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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필요한데 일단은 만나보자고 (92/225)

당장 필요한데 일단은 만나보자고

일본의 고노에 후미마로 총리대신은 미국이 중국을 지원하고 군사고문단까지 파견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미 전쟁 목표를 달성한 상황에서 더는 전쟁을 지속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빠르게 중일전쟁을 종결을 위해서 육군 내부의 ‘화평파’의 지지에 기대를 걸고 1938년 5월에서 6월에 걸쳐 개각을 단행했다.

스기야마 하지메 육군 대신과 히로타 고키 외무대신을 경질하고 6월 3일 신임 외무대신에 화평을 지지하던 우가키 가즈시게를, 신임 육군 대신에는 중국통으로 알려진 이타가키 세이시로를 임명했다.

그러나, 현지에 파견된 중지나 파견군 사령관의 생각은 달랐다.

이미 난징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짓을 숱하게 저지른 중지나 방면군 사령관 마쓰이 이와네와 6사단장 타니 히사오 그리고 16사단장 나카지마 게사고는 해군 항공대의 지원을 받아서 중화민국 임시 수도인 충칭을 대대적으로 폭격하기 시작했다.

“에에에엥!”

“에에에엥!”

“공습! 공습! 공습입니다.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국민 여러분! 지금 당장 하던 일을 멈추고 방공호로 대피를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국민 여러분! 충칭 공군 사령부에서 알립니다. 공습입니다. 지금 당장, 가까운 방공호로 대피를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마닐라에서 출발해서 홍콩과 쿤밍을 거쳐서 중화민국 임시 수도 충칭에 도착한 맥아더와 미국 군사고문단은 때맞춰 시작된 일본 전투기와 폭격기들의 폭격에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꽝!”

“꽈 광!”

“에에에엥!”

“꽝!”

“꽈 광!”

공습경보 사이렌 소리와 사방에서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뒤섞이면서 주위는 더욱 혼란스럽게 변해갔다.

“아이크. 이게 뭔가? 벌써 일본군이 충칭까지 폭격하는 건가?”

“하늘에 일본군 폭격기가 있는 걸 보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단장님. 일단, 지금은 그것을 따질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은 빨리 방공호를 찾아서 가셔야만 할 것 같습니다.”

맥아더는 아이젠하워를 보면서 씨익 웃으면서

“일본군들이 나를 너무 반갑게 환영해주는군. 나중에 나한테 두들겨 맞고 울지는 않아야 할 텐데 말이야. 그렇지?”

“단장님. 농담은 그만하시고 지금은 제발….”

공습경보가 요란스럽게 울리고 충칭 시민들이 방공호를 찾아서 헤매는데도 맥아더는 여유 넘치는 표정과 행동을 보여주면서 군사고문단 단원들을 안심시켰다.

“알았어. 알았다고. 우리도 슬슬 폭격을 피할 곳을 찾아 가 볼까?”

“예, 단장님. 지금은 당장 방공호를 찾아가야 합니다. 조금만 더 서둘러주십시오.”

“알았다고. 이봐, 아이크, 급할수록 차분하게. OK?”

맥아더의 카리스마 때문에 계급 차이가 나는 장교들은 맥아더에게 말을 붙이기도 힘들어했다.

그래서, 군사고문단 내에서는 아이젠하워 중령이 나서서 맥아더를 담당했다.

일본은 1938년 2월 18일에서부터 1943년 8월 23일까지 충칭에 무차별적인 폭격을 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긴 시간 동안의 항공 폭격이었고, 인류 최초로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격의 시초였다.

충칭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가릉 빈관 호텔과 근처 저택들을 숙소로 정하고 미국 군사고문단은 바로 중화민국군과 함께 대일 전략 회의에 시작했다.

중화민국군의 전투 현황 보고를 듣고 맥아더는 아이젠하워와 함께 작전 상황도를 보면서 현재 상황에서 반전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타이위안과 한커우는 반드시 막아야 할 것 같은데, 아이크, 자네가 보기에는 어떤가?”

“중화민국군의 사정이 많이 안 좋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봐도 타이위안과 한커우만큼은 끝까지 사수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그런데, 일본군은 주로 철도롤 이용해서 이동하는 건가?”

“제가 보기에는 그런 것 같습니다. 지도상에 드러나는 일본군 점령 지역을 보니까 홍콩을 제외한 중국의 모든 항구를 완전히 점령했고 다음은 철도 시설확보를 우선시하는 것 같습니다.”

“음…. 아이크, 우리 보급은 어떻게 하지? 그리고, 항공대가 제 역할을 해줘야만 일본군의 진격을 저지할 수 있을 것 같지?”

“예, 지도상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보입니다. 그렇지만, 저희가 충칭에 도착한 날부터 시작된 일본군의 공습을 보면 중국 공군으로는 일본 항공대를 막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세놀트의 의용항공대는 아직도 정원 300명을 못 채웠나?”

“예, 아직도 멀었습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세놀트 대령의 의용항공대 지원을 받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럼, 안 되는데…. 항공대가 필요한데…. 항공대가 없으면 일본군을 저지할 방법도 반격할 방법이 전혀 없는데…. 이봐! 아이크, 혹시, 다른 항공대는 없나? 중국 공군은 어차피 있으나 마나고.”

“제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그래, 정 안되면 소련 공군이라도 함께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방법이 없어.”

“예.”

중화민국군의 작전 상황도를 보면서 방어 작전을 구상하는 맥아더를 자리에 남겨두고 아이젠하워는 중국군 장성들을 찾아다니면서 중국 공군의 현황과 상태를 알아봤고, 중국을 지원하기 위해서 참전한 다른 나라의 공군은 있는지 알아보고 다녔다.

“단장님.”

“어, 그래. 아이크, 알아봤나?”

“예, 예상처럼 중국 공군은 상태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소련이 파견한 조종사와 기체는 일본군 항공대를 제대로 막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왜, 혹시 영국군이 비밀리에 공군을 파견이라도 한 건가?”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 일본의 식민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항공대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현재 사실상 중국의 하늘을 방어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어? 뭐라고? 일본의 식민지 출신들의 항공대? 아니, 거기는 누가 후원을 해주길래 식민지 세력들이 항공대까지 가지고 있는 거야?”

“그것까지는 알아보지 못했습니다만, 조종사들의 능력과 항공기 기체의 성능이 일본군을 압도한다고 합니다. 다만, 조종사들의 숫자가 좀 적습니다.”

아이젠하워의 보고를 받은 맥아더는 항공대를 가지고 있다는 일본 식민지인들의 군대에 흥미를 보였다.

“그들의 지도자를 한번 만나보고 싶군. 현재 중국에서 일본군 항공대를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항공대라니까….”

“단장님, 그럼 한번 만나보시겠습니까?”

“당장 필요하니까 만나서 협조를 받아야겠지.”

“알겠습니다. 그럼, 약속을 잡겠습니다.”

* * *

타이위안과 정저우에서 중화민국의 육군을 지원하고 있던 광복군 항공대에 미국 군사고문단장 맥아더가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조종사의 숫자가 부족했기 때문에 상당히 많이 바쁜 상황이었지만, 맥아더를 한 번쯤은 만나두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박하성과 함께 가릉 빈관 호텔의 미국 군사고문단 사무실에서 맥아더와 마주했다.

“안녕하십니까? 장군님.”

“반갑군. 그런데, 음…. 생각과는 좀 다르군?”

“예?”

“나는 식민지인들의 군대라고 해서 정식 군대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군. 일단, 만나서 반갑군.”

손을 내밀면서 악수를 청하는 맥아더는 아무래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을 스페인 내전에 참여한 세계 의용군들과 같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광복군은 다른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는 제대로 된 장비와 복장을 갖추고 있었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상하이에서 후퇴할 때 어쩔 수 없이 파기한 전차와 14인치 대포와 같은 무기들이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조선인들이 가진 독립에 대한 열망 산물입니다.”

“광복군을 조선인들이 뒤에서 돕고 있다는 건가?”

“예. 얼마나 지지 열기가 대단한지 아이들이 코 묻은 돈까지도 성금으로 보내주고 있습니다.”

“대단하군. 아! 참, 말이 다른 곳으로 셌군. 현재 광복군 항공대의 장비와 인원이 어떻게 되지?”

“현재는 200명 정도의 조종사와 전투기와 정찰기 그리고 수송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광복군 항공대는 중대형 폭격기는 없습니다.”

“항공대 인원 때문인가?”

“예, 폭격기에 태울 사람이 없습니다.”

“만약, 사람이 있고 폭격기만 있다면 폭격기도 운용할 수 있다는 소리군.”

“예, 맞습니다. 두 가지 조건만 갖춰진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도쿄도 폭격할 수 있습니다.”

“오호! 경험이 많은 조종사들이 많은가 보지?”

“예,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이미 십 년도 전부터 조종사를 양성하고 있었습니다.”

“아! 그랬었군. 그럼 중국에서 조종사 훈련을 한 건가?”

“아닙니다. 캘리포니아의 월로우스 비행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내가 하는 이야기는 미국 육군 항공대를 관장하는 육군 참모총장 출신인 맥아더도 금시초문인 모양이었다.

“미국에서 육군 참모총장이었던 내가 모르는 일도 있었군?”

“육군항공대 차원에서 지원을 받아서 그럴 겁니다. 제가 미국 육군항공대 출신이었거든요.”

“혹시, 자네도 참전 군인이었던가?”

“예, 프랑스 북부 전선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맥아더의 태도가 조금 변했다.

그전까지는 그저 동양인 식민지 출신 군인으로 대우하더니 미군으로 함께 피를 흘린 전우였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래도 미군으로 취급을 해줬다.

“혹시, 광복군 항공대가 우한이나 한커우 전선을 지원할 정도의 여유가 되나?”

“장군님,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지금도 중국과 소련 조종사들을 돕느라 무리한 출격을 하고 있습니다.”

“음…. 그래? 그럼 일본군을 막기 힘들겠는데…. 이걸 어떡한다.”

* * *

맥아더 자신도 항공지원과 기계화된 보병이 없다면 일본군과의 전투가 힘들 것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맥아더가 예상했던 것처럼 미국 군사고문단이 중화민국군을 지휘한 후에도 전선에서는 계속해서 밀리고만 있었다.

“뭐야? 뭔가 해줄 거라고 기대를 잔뜩 했는데 일본군하고 붙기만 하면 매번 깨지는 거야?”

김경천은 지청천을 보면서 미국 군사고문단을 소재로 웃으면서 농담을 하고 있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미국이 워낙 강대국이고 미국의 참모총장 출신이라고 하니까 장제스 총통이 기대를 많이 했다고 하던데…. 아무튼 큰일입니다. 잘못하면 전선이 둘로 쪼개질 판입니다.”

“하하. 어이가 없어서…. 아니, 그런데, 실패한 작전을 왜 그렇게 끝까지 고수하는 거야?”

“아마 자존심 때문이지 않을까요?”

“정말 어이가 없군. 군인은 승리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해야만 하는데 자존심 때문에 그 많은 병력을 소모하다니.”

“지금 장제스 총통은 어떤 심정일까요?”

“글쎄, 맥아더를 죽여버리고 싶을까?”

장제스 총통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맥아더는 부족한 항공 전력과 기갑 전력 때문에 겨우겨우 전력을 유지하면서 후퇴를 거듭하고 있었고 맥아더에게서 장비 부족에 대한 설명을 들은 장제스는 미국 정부와 영국 정부 그리고 소련 정부에 지원을 계속해서 요청하고 있었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구경만 하는 겁니까? 당최 좀이 쑤셔서….”

“임시정부에서는 최대한 병력을 아끼려는 모양이야. 남의 나라 전쟁에서 우리는 이미 할 만큼 했잖아?”

“그렇기는 하지만 훈련만 하고 있으려니까 몸이 점점 무거워지는 느낌입니다.”

“나도 마찬가지다. 때가 되면 임시정부에서 언젠가는 무슨 결정을 해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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