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군과 소련의 스탈린을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우한 옆의 한커우에 주둔하고 있는 광복군 항공대 내의 내 사무실로 아이젠하워를 데리고 갔다.
“자, 커피 한잔하겠습니까?”
“전쟁터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것도 일종의 사치지요. 저도 한 잔 주십시오.”
“하하. 아직, 여기까지는 전쟁터로 변하지는 않았잖습니까?”
“이곳도 언젠가는 일본군에 밀려서 빼앗기겠죠.”
아이젠하워는 그동안 봐왔던 중국군의 전투력에 대해서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엇다.
“중령님은 중화민국군의 전투력을 회의적으로 보는군요?”
“예, 마셜 장군님에게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보는 처음이었지만, 정말 문제가 많은 군대였습니다.”
“그건 그동안 중국인들은 사실 민족이라는 개념은 있어도 국가라는 개념이 없었던 사람들이라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국가라는 개념까지 가지면 그때는 진짜 일본보다 더 무서운 또라이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중국인들은 세상이 자기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는 민족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중국입니다.”
“아! 그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진짜 중국인들은 그렇게 생각합니까?”
“예, 피해 의식에 쩔어서 그렇게 스스로 자기 위안을 하고 사는 겁니다. 중국은 중국의 주요 민족인 한족이 중국을 직접 다스렸던 기간은 겨우 몇백 년일 뿐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그들이 오랑캐라고 부르는 기마민족의 지배를 받았죠.”
아이젠하워가 나중에 대통령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에 대한 확고한 역사 인식을 심어주고 싶어서 처음에는 중국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그 정도로 자존심이 세다면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건들면 안 되겠군요?”
“아니요. 그런데, 이게 또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확실한 힘의 우위를 보여주면 오랫동안 지배를 받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세계질서를 인정할 줄도 압니다.”
“이건 뭔가 이율배반적이네요.”
“예, 좀 그렇죠?”
“예, 그런데, 조지 대장님. 나와 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서 좀 전에 이야기할 시간이 있냐고 물었던 것 아닙니까?”
“예, 중령님이 진급해서 본국으로 간다니까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어떤 생각입니까?”
“지금부터는 나도 미국인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중령님도 미국인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해주십시오. 먼저, 중령님은 일본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이젠하워는 내가 묻는 말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외교관도 아니고 그렇다고 장군급도 아닌데 갑자기 이런 질문을 받자 처음에는 대답을 할까 말까 잠시 고민하는 눈치였다.
“내가 일본이라는 나라를 평가할 위치는 아니지만 좀 괘씸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일본이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미국이 정해 놓은 질서를 무너트리려는 것은 우리 미국인들이 보기에는 괘씸한 일이죠. 그럼, 일본과 동맹인 독일은 어떻습니까?”
“내가 보는 독일은 지금 보이는 행보를 보면 상당히 우려스럽습니다.”
“어떤 면에서요?”
“독일은 마치 전 국민이 전쟁을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영국은 왜 그걸 막지 않을까요?”
“나도 그것이 좀 이상합니다.”
영국도 독일도 소련도 미국도 각자 꿍꿍이가 있어서 서로 간의 머리싸움을 하는 중이었다.
영국과 미국은 독일이 반공 노선을 내걸고 소련과 전쟁을 하면 좋은 것이고 아니라면 이 정도에서 평화를 유지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소련은 한쪽은 독일 다른 쪽은 일본의 공격을 받지 않을까 하고 두려워했다.
그래서, 만만한 일본과는 직접 전투하거나 중화민국을 지원해서 간접적으로 일본을 막았다.
독일은 그와는 반대로 최대한 저자세를 보이면서 모든 부문에서 협조를 해주고 있었다.
“이번에 독일은 같은 게르만 민족의 국가라는 이유로 오스트리아를 합병했습니다. 독일은 여기서 멈출까요? 중령님은 어떻게 보세요?”
“음….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조지 대장님. 그런 것들은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 같은데요?”
이제는 슬슬 본론을 꺼내야 할 시간이 됐다.
“아니요. 내가 보기에는 독일은 반드시 전쟁을 할 겁니다. 그럼, 미국은 저번 전쟁 때처럼 유럽으로 파병을 할 겁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중령과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럼, 조지 대장님이 보기에는 독일이 전쟁을 일으키고 미국은 참전을 한다는 말입니까?”
“예, 그렇게 참전한 미국은 현재 맥아더 장군 밑으로는 특출난 지휘관들이 별로 없습니다. 아마 내 생각에는 그런 상황이오면 아이젠하워 중령이 미국군을 지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이젠하워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한테 되물었다.
“예…? 내가 유럽 파견군을 지휘해요?”
“아마요.”
“에이,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나처럼 진급이 안 되는 장교를 보셨습니까?”
“나도 그랬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한순간이 되면 시련은 끝나고 영광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농담도 잘하지 않는 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자, 아이젠하워는 내 말처럼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과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혼란스러워했다.
“행운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옵니다. 내가 보기에 아이젠하워 중령은 대령 진급이 시작인 것 같습니다. 시간이 나는 대로 유럽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고 중령님만의 작전을 구상해 놓는 것도 좋을 겁니다.”
“음…. 조지 대장님, 내가 만약, 정말로, 유럽 파견군을 지휘하게 된다면 가장 많이 신경을 써야 할 것이 뭘까요?”
확실히, 아이젠하워는 장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누구에게나 조언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가 독일은 반드시 전쟁을 일으킨다고 했죠?”
“예, 내 생각에도 이제 보니까 그럴 가능성이 큰 것 같습니다.”
“독일은 저번 대전 때도 양면으로 싸우다 졌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어떤 방식을 보일까요?”
“글쎄요? 한쪽과 불가침이라도 맺을까요? 그렇게 하기에는 프랑스와 소련이 만만치 않은 나라들이라서….”
“내 생각에는 독일이 일본과 방공협정을 맺은 이유가 뭔지를 알면, 누구와 불가침을 맺고 누구를 공격할지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어! 설마, 독일은 처음부터 소련을 압박하려고…?”
“내가 보기에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 소련과 불가침 조약을 맺고 프랑스를 공격한다고요?”
“중령님이 보기에는 어때요? 정말 그럴 것 같아요?”
알고 있는 미래를 참 어렵게 아이젠하워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연합군 수뇌부들이 가졌던 소련군 경시 현상을 바로 잡아주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스탈린의 교활함도 알려줘야 했다.
“독일군이 프랑스의 마지노선을 돌파한다고요?”
“마지노선을 피해서 공격하면 프랑스는 한 방에 무너집니다.”
“어디로요? 설마 벨기에? 거기는 진격하기가 힘든 지형일 텐데….”
“이 세상에 불가능한 일 가운데, 충분히 가능한 일을 사람들이 지레짐작으로 시도하지 않는 일도 있습니다.”
아이젠하워는 1차 세계 대전의 참상이 떠오르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 독일이 프랑스를 한방에 무너트리고 나면 그다움에는 무엇을 할까요?”
“프랑스가 그렇게 쉽게 무너질까요?”
“일단 가정을 해보자는 겁니다. 프랑스가 한방에 나가떨어지고 나면 독일은 무엇을 할까요?”
“글쎄요. 영국을 공격할까요?”
“아니요. 석유를 구하려고 다닐 겁니다.”
“그렇다면, 불가리아와 소련 아니면 중동이군요.”
“아마 그렇겠죠? 그리고, 독일은 소련과 전쟁을 하겠죠.”
“석유를 비축하기 시작하면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는 의심을 받을 테니 평소처럼 하다가…. 이제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이해된다니 다음 이야기의 진행이 가능하겠군요. 그럼, 여기서, 스탈린은 히틀러의 생각을 알까요? 모를까요?”
잠시 아리송한 표정으로 생각을 하던 아이젠하워는
“스탈린도 알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일본은 때리고 독일과는 협력하겠죠?”
이번에는 내가 반대로 질문을 했다.
”히틀러의 의도를 아는 스탈린은 독일의 침공을 대비하겠네요?”
“아무래도 히틀러의 의도를 눈치챘다면 준비를 하지 않을까요?”
“자, 여기서 다시 문제입니다. 이미 히틀러의 의도를 알고 준비를 한 스탈린이 다른 나라에 도움을 요청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최대한 소련이 피해를 적게 보기 위해서겠죠.”
“바로 그겁니다. 나중에 중령님이 정말로 유럽 파견군 지휘관이 된다면 스탈린은 머릿속에 살모사 수천 마리와 능구렁이 수천 마리가 들어 있는 사람입니다. 스탈린의 죽겠다는 소리는 절대 귀담아듣지 마십시오.”
“그러다 소련의 스탈린이 독일에 항복이라도 하면은…?”
“절대로 그럴 수가 없습니다. 아마, 그런 스탈린의 협박도 거짓말 일 겁니다. 두 민족은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게르만과 슬라브의 오랜 갈등은 하루 이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가 강하게 내 생각을 말하자 아이젠하워는 고개를 끄덕이고만 있었다.
현재 상식이 조금만 있는 사람들이라면 히틀러와 스탈린의 밀월 관계가 결코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조지 대장님. 내가 그런 자리에 올라갈 일은 아마 없을 겁니다.”
“내가 아는 전쟁성(국방성) 동료들이 있는데 그쪽에서는 중령을 잘 본 상태입니다. 어쩌면 내가 말한 자리에 올라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항상 유럽 소식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뭐, 준비해서 남 주는 것은 아니니까 항상 신경을 쓰겠습니다. 오, 이런…! 시간이 꽤 된 것 같은데 이만 돌아가 봐야 할 것 같네요. 하하”
“항상 건강하고 나중에 내가 살아남는다면 그때 또 봅시다. 잘 가시오.”
그렇게 아이젠하워와 악수하고 헤어졌다.
스탈린의 이중전선 요청을 받고도 연합군이 최대한 늦게 개입한다면 소련은 어떻게 될까?
죄 없이 죽어갈 소련 사람들을 생각하면 조금 마음이 아프지만, 스탈린 때문에 죄없이 죽어간 우리 고려인들을 생각하면 이가 갈렸다.
* * *
“기체 정비는 모두 끝났나?”
“예, 대장님.”
“기상 정보는 받았고?”
“예, 내일은 하늘의 축복을 받아서 소나기 한번 내리지 않을 날씨라고 합니다.”
“좋다. 그럼 내일 나가사키 오오무라의 카사라스 항공대를 부숴버리러 간다.”
“예, 알겠습니다.”
내일 있을 폭격을 두들겨 맞고 해군이 육군의 뒤를 이어서 중국을 공격했다고 설레발치고 선동을 일삼던 일본 신문들의 기사가 어떻게 나올지 기대됐다.
“이번에는 거리상 연료가 약간 부족할 수도 있다. 최대한 빠르게 폭격하고 귀환한다. 그리고 고도를 높였을 때는 기체 비행으로 연료를 아낄 수 있도록 한다. 알겠나?”
“예, 대장님.”
“알겠습니다.”
“이번 폭격까지만 하고 잠시 우리는 쉴 수 있을 것이다. 다들 마지막 폭격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주기를 바란다.”
“에스! 써!”
“예, 알겠습니다.”
12대의 B-17 플라잉 포트리스 폭탄을 가득 실은 채 한커우 비행장의 활주로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가자! 동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