토의 인민들이 대부분 방송을 청취를 할 수 있을 텐데….”
1930년대 후반, 조선에 사는 사람들은 힘들어도 너무나 힘들었다.
세계 대공황과 함께 일본의 수탈은 극에 달했고 여기에 중일전쟁까지 발발하면서 전선에 병사가 부족해지자 이제는 조선 청년들을 끌고 가서 노예처럼 인력까지 착취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앞으로도 일본의 수탈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아무래도 동북항일연군을 지원하는 것보다 중요한 할 일이 있는 것 같다.”
“예?”
“아니야. 내가 놓친 것이 있었다.”
“대장님, 어떤 것을 놓쳤다는 말입니까?”
“만약에 말이다. 일본이 만주에 건설해 놓은 철도와 산업시설과 농업시설을 모조리 없애 버리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백정기와 드미트리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아주 쉽게 답을 말했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아주 미쳐버릴 것 같은데요?”
“그럼, 안전한 일본이나 조선에 더 많은 공장을 짓지 않을까요? 시도 때도 없이 폭격을 당한다면 저라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지? 이거 잘하면 소련과 협상해볼 만한 좋은 소재인 것 같은데….”
만주 폭격은 지금 이 자리에서 의논할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잠시 머릿속에 넣어두고 다시 라디오 이야기를 이어갔다.
“드미트리, 후루카와 그룹에 지시해서 조선에서 행운권을 발행하라고 해봐라.”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후루카와 그룹에서 조선에 지은 공장 중에 소비재를 만드는 공장들도 있잖아?”
“예, 당장에 고무신 공장이 있고 옷을 만드는 곳도 있고 자전거 공장도 있고….”
“그만! 그런 공장에서 생산한 물건을 팔 때 행운권을 나눠주라는 말이다. 그래서, 분기별로 추첨을 해서 상품으로 라디오와 자전거 같은 걸 나눠주라고.”
“아. 그렇게 라디오를 보급하라는 말씀이군요.”
“그래. 그래야만 일본 놈들의 의심을 피할 수 있을 것이 아니냐?”
라디오 방송만으로는 본토에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활약상을 전하기는 약했다.
거기에 더해서 한두 가지 정도의 조치를 더 할 생각이었다.
“혹시, 전국의 오일장이 열리는 날을 전부 알 수 있을까?”
“오일장이 설 때마다 소문을 낼 생각이십니까?”
“아니. 오일장이 열리는 곳마다 삐라를 뿌릴 생각이야. 내 생각이 어떤 것 같아?”
“이야! 그거 완전히 획기적입니다. 오일장에 대공포를 가져다 놓을 수도 없고 어느 장에 삐라가 뿌려질지도 모르고 일본 놈들 미쳐버리겠는데요?”
“그리고, 덤으로 오일장을 감시하는 일본 경찰들을 때려잡을 수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