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믿지 마! 이 모든 것은 미국의 음모야!
미국과 소련 양쪽의 군사고문단은 왜 이런 짓을 벌였을까?
아마, 두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나는 한동안 전선을 잘 막으면서 유지하자 정말로 자신들의 능력이 일본군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오판한 중국군 지휘부의 근거 없는 자신감.
다른 또 하나는, 어쩌면 곧 전쟁을 치러야 할지도 모르는 나라인 일본군의 진정한 실력 파악.
아니, 소련은 함경도 근처 장고봉에서 일본과 벌써 한 판 붙어보기는 했지만, 그건 겨우 두세 개 사단이 벌인 전투였으니 대규모 회전을 통한 일본군의 진짜 실력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
“서덜랜드 대령님, 그래서 어떤 결론을 내리셨습니까?”
내 질문에 리차드 서덜랜드 대령은 대답 대신 희미한 웃음으로 대신했다.
미국도 이번에는 미국의 군사고문단이 직접 참관하면서 일본군의 실력을 직접 확인했다.
원래대로였다면 아마 미국의 정보원들이 일본군의 능력을 파악해서 보고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둘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미국군 지휘관들이 직접 전쟁에 참여하면서 분석한 일본군과 정보원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전해 듣는 일본군.
어느 것이 실제 전쟁에서 대처가 빠를까?
이제 일본군은 X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진주만을 공습하는 순간, 기존의 역사와는 전혀 다른 전개가 펼쳐질 것 같다는 생각이 뇌리를 강타했다.
“에이, 대령님. 전임 아이젠하워 대령님은 그래도 가벼운 정보 정도는 공유했는데 진짜 웃기만 할겁니까?”
“음…. 이건, 내가 말할 단계의 정보 범위를 넘어섰습니다. 나중에 맥아더 단장님께 직접 물어보십시오.”
그렇지.
너희들은 중국군을 가지고 이미 시험을 다 했지?
“뭐, 그렇게 말씀하시면 맥아더 단장님이 오실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야겠네요?”
“그렇지 않아도 맥아더 단장님께서 조지 대장과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셨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나는 나와 함께 온 광복군 지휘관들도 편하게 쉬면서 맥아더를 기다리자고 말했다.
“다들 서덜랜드 대령의 말을 들으셨죠? 여기서 편하게 앉아서 조금만 기다립시다.”
그렇게, 한 십 분쯤 앉아 있었을까?
“다들 여기서 뭐 하고 있나?”
“우리들은 맥아더 단장님을 만나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나는 광복군 지휘관들을 만나려고 김구 주석과 약속을 잡고 왔는데…. 아니, 차라리 잘 됐군. 다들 내 방으로 들어가자고.”
맥아더가 우리를 먼저 만나려고 했다고?
왜?
왠지, 느낌이 싸했다.
“내가 김구 주석과 회담을 좀 했는데 김구 주석은 광복군의 운용은 전적으로 광복군 지휘부에 맡기고 있다고 해서…. 내가 보기에는 뭐….”
맥아더는 김구 주석의 대응에 약간 짜증이 난 얼굴로 투덜댔다.
정부가 군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은 정부가 무능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하는 건데 김구 주석은 왜 그렇게 말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말이야. 조지 대장.”
“예, 맥아더 단장님.”
“내가 부탁할 일이 하나 있는데, 가능할지 모르겠어?”
“어떤 일인지 들어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그렇지? 조지, 자네가 조선인도 아니고…. 지금, 광복군 항공대가 중국공군의 조종사들을 훈련시키고 있다지?”
“예, 그렇습니다.”
“혹시, 필리핀군 조종사들의 훈련도 가능하겠나?”
역시, 김구 주석이 왜 맥아더에게 군을 통제하지 못하는 무능한 모습까지 보였는지 알 수 있었다.
중국 땅에 이어서 이제는 필리핀 땅에까지 가서 우리 광복군들의 피를 흘리기 싫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김구 주석의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서 맥아더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좋았다.
“생각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지금 당장은 중국공군 조종사도 교육해야 하고 이번에 전투로 생긴 중국공군의 공백도 메꿔줘야 할 것 같고….”
“그래. 알았어. 이왕이면 올해 말까지는 결정을 해줘야 해.”
“맥아더 단장님. 많이 급하시면 제가 아는 훌륭한 미국인 교관들도 있는데….”
“아니야. 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항공대가 필요한 거야.”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맥아더는 필리핀군 조종사를 교육하려고 한다는 것은 핑계였다.
자신의 영지나 다름없는 필리핀의 하늘을 광복군 항공대로 지키고 싶은 것이었다.
‘개새끼! 시발! 힘없는 자의 서러움이군. 우리만 가면 절대 안 된다. 반드시 항공대를 지켜줄 육군도 데리고 가야만 한다.’
“예, 최대한 빠르게 결정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래. 좋네.”
“그런데, 맥아더 단장님. 혹시, 필리핀 육군 훈련 교관은 필요 없습니까?”
“그건, 우리가 해도 되는데?”
“광복군 육군에는 게릴라전에 특화된 부대도 있습니다.”
“게릴라전? 필리핀에서 게릴라가 왜 필요하지?”
여전히 보급선을 차단하고 끊는 특수부대의 중요성을 아직까지도 뼈저리게 느끼지 못한 모양이었다.
“루손섬 북부에 상륙한 적이 마닐라까지 가려면 넓은 밀림 지역을 통과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굳이 게릴라전에 특화된 부대가 필요할까?”
“아마, 제일 필요한 부대가 바로 그런 식으로 전투를 하는 부대일 겁니다.”
“음…. 그건, 내가 한번 생각을 해보지.”
이것으로써 미국이나 맥아더가 생각하는 아시아 정책의 윤곽을 대충 알 수 있었다.
역시, 중국은 일본군의 전력을 잡아 놓는 역할로 끝이었다.
미국은 중국보다 필리핀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 * *
광복군 총사령부로 돌아온 광복군의 지휘관들은 미국 군사고문단을 방문하고 갖게 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내 주위로 모였다.
“조지 대장님은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도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겠습니까?”
김경천의 정보 공유 요청에 나는 주위로 모인 광복군 지휘관들을 한 명씩 보면서 지금 정보를 공유하고 미리 준비를 할까 아니면 나중에 꼭 필요한 순간에 정보를 전해줄까 하고 잠시 고민하다 마음을 정하고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은 미국을 믿으십니까?”
“느닷없이 그게 무슨 말입니까?”
“미국이라는 나라를 동료나 동맹으로 믿을 만하냐는 말입니다?”
“우리가 미국군하고 얼마나 같이 생활했다고 믿고 말고가 있겠습니까?”
“그런가요? 그럼, 소련은 어떻습니까? 소련은 동료나 동맹으로 믿을 만합니까?”
내가 질문하자마자 바로
“로스케 새끼들은 말도 꺼내지도 마십시오. 세상에서 제일 믿을 수 없는 놈들이 바로 그놈들이니까요.”
“아! 참, 그렇죠? 그럼, 독일군은 어떻습니까? 독일군하고는 우리가 꽤나 사이가 좋았잖습니까? 독일은 어떻습니까?”
“글쎄요…. 독일은 우리하고 접점이 없어서 서로 부담 없는 관계였지 않나 싶은데….”
그때, 지청천이 나와 김경천의 대화에 끼어들면서
“조지 대장님. 그런데,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무슨 큰 상관이 있습니까?”
“예, 여러분들이 다른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야 내가 말할 수 있는 수위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중국군을 좋아하는데 내가 중국군을 배신하자고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럼, 그렇게 일일이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 어떤 나라도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믿을 뿐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우리 동포와 우리 인민 그리고 우리 동지들을 믿습니다.”
“그랬군요. 그래도, 여러분들은 일본과 중국은 믿지 않으실 것이고….”
“그거야 당연하죠. ‘원교근공’이라고 했습니다. 믿을 놈이 없어서 왜놈과 뙤놈을 믿겠습니까?”
“좋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여기서 나눈 대화는 광복군의 지휘관들만 공유하기를 부탁드립니다. 이 정보가 새어 나가면 난감하게 생각할 곳들이 많습니다.”
“그런 걱정은 하지 말고 시원하게 이야기나 좀 해주십시오.”
“뭘 알아야 대처도 하고 준비도 할 것이 아닙니까? 이참에 속 시원하게 이야기하십시오.”
나는 다른 광복군 지휘관들이 볼 수 있게 세계 지도를 우리들 가운데 펼쳤다.
“지금, 이렇게 독일과 일본이 동맹입니다. 그리고, 조만간 여기 이탈리아가 동맹이 될 겁니다.”
“그건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일본의 외교관 중에 마쓰오카 요스케라는 놈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놈의 평소 주장이 독일-일본-이탈리아 이렇게 삼국이 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놈이 현재 일본 내각에서 그런 소리를 하고 있습니까?”
“아니요. 지금은 일본 육군 통제파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관동군 참모장 도조 히데키와 함께 있습니다.”
내 이야기에 다들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 보충 설명을 했다.
“일본 총리 고노에는 현재 관동군 참모장인 도조 히데키를 머지않아 육군 대신으로 임명할 겁니다. 고노에는 일본군의 통제를 힘들어하고 있고 매일 같이 암살 위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군부를 달래기 위해서 도조를 육군 대신에 임명하고…. 그런데, 만약 도조가 육군 대신을 사퇴해버리면 내각이 뽀개지지 않습니까?”
“예, 바로 그겁니다. 아마 그렇게 도조가 총리가 되고 마쓰오카가 외무대신이 될 겁니다. 이게 그들의 계획이거든요.”
일본과 싸워서 이겨야만, 독립이 가능하기 때문에 광복군 지휘관들은 일본의 실상을 다들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어서 이야기하기가 확실히 편했다.
“자, 조만간 일본은 삼국동맹 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럼, 여기서, 일본군은 뭐가 무서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유럽의 독일과 이탈리아와 동맹을 맺을까요?”
“중국은 아닐 테고 소련인가요?”
“예, 현재 일본군 내부에서는 소련과 미국, 둘 중 하나를 적으로 삼을 생각입니다. 일본군은 북으로 공격을 하지. 아니면, 남으로 공격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중입니다.”
광복군 지휘관들은 다들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미친놈들! 이 상황에서 전쟁을 또 벌인다고요?”
“왜놈들이 갑자기 단체로 미친 겁니까? 중국도 이기지 못하는 것들이 소련과 미국이라니….”
“전부 미친 것은 아닙니다만 일본군 대부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 국민도 마찬가지고요.”
“그럼, 아까 맥아더 단장이 필리핀 공군을 만들어달라고 한 이유가 일본군의 공격에 대비하는 거군요. 그런데, 광복군 항공대 중국을 빠져나가면 중국공군만으로는 방어가 힘들 텐데….”
“바로 보셨습니다. 미국은 일본의 공격을 대비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 항공대가 빠져서 중국공군이 힘들어져도 미국은 별로 신경을 안 쓸 겁니다.”
“왜요?”
“미국에 있어서 중국의 용도는 일본군의 전력을 분산시켜주는 역할, 딱 거기까지입니다.”
이미, 자유시 참변부터 시작해서 국제 역학 관계 속에서 수많은 배신을 당해봤던 광복군 지휘관들은 씁쓸한 표정만 지을 뿐 중국군이나 중국 정부를 안타깝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냉정한 것이 바로 세상이란 것을 그들은 이미 뼈저리게 느끼면서 살아왔던 사람들이다.
“조지 대장님, 일본이 삼국동맹을 맺고 소련이나 미국을 공격한다면 소련이나 미국이 아무리 땅이 넓고 군사력이 강한 나라들이라고 해도 힘들어지지 않나요?”
“음…. 내가 보기에는 미국과 영국이 각자 따로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음모요?”
“예, 영국이 꾸미는 음모는 귀여운 수준이고 미국이 꾸미는 음모가 앞으로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을 것 같습니다.”
“미국이 큰 음모를 꾸미고 있다…?”
“여기서 미국은 미국의 행정부를 콕 찍어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의 국익을 생각하는 어떤 특정 집단들이 음모를 꾸미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