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라! 날아다니는 포대여
“저는 반대합니다. 겨우 삐라나 몇 장 뿌리자고 목숨을 걸고 규슈까지 날아가자는 말입니까? 이 바쁜 전장 상황에서 이틀이나 전투기들을 뺄 수 없습니다.”
더글러스 맥아더의 미국 군사고문단이 합류하자, 쑹메이링 항공위원회 위원장은 난징 후퇴 과정에 당했던 엄청난 부상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중국도 뭔가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환자복을 입은 채 나타나서는 공군 지휘관들을 모두 소집해서 일본 폭격을 지시했다.
“조지 대장이 그렇게 반대하는 이유를 그럼 한번 들어 볼까요?”
쑹메이링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는지 얼굴을 찌푸린 채 나를 보면서 이유를 설명하라고 했다.
“쑹메이링 위원장님, 위원장님께서는 지금 전장 상황을 모르십니까? 중화민국 공군은 조종사 양성 체계가 잡혀 있지 않아서 일본군과 동일한 교전비가 나와도 조종사 부족과 후속 기체 배치가 없어서 공군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조종사들의 목숨을 걸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작전을 하자는 겁니까?”
현재, 중화민국의 하늘은 소련과 미국에서 파견한 의용 조종사와 광복군이 중국공군을 대신해서 일본군과 싸우는 대리전쟁을 하고 있었다.
소련과 미국은 전투기와 조종사들을 대거 파견해서 있으나 마나한 중국공군과 연합해서 일본군과 전쟁 연습을 하는 중이었고, 실제로 일본군과 싸우는 것은 오직 광복군 항공대뿐이었다.
소련과 미국이 조종사와 전투기를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일본군과 워낙 물량 차이가 심해서, 일본군의 삼 분의 일 수준의 공군과 항공대는 현재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고생하면서 일본군 전투기와 폭격기들을 간신히 막아내고 있었다.
“쑹메이링 위원장님의 드높은 대일 항쟁 의지는 알겠지만, 지금 모든 전투기는 전선의 육군을 지원하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중화민국을 지키는 공군 중에 가장 큰 지분을 가지고 있는 광복군 항공대장인 내가 강력히 거부하자, 쑹메이링은 난처한 표정을 지은 체 중국 항공위원회 고문인 세놀트를 쳐다봤다.
마치 그 눈빛이 세놀트에게 자기가 원하는 것이 이뤄질 수 있게 도와 달라는 눈빛 같았다.
“흠흠, 조지 대장, 무조건 반대만 하지 말고 그래도 일본에 경고 정도는 할 필요가 있지 않겠어요?”
“경고를 해도 하필이면 삐라 100만 장이냐는 겁니다. 규슈까지 목숨 걸고 날아가서 삐라나 뿌리고 오자고요?”
“조지 대장, 현실적으로 우리는 일본을 폭격할만한 폭격기가 없는데 그럼 어떡합니까?”
“그래서 되지도 않는 소련제 SB- 2투포레포 경폭격기를 이용해서 삐라 100만 장을 뿌리자는 겁니까?”
6개월 간격으로 교대하는 소련 의용군 전투기 조종사 2진을 이끌고 중국에 파견된 파벨 뤼챠고프 소장은 소련의 폭격기를 무시하는 것 같은 내 말에 화를 내면서
“이보시오. 조지 대장! 우리 소련 폭격기가 질이 떨어진다는 겁니까?”
“아니요. 소련제 폭격기가 질이 떨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작전 자체가 실익은 하나도 없고 너무 무모하다는 소립니다.”
현재 중국 하늘을 사실상 지키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광복군 항공대가 강력하게 반대를 하자, 쑹메이링은 어쩔 수 없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의견을 물었다.
“조지 대장, 그럼 조지 대장은 어떤 식으로 일본에 경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위원장님! 경고는 허세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고는 실제 힘을 보여주면서 까불면 죽는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어떻게 하자는 건지,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봐요.”
“지금 중국을 폭격하는 일본군 폭격기들이 모두 중국에서 출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저라면 폭격기가 출발하는 일본군 비행장을 폭격해서 까불지 말라고 경고하겠습니다.”
그때, 세놀트 중국 항공위원회 고문이
“도양 폭격을 시도하는 일본군 항공 기지와 비행장을 폭격하자는 말 같은데, 우리는 거기까지 날아갈 폭격기가 없어요.”
“세놀트 고문님, 지금 미국에 넘치도록 많은 폭격기가 B-17 플라잉 포트리스입니다. 그걸 미국에 지원해달라고 하십시오. 아니면 우리한테 사주십시오. 그럼, 광복군 항공대가 책임지고 도양 폭격을 시도하는 일본군의 모든 기지를 폭격하겠습니다.”
B-17 플라잉 포트리스가 뭔지 잘 모르는 쑹메이링 항공위원회 위원장은 세놀트 고문을 보면서 알아들을 수 있는 설명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쑹메이링 위원장님, 미국에서 1935년부터 취역하기 시작한 폭격기입니다. 그걸 중국 전선에 투입할 수만 있다면 지금과는 많이 다른 상황이 벌어질 겁니다.”
“진짜요? 정말, B-17 플라잉 포트리스라는 폭격기가 중국공군에 있으면 상황이 달라지나요?”
“아마도 그렇게 될 겁니다.”
아니 절대로 그럴 일이 없다.
이제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르면 일본해군의 0식 함상 전투기가 취역한다.
그때부터 중국에 있는 모든 전투기와 폭격기는 0식 함상 전투기의 밥이 된다.
그런데, 나는 왜 지금 광복군 항공대원들의 목숨을 걸고 나서느냐고?
그것은 바로 도양 폭격을 시도하는 일본해군의 유능한 조종사들을 최대한 죽이기 위해서다.
도양 폭격은 바다를 건너서 폭격을 한다는 것인데, 이런 조종사들이 경험이 계속 쌓이면 태평양 전쟁 초반에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나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게 미리 싹을 잘라버리고 싶었다.
“조지 대장, 정말로 B-17 플라잉 포트리스가 있으면 도양 폭격을 하는 일본해군을 막을 수 있나요?”
“예, 우리 광복군 항공대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 * *
쑹메이링 항공위원회 위원장이 소집한 항공위원회의 회의가 끝나고 정저우의 항공 기지로 돌아가려는 나를 아이젠하워가 불러 세웠다.
“조지 대장님, 저 좀 잠깐 볼 수 있습니까?”
“예, 아이젠하워 중령님,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하하, 아닙니다. 뭘 좀 상의를 할 것이 있어서….”
웃는 얼굴로 다가오는 아이젠하워를 보면서 어째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나 헨리 아놀드가 늦게라도 자신들의 진가를 발휘하고 미국 군인으로서 최정상 자리에 올라섰는지를 알 수 있었다.
내가 보기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와 헨리 아놀드는 사람들의 마음 먼저 편하게 만들어주고 상대의 의견을 들어주고 그런 의견을 모아서 모두의 힘을 한곳에 집중시킬 줄 알았다.
“어떤 것이 궁금하십니까?”
“얼마 전에 중화민국 첩보 부서에서 일본군의 대대적인 공세가 있을 것이라고 알려줬는데 그 문제를 좀 물어보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아이젠하워 중령님 그냥 편하게 이야기하십시오.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조사통계국의 다이리가 첩보를 입수한 모양이군요. 그래, 어떤 첩보입니까?”
“일왕 생일(천장절)인 4월 29일부터 우한 공략을 시작한다는데 지금 우리 군사고문단에서는 일본군의 전략과 전술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부족해서 대책을 수립하기가 좀 힘듭니다.”
“아니 왜요? 중화민국군의 지휘관 중에도 일본 육군 사관학교를 나온 사람들이 많을 텐데요?”
아이젠하워는 내 말에 잠시 눈가를 찡그렸다가 다시 웃음을 지으면서
“하하, 그렇기는 하지만, 그 사람들은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경험이 없어서…. 우리는 승리를 해본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알아봤더니 광복군은 일본군을 상대로 전승에 가까운 전적이 있다고 해서 이렇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주중 미국 군사고문단장인 맥아더가 시켜서 광복군 장교를 찾아왔는지 아니면 아이젠하워가 스스로 나서서 이 전황을 타개하고 싶어서 나선 건지는 모르겠지만, 광복군 육군 장교들을 맥아더에게 소개하기 좋은 기회처럼 느껴졌다.
“중령님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광복군 육군은 모두 타이위안에 주둔 중이라서 그들이 여기를 오려면 시간이 좀 걸립니다.”
“괜찮습니다. 일본군 공세 예상 시점까지 아직은 시간이 좀 남았습니다.”
“그렇다면, 내일 바로 수송기를 보내서 데려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맥아더 단장님께 말씀드려서 우리도 시간을 잡아 놓겠습니다.”
정저우 항공 기지로 돌아가는 것을 며칠 미루고 타이위안에서 광복군 육군 지휘관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렸고 타이위안에서 신병 훈련에 집중하고 있던 광복군 육군 지휘관들이 도착하자 바로 맥아더와 면담을 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만나서 반갑군. 이번에 우리가 일본군을 깨부숴야 하는데 일본군이 상상 밖으로 워낙 이상한 놈 들이라서 말이야.”
맥아더의 광복군 지휘관들 맞이하는 첫인사는 도움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의 자세가 전혀 아니었다.
원래 태생부터 귀족인 그로서는 남에게 뭔가 도움을 바란다는 말 같은 것은 체질적으로 하질 못하는 것 같았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님.”
맥아더를 한번 만나본 경험이 있는 내가 대표로 인사를 하고 다들 자리에 앉았다.
“이번에 우리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일본군은 4월 29일부터 우한 공략을 시작으로 대대적인 공세를 시작할 거라고 하는데, 여러분도 알다시피 현재 중국군의 상태로는 일본군을 막기가 좀 버겁다.”
말을 한번 끊고 광복군 지휘관들의 얼굴을 쳐다본 맥아더는
“그래서, 이번 방어 작전에는 광복군이 참여를 좀 해줬으면 좋겠다.”
“맥아더 단장님. 죄송하지만 광복군은 현재 타이위안 전선에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현재의 팽팽한 대치 상태에서 광복군이 빠지면 전선에는 바로 구멍이 납니다.”
맥아더는 뭐라고 바로 반박을 하려다가 한 박자를 죽이고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볼 텐가?”
“예, 장군님. 현재 타이위안 전선에서 우리 광복군은 비록 1개 연대 정도의 병력이지만, 중국군 1개 사단이 맡아야 할 영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광복군이 갑자기 빠져나가면 타이위안 전선은 바로 허점이 생깁니다.”
김경천의 대답을 들은 맥아더는 옆에 앉은 아이젠하워를 쳐다봤다.
“제가 조사한 정보가 맞는다면 광복군 측의 주장이 맞습니다. 단장님.”
“그래? 이거 정말 큰 일이군. 북쪽 전선도 중요하고 이곳 중남부 전선도 중요한데…. 병력을 이쪽으로 돌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겠지?”
혼자서 뭐라고 말을 하던 맥아더는 다시 아이젠하워를 보면서 물었다.
맥아더는 신뢰하는 사람만 신뢰한다더니 정말 그래 보였다.
얼마나 아이젠하워를 신뢰하는지 여기서 단적으로 알 수가 있었다.
“예, 단장님. 중국군과 교대를 하고 이동하면 이미 일본군의 침공은 시작된 후 일 겁니다.”
“안돼! 여기서 더 밀리면 중국군은 이제 쓰촨성까지 밀린다.”
그리고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때, 김경천과 지청천 등의 광복군 지휘관들이 의견을 제시했다.
“저 맥아더 장군님. 만약 괜찮으시다면 그동안 일본군을 상대해왔던 저희들의 의견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고개를 돌린 맥아더는 아무 말이 없이 광복군 지휘관들을 쳐다봤다.
그런 맥아더의 태도에 말을 하라고 허락한 줄 안 김경천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전선 상황판 앞으로 갔다.
그리고는, 지도상의 일본군 점령지를 하나씩 집어가면서 입을 열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이렇게 간신히 도시라는 섬을 점령한 일본군이 있습니다.”
김경천의 입에서 나온 소리를 들은 맥아더와 아이젠하워는 뭔가를 깨달은 듯, 얼굴이 놀란 표정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